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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인중고등학교총동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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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고장 늬우스◈ 스크랩 1910년대 관인면
고리아이 추천 0 조회 91 12.08.14 02:38 댓글 3
게시글 본문내용

 

1910년 일본제국주의가 대한제국을 강탈한 뒤 식민지 조선 통치를 위한 여러 공작을 벌였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지방행정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도록 바꾼 것이다. 그래서 그 바꿈을 제대로 살피고자 한다면, 무엇보다 일제가 남긴 현존의 자료들이 식민지 조선의 폭력적 지배를 합리화하거나 홍보하는 역할을 하였다는 점을 감안하여 이에 대한 비판을 선행하여야만 한다는 것을 지적하고자 한다. 이 글에서도 그러한 비판이 드러나지 않는다면 과감한 가편을 바란다.

일제가 지방행정을 자신들의 폭력적 지배로 관철해 간 실제 행동의 거울이 조선총독부령 제8(1910.10. 1 조선총독부관보29) ‘면에 관한 규정을 통해 나타났다. 그리하여 대한제국 지방 인민의 오랜 전통인 공동체 삶을 파괴하기 시작하였고, 그것은 이른바 근대라는 이름으로 꾸며져 홍보되었다.

그러면 비록 외지고 자그마한 곳이지만, 관인면은 일제강점기 초기에 해당하는 1910년대 조선총독부에서 어떻게 관인 면민의 공동체 삶을 파괴하였고, 또 어떻게 근대라는 이름으로 꾸며졌을까.

먼저 여기에서는 첫 번째 의문을 풀고자 하는 노력에 경주하고자 한다. 그것은 아마도 관인면의 동리명 변화에서 꼬투리를 찾을 수 있겠다. 조선총독부가 1912523일 인쇄 작업에 들어가 이틀 뒤 25일 발행한 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을 살펴보면 관인면에는 모두 22개리가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이를 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직전(또는 그 보다 조금 더 이른 시기)에 편찬하였으리라 추정하고 있는 조선지지자료(필사본) 동리촌명에 나타난 이름과 비교하여 보면 불과 12년 만에 38개 동리명이 22개로 줄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 ≪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  표지

_국립중앙도서관 전자도서관에서 얻음

 

△ ≪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  판권

_국립중앙도서관 전자도서관에서 얻음

 

아울러 이를 19151117일 발행한 조선총독부관보986<경기도고시 제59호 연천군 면내 동리의 명칭과 구역을 다음과 같이 통정(通定)>1917년에 발행한 신구대조조선전도부군면리동명칭일람, 그리고 31운동 바로 직전 해인 1918년에 발행한 정밀조사부군도면정동리명칭일람의 내용을 각각 비교하면 1910년대 관인면 지방행정의 변화를 톺아볼 수 있겠다. 이를 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번호

조선지지자료(1910)

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1912)

조선총독부관보

(1915)

신구대조조선전도부군면리동명칭일람(1917)

정밀조사부군도면정동리명칭일람(1918)

1

용담龍潭

용택龍澤

사정리射亭里중리(일부 중리에서 편입)탄동리(일부 탄동리에서 편입)월경리越境里(포천군 영북면에서 편입

사정리중리탄동리 각 일부영평군 북면 월경리

사정리

2

사종리莎宗里

사종리

3

삼고령三姑嶺

삼고령

탄동리탄동리(일부 사정리초과리로 편입)고령리(일부 냉정리로 편입)냉정리(일부 냉정리에서 편입)

탄동리탄동리고령리냉정리 각 일부

탄동리

4

오리곡五里谷

 

5

이고령二姑嶺

이고령

6

초고령初姑嶺

초고령

7

탄동리炭洞里

탄동리

8

사청리射廳里

 

9

마감리馬甘里

마감리

10

이랭정二冷井

이랭정

냉정리냉정리(일부 탄동리로 편입)고령리(일부 탄동리에서 편입)

냉정리냉정리고령리 각 일부

냉정리

11

초랭정初冷井

초랭정

12

삼랭정三冷井

삼랭정

13

초과리初果里

초과리

초과리초과리탄동리(일부 탄동리에서 편입)

초과리초과리탄동리 일부

초과리

14

괴안槐安

15

신촌新村

16

가자리加子里

17

이과리二果里

이과리

18

삼과리三果里

삼과리

19

신포리薪浦里

신포동薪浦洞

삼률리

삼률리

삼률리

20

초률리初栗里

초률리

21

이률리二栗里

이률리

22

삼률리三栗里

삼률리

23

장대리墻垈里

 

24

대동大洞

 

중리중리(일부 부곡리사정리로 편입)중하리

중리중리 일부중하리

중리

25

중리中里

중리

26

사기점沙器店

 

27

지장동地藏洞

 

28

맥동麥洞

 

29

하랑곡荷浪谷

 

30

초하리初下里

초하리

31

상심현上深峴

 

32

신흥동新興洞

 

33

이하리二下里

이하리

부곡리釜谷里이하리중리(일부에서 편입)고문리(일부 군내면 고문리에서 편입)

부곡리이하리중리군내면 고문리 각 일부

부곡리

34

측묵리測墨里

 

35

중하리中下里

중하리

36

하심현下深峴

 

37

부곡釜谷

부곡

38

누대樓垈

 

 

 

△ ≪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관인면 동리명

_국립중앙도서관 전자도서관에서 얻음

 

표로 정리된 내용을 간단하게 비교하여 설명하자면, 불과 12년 만에 하나의 면 단위의 동리명이 38개에서 22개로 갑자기 줄었고, 3년 뒤인 1915년에는 7개로 줄었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폭력적인 행정이라 하겠다. 자료로 제시한 1917신구대조조선전도부군면리동명칭일람은 관보의 내용을 약간 정리한 듯한 느낌이 들고, 이듬해 조선인 장희복(張熙福)이 정리한 정밀조사부군도면정동리명칭일람1917년의 것보다 더 소략하여 그야말로 간단하지만, 성의 없는 느낌마저 든다. 분명한 사실은 조선지지자료(필사본)에 정리한 동리명이 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조선총독부관보에서는 뜬구름처럼 사라졌다는 점이다. 표에서 실선으로 나타냈다가 점선으로 나타낸 것은 임의로 한 것이지만, 오늘날 관인면에 남아 있는 지명과 비교하여 볼 때, 많은 동리명이 사라졌다. 고령리를 비롯하여 사종리, 사청리, 마감리, 괴안, 신촌, 가자리, 장대리, 사기점, 하랑곡, 측묵리, 누대 등의 동리명이 그것이다. 일제는 동리를 통폐합하면서 최소한 관인 면민들의 동의를 구했을까 하는 의문부터 든다.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고 일방적으로 행사하였기 때문에 폭력적이라는 표현을 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동리명의 변화는 마치 조선총독부의 토지조사사업이 마무리 지을 무렵의 관인면을 보여주는 듯 일개 면 단위까지 전국적으로 일제의 폭력적 통치력이 미쳤음을 예시하는 것일까. 물론, 여러 연구 성과에서는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 뒤 1945년 해방될 때까지 관인면의 행정 최하 단위인 리() 현황은 1918년 당시를 그대로 유지하는데, 1930년 연천군에서 발행한 경기도연천군군세일반의 관인면 지도와 1936년에 발행한 조선일람(송완식 편, 동양대학당)의 내용을 보아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19207월 면협의회를 골자로 하는 지방제도 개정(김익한 1996(): 149-159), 1931<개정지방제도시행규칙: 읍면제시행규칙>(조선19315월호)에도 관인면의 동리명은 그대로 유지하였다.

 

 

△ ≪조선총독부관보986호의 관인면 동리명

_국립중앙도서관 전자도서관에서 얻음

 

 

 

 

 

△ ≪신구대조조선전도부군면리동명칭일람의 관인면 동리명

_국립중앙도서관 전자도서관에서 얻음

 

△ ≪정밀조사부군도면정동리명칭일람의 관인면 동리명

_국회도서관 전자도서관에서 얻음

 

 

 

 

 

△ ≪경기도연천군군세일반의 관인면 지도

_국회도서관 전자도서관에서 얻음

 

△ ≪조선일람의 관인면 동리명

_국회도서관 전자도서관에서 얻음

 

그렇다면, 여기서 세 가지 문제를 상정할 수 있겠다. 첫 번째는 1915년 조선총독부의 식민지 조선에 대한 지방행정의 폭력적 변화에 대한 설명을 어떻게 전개할 것인가 하는 문제인데, 이는 다른 지역의 변화와 비교하면 설명할 수 있으리라 여겨진다. 이와 관련하여 이 통폐합은 토지조사사업과 함께 일제강점기의 농촌 사회를 이해하는 열쇠로 이해한 연구(김익한 1996(): 242-4)가 눈에 띤다. 관인면에서 가까운 영평군과 포천군의 통합이 대표적인 사례라 하겠다(한국지명유래집: 중부편, 416).

그러면 관인면의 경우 이 보다 일찍 이루어진 까닭은 무엇일까. 아마도 이는 관인면이 1907년 강원도 철원에서 경기도 연천으로 편입된 회오리의 충격을 미처 수습하기 전에 일제가 동리 장악을 위하여 타격을 전개한 느낌이 든다. 변방이자 자그마한 관인면을 제국주의 지방 지배와 관련한 하나의 사례로 삼았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다. 또한, 대표적인 일제의 폭력적인 사업은 면 단위의 재정을 꾸준히 늘리면서도 동리장의 수당은 감액 또는 무급으로 강제하는 한편, 자신들의 지배를 관철시킬 부일(附日)’ 면서기의 인원과 급료는 꾸준히 늘려 나아가는 동시에 남부여대하여 고향을 떠나 식민지 조선에 들어온 일본인들의 정착에 힘을 기울였다고 볼 수 있겠다.

두 번째는 조선지지자료의 편찬 연대다. 이제까지의 연구 성과에 따르면, 조선지지자료1908년부터 1912년 사이에 작성한 추정하고 있다. 그런데, 방대한 양으로 미루어 볼 때, 중앙 정부에 준하는 기관에서 주도하여 정리한 느낌이 든다. 그러한 생각이 드는 까닭은 유사한 자료로서 조선총독부에서 발행한 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의 내용과 비교할 때, 너무 짧은 시간을 두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앞에서 비교한 신구대조조선전도부군면리동명칭일람정밀조사부군도면정동리명칭일람은 개인의 저작이면서 앞의 것은 일본인이, 뒤의 것은 한국인이 지은 까닭에 1년이라는 시간을 두더라도 큰 무리가 없겠지만 말이다. 물론, 조선총독부의 정력적이지만 폭력적인 지방행정 변화에 바탕을 둔다고 하더라도 불과 12년 만에 변화의 결과를 보여주기에는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조선지지자료에 보이는 한글[諺文] 지명의 병기와 일본어 병기의 형식과 내용으로 미루어 볼 때, 한국인 관리와 일본인 관리가 함께 작업하였다는 느낌이 강하고, 따라서 19081912년보다 이른 1905년 통감부 체제 직후인 19061908년 사이에 이루어진 작업이라고 추정하면 오히려 자연스럽다고 여겨진다. 이는 갑오개혁을 거쳐 광무 연간에 거의 원상회복한 면리단위에서 자치기능이 배제되고 통치기능이 강화된 통치기구로 개편된 것이 통감부 시기 일제의 주도에 따랐다는 지적(윤해동 1995: 345)으로 더욱 힘을 얻을 수 있다.

끝으로, 이는 첫 번째 제기한 문제와도 연결될 수 있다. , 일제가 대한제국을 식민지화하는 작업의 일환으로 폭력적인 지방행정제도의 변화를 일으켰는데, 관인면의 사례를 통해서 볼 때, 오히려 일제는 면 단위뿐만 아니라 리 단위까지 집요하게 폭력적으로 파헤쳐 뒤엎고, 조선 시기 이래 일구어 온 지방통치와 지방자치의 전통을 모두 없애고자 하였음이 나타난다. 그렇기 때문에 도리어 조선면제는 조선총독부에서 자신들의 폭압적 지방지배에 대한 기만적 홍보와 유화 정책의 일환이라 생각한다. 이는 면제를 실제 정촌제(町村制)’라고 표기한데서 그대로 드러난다고 생각한다(韓圭復 1928: 1). 물론, 일본 본토의 정촌제와 같은 지방자치가 아닌 중앙정부의 감시와 감독을 받는 성격의 지방제도였다. 따라서 관인면의 사례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의 실상을 파악하여 비교한다면, 일제 지방지배의 폭력성은 보다 확실하게 드러나리라 여겨진다. 그래서 아래 참고문헌은 지긋이 읽어 녹여 내야만 할 것이다.

 

참고문헌

李能和 1928 <地方行政區域沿革> 朝鮮4월호(126), 朝鮮總督府

韓圭復 1928 <朝鮮郡制施行하야> 朝鮮12월호(134), 朝鮮總督府

孫禎睦 1983(1) <日帝侵略初期 地方行政制度行政區域硏究(1)> 지방행정32(359), 대한지방행정공제회

孫禎睦 1983(2) <日帝侵略初期 地方行政制度行政區域硏究(2)> 지방행정32(360), 대한지방행정공제회

孫禎睦 1983() <日帝侵略初期 地方行政制度行政區域硏究()> 지방행정32(361), 대한지방행정공제회

염인호 1983 <日帝下 地方統治에 관한 硏究: ‘朝鮮面制의 형성과 운영을 중심으로>, 연세대학교 석사학위논문

李相燦 1986 <19061910년의 地方行政制度 변화와 地方自治論議> 한국학보42, 일지사

이상찬 1991 <한말 지방자치 실시 논의와 그 성격> 역사비평13, 역사비평사

이정은 1992 <日帝地方統治體制 수립과 그 성격> 한국독립운동사연구6,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이하나 1994 <191032年 日帝朝鮮農村再編模範部落’>, 연세대학교 석사학위논문

윤해동 1995 <일제의 지배정책과 촌락재편> 역사비평30, 역사비평사

김익한 1996() <1910년대 일제의 지방 지배 정책: 행정 구획 통폐합과 면제를 중심으로> 사회와역사50, 한국사회사학회

김익한 1996() <1920년대 일제의 지방지배정책과 그 성격: 면행정제도와 모범부락정책을 중심으로> 한국사연구93, 한국사연구회

홍순권 1997 <일제초기의 면 운영과 '조선면제'의 성립> 역사와현실23, 한국역사연구회

신종원 2010 <필사본 朝鮮地誌資料解題> 문화역사지리22권 제3, 한국문화역사지리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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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12.08.14 02:38

    첫댓글 쉽게 쓰고자 무진 애를 썼습니다영 살펴 주세영^_^))

  • 12.08.14 20:39

    귀한 자료 잘 보았네요....후배님 쉽게 쓴 글이 내겐 왜이리 어려운지....

  • 작성자 12.08.14 22:40

    에구구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더 쉽게 쓰도록 하겠습니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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