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가타 신죠1 - 긴잔온천에서 버스와 기차로 신죠에 돌아와 야구와 짬뽕을 생각하다.
2022년 11월 2일 미야기현 나루코 온천 (鳴子溫泉) 에서 기차로 신죠시 (新庄市) 에 도착해
역 앞에 자리한 호텔에 배낭을 맡기고는..... 다시 기차를 타고 야마가타(山形) 현
오오이시다역 (大石田)역에 내려 버스를 타고 긴잔온천 銀山溫泉(은산온천) 에 도착합니다.
긴잔온천 마을은 여기서 언덕길을 내려가야 하는데.... 마을에 들어서니 마을을 둘로 나누며
흐르는 강변 이쪽에 자리한 족욕탕 인 “와라시유” 에서 양말을 벗고는
피곤한 발을 담그고 휴식을 취한후 오래된 목조 주택들이 이어지는 온천동네를 구경합니다.
긴잔온센 (銀山溫泉 은산온천) 은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에 모티브 가 된
오바나자와시 산골짜기에 자리한 온천으로 다이쇼 시대에 지어져 100년이
넘는 목재 료칸 들이 늘어선, 운치 있고 분위기가 매력적인 도호쿠 굴지의 온천가 입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은 시골로 이사를 가게 된 치히로의 가족, 겁이 많고 소심하지만 심지 굳은 소녀
치히로 는 새로운 곳에 대한 낯설음과 두고온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에 의기소침한데..... 아버지가
운전중 길을 잘못드는 바람에 의문의 터널 앞에 도착하고, 그 너머 신의 세계로 들어오게 된다로 시작됩니다.
긴잔온센 (銀山溫泉 은산온천) 은 동네 안쪽에 자리한 폭포 도 볼만하며 수많은 온천 료칸들이
저마다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겨울 밤은 새하얀 눈으로 뒤덮인 온천가 를
가스등의 따스한 불빛이 비추는 모습을 추억으로 남기니 노천탕이 있는 숙소에서
온천물에 몸을 맡기고 하얗게 빛나는 눈의 세계 를 보는 추억은 오래토록 기억으로 남습니다.
긴잔온천 (銀山溫泉) 에서 14시 44분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는 차창 밖으로 펼펴지는 들판 풍경을 바라
보다가 문득 박형준 동아일보 도쿄 특파원이 쓴 글 “오타니 쇼헤이가 심어준 ‘꿈’” 이 떠오릅니다.
일본의 올해 유행어 대상으로는 ‘쇼타임’ 과 ‘리얼 이도류 (二刀流)’ 두가지가 뽑혔다.
야구를 좋아하는 이라면 쉽게 주인공이 떠오를 것이다. 미국 메이저
리그(MLB) 에서 투타 겸업 선수로 뛰고 있는 오타니 쇼헤이 (大谷翔平·LA 에인절스) 다.
미국 방송 아나운서들은 오타니가 등장하면 그의 이름에 있는 쇼(翔) 를 넣어 “이츠 쇼 타임” 이라고 말한다.
이도류는 양손에 칼 을 들고 공격과 수비를 하는 기술을 뜻하는데, 세계 최고 수준의 선수들을 모아 놓은
MLB 에서 만장일치로 아메리칸리그 최우수선수(MVP) 에 선정된 오타니 에게 일본 열도는 올 한해 열광했다.
7, 8월 도쿄 올림픽 기간 아침 정보 TV 프로그램에서 오타니에 대한 속보가 줄면 시청자 항의 가
빗발칠 정도였다. 아니, 올림픽이 자기나라에서 열리는 중임에도? TV에 출연한 한 인사는
“험담 하는 사람이 없는 대상은 (도쿄 우에노동물원에 ) 판다와 오타니 뿐” 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일본에선 여러 스포츠 중 특히 야구 인기가 높은 것 같다. 4일 자전거로 도쿄 다마강 주변 약 10km
를 달리면서 보니 6개 잔디구장 중 4곳에서 야구 를, 2곳에서 축구 를 하고 있었다. 모두
초중고교생 이었다. 도쿄 도심의 학교 운동장에서도 주말에 야구를 즐기는 학생들을 쉽게 볼 수 있다.
프로 진출을 목표로 하는 엘리트 선수 중심으로 야구를 이어가는 한국 학생들과 다른 모습이다.
일본은 학교에 20개 ~30개 정도 운동부 가 있어 수업을 다 마치고 방과후 활동 으로 운동을
하는데 비해 한국은 학교에 운동부는 하나 아니면 2개 정도이니, 한국 고교 야구팀은 80개
정도지만 일본에서는 고교 야구팀이 무려 4,030개 나 되며 축구등 다른 종목도 마찬가지 입니다.
고교 축구팀도 한국 145개에 비해 일본은 4,174개 에 달하며 일본 여자중학교 농구부 는 5,649개
7만 5423명이 선수 로 등록한데 비해 한국 여중부 농구팀은 "23개에 선수도 184명" 이 전부니
저변은 실력으로 이어지는데, 일본 축구는 독일을 연거푸 격파하며 4점대 득점을 하고 있고
야구도 202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에서 전승으로 우승했으며.... 그외에 2022년 도쿄 올림픽
참가팀 가운데 평균 키(175.6㎝) 가 가장 작았던 일본 농구팀이 은메달 을 차지한게 우연이 아닙니다.
일본 학생들이 야구를 좋아하는 것은 그만큼 매력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고교 야구의 ‘꿈의
무대’ 로 불리는 전국고교 야구선수권 대회(여름 고시엔) 는 항상 감동을 준다. 올해 경기
에서 가마쿠라가쿠엔과 시로사토고교는 3회전에서 맞붙어야 했지만.... 시로사토고교
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와 가마쿠라가쿠엔은 부전승 했다.
가마쿠라가쿠엔은 4회전에서 졌다. 그 후 반전이 일어났다. 가마쿠라가쿠엔이 시로사토고교에 연습
경기 를 제안한 것이다. 연습경기에서 시로사토고교는 9-0으로 크게 패했다. 하지만 지역
신문에 나온 경기 후 사진을 보니 모두가 기분 좋게 웃고 있었다. 일부 우는 듯 보이는 시로사토
고교 선수도 있었다. 경기에 져 분해서라기 보다 상대팀의 배려에 너무 고마워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다시 오타니 선수 이야기다. 스포츠과학 측면에서 볼 때 투타 겸업은 효율성 이 떨어진다. 사용하는 근육이
다르기 때문에 하나에 집중하는 게 낫다. 반복 연습을 해 몸이 기술을 기억하도록 만드는 게 이길 확률
을 높이는 방법이다. 초등학생 때부터 포지션을 정해 집중적으로 훈련시킬 정도로 야구는 점차
전문화 되고 있는 추세다. 이런 상황에서 오타니는 일반적인 상식에 도전했고,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그의 가장 큰 공적은 일본 사회에 ‘꿈’ 을 심어준 것이라 생각한다. 제2의 오타니가 될 인재가 지레
겁을먹고 투타 중 하나를 고민 하는 중학생, 세계적 디자이너가 될 이가 수학 성적이 안
나와 인생 전체를 포기하려는 고교생, 노벨 화학상을 탈 인물이 거듭된 연구 실패로 연구
를 접을지 망설이는 과학자. 그런 이들에게 꿈을 꺾지 않고 계속 도전할수 있는 용기 를 심어줬다.
다만 한 가지 주의점이 있다. 오타니는 장타를 위해 몸에 근육을 붙여 체중 을 늘리면서도 투수로서
중요한 어깨뼈 주변 근육의 탄력성 을 잃지 않았다. 그만큼 이도류 에 대한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남들 두 배의 노력을 했다. 계속 꿈만 꾸고 있었다면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꿀 수 없었을 것이다.
(이도류 二刀流 는 17세기 초반에 전설적인 검객 미야모토 무사시 가 여러명을 상대하기 위해 고안함)
긴잔온센 을 출발한 버스는 40분간 들판을 달려서 15시 35분에 오오이시다역 (大石田) 에 도착
해서는 다시 15시 43분 기차를 바꾸어 타고 북쪽으로 달려서 야마가타현의 북부에
자리한 교통의 요지인 신죠(新庄) 에 도착하는데, 먼저 시내를 구경하고 저녁을 먹기로 합니다.
신죠 시내를 걸어서 이런 저런 음식점들을 구경하는데, 한국에 사는 이즈미 지하루 씨가 신문
에 올린 글 하나가 떠오르니.... “짬뽕으로 이어지는 한중일의 먹거리 문화” 입니다.
“짬뽕이 새빨갛고 맵다니! 처음 한국에서 짬뽕을 먹어봤을 때 색깔도 맛도 충격적
이었다. 일본인인 나는 짬뽕이라 하면 ‘수프는 하얗고 부드러운 것’ 으로 인식해 왔기 때문이다.”
3년 만에 양력 설날을 고향 사가(佐賀)현 다케오(武雄)에서 보내면서, 지난주 금요일 본고장의 짬뽕 을
먹기 위해 혼자 나가사키(長崎) 로 향했다. 작년 9월에 개통한 니시큐슈신칸센을 타면 다케오
온천역에서 나가사키역 까지 불과 30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순식간에 도착하는 것이다.
나가사키역의 관광안내소에서 받은 ‘짬뽕 가이드북’ 을 참고로 우선 짬뽕의 뿌리 부터 찾아가기로 했다.
비가 내리는 나가사키역에서 노면 전철로 ‘시카이로(四海)’ 에 갔다. 시카이로는 짬뽕의 창시자 천핑순
(陳平順·1873∼1939)이 1899년 개업한 중국 식당이다. 5층의 레스토랑에서 이나사야마(佐山) 와
부두를 바라보며 먹는 짬뽕은 하얀 수프로 깊은 맛 이 느껴졌다. ‘이 맛이 역시 짬뽕이야’ 라고 감탄했다.
시카이로 4대 사장인 진 마사쓰구(陳優) 의 저서 ‘짬뽕과 나가사키 화교’ 에 따르면, 핑순은 19세
때 중국의 푸젠(福建)성 에서 나가사키로 건너와 옷감 행상으로 자금을 축적해 가게를 열었다.
고생했기에 중국에서 건너온 화교와 유학생들의 신원 보증인 이 되었고, 그들의 식생활을 걱정해 고향의
‘돈니시몐(湯肉絲)’ 을 떠올리면서 싸고 영양가 높은 짬뽕 을 고안했다. 지혜를 짜내 중화요리의 베이스
인 닭 국물에 돼지 뼈로 맛을 내며 수제 면, 그리고 육해공과 사계절의 나가사키 식재료를 사용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시나우동(支那)’ 이라는 명칭이었으나, 1910년 전후 ‘짬뽕’ 이라고 불리게 됐고 단번에 나가사키
에서 사랑받는 대중 요리로 자리 잡았다. 즉, 짬뽕은 일본에서 중국인이 만든 식문화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핑순이 ‘짬뽕’ 을 상표 등록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그 이유를 “화교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먹어주는 것이 기쁘다” 고 했는데 그런 열린 마음이 나가사키 특산품 짬뽕 을 태어나게 한 것이다.
한국의 짬뽕에 관해서는 문화인류학자 주영하 교수의 저서 ‘차폰 잔폰 짬뽕’ 에 자세하게 기술
되어 있다. 그는 나가사키와 한국의 짬뽕을 만드는 방법을 살펴보면 기본적인
과정이 거의 같기 때문에 화교를 통해 나가사키의 짬뽕이 한국에 건너온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그럼, 언제부터 ‘한국의 짬뽕’은 붉어 졌을까? 주 교수의 책을 살펴보면 1964년부터 충청남도
금산에서 중화요리점을 운영했던 쉬(徐) 씨가 ‘짬뽕이 매워진 것은 1970년대 이후
한국인 종업원들이 식당에서 일하기 시작하면서 였을 것’ 이라는 의견을 내비쳤다고 한다.
한편 1960년대 까지 서울에 거주했던 지인 이타가키(板垣) 씨는 1962년 고등학교에 입학하며 붉고 매운
짬뽕 을 먹었다는 추억을 내게 들려줬다. 당시 매운 짬뽕이 진수성찬 이었다고 한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는 ‘빼갈(배갈·白干)’ 이라는 중국술과 함께 먹는 것이 최고의 즐거움 이었다고 했다. 즉 원래는
하얗지만 후에 붉어졌고, 단정할 는 없지만 짬뽕이 붉어지는 것은 서울보다 지방이 늦어진 것으로 보인다.
짬뽕이란 정말 이상한 음식 이다. 바다의 것, 산의 것이 섞여 토지의 맛을 이룬다. 중국인에 의해 나가사키에서
태어나 일본 국내에 퍼졌고, 그리고 한국에 건너와 얼큰한 한국의 맛 이 되어, 우리 서민의 주린 배 를 채워 왔다.
지난해 5월 2일자 니시닛폰( 西日本) 신문에 따르면 최근에는 중국 상하이에서 나가사키 짬뽕이 인기라고
한다. 가게 주인 가쓰야마(勝山) 씨에 따르면 인기의 비결로 “라면은 쉽게 질리지만, 건강 지향이
높아짐에 따라 짬뽕은 여러 다양한 식재료 가 들어가는 것을 인식했기 때문” 이라고 했는데....
2022년 3월 하순 상하이가 봉쇄에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한 달에 700그릇 정도의 매출을 올렸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나가사키현인회, 즉 ‘나가사키 짬뽕회’ 를 소개하고 싶다. 현재 회원이 약 70명으로 일본인
과 한국인의 비율은 반반이다. 나가사키 출신뿐 아니라 나가사키에 관심이 있는 이는 누구나
참가할 수 있다. 회장 모리사와(森澤) 씨에 의하면 “나가사키는 예로부터 이문화(異文化) 를 편히 받아들여왔다.
여러 가지 를 받아들이는 모임이라 ‘짬뽕 모임’ 으로 정했다” 고 했다. 멤버들의 너그러운
생각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진다. 그것이 바로 짬뽕의 정신 이 아닐까?
첫댓글 일본은 고교운동팀도 우리랑은 비교도 안되군요.우리도 좀더 육성해야겟습니다
한국은 학교당 1~2개 운동부는 프로를 지향하는
엘리트 체육인데 비해 일본은 학교당 20~30개의
운동부가 잇으니 수업후 방과후 활동으로 운동을
하는 것이라 한국 고교야구팀 80개에
일본은 고교 야구팀이 4,000개를 넘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