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오십 대의 삶
정현수
제약과 한계에서 헤매는 중년의 현대인들, 삶의 격정에서 벗어나려는 발버둥이 애달프고 힘겹다. 뭔가 하고는 싶은데, 진짜 그들이 해야 할 일들을 못 하게 하는 구속과 가지가지의 간섭의 굴레가 너무 벅찰 뿐이다. 일생 평균 연령의 딱 중간에 속한 사, 오십 대의 중년의 일상이 어중간하고 애매모호한 딜레마다. 사회의 일원으로 뒤에서 쫓기고 앞선 자들의 채근(採根)이 타성적 감성으로 이끌려 그들 가는 길에 더한층 가혹한 시련만 남겨 놓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기 때문에 의기소침한 그들 행보에 서글픈 실패, 책임이 동행하기도 한다. 왜 그럴까? 생전 처음 맛보고 듣고, 보는 생소한 경험도 아닌데 그들은 아무도 모르는 비밀에 묻힌 듯, 우울에 젖어 자신들을 막연한 세상과 선을 긋고 있다. 구속과 간섭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덤불 속에 헤매는 그들 유별난 발버둥에 방황하는 것이다. 그들도 모르는 사이에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달걀가리처럼 위험스러운 속성에 있는 듯하다. 그 과정이 신박한 울림이고 희열이어야 하는데 자신이 없는 척박한 그늘 속에 피는, 끝내 쓸쓸함으로 남는 찔레꽃 같기도 하다. 그들 자신이 절대 수용할 수 없는 잘못과 결점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포기를 두려워하기 때문이 아닐까? 이 삼십 대에 하던 박력과 함께 별난 아집으로 버티기도, 버려야 하는 이기와 자만이 아직 남아 스스로 낭패에 빠져들기도 한다. 이렇게 된 바에 꼭 해야만 하는 맹목적인 자기변명에 쫓기는 절대적 완고함에 머물기도 한다. 그들 스스로의 행보에 멍에를 씌워 건조하지 못한 생각에 머물러 분탕질하는 자신과 힘든 싸움만 할 것이다.
그 친구와 만난 건 참 오랜만이다. 그러니까 사 오 년 될 성싶다. 서울에서 온 친구는 내가 해남, 남창에 살 때 한 번 왔다 갔을 때 만나고 이곳 순천으로 이사와 오랜만에 본 오랜 지기다. 수 년의 해우라 순천만 정원도 가 보고 여수 오동도 동백꽃동산도 가 보았다. 그들 부부가 내 부족함에 아쉬움을 갖지 않도록 2 박 3일 나름의 성의를 다했다. 그의 여행이 끝나는 마지막 날 우린 자연스레 삶의 한 축인 그의 손자, 손녀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그의 자식들의 삶을 들을 수가 있었다. 내 사정을 잘 아는 그는 나에겐 별말 없었지만 그의 자식에 대한 푸념으로 자연스레 이끌어져 하소연을 아니 들을 수 없었다. 그의 사십 대 초반의 아들은 잘 다니던 대기업 직장을 그만두고 커가는 아이들을 위해 새로운 사업(여행사)을 시작했다 한다. 경험이 전무한 상태에서 뭔가 이루어 내려는 젊은이의 의지는 처음엔 대단했다. 잠을 하루에 다섯 시간 이상을 자지 안았으며 기존에 있었던 틀을 께고 남이 안 했던 성의와 노력으로 꼭 해내려는 마음으로 사업의 성패를 가늠하는 그의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아들)를 압박하고 죄어오는 모든 일에 열중했다. 직원도 예닐곱 명 안팎으로 최소화했으며 사무실도 열댓 평 되는 공간에서 시작했다 한다. 그런데 해외 관광객을 유치하는 데 한계와 직원들과의 인간적 관계, 또한 사무실 운영비가 만만치 않았다. 더더욱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우리나라 사정이 중국과의 관계(코로나 바이러스에 의한 팬더믹)가 묘연해지고 버티다 못해 그 사업을 접었다 한다.(지금은 모든 게 원활하고 회복됨) 친구 아들인 그 젊은이는 분명 최대한의 노력을 다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업이란 노력으로 만 되는 일이 아니다. 시대의 흐름도, 운도 따라야 한다. 흐름이 현실과 구성지게 맞고 다양하고 충분한 재료가 하나가 되어 결과를 이루듯 서로 교감하는 사업의 기획이 필요로 하는데 모든 게 만만치 않은 것이다. 냉혹한 시련도 견디어내야 하고 요소요소에 필요한 게 짜임새 있게 들어앉아야 하는데 한정된 모든 것들이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한다. 결국 젊은이의 인내심은 한계에 도달했다. 현실의 매서운 구속과 사회적 간섭이 하나씩 하나씩 젊은이의 의지를 파괴했다. 자유로운 생각과 그를 반향 하는 의욕이 또 다른 기회를 주지 않고 그를 좌절시킨 것이다. 다행히 그는 실패에 머물지 않고 다시 일어나 새로운 도전을 했다. 잘 나가는 업소, 삼겹살 전문점에서 일 년 동안 식당 일을 배워 친구인 그의 아버지의 도움으로 다시 시작해 고기구이 전문점을 차린 지 반년이 됐다 한다. 그는 과정에서 독단적이지 않았고 처음부터 끝까지 그의 아버지를 비롯, 친지들과 상의해 가면서 스탭 바이 스탭으로 준비했다. 지난 일들과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경험 많은 이들과 신중히 과정을 거쳐 재 창업을 했다. 시작한 지 반년이 조금 지났지만 이젠 하나 둘 장사가 자릴 잡아가 친구를 비롯 가족들이 한시름을 놓게 되었다 한다. 자기 스스로를 다독거리지 못하고 교만으로 이끌어 간 독단적 제멋대로 가 주위 여러분의 도움, 이끌림으로 하나하나 궤도에 올랐다 한다. 몸은 많이 피곤하고 경험하지 못한 환경에 다소 어려움은 느끼지만 차츰 쌓이는 대가에 감사를 느끼고 있다 한다. 그의 노력과 주위 여러분의 관용으로 한시름을 놓은 것이다.
현실을 직시하며 어려움을 이겨내 땀 흘리는 노력은, 오늘날 사 오십 대 젊은이들의 도전적 삶에 꼭 필요한 피치 못할 숙명이다. 피하지 않고 도전하며 극복하는 끝없는 반항의식은 젊은이들의 참신한 과제다. 이 삼십 대의 젊은이들이 어느 과정(직장 등)을 거쳐 사 오십 대의 하나의 독립된 가계를 이룰 때 여느 패기에 의해 어처구니없게도 실수를 하게 되고 헛됨으로 이끌려 간다. 다는 그런 건 아니지 만 부단한 일과 그럴듯한 속임수, 방향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경험을 제대로 구성하지 않은 어설픈 독단은 살아가는데 해가 된다. 자칫 그럴듯한 하품 나는 말에 속기도 하고 흐릿한 판단으로 방향을 잃어 결국 멍한 모습으로 자기 자신을 망치고 만다. 다 내가 젊었을 때 거쳤던 과정이다. 덧없이 나일 먹게 되고 삶은 막연해질 것이다. 사회의 냉정함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변변치 못한 자신의 싸늘한 후회만 느낄 것이다. 냉정한 사회가 훈훈함을 잃게 하고 작은 행복마저 앗아갈 것이다.
혹시 서두는 일이 있다면 이제 젊은이들은 어설픈 한가로움에서 벗어나 이기와 자만을 버려야 한다. 모든 이와 모든 일에 두 번 생각해 결정해야 하며 신중에 신중을 기해 노력해 그들을 위한 모든 것에 너그럽게 받아들여 저 서로 관용하는 마음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 번 더 생각해 결정함으로 그 과정은 차분한 노력이 되고 결과는 자기만족이 충분한 보상이 되어야 한다.
2024. 4.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