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사회적 삶을 이해하는 데 인간생물학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는 관점이 사회과학계에서 오랫동안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1975년 에드워드 윌슨(E. O. Wilson)의 <사회생물학>(Sociobiology: The New Synthesis) 출간이 격렬한 논쟁을 촉발한 지 사반세기가 지난 지금 생물학적 패러다임이 재등장하고 있는 조짐이 있다(Segerstrale 2000 참조). 인간행동을 생물학적으로 설명하려는 시도에 대한 문화적 저항이 약화되고 있다는 것은 인간 도덕성을 진화의 산물로 설명하는 대중과학 서적들이 1990년대 중반부터 미국에서 출간되어 일반대중에게 호평을 받고 있다는 사실에도 반영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대중적 관심에도 불구하고 학계 일반의 문화/생물학 이분법적 사고와 연구관행은 변화하지 않고 있다. 특히 주류 사회과학계는 평소에는 이 주제에 대해 무관심하지만 어떤 생물학적 논의라도 인간의 사회적 삶을 설명하는 데 침투하는 기미가 있으면 이를 결단코 용납하지 않을 태세로 일치 단결하는 듯이 보인다. 자신의 전문분야로 세분화된 자연과학자들도 이 문제로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성을 못 느끼기는 마찬가지다. 결국 각 분야의 학문적 업적은 서로 소통되지 않고 있으며 학계 일반에서는 인간행동의 생물학적 기반에 대한 어떤 논의도 유전자 결정론이라는 딱지를 붙여 가볍게 처리해 버리고 마는 것이 현실이다. 그 결과 선천/양육이라는 비생산적이고 비과학적인 이분법적인 사고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인간의 이해’라고 하는 큰 학문적 주제의식과 인간에 대한 총체적 접근이라는 방법론적 전통을 가지고 있는 인류학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문화인류학자들은 공유된 사고방식과 생활양식의 총체인 ‘문화’라는 개념을 가지고, 다양한 인류사회를 대상으로 그 학문적 목적을 추구해 왔다. 한편 생물인류학자들은 인류의 진화생물학적 측면을 연구함으로써 종으로서의 인류의 특성을 밝혀내어 인간성의 총체적 이해라고 하는 인류학의 학문적 목적에 접근해 왔다. 그러나 인간성의 본질에 대한 종합과학이라는, 외적으로 표방되고 있는 인류학의 궁극적인 학문적인 목적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문화적 측면을 연구하는 문화인류학과 생물학적 특성을 대상으로 하는 생물인류학은 학문적 교류나 공동의 관심영역을 가지지 않고 분리되어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분리는 여러 제도적<인간적>이데올로기적 역사적 요인과 관련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적인 문제이며 궁극적으로는 문화/생물학 이분법과 관련되어 있다. 인간생물학과 인간문화를 아우르는 종합과학으로서의 인류학을 하려면 함께 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지적 기반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즉, 인간생물학과 인간문화의 관계에 대한 이론이 필요한 것이다.
인간에 대한 사회과학적 접근인 문화인류학과 자연과학적 접근인 생물인류학이 학문적으로 생산적인 상호작용을 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면서 궁극적인 해결 과제가 바로 인간문화와 인간생물학의 관계에 대한 최소한의 공통된 이해의 확립이다. 현재까지는 진화론만이 하나의 종(species)으로서의 인간 보편성을 상정하게 해주는 이론이다. 그러나 문화인류학자들에게 진화는 인간이 문화적 능력(capacity for culture)을 보유하게 되었다는 사실까지만 유효하다. 이러한 능력은 유연한 학습능력을 의미하는데, 인류의 진화선상에서 이러한 능력을 보유한 이후부터의 인간문화는 인간생물학으로부터 자율적이므로 인간생물학-인간문화 관계에 대한 설명은 아주 막연한 수준에서 관련이 있다는 애매한 언급에서 멈추게 된다. 물론 현대의 어떤 인류학자도 실제로 인간정신이 무한히 유연하다고 믿지는 않겠지만 마치 그러한 듯이 연구와 논의를 진행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문화인류학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 중의 하나는 생물학적 논의가 인간의 문화적 행위에 대한 설명에 침범하는 것이다(예를 들면 Sahlins 1976). 물론 문화인류학자들 중에서도 생물학적 진화와 적응의 개념을 가지고 인간행동을 연구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물론, 인간에 대한 종합과학으로서의 인류학은 진화한 종으로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생물학적 보편성에서 출발할 수 있으며 여기에는 당연히 심리적 보편성도 포함된다. 다만 ‘진화한 인간 심리의 보편성’은 문화적 능력이 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백지와 같아서 무한히 또 모든 방향으로 동등하게 유연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내적 구조가 있고 풍부한 내용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종래 문화진화론자들이 상정했던 심리적 제일성(psychic unity of mankind)과 다르다. 이러한 특성이 있기 때문에 인간문화의 다양성은 무한하지도 않고 무작위적으로 발생하지도 않는다. 근래 서구에서 일단의 인류학자와 심리학자들이 중심이 되어 진화심리학이라는 타이틀 아래 활발히 진행하고 있는 학문적 시도는 위와 같은 관점에서 인간보편성과 문화적 다양성의 관계에 대하여 탐구하고 논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고 있다. 여기에서 도출된 ‘종 특이적(species-specific) 정보처리기제의 진화’와 같은 개념은 인간행동의 다양성이 조직되는 패턴을 설명해 낼 수 있는 막대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진화심리학의 논리와 학문적 성과는 아직 일반에게는 생소하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진화심리학에서 제기된 주장을 검토하여 인간행동에 대한 진화생물학적 접근과 사회문화적 연구가 통합될 수 있는 가능성을 알아보고자 한다. 이는 인간행동에 대한 진화생물학적 설명과 사회문화적 설명이 적어도 상호모순 없이 양립할 수 있는지, 더 나아가 두 가지 접근법의 통합을 통해 인간에 대한 이해가 심화될 수 있는지를 모색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즉 진화적 가설을 포괄함으로써 인간 현상에 대한 설명이 더 충실하고 일관성이 있어 질 가능성을 검토해 보자는 것이다.
2. 본론: 문화와 생물학의 관계
1) 문화/생물학 이분법과 문화의 승리
다윈(Darwin)은 '종의 기원'(1859)에서 자연/문화 이분법의 틀을 유지했는데 그는 본능은 선천적으로 유전된 특질로서 연습과 경험 없이도 실행 가능한 것으로 보았다. 이러한 다윈의 아이디어는 동물연구로 연결되어 어느 정도의 연구업적을 축적했다. 그러나 인간-동물 연속성이라는 진화론적 사고 방식에 의거하여 인간에 있어 그러한 본능을 찾으려는 20세기 초의 움직임은 실패로 돌아갔다. 이는 개념적 취약과 내용의 빈약함에 기인한 것으로 20세기 초반까지 왕성했던 공포 본능, 약자에 대한 지배 본능 등과 같은 논의는 1930년대쯤 완전히 사라졌다. 정치적 이데올로기와 인종주의와 결합되면서 과학적으로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사망한 것이다. 우생학 운동도 얼마 뒤에 끝장이 났는데 유전학의 발달로 인해 우생학의 과학적 지지 기반이 파괴되었을 뿐만 아니라 파시즘, 나치즘과 결합되면서 도덕적 지지 기반마저 상실하였기 때문이다(Degler 1991 참조).
한편 인류학에서는 보아즈(Boas)와 크로버(Kroeber) 등에 의해 역사적 특수주의와 문화결정론적 사고가 확립되었다. 보아즈는 또한 반인종주의자로서 20세기 초의 우생학 운동이나, 인종차별적 이민법에 대한 반대에도 앞장섰다(Stocking 1968). 그의 주장은 베네딕트(Benedict)의 Patterns of Culture(1934)나 미드(Mead)의 Coming of Age in Samoa(1928) 등의 연구성과에 의해 더욱 강력한 지지를 얻게 되었다. 사회학과 심리학에서도 비슷한 발전과정이 있었고 상호 영향을 주고받았다. 뒤르켐(Durkheim)은 The Rules of the Sociological Method(1958)에서 사회적 사실은 다른 사회적 사실로 설명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천명하였다. 심리학에서는 본능설과 우생학의 끔찍한 실패로 인해 진화론의 영향이 퇴조하였다. 뒤이어 심리학이 행동의 과학으로 자리잡으면서, 관찰 불가능한 원인에 의한 설명을 배격하고 관찰 가능한 행동의 예측과 통제, 생리-화학적 설명, 자극과 반응, 습관형성, 습관통합 등에 주목하는 행동주의 심리학의 시대가 시작되었다(Plotkin 1997 참조). 인간은 보상과 처벌로 매개되는 일반화된 학습과정을 통해 모든 것을 획득한다는 행동주의 심리학에 의하면 인간정신은 무한히 변화 가능하며 사회적 조건화에 따른다. 인간은 몇몇 본능적 반응과 문화를 가능하게 하는 능력을 가지고 출생하며 문화의 힘에 의해 주조된다는 문화결정론과 사회결정론은 사회문제 해결에 대한 낙관론과도 연결되어 있었다. 결국 1930년대까지는 사회과학 전반에서 문화가 확고한 승리를 거두었다. 인류학에서는 보아즈를 필두로 하고 미드와 베네딕트의 기여에 힘입은 문화결정론이 승리했고 심리학에서는 행동주의가 주류로 자리잡으면서 반유전론이 사회과학 전반에 확립된 것이다.
19세기 박물학과 생물학의 전통을 유지한 동물행동학은 다윈의 아이디어 즉 행동도 기능적 가치가 있으며 계통발생학적으로 분포되어 있다는 생각에 기반하여 연구업적을 축적하였다. 1930년대에 이르러 로렌쯔(Lorenz)와 틴버겐(Tinbergen) 등에 의해 학문적 기초가 수립되었다(Krebs & Davies 1993 참조). 심리학이 인간을 대상으로 행동의 즉각적 원인을 규명하고자 하는 데 반해 동물행동학은 동물행동에 대한 궁극적 진화론적 설명을 추구하였다. 동물행동학은 행동이 적응이라면 진화의 산물이고, 진화의 산물이면 유전 가능하고 부분적으로는 유전자에 기인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전제한다. 이와 같은 전제 아래 행동을 표현형 형질로서 분석하는 연구기법을 사용한다. 동물행동학에 대한 주 반론은 행동은 발달과정에서 환경과 상호결정된다는 것인데 결국 행동에 대한 발생학적 연구의 중요성을 간과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틴버겐(Tinbergen 1951)은 생물학의 문제에 발생학을 추가하여 행동에 대한 설명을 즉각적인 생리학적인 설명, 생존가치적 설명, 계통발생적 설명, 발생학적 설명, 이 네 가지로 정리하였다. 특히 로렌쯔(Lorenz 1969)는 학습능력 자체도 설명되어야 하는 것이라는 관점을 제시하여 선천/양육 이분법을 극복하려고 시도하였다. 그에 따르면 학습은 대개 적응적 결과를 가져오므로 무작위적 작용의 효과로 설명될 수 없고 본연의 용량과 과정을 지닌다는 것이다. 한정된 사건이나 관계만이 학습되도록 하는 내적(유전적) 기제가 있음으로 해서 학습이 적응적이 될 수 있는데, 이는 오로지 자연선택이라는 진화적 기제를 통해서만 발생할 수 있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로렌쯔의 주장은 사회과학계로부터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고 개념적 발달에도 크게 기여하지 못했다.
1930년대에서 1950년대 사이는 문화/생물학 논쟁의 휴지기라고 할 수 있다. 진화론자들은 신다윈주의 형성에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고 사회과학계 일반은 사회과학 고유의 문제에 주력하고 있었다. 인류학에서는 인류학의 핵심 영역은 문화이고 문화는 초유기체적인 것으로 그 자체로 이해되어야 하며 다른 저차원의 기제로 설명되어서는 안 된다는 크로버의 주장(Kroeber 1917)이 여전히 유효하였다. 한편 심리학 또한 여전히 헐(Hull), 스키너(Skinner) 등 학습이론가들의 시대였다. 유럽의 게스탈트 심리학자들은 지각 원형이 경험에 의해 변형 형성되는 과정에 관심을 기울였지만 여전히 자연/문화 이분법을 유지하였다. 사회심리학의 발달적 상호작용론에서는 다양한 요인들의 상대적 기여도를 평가하기 위해 통계적 기법을 사용하였으나, 요인간의 상호작용이나 인과관계에 대한 설명을 제시하는 이론적 기반은 없었고 이분법은 여전히 유지되었다(Plotkin 1997 참조). 심리학에서는 점차 행동주의가 끝나가고 인지주의가 등장했으나 초기 인지주의자들은 촘스키(N. Chomsky)를 제외하고는 기원에 대한 고려를 별로 중시하지 않았다. 결국 자연/문화 이분법은 강고히 유지되었다.
2) 생물학의 재등장
1960년대부터 상황이 변화하면서 학계 전반에서 진화론에 대한 관심이 부활하였다(Degler 1991 참조). 이는 신다위니즘이 성립되면서 학문적 가능성이 확대되었기 때문이다. 동물행동학은 초기에는 계통발생학적이고 종특이적인 전형적인 행동에 관심을 집중하고 생태적 맥락에는 무관심하여서 사회적 행동을 연구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동물행동학에 포괄적 적합도 이론, 게임이론, 최적화 모델의 등장과 집단선택설의 쇠퇴와 같은 이론적 변화가 일어났다. 그 결과 동물에 대한 관점이 고정된 행동패턴에 따르는 동물에서 자기이해를 실현하려는 전략가이며 적합도(fitness) 극대화를 위해 유연한 기회주의자로서 행동하는 동물로 바뀌었다. 이로써 사회생물학과 행동생태학이라는 연구분야가 발달하게 되었다.
1970년대에 등장한 사회생물학은 유기체의 행동을 유전적 적응이라는 관점에서 설명하고 이를 인간에 적용하여 사회과학 전반에 큰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사회생물학의 이론적 발달은 영장류행동학에는 영향을 미쳤지만 인간을 대상으로 한 인류학적 연구는 소규모 사회에서의 사회생물학적 연구(Betzig 1997 참조)와 행동생태학 연구(Smith & Winterhalder 1992 참조)에 국한되었다. 그러나 사회생물학과 행동생태학이 문화와 생물학의 관계에 대한 구체적인 이론을 제시한 것은 아니다. 적합도를 극대화하려면 유기체가 달성해야 하는 목표가 무엇이며 이 목표를 달성하는 데 활용되는 행위가 무엇인가가 연구의 초점인 것이다. 이 접근 방식은 문화를 변수로서 고려하지 않고도 검증 가능한 일반화를 도출해 왔으며, 실제 분석에서도 문화를 중요한 변수로 취급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Smith 2000 참고). 문화는 개체들이 주어진 사회적 생태적 조건하에서 포괄적 적합도를 극대화하기 위해 취하는 행동의 결과라고 간주된다. 문화간 차이는 적합도 강화 기회라는 측면에서의 환경 차이에 의해 설명되며 문화변화도 그러한 환경 조건의 변화에 의해 설명된다. 사회생물학적 관점에서는 대개의 행위가 적응적일 것으로 기대되며 비적응적 행위도 존재 가능하나 이는 자연선택의 작용이 불완전해서 발생한 것으로 본다. 그러나 어떤 사회생물학자도 유전자 단독으로 모든 행위를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 적은 없다. 단지 모든 생물학적 내지 사회적 현상의 근원에는 유전자의 자기 증식이라는 기제가 놓여 있다라고 주장할 뿐이다.
그러나 인간은 유전자 외적 정보 전승 기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문화를 생각하지 않고 인간행동을 설명할 수 없다는 난제를 극복하기 위해 1970년대부터 생물학과 문화의 상호작용을 연구하는 공진화설과 이중진화설이 등장하고 정교한 수리적 모델들이 제안되었으나, 경험적 연구결과가 충분하지 않을 뿐더러 큰 학문적 영향력을 끼치지도 못하고 있다(예를 들면 Boyd & Richerson 1985; Durham 1991; Janicki & Krebs 1998; Lumdsen & Wilson 1981). 따라서 진화생물학의 개념을 인간의 사회적 삶에 대입하는 다윈주의적 연구는 인류학 내에서(사실 모든 사회과학 내에서) 여전히 주변적 위치에 머무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한 가장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대개의 인류학자들이 인간행동을 유전적 재생산을 위한 적응이란 개념을 가지고 분석하는 데 저항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겠지만, 1960년대를 기점으로 하여 1980년대 들어 인류학이 인문학적으로 변화한 것과도 관련이 있다. 이것은 민족지적 사실주의에 의한 비교연구를 통하여 인간 사회와 문화에 대한 일반화된 언급에 도달하려는 법칙정립적 연구의 가능성에 대한 회의 내지 포기와 맥이 닿아 있는 학사적 변화이다. 인류학이 문화를 연구한다고 되어 있으나 실제 전통적인 인류학에서는 주로 제도를 연구했다. 그러나 1970년대 문화의 성격에 대하여 새로운 시각이 도입되면서 전통적 민족지적 연구방법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었다. 그 결과, 개인의 문화실천을 주요 관심사로 하며 제도가 어떻게 실천되는가를 연구하여 개인의 행위를 통해 그가 실천하는 의미를 해석하고 서술함으로써 문화를 해석하는 연구방법이 등장하였다. 즉, 개인이 공적인 기호들을 조작하고 선택적으로 사용하여 의미를 실천하는 과정을 현상학적, 해석학적으로 연구하는 방법이 인류학에 등장한 것이다(김광억 1998 참조). 인류학의 이러한 인문학적 전향은 인류학자들로 하여금 진화생물학적 사고나 연구방식으로부터 더욱 멀어지게 하였으며 인류학은 점차 상황기술적 학문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3) 인간 보편성에 대한 재고
문화는 자율적이고 자의적이며 매우 변이의 정도가 높은 특성을 지니고 있고 보편성이란 매우 드문 것이라는 일반적 합의에 바탕하여 다양성을 강조하고 인간보편성에 대해 무관심한 것이 인류학의 전통으로 자리잡은 지 반세기 이상이 지나갔다. 이후 보편성은 주로 보편적 인간성 즉 본능의 산물로 간주되었고 인류학의 주된 연구대상에서 제외되었다. 그러나 문화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사례는 다른 맥락에서 보면 오히려 보편성을 드러내는 예인 경우가 많다. 뿐만 아니라 어떤 의미에서건 보편성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타문화 이해가 불가능하다. 문화적이라고 불리는 인간사가 자의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고 논리적으로 가능한 정도로 변화무쌍한 것도 아니다. 즉, 다양성은 무한하지 않으며 완전히 무작위적으로 발생하지도 않는 분포상의 규칙성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인간문화에 존재하는 여러 종류의 보편성이나 규칙성은 인간의 조건, 인간사, 인간본성의 이해를 위해 중요하기 때문에 설명이 요구되는 현상이다. 이것의 설명은 인류학자의 학문적 활동에 대한 인식론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어떻게 해서 타문화에 대한 이해(부분적이라 해도)가 가능한지, 즉, 어떻게 해서 우리는 “낯선 곳에서 나를 만날 수 있는지”를 설명해야만 하는 것이다. 다행히도 근래 일각에서 인간 보편성에 대한 재고가 필요하다는 조그만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다(Brown 1991 참조). 문화인류학에서는 인간 보편성에 대한 경험적 반대 증거를 다수 확보하고 있는데 이는 인간행동의 표면적인 다양성에 근거하고 있다. 그러나 진화심리학자들에 따르면 행동의 다양성이 인간 보편성에 대한 반대 증거가 될 수 없다. 이는 입력(즉, 정보, 조건, 환경, 또는 맥락)이 다르면 같은 메커니즘(즉, 보편적 인간심리구조)에 의해서도 다른 출력(즉, 관찰 가능한 행동의 패턴)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규칙성의 발견은 적절한 준거틀의 존재에 달려 있다. 결국은 진화된 종으로서의 인간의 생물학적 보편성이 인간 보편성 연구의 가장 적절한 실마리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인간의 진화된 심리구조가 그 길잡이로서 가장 강력한 후보로 떠오르고 있다.
4) 진화심리학: 유전자와 행위 사이에 존재하는 진화된 심리 기제
1970년대부터 인지심리학에서 학습과정이나 결과가 종 특이적(species-specific)이며 영역 특이적(domain-specific)이라는 연구결과가 축적되었다. 종간의 차이는 각 종의 생애사(life history)와 관련되어 있음이 밝혀져 이런 차이를 진화로 설명하고자 하는 진화심리학이 발달하게 되었다. 1980년대부터 진화심리학자들은 차별적 학습능력과 제한된 학습능력으로 구성된 두뇌 작용의 규칙을 발견하려는 노력을 경주하였는데 이들의 이론은 ‘진화된 제한의 이론’(theory of evolved constraints)이라고도 불린다(Plotkin 1997).
진화심리학의 연구업적이 축적되면서 인간 생물학이 인간의 문화적 행위를 이해하는 데 적실성이 있을 뿐만 아니라 필요불가결하다는 주장이 진화심리학자들을 통해 제기되고 있다(Barkow 등 1992 참고). 이들은 인간이 복잡한 집단 차원의 역학에 기반한 상호작용의 관계망 속에서 살아가며 진화해 왔기 때문에 인간현상의 이해에는 집단 차원의 과정에 대한 이론과 분석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인간의 보편적 심리구조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어떤 문화이론이 수용 가능한지 평가할 수 있다고 본다.
진화심리학에서는 인류라는 종의 심리적 과정을 과거 환경에의 적응으로서 진화의 산물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한다. 즉, 인류에게 보편적이었던 선택압에 의해 진화한 인류에게 보편적인 심리적 기제를 적응의 개념으로 연구하는 것이다. 진화심리학자의 질문은, 여러 세대동안 지속된 적응적 정보처리 문제에 대한 훌륭한 해결책이 되려면 정보처리 기제는 어떤 디자인 특질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가이다. 이들에 따르면 두뇌는 이러한 정보처리 체계이고 마음(mind)은 유기체의 두뇌가 정보를 처리하는 기능이다. 두뇌의 진화적 기능은 정보처리에 기반하여 행위와 생리를 조절하는 것이다. 두뇌 기제는 올바른 정보-행위 또는 정보-생리 관계를 형성하도록 선택되었고 관계형성의 구체적 물리적 기제는 올바른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한 변이가 가능하다. 또한 자연선택에 의해 기능적으로 조직된 것은 인간심리의 정보처리구조이므로 정보처리기제의 생산물인 행위는 변이가 심할 수 있다.
행동주의 심리학에서는 인간이 보편적 학습규칙에 의해서 지식을 획득하는 것으로 본다. 반면에, 진화심리학에서는 인간의 인지구조는 영역특이적(domain-specific)이며 내용의존적(content-dependent)이라고 본다(Hirschfeld & Gelman 1994 참고). 왜냐하면, 복잡한 적응적 정보처리 문제를 해결하는 기제는 문제의 특성에 잘 맞도록 특화된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화심리학에서는 특정 적응문제에 대해 특화된 정보처리 기제(특정 의사결정 규칙 또는 연산규칙)의 존재를 상정한다. 따라서 인간은 다수의 진화된 심리 기제를 가지게 되며 진화된 심리 기제의 이러한 특정성, 복잡성, 다수성이 인간행위의 유연성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보편목적(general-purpose)적이며 내용독립(content-free)적인 심리는 진화 불가능하며 더구나 이러한 심리구조를 지니고는 인간이 일상적으로 해결하고 있는 수많은 문제들을 해결할 수가 없다는 인식에 기반한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인지과학이나 인공지능학에서 도출된 최근의 연구결과들이 진화생물학의 이론과 결합하여 발생하였다(Tooby & Cosmides 1992 참고).
진화심리학에 따르면, 환경구조는 자연선택에 의해 유기체에 통합되므로 선천/양육 이분법은 오류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문제에 관련된 세계의 부분들에 대한 지식을 그러한 정보처리 기제가 내재화하고 있어야 한다는 필요조건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은 지식획득이 가능한 구조를 이미 가지고 태어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구조는 우연히 발생한 것이 아니고 과거의 진화적 사건에 의한 것이다. 즉, 인간이 반드시 그리고 효율적으로 배워야 할 것들을 잘 배우도록, 환경에서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배제하고 가장 적실성이 있는 정보에만 주목할 수 있는 정보처리 구조와 과정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다. 이러한 정보처리 기제는 진화사에서 일관적으로 중요했던 적응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종 표준적 디자인에 통합된 인류의 보편적 심리 기제이다(Buss 1999).
물론 인간이 보편적 심리 기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같은 행위 양상이 보편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정보처리 기제가 작동하여 행동이 발현되는 데에는 맥락의 효과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관찰 가능한 행동은 맥락 의존적으로 발현되므로 얼마든지 조건에 따라 가변적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진화심리학자는 표현된 문화적 행동 자체의 다양성에 주목하지 않으며 특정 행동이 오늘날에 있어서 얼마나 적응적인지 평가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문화적 행위와 유전자 사이를 매개하는 심리적 기제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사회생물학자나 행동생태학자들과 차이를 보인다. 진화심리학자는, 인간사회생물학은 인간이 자연선택의 산물이면 인간의 행동도 그 자체로서 적응적(생식을 극대화할 것이므로)일 것이므로 인간행동의 생식적인 결과를 분석함으로써 인간행동에 관한 과학을 할 수 있다는 입장을 취한다고 비판한다. 진화심리학자의 지적에 따르면, 인간 행동이 자연선택에 의해 디자인되었다면 유기체가 일반화된 생식극대화를 추구하리라는 사회생물학적 가정은 적응을 초래하는 일반적 과정과 적응 자체를 혼동하고 있는 데서 오는 착각이다.
유기체가 직접 생식과 혈족을 통한 생식에서 일생을 통해 성공하려면 복잡한 생태적 사회적 환경에서 여러 종류의 과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해야 한다. 그러므로 유기체는 특수한 기능을 수행하도록 자연선택에 의해 디자인된 여러 기제를 가지도록 진화된 것이다. 일반적인 생식극대화 기제가 진화하지 않은 것은 생식을 극대화하는 보편적으로 효과적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의 진화된 심리적 기제도 적합도 극대화를 목적으로 가지고 있다기보다는 구체적이고 즉각적인 경험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고 봐야만 한다. 다른 모든 유기체와 마찬가지로 인간도 특수한 목적을 추구하도록 선택되었지 생식극대화라는 일반적인 목적을 추구하도록 선택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인간행동을 추동하는 경험적 목적은 고정되어있고 특수하다. 이러한 비교적 고정된 경험적 목적이 심리적 기제에 의해 추구되며, 이러한 기제가 인류에 있어 보편적이고 비교적 한정되어 있다. 그러나 이 기제가 발생시키는 행동 자체가 고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과거의 심리적 적응이 진화적으로 새로운 환경에서 언제나 적응적인 행동을 도출하리라고 기대할 수도 없는 것이다(Symons 1992 참고).
5) 전통적인 문화개념이 내포한 오류
인간의 사회적 삶을 이해하는 데 진화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는 관점에 의하면 내용독립적인 연산능력의 등장, 즉 소위 문화적 능력(capacity for culture)의 등장과 더불어 진화는 인간의 사회적 삶에 대한 설명력을 상실하였다고 한다. 내용독립적인 심리는 그 성격상 인간의 사회적 세계에 어떠한 구조나 형태도 부과하지 않으므로 인간사의 복잡성과 유의미성을 만들어내는 것은 개인이나 인간본성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인의 마음에 조직되어 있는 내용은 문화로부터 오며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이다. 그러므로 개인은 사회적 세계의 피조물이고 인간의 삶의 내용을 복잡하고 풍부하게 만드는 원천은 문화이다. 특정 문화의 특징은 집단차원 과정의 표출적 결과이며 인간의 생물학적 특성이나 본성 또는 내재적 심리적 디자인과는 상관이 없다. 인간의 심리적 기제로 문화에 관련 있는 것은 학습능력 정도이지만, 인간은 학습능력 때문에 무한히 유연하므로 인간본성이나 생물학적 성향 등이 문화에 미치는 영향은 무시할 수 있을 정도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관점에 따르면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은 완전 분리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이 가진 몇 가지 오류를 진화심리학자들은 아래와 같이 지적한다(Tooby &Cosmides 1992 참조).
(1) 유연성
우선, 인간의 유연성에 대한 오해이다. 이는 인간의 진화된 보편적 심리 기제와 표현된 행동 결과를 혼동하는 데서 기인한다. 물론 인간의 행동은 환경의 변이에 따라 유연하지만 수단에 있어서의 유연성과 목적의 유연성은 다른 것이다. 반응에 어떤 제한도 없음을 의미하는 전통적 사회과학에서의 유연성과 맥락에 따라 적절한 반응을 창출하는 유연성은 구별된다. 진화심리학자들이 말하는 적응적 유연성이란 단순한 변이 능력이 아니라 행동이나 형태를 변화시켜 당면한 상황의 특수성에 따라 조정된 반응을 보이는 능력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세 가지 요소가 필요조건이다. 첫째는 적응적 타겟(예 : 먹이 찾기, 주거지 찾기, 짝 찾기)을 정의하는 기제의 세트이고, 둘째는 당면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적응적 타겟을 성취하는 데 가장 적절한 반응이 무엇인지를 계산하는 기제의 세트, 그리고 셋째는 일단 결정된 반응을 수행할 능력이다. 일반적으로 사회과학에서 말하는 유연성이란 바로 세 번째에 해당된다.
유연성은 고정된 표현형보다 평균적으로 유리한 변화나 반응을 계산하는 과정에 의해 통제된 경우에만 유기체에 이롭다. 유연성은 잘 디자인된 통제 시스템에 의해 규제되지 아니하면 해로운 것이다. 즉, 통제 시스템 자체의 유연성은 오히려 해가 된다. 따라서 적응적 유연성은 통제 시스템이라는 유도체계를 필요로 하며 이런 유도체계가 있어야만 진화 가능하다. 결과적으로 진화적 시간을 통해 행동상, 인지상의 유연성의 증대는 계산 유도체계가 얼마나 잘 디자인되어 있는가에 달려 있다. 인간 보편성에 대한 반대 증거로 흔히 제시되는 인간행동의 다양성은 문화적 행위와 유전자 사이를 매개하는 계산유도체계인 보편적 심리 기제가 있어 가능한 것이다.
(2) 환경의 성격
투비와 코스미데스(Tooby & Cosmides 1992)가 지적하는 또 하나의 오류는 잘못된 생물학/환경 이분법이다. 이러한 이분법은 유전적 소양은 종 보편적이라는 것, 발달 과정도 진화의 산물이라는 것, 진화적 과정이 반복되는 발달 환경의 특성을 조직한다는 것에 대한 무지에 기인한다. 유기체는 특정 환경이라는 맥락 내에서 증식하므로 그 과정에서 환경의 지속되는 특질과 상호작용하게 된다. 이러한 환경은 유기체 내적 환경과 외적 환경 모두를 포함하며, 이런 환경 중에서 세대를 이어 지속되고 재발하는 특질은 적응의 진화에 핵심적 역할을 한다. 인지적 적응은 유기체가 이 세계의 통계적 구조의 미묘한 특질을 통합하는 과정이며 이를 통해 유기체는 단지 환경에서 주어진 정보 이상의 것을 알아낸다. 세계의 특질에 대한 선험적 가정을 가진 특화된 기제가 없다면 감각정보로부터 외계에 대한 정확한 모델을 구성한다는 것은 조합 폭발(combinatorial explosion) 때문에 해결 불가능한 계산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유기체는 단편적인 지식을 통합하여 현 상태에 대한 정확한 모델을 구성하는 데 있어 감각정보로 주어진 것 이상의 것을 간파하는 선호가설(preferred hypothesis)을 이미 가지고 있다. 세계는 장기적으로 안정된 구조를 지니고 있으므로 진화의 산물인 마음은 세계의 이런 특성에 상응하는 기제를 지니고 다양한 적응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마음의 원리는 세계의 규칙성과 맞물려 진화하므로 마음이 세계의 특성들을 많이 반영하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적응은 또한 종 특이적이고 종 표준적이며 재발하는 특성을 지닌다. 복잡한 세계에서 생존 생식하기 위해서 유기체는 복잡한 문제해결 기제를 지니고 있고, 이러한 복잡한 적응은 유전자 수준에서 복잡한 청사진을 필요로 하며, 유전자 형질발현을 조절하는 발달통제 시스템이 있어야한다. 유성생식은 매 세대마다 유전자를 섞어서 이전에 존재해지 않았던 개체를 생성하는 과정이다. 복잡한 기계의 부품은 상호의존적이어서 중요한 부분에서 표준화되어 있지 아니하면 상호교환이 불가능해진다. 이와 마찬가지 이유로 생물체가 가지는 중요한 특성의 경우, 종내 개체마다 다를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중요한 특징이 다를 경우 유성생식에 의한 재조합에 의해 상호교환 불가능한 부품 같은 것을 만들어낼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복잡한 적응을 통제하는 유전자는 종 내에서 거의 일정하고, 복잡한 적응에 관련되지 아니한 형질에서만 개체간 변이가 가능하게 된다. 즉, 선택과 유성생식의 상호작용에 의해 복잡한 적응의 디자인에 있어 종내 근단일성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변이는 대개 미세한 생화학적 수준에서 발생한다. 그런데 유기체의 발달과정은 외부의 영향에 노출되어 있는 개방체계이므로 외적 방해로부터 유기체의 발달과정을 방어하는 기제도 진화된다.
환경과 유전자의 상호작용을 중시하는 발생학적 관점은 환경과 유전자의 상호결정론적 입장으로 발달체계론이라고도 불린다. 이에 따르면, 형질은 개체에서 개체로 전승되지 아니하고 각 개체마다 재구성되어야 하므로 형질은 발생이 일어나는 세계의 조건(즉, 환경의 영향)을 포함한다. 신경망의 연결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그러나 발생학적 관점의 약점은 이러한 신경망의 연결도 어떤 특정한 방향으로 발생하도록 제한되어 있다는 점을 보지 못한 것이다. 이러한 제한 내지 편향이 어디에서 기원하는가를 따지면 결국은 유전자적 정보에 기인한다. 진화적 원인이 유전자로 하여금 생태계에서 작용하는 구조와 과정이 특정한 방향으로 쏠리도록 제한하기 때문이다.
결국 비생물적 인과적 영향력으로서의 환경이 원래의 진화된 인간의 생물학적 특성의 발현을 결정적으로 약화시킬 수 있다는 이미지는 종 보편적인 유전적 소양, 진화된 발달과정, 그리고 발달환경의 재발하는 특성을 조직하는 진화적 과정의 역할을 보는 데 실패하여 생긴 것이다. 표현형의 특질은 유기체의 유전자와 발생환경의 상호작용에 의해 결정되지만 환경은 유전자만큼이나 진화의 산물이다. 왜냐하면 환경이란 세계의 모든 것이 아니라 유기체의 진화된 디자인에 의하여 발달적으로 적실성이 있는 환경이 된 것이기 때문이다. 유기체는 환경의 여러 측면을 탐색하여 발달하는 유기체가 유용하게 조직할 수 있도록 사용한다. 그러므로 실제의 환경조건과 발달결과의 상호작용은 유기체 내에 있는 발달과정의 디자인에 의해 생성된다. 신체의 발달을 예로 들면, 신체는 성장과정에서 칼로리 공급이라는 환경조건과 상호작용을 하지만 공급과잉 또는 공급부족이 어떤 신체적 반응을 일으킬지는 이미 우리의 유전정보에 의해 정해져 있는 것이다. 결국, 발달적으로 적실성 있는 환경이란 종 특이적이고 기제 특이적이므로 어떻게 환경이 유기체를 형성할 것인지를 진화과정이 결정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생물학이란 발달적으로 적실성이 있는 환경의 조직 그 자체도 포함하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인간의 사회적이나 문화적인 측면이란 생물학의 대안이 아니라 진화한 인간 생물학의 여러 측면들 중의 하나이다. 인간의 발달심리적 프로그램은 사회적/문화적 세계를 포착하여 적응적으로 유용한 결과를 내도록 디자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심리적 발달을 규제하는 프로그램은 문화적 사회적 세계에 개념적 틀을 부과한다. 즉, 환경의 어떤 측면에 주의할지 선택하고, 관찰과 상호작용이 어떻게 범주화되어 있고 재현되어 있고 상호관련되어 있는지 선택하고, 어떤 존재와 상호작용을 추구할지 정하고, 어떤 연산규칙이나 관계를 이용하여 환경의 입력을 조직하여 발달적 변화나 심리적 결과를 도출할지를 정한다는 것이다. 환경/문화 이분법자들은 환경에 대한 반응을 하기 위해서는 복잡한 진화된 디자인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고, 이러한 구조나 프로그램의 본성을 탐구하기를 거부하고 있다. 다시 말해, 환경으로부터 입력되는 정보가 이런 프로그램의 규제를 통해 행위적 발달적 심리적 결과를 도출한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으며, 그 결과 설명에 비일관성이 생기는 것이다.
인간문화가 아무리 다양해도 인간의 문화적 세계에는 미묘한 통계적 구조적 규칙성이 있으며, 자연선택은 이를 포착하여 적응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심리적 적응을 건조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 적응은 구조의 섬세한 규칙성과 연결되도록 특화된다. 따라서 인류의 진화적 과거의 통계적, 구조적 규칙성은 인류의 행동과 심리의 적응적 통제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사용되었을 것이다. 자연선택이 인류의 삶에 보편성의 패턴을 드러내는 준거틀을 선호하므로 인간의 진화한 심리적 구조 또한 마찬가지이다. 프로그램 구조에는 사실 자신들이 살아갈 인간세계의 성격에 대한 가정의 세트가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세계에 올 때 사전에 알 수 없는 특수문화 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인류 문화를 만나도록 기대하고 태어난다. 이러한 인간 보편문화를 투비와 코스미데스(Tooby & Cosmides 1992)는 메타문화(metaculture)라고 했는데 이는 인류에게 보편적인, 진화한 심리적 생리적 구조를 말한다. 이러한 예로 타자의 의도, 믿음, 욕망에 대한 가정을 들 수 있다. 인간은 타자의 행동을 신념과 욕망이라는 가정에 기반하여 해석하는 경향을 가지고 태어난다. 이는 관찰 불가한 것이지만 마음 읽기야말로 사회적 상호작용에서 중요한 기능을 하는 것으로 왜 타자들이 어떤 식으로 행동하는가에 대한 설명을 제공하고 타자의 행동을 예측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준다(Whitten 1991 참고). 즉, 인생사에서 특정 관찰을 진실이라고 가정하는 기제가 진화했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특화된 과정, 재현 양식, 단서, 범주화 체계 등이 인류라는 종이 공유하고 있는 경험에 특정한 조직을 부과하기 때문에 인간간에 상호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문화적 다양성이란 현상과 인간 보편성이란 개념은 서로 갈등관계에 있는 설명방식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진화심리학의 논리에 따르면, 오히려 사회적 세계와 연결되도록 특화된 보편적 기제에 기반한 보편적 메타문화의 존재가 있기 때문에 문화적 다양성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3) 인간인지과정의 특성
또 다른 오류는 인간의 인지과정에 관한 것이다. 전통적 문화 개념은 일반목적적이며 내용독립적인 심리구조를 상정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심리구조를 통해서는 인간의 마음이 일상적으로 수행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는 기능을 수행하거나 인간이 직면했던 적응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일반화된 학습 기제에서는 시공간적 연합 내지 연상이 학습의 근본원리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연합에 의해 학습한다면 시간과 에너지 면에서 너무 비효율적이다. 일반화된 학습과정으로 이 세계를 인식할 수 있는 대안적 방법은 무한하다. 감각자료와 일치하는 세계의 대안적 상태의 수는 무한하기 때문에 감각을 통해 얻은 제한된 정보만을 가진 계산 체계로는 지식획득이 불가능하다. 자의적 결정은 성공적일 가능성이 거의 없다. 그런데 유기체에 있어서 성공/실패는 삶과 죽음을 가르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증식하는 데 실패한 디자인은 개체군에서 제거된다.
대개의 적응적 행동경로는 일반적 규칙만에 의해서는 연역되거나 학습되지 아니한다. 왜냐하면 적응적 행동경로가 관련된 개체에게는 관찰 불가한 세계의 통계적 관계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용독립적인 체계가 관계를 학습하려면 그 관계는 지각적으로 관찰되어야 하지만 실제 그렇지 못하다. 그러나 자연선택은 장구한 세월에 걸친 실험에 의해 최선의 확률적 결과를 낸 정보처리과정의 디자인을 유전정보에 유지한다. 따라서 개체는 의사결정을 하는 개체수준에서는 관찰할 수 없는 감각단서와 의사결정규칙, 그리고 적합도 결과간의 관계에 기반한 정보처리 기제를 소유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결국, 우리가 학습할 것의 내용이 우리 유전자에 의해 정해지지 않았다면 우리는 아무 것도 학습할 수 없다는 뜻이다.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에 의해 유용한 학습내용 즉 학습되어야 할 것이 무엇인가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유기체는 무한대의 가능한 대안 중에서 성공적인 결과를 확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는 인공지능 연구를 통해서도 밝혀진 사실이다. 인간이 정규적으로 수행하는 단순해 보이는 작업도 인공지능이 하도록 만드는 일은 너무나도 어려우며 인공지능에 많은 사전 지식을 투입해야만 한다. 이는 학습이 발생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내적 구조가 있어야만 하는가에 대한 또 다른 통찰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유기체가 정규적으로 해결해야 되는 문제를 주어진 시간에 해결하는 것은 문제 해결기제가 영역특이한 적실성의 결정 규칙, 특화된 과정, 선호되는 가설을 가지고 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 왜냐하면 세계 자체는 무한한 잠재적 범주의 차원, 무한한 수의 관계, 무한한 수의 잠재적 가설 중에서 어떤 것을 택하도록 하는 틀을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유기체의 경우 이런 틀은 자연선택을 통해 제공된다. 세계의 복잡성과 유기체가 해결해야 할 문제의 복잡성을 고려하면, 어떤 유기체라도 자연적 환경 속에서 성공적으로 번식하려면 영역특화된 구조를 풍부히 가져야만 하는 것은 당연하다. 인간의 마음은 이 세계를 보는 방식을 지시해 주는 다양하고 풍부한 틀을 자동적으로 적용하며, 이런 틀은 인간에게 세계의 일부인 것처럼 느껴진다. 따라서 인간들은 틀의 존재 자체를 깨닫기조차 어렵다.
6) 진화된 보편적 심리 기제와 다양한 인간문화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문화란 집단 내에서 세대간 전승되는 변화 가능한 정보로서 사회적으로 학습된 것이다. 집단 내 유사성과 집단간 차이는 문화의 집단 내 전승에 의해 설명된다. 문화는 바로 이런 유사성의 세트 즉, 공유된 지식과 신념체계이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에 구조가 있다고 보면 전통적 문화개념은 더 이상 지탱되지 않는다고 투비와 코스미데스는 주장한다(Tooby & Cosmides 1992 참조). 인간의 마음은 내용독립적인 구조에 더하여 내용특화된 장치를 다수 가지고 있어서 이런 장치들이 사회문화적인 현상을 생성시키고 규칙성을 부과하기 때문이다.
인간 마음의 구조는 신경체계에 의해 작동하는 진화된 정보처리 기제들의 세트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들 중의 대다수는 짝선택, 언어획득, 가족관계, 협동 등 특정한 적응문제를 해결하는 행동을 도출하도록 기능적으로 특화되어 있다. 기능적으로 특화되기 위해서 이러한 기제는 내용특이적인 방식으로 구조화되어 있다. 내용특이적인 정보처리 기제들은 재현 양식이나, 과정, 단서 등에 내용특이적으로 반응하며 특정 행동방식, 물건, 언어적으로 전승되는 재현 등과 같은 인간문화의 내용을 생성하는 데 관련되어 있다. 즉, 내용에 민감한 진화된 기제들은 인간의 정신세계에 특정 유형의 내용이나 개념적 조직을 부과하며 따라서 인간의 사회생활이나 세대간 전승되는 문화의 특성에 형태를 부과하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문화란 집단에서 살고 있는 개인들에게 존재하는 진화된 심리적 기제의 산물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사고와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집단적 과정의 표출로서의 문화라는 개념에 덧붙여 진화에 대한 이해도 필수불가결하다.
그렇다면 보편적 심리 기제로 어떻게 집단간 차이와 지역 내 유사성을 설명하는가? 진화심리학자는 보편적 기제와 지역적 상황의 상호작용으로 설명한다. 즉, 지역적 유사성은 사회적 학습이나 전승이 아니라 할지라도 보편적 기제에 의한 지역적 상황에 대한 반응(환기된 문화, evoked culture)으로 설명 가능하다는 것이다(Tooby & Cosmides 1992). 따라서 보편적 심리적 구조의 반응과 사회적 학습을 함께 봐야 문화와 문화 변화의 보다 더 많은 부분을 설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새로운 상황이 발생하면 인간에게 보편적인 영역특이적 기제가 작동하여 새로운 태도나 목적이 환기되어 특정 아이디어를 보다 더 바람직하거나 하지 않은 것으로 느껴지게 만들어서 널리 퍼지거나 사라지게 하는 과정을 설명할 수 있게 된다.
어떤 현상이 사회적으로 구성되었다는 주장은 관련 개체의 심리적 기제가 사회적 상황을 입력의 일부로 사용하였다는 뜻에 불과하다. 즉, 학습자의 심리적 기제가 일차적이라는 것이다. 메타문화는 사회적 '비사회적 세계의 재발하는 구조와 상호작용하는 인간의 보편적인 심리적' 생리적 구조의 표현을 의미하고 환기된 문화는 공통적 상황이 보편적 심리 구조에 작용함으로써 발생한다. 위의 두 가지를 제외하고 개체들에게 재발하는 재현을 전통적 의미에서의 전승된 문화라 한다면 이런 문화는 적어도 한 개체의 마음에 존재하는 재현들이 있고 상호작용이나 관찰을 통하여 관찰자가 추론적 기제를 사용하여 관찰자의 마음에 그러한 재현을 재구성함으로써 다른 개체(관찰자)들의 마음에 존재하게 된 것이다. 이런 면에서 문화는 전승된 문화라기보다는 재구성된 문화, 채택된 문화, 또는 역학적(epidemiological) 문화라고 부르는 것이 보다 더 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Sperber 1996 참고).
관찰자의 기제가 수행해야 할 과제는 관찰에 기반하여 자신 내에 재현의 세트를 재구성하는 것인데, 이 세트는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의 타자들의 것과 충분히 비슷해서 자신의 기제가 생성하는 행동이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의 타자들과 적응적으로 조정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문화학습이란 행동을 통해 타자들의 마음 속에 숨어 있는 재현들을 귀납해 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타자들의 재현을 재구성하는 것은 이를 통해 집단생활 속에서 타자들이 가진 정보를 사용하는 것이 가능해진다는 점에서 적응적 의의가 있다. 집단 내에서 이런 추론적 재구성이 흔히 발생하고 어떤 재현은 세대를 통해 안정적으로 재구성될 때 이런 사건의 구조는 문화라고 불릴 수 있다. 재구성하기 쉬우면서 가치있는 것으로 평가되면 널리 퍼지게 된다(Boyer 1994 참고). 연쇄적으로 재구성되는 문화의 평가과정은 자연선택의 과정과 비슷하여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선호되는 변이들이 잔류되고 축적된다. 요소들은 개체들에게 역학적으로 분포되는 양상을 보인다. 널리 분포되어 있을수록 문화라 불리는 경향이 있지만 자연적 분기점이 있는 것은 아니며 추론적 재구성 과정에 의해 개체에서부터 전체 인류에 이르기까지 연속적으로 공유된다. 이러한 역학적 문화는 관찰자의 추론적 기제가 타자에게 존재하는 것과 유사한 재현을 구성하여 형성되며, 영역 특화된 기제가 특정 재현이 널리 퍼질지 아닐지에 영향을 미친다. 결국, 학습이란 현재까지 문화에 대한 강력한 설명인 것으로 생각되어 왔으나 학습 자체가 바로 설명대상인 것이다.
3. 결론: 상승적 관계의 가능성
인간행동을 설명하는 데 생물학적 기반을 고려하는 것은 사회과학에서는 오랜 금기사항이다. 진화생물학의 적용을 거부하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가장 큰 학문적인 문제는 진화적인 설명의 유용성에 대한 강력한 회의라 할 수 있다. 즉, 유전자는 인간의 복잡한 행위에 영향을 미칠 수 없거나, 있다 하더라도 진화적 설명이 적절한 현상은 극히 제한되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복잡한 행동을 이해하는 데는 진화된 생물학적 특성보다 문화가 더 중요하고 문화는 진화된 생물학적 특성과는 독립적이기 때문에 특별히 진화적 설명을 고려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더불어 진화적 설명은 다른 차원의 설명일 뿐만 아니라 진화적 모델은 상식적인 사실에 대한 사후적 설명이거나 검증 불가한 것들이라는 점이 진화적 설명의 학문적 가치를 제한하는 약점으로 지적된다. 또 다른 문제로 흔히 지적되는 것은 진화적 설명이 유전자 결정론을 함축하고 있으며 환경의 역할을 무시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진화생물학자들은 첫째, 유전적 특성이 행위에 대한 완전한 설명을 제공하지 못한다고 해서 유전적 영향이 문화적 영향보다 덜 중요하다고 가정할 수 없고, 둘째, 인간행위에 대한 설명은 궁극적 차원(즉, 진화적 차원)의 설명을 포괄하여야 보다 더 완전한 설명이 되며, 셋째, 진화적 설명은 광범위한 사회적 현상에 적용 가능하며 중요한 가설들을 도출할 수 있을 뿐더러 반증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설명의 오류와 불완전함을 극복하고, 진화적으로 사고하지 않으면 불가해한 현상을 설명하고, 학문의 통합성을 확보하고 학문간의 의사소통의 가능성을 증대시키기 위해서라도 진화적 사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Mitchell 등 1997 참고).
앞으로의 문제는 이러한 이론적 논의들이 연구성과로서 구체화됨으로써 진화심리학자들이 주장하는 보편적 심리적 구조를 밝혀내고 인간에 대한 새로운 통찰력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는 것이라 하겠다. 인간행동을 설명함에 있어서 사회과학에서는 즉각적인 사회적인 원인에, 진화생물학에서는 궁극적인 진화적인 원인에 주목하기 때문에 각자 다른 설명을 제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두 가지 종류의 설명은 흔히 배타적인 것으로 인식되고 있으나 실제로는 동일한 현상에 대한 다른 차원의 설명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다른 차원의 설명이 어떻게 하나의 설명체계 내에 통합되어 인간현상에 대한 보다 더 충실한 설명을 제시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아직 경험적 연구 결과가 더 축적되길 기다려 보아야 하는 상황이다.
근래에 들어 문화의 집단 내 동질성, 공유성, 일관성에 대한 문제 의식이 증대하면서 전통적인 문화개념에 변화가 일어나서 작으나마 두 진영 사이의 화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변화는 집단과 개인의 관계를 재고하는 것에서 출발했다. 공동체와 동질성에 집착하고 문화의 개인에 대한 구속력이나 강제성에 대한 신념에 집착한 전통적 인류학에서는 문화의 주체인 인간에 대한 논의를 제외시키는 경향이 있었다. 이는 문화를 머리 속에 들어 있는 법칙으로서 인간의 행위는 그것에 의해 결정되며 그것을 표현하는 것으로 보는 것으로 내재한 법칙과 행위 사이의 직접적 관계를 상정한 것이다(김광억 1998 참고).
그러나 1980년대로 접어들면서 ‘실천’(practice)이 중심적 개념으로 대두하여 개인의 전략적 행동 위주의 접근방식이 등장하였다. 즉, 문화적 통제의 깊이와 범위는 예전에 상정되었던 것보다 덜 전체적이고 허약하며 구조의 영향력은 상징적 지배의 영역이라는 인식 하에 구조와 개인행위자, 문화체계와 개인실천의 역동적 관계에 보다 더 주목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예컨대, 문화는 이해관계의 사회적 생산을 위한 실천의 산물이라는 점에 주목하게 된 것이다. 전략적 실천을 행하는 개인들의 동기로써 이해관계나 이해관계의 사회적 생산을 상정하면 문화의 수동적 수용자로서의 인간이라는 전통적 사고는 설 자리를 잃게 된다. 대신, 인간으로 하여금 이해관계를 추구하게 만드는 또는 특정 상황을 본인의 이해관계에 적절하다고 여기게끔 만드는 인간의 보편성을 전제해야만 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체계가 세계를 정의하고 조건을 제공함으로써 행위자들의 성향을 형성한다고 봄으로써 이 문제를 우회하고자 시도하기도 하지만 이는 결국 순환논리에 스스로를 가두는 것으로 귀결된다. 40년 전에 스튜어드(Steward 1955)가 주장한, 문화로 문화를 설명하는 순환론의 극복은 요원해지는 것이다. 오트너(Ortner 1984)가 개인 실천의 동기를 설명하는 것은 결국은 그렇게도 인기 없는 이해관계이론 뿐이라고 쓰디쓰게 인정할 때 그녀는 자신이 한 말의 함의를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문화가 인간의 진화된 생물학적 속성으로부터 완전히 자율적이라고 믿지 않으면서도 마치 그러한 듯이 연구를 진행하는 지적 부정직성을 비판하기 힘들다. 왜냐하면 두 가지 상반된 입장(자율적 문화 대 본성에 의해 제약되는 문화)의 갈등이 완전히 인간성에 대한 상반된 입장에서만 기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의 보편성을 강조하는 입장에서는 대개 확률적 설명방식을 취하며 법칙정립적 연구를 수행한다 (Whitehouse 2001 참고). 그러나 대개의 문화인류학자들은 이러한 보편적 기초가 특정한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생성하는 의미와 다양성을 개별성 그대로 파악하여 문화적 의미를 풍부하게 기술하기 위해 사례중심으로 이해를 추구한다는 입장의 차이가 있다. 왜냐하면 보편성의 존재를 인정하는 경우에도 이들에게는 보편적 개념은 포괄적 적용을 목적으로 정의된 것으로 그 내용이 너무 빈약하게 느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유명기 1993 참고). 설명이 아니라 이해를 추구한다고 주장하는 입장을 취하면 입증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때문에 오히려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역설적인 이점도 누릴 수 있다. 따라서 이들간의 입장의 차이는 이들이 외면적으로 보여주는 상호 갈등의 수준보다는 훨씬 덜 근원적일 수도 있다. 화해를 위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각자의 입장이 추구하는 설명이 상호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차원에 대한 설명이기 때문에, 두 설명 체계가 수직적 통합을 이룰 수만 있다면 인간이해의 폭을 크게 넓히는 상승효과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상호 인정하는 것이라 하겠다.
김광억(1998). “문화에 대한 인류학적 개념과 연구방법”, '문화의 다학문적 접근', 서울대학교 출판부, 1-33쪽. 유명기(1993). “문화상대주의와 반문화상대주의”, '비교문화연구' 창간호, 31-56쪽. Barkow, J. H., Cosmides, L., Tooby, J. eds.(1992). The Adapted Mind: Evolutionary Psychology and the Generation of Culture.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Betzig, L ed.(1997). Human Nature: A Critical Reader.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Benedict, R.(1934). Patterns of Culture. Boston: Houghton Miffins. Boyd, R., Richerson, P. J.(1985). Culture and the Evolutionary Process.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Boyer, P.(1994). The Naturalness of Religious Ideas: A Cognitive Theory of Religion.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Brown, D. E.(1991). Human Universals. Philadelphia: Temple University Press. Buss, D.(1999). Evolutionary Psychology: The New Science of Mind. Allyn and Bacon. Darwin, C.(1859). On the Origin of Species. London: Murray. Degler, C. N.(1991). In Search of Human Nature: The Decline and Revival of Darwinism in American Social Thought.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Durham, W. H.(1991). Coevolution: Genes, Culture, and Human Diversity. Stanford: Stanford University Press. Durkheim, E.(1958). The Rules of the Sociological Method. Glencoe: The Free Press. Hirschfeld, L. A., Gelman, S. A. eds.(1994). Mapping the Mind: Domain Specificity in Cognition and Culture. Cambridge. Janicki, M., Krebs, D. L.(1998). “Evolutionary approaches to culture” in Crawford, C. & Krebs, D. L. eds. Handbook of Evolutionary Psychology: Ideas, Issues, and Applications. Mahwah, New Jersey: LEA, pp.163-207. Krebs, J. R., Davies, N. B.(1993). An Introduction to Behavioural Ecology. Blackwell Science. Kroeber, A. L.(1917). “The superorganic”. American Anthropologist 19:163-213. Lorenz, K. Z.(1969). “Innate bases of learning” in Pribram, K. H. ed. On the Biology of Learning. New York: Harcourt Brace Jovanovich. Lumdsen, C. J., Wilson, E. O.(1981). Genes, Mind, and Culture: The Coevolutionary Process. Cambridge: Harvard University Press. Mead, M.(1928). Coming of Age in Samoa. New York: Morrow. Mitchell, S. D., Daston L., Gigerenzer G., Sesardic N., Sloep P. B.(1997). “The whys and hows of interdisciplinarity” in Weingart, P., Mitchell, S. D., Richerson, P. J., Maasen, S. eds. Human by Nature: Between Biology and the Social Sciences. LEA, pp.103-150. Ortner, S.(1984). Theory in anthropology since the sixties, Comparative Studies in Society and History, 26(1). Plotkin, H.(1997). Evolution in Mind: An Introduction to Evolutionary Psychology. Cambridge: Harvard University Press. Sahlins, M.(1976). The Use and Abuse of Biology. Ann Arbor: University of Michigan Press. Segerstrale, U.(2000). Defenders of the Truth: The Battle for Science in the Sociobiology Debate and Beyond. Oxford University Press. Smith, E. A.(2000). “Three styles in the evolutionary analysis of human behavior” in Cronk, L., Chagnon, N., Irons, W. eds. Adaptation and Human Behavior: An Anthropological Perspective. Aldine de Gruyter, pp. 27-46. Smith, E. A., Winterhalder eds.(1992). Evolutionary Ecology and Human Behavior. New York: Aldine de Gruyter. Sperber, D.(1996). Explaining Culture: A Naturalistic Approach. Cambridge: Blackwell. Steward, J. H.(1955). Theory of Culture Change. Urbana: University of Illinois Press. Stocking, G. Jr.(1968). Race, Culture, and Evolution: Essays in the History of Anthropology. New York: Free Press. Symons, D.(1992). “On the use and misuse of Darwinism in the study of human behavior” in Barkow, J. H., Cosmides, L., Tooby, J. eds. The Adapted Mind: Evolutionary Psychology and the Generation of Culture.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pp. 137-159. Tinbergen, N.(1951). The Study of Instinct.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Tooby, J., Cosmides, L.(1992). “The psychological foundations of culture” in Barkow, J. H., Cosmides, L., Tooby, J. eds. The Adapted Mind: Evolutionary Psychology and the Generation of Culture.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pp. 19-136. Whitehouse(2001). “Conclusion: toward a reconciliation” in Whitehouse, H. ed. The Debated Mind: Evolutionary Psychology versus Ethnography. Oxford, pp.203-223. Whitten, A. ed.(1991). Natural Theories of Mind: Evolution, Development and Simulation of Everyday Mindreading. Cambridge: Basil Blackwe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