제162회 일요 걷기(남파랑 29-1)
남파랑 29-1(남망산-해양과학대 정문) 5.0km/3h
1. 김춘수 꽃 시비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고 김춘수 시인의 <꽃> 시비가 2007년 11월 29일 민간단체인 '꽃과 의미를 그리는 사람들(통영예술의 향기)'이 꽃 한 송이 모금 운동을 벌여 항남동 시내 소공원에서 김 시인의 육필 원고를 새긴 <꽃> 시비 제막식을 열었다. 이 시비는 초정 김상옥 선생의 동상이 생가 옆에 세워지면서 이곳으로 이전하였다.
통영 동호동의 부잣집에서 태어나 일제 강점기에 호주 선교사가 운영하던 진명유치원에 다녔다. 호주 선교사의 집과 그 이국적 분위기에 대한 기억은 김춘수의 유년시'를 비롯해 작품 곳곳에 등장한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였던 김춘수는 유학을 위해 일본에 머물던 중 우연히 한 서점에서 릴케의 시집을 만난 후 문화 충격을 받고 문학의 길에 들어섰다. 이후 영미문학에 빠져 다양한 책들을 섭렵하고 습작을 하기도 했다. 일본에서 호기심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에 무심코 내뱉은 일본에 대한 험담이 문제가 되어 불경죄로 구금되었다가 고국으로 돌아온다.
해방 후 찾은 고향 통영에서 청마 유치환을 만나 통영문화협회의 총무로 일하며 함께 문화 운동을 펼쳤다. 청마는 일찍이 후배 김춘수를 눈여겨보았다가 그가 문단에 발을 들여놓는 데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김춘수의 시 '꽃'은 오늘날에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로 손꼽힌다. 통영 해저터널 근처 해평동에 김춘수 유품전시관이 있으며 묘소는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 매산리 산17 광주공원묘원 250-6호에 있다.
2. 동피랑(통영성 동포루)
통제영(統制營)의 동포루(東鋪樓)가 있던 자리로, 통영시는 낙후된 마을을 철거하여 동포루를 복원하고 주변에 공원을 조성할 계획이었다. 그러자 2007년 10월 ‘푸른통영21’이라는 시민단체가 공공미술의 기치를 들고 ‘동피랑 색칠하기-전국벽화공모전’을 열었고, 전국 미술대학 재학생과 개인 등 18개 팀이 낡은 담벼락에 벽화를 그렸다.
벽화로 꾸며진 동피랑 마을에 대한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하고, 마을을 보존하자는 여론이 형성되자 통영시는 마침내 동포루 복원에 필요한 마을 꼭대기의 집 3채만을 헐고 마을 철거방침을 철회하였다. 철거 대상이었던 동네는 벽화로 인하여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통영의 새로운 명소로 변모하였다.
3. 통영항 이야기
통영항은 통제영의 선소다. 통제영 8전선을 계류하던 곳으로 각종 군량과 무기를 보관하고 관리하던 건물이 즐비하게 있던 곳이다. 통제영이 폐지된 이후 이곳은 어선이 드나들고 여객선이 드나들던 항구로서 역할을 했다. 통영항은 만남과 헤어짐의 장소이자 뭇 생명이 태어나고 지금도 생명을 잉태하고 있는 곳이다. 고깃배가 드나들고 비릿한 갯내와 생선 말리는 곳, 톱 장수가 시를 쓰는 곳이다. 백석이 난을 만나러 객선을 타고 왔으며, 이중섭이 기거했던 곳이 있으며, 김용익의 밤 배가 도착한 곳이기도 하다. 충무김밥이 있으며 다찌집이 있는 곳이다.
4. 중앙시장
300년 가까이 존속했던 통제영이 폐지된 것은 1895년의 일이었다. 1900년에는 통영 지역과 고성군, 거제군의 일부가 통합되어 진남군이 되었다가 1914년 거제군을 통합하면서 처음으로 통영군이 되었다. 그러나 1953년에 거제군이 분리되고, 통영은 1955년 이순신의 시호를 딴 충무시로 승격된다. 그렇게 충무시와 통영군으로 나뉘었다가 1995년 현재의 통영시가 되었다.
중앙시장은 통제영의 역사와 함께한 장시다. 통영성 남문 아래 성벽을 따라 길게 늘어선 장시는 동문 밖 비석거리에 있던 것을 이곳 남문 밖으로 이설하고 매달 초이튿날 시장을 열고 5일 간격으로 열었다. 사전四廛(4대 전문 도매점)은 싸전(쌀)과 포목전, 잡화전, 담배 전이 있었다. 장배는 고성 거제 창원 하동 곤양 김해 등 고을에서 모두 영인(營人)을 두고 배 한 척이 그 읍에서 생산되는 물건을 싣고 와서 장에서 팔고 거래했다.
통영중앙시장은 통영의 중심지에 위치한 전통시장이다. 통영시장은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번영했던 전통을 이어받아 해방 이후에도 꾸준히 번영했다. 통영중앙시장이 침체기에 빠진 것은 1990년대 이후의 일이었다. 대형마트들과 백화점이 등장하고, 1996년에 통영대전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2000년대 초반에는 거의 시장을 폐쇄해야 할 정도로 크게 약화되었다. 통영중앙시장이 살아나기 시작한 것은 2007년 동피랑벽화마을이 시장 뒤에 조성되고, 2008년 한려수도조망케이블의 설치, 2010년 부산과 거제를 잇는 거가대교의 개통과 관련이 있다. 이때부터 통영에 관광객들이 밀려오기 시작했고, 이와 더불어 통영중앙시장은 눈에 띌 정도로 활기를 되찾았다.
참고문헌
문화재청, 통영시청, 통영시립박물관, 통영예술기행, 한려투데이, 위키백과, 통영지(統營志),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각사등록(各司謄錄), 네이버 지식검색, 이충무공전서(李忠武公全書), 동아일보, 국내 시장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