ㅁ 해설
회귀의식에서 탐색하는 순수 서정
--이남순 시집 『촌 향수』
김 송 배
(시인. 한국문인협회 자문위원)
1. 향수로 재생하는 삶의 현장 이미지
현대시의 경향이나 흐름은 대체로 시인 자신이 살아온 삶의 궤적(軌跡)이나 그 체험에서 재생하는 이미지를 중요시하는 점을 간과(看過)하지 못한다. 이는 그 시인이 시의 발상이나 동기 등이 그 시인의 정서와 사유(思惟)의 지향과 절대적인 상관성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적인 상황설정이나 주제의 창출도 그 시인이 가슴 깊이 진하게 접하면서 생활해온 추억이나 기억들이 재생하는 이미지가 시인들의 불망(不忘)의 언어로 창출하는 시법이 시 창작에서 그 시인과 실질적인 진실로 형상화하기 때문이다.
여기 이남순 시인이 상재하는 첫 시집 『촌 향수』는 그야말로 촌(村)이라는 농촌이나 전원이 동시에 미감(美感)의 사색을 적시하는 시적인 보고(寶庫)이기도 하기에 그가 상상력으로 재생시킨 다채로운 과거로 회귀하는 사연들이 작품으로 현시(顯示)되고 있어서 농촌이나 전원에 익숙한 고향을 두었던 우리들에게 향수로의서 공감 영역을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일찍이 철학자 플라톤은 “원류에 대한 동경, 영원의 고향에 대한 거리감에 앓는 것, 그리고 그 곳으로 귀향하려는 노력, 그것이 향수다”는 말로 고향을 떠난 사람들에게 감응(感應)하는 노스탤지어(nostalgia-회향병(懷鄕病)에 대한 심적인 의미를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해질녘 설렁이는 바람
마당에 펴놓은 멍석 귀퉁이잡고
슬그머니 가족들 틈에 머문다
한낮엔 곡식 여물어주고
해지면 농가에 숨어들어
세상 이야기에 귀 쫑긋
애써 지은 농사
이쯤이면 하늘에 달렸다 하시며
저녁바람 손으로 간 보시고
흐뭇하게 밤하늘 보듬으셨는데
가을비 오려는지
스산한 바람이 분다
밤하늘은 텅 비어 그리움만 넘친다.
--「가을바람」 전문
이남순 시인은 해질녁이나 스산한 저녁바람이 불 때면 더욱 고향의 잔상(殘像)들이 그의 뇌리에 엄습하고 있다. 그는 고향 산천과 고향집 그리고 그곳에서 함께 살아온 가족들의 애환 등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면서 그의 사유를 멈추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해질녘”에 “마당에 펴놓은 멍석 귀퉁이잡고” 가족들과 정담을 펼치는 장면을 시적상황으로 설정하고 “애써 지은 농사/ 이쯤이면 하늘에 달렸다 하시며/ 저녁바람 손으로 간 보시고/ 흐뭇하게 밤하늘 보듬으셨”던 아버지는 이제 “밤하늘은 텅 비어 그리움만 넘”치는 “가을바람”으로 형상화하고 있어서 그리움은 절정에 이르고 있다.
그는 이 시집 전체에서 아버지와의 체험과 아버지에 대한 정감적 사유의 지향이 넘치고 있는데 작품 「시누대」 중에서도 “아련한 기억 더듬는 밤/ 아버지 불호령 들리는 듯 서륵서륵/ 시누대 울음에 숨어 눈시울 젖는 밤.”이라는 등의 어조에서 알 수 있듯이 이남순 시인의 향수는 대체로 아버지로부터 출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덩그런 빈 지게 등에 지고
엉덩이 동그랗게 기운 바지 입으시고
오늘도 뒷산을 오르신다
산속 동네 산그늘 내려앉으면
이집 저집 머쓱한 굴뚝들
하얀 연기 피어올라 천사들 향연
가시 나뭇단 가득지고 내려오시다
지게 목 받치고
하늘 한번 동네 한번 숨 한번
이내 지게지고 발걸음 재촉이시다
소죽솥에 불붙이고 있으면
헛간에 지게 짐 내리며
어린 딸 가시에 손 다칠까봐 놀라신다.
--「아버지 지게」 전문
이남순 시인이 그토록 천착(穿鑿)하는 “아버지”에 대한 이미지는 다양하게 적시되고 있는데 우선 이 “아버지의 지게”에서 그가 스스로 감동하고 있는 것은 빈 지게를 지고 뒷산을 올라 산그늘 내리는 동네를 내려다보는 “이집 저집 머쓱한 굴뚝들/ 하얀 연기 피어올라 천사들 향연”이 참으로 서정적으로 펼쳐진다.
아버지는 헛간에 지게 짐 내려놓고 소죽솥에 불붙이는 ‘어린 딸’에게 손 다칠까봐 놀라는 상황이 부녀간의 끈끈한 정감으로 지금까지 발현되고 있어서 그는 아버지에 대한 작품을 「울 아버지」 「아버지」 등에서 당시의 불망의 교감을 적시하고 있어서 그의 서정적인 내면 의식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아버지에 대한 이미지의 재생에서 적시된 메시지는 작품 「설날 아침에」 「곶감」 「쌀뜨물」 「함박꽃」 「운동회」 「밀서리」 「비옷」 「설날」 「논물대기」 「설날」 「홍시」 「감꽃」 「탈곡하던 날」 「보리밭 밟기」 등등에서 적나라하게 흡인(吸引)할 수도 있지만 그는 이 시집의 제재(題材)가 되는 「촌 향수」 전문에서는 “종달새 쪼로롱 여명 밝으니/ 햇살 드는 감나무위에 앉은 까치는/ 희망을 물어 나르고/ 마당엔 재산 목록 일호 송아지/ 담 너머 논에 개구리 풍년가 읊어주던 날/ 마루엔 화기애애한 아침상/ 외양간 어미 소와 송아지 여물 먹고/ 마당 가득 햇병아리 삐 약 삐 약/ 감꽃 흐드러지게 내려앉은 곳/ 오월이면 아카시아 향 질펀하고/ 해지면 뒷산 올빼미 울어대는/ 달빛 그윽하고 별빛 쏟아지는/ 산속 마을 내 고향.”에서 그가 의도한 시적인 진실인 고향과 아버지에 대한 향수가 요약되어 있어서 우리들은 그의 순박한 서정적인 시법에 감동하고 있는 것이다.
2. 모정과 돈독한 가족애의 파노라마
이남순 시인은 아버지에서 어머니에게로 다시 순정적인 감흥(感興)을 사랑의 메시지로 들려주고(telling) 있어서 그의 향수에 대한 의식은 더욱 심화(深化)하고 있다.그가 회상하면서 재생하는 어머니에 대한 이미지는 필설(筆舌)로 다할 수 없는 무한의 정감들이 작품으로 형상화하고 있는데 이는 그가 상상하는 향수의 원천이 되고 있어서 그의 심중에서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존재의 근원으로 작용하는 모태(母胎)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우선 “허기 진 뱃속에서 마구 잡아당긴다/ 꽁보리 비빔밥// 배불러 오면/ "맨 날 이런 밥이야" 하면/ "촌에서 다 그렇게 먹지 별난 반찬 있냐" 하셨지만/ 지금 생각하면 최고의 밥상아닌가/ 그리운 울 엄마 손맛. (「꽁보리밥」 중에서)”라는 절절한 어조와 같이 그의 뇌리에는 모정(母情)에 대한 그리움이 중심축을 형성하는 사모곡을 들을 수 있게 한다.
검은 머리 흰머리 되고
이마엔 깊게 파인 밭고랑 주름
눈은 돋보기안경이 대신하고 치아는 틀니
볼 살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옹달샘
허리는 꼬부랑해져 유모차가 대신
무릎은 인공관절
초가지붕 산골마을은 양옥집으로
삼남 일녀 북적이던 집에는
엄마 홀로 남았다
청춘은 아들딸에게 오롯이 바치고
마음은 자식들에게 보내줄 농사일에만 있는 어머니
고추밭에는 고추가 주렁주렁
참깨밭에는 참깨꽃이 한가득
고구마밭에는 고구마 넝쿨이 쭉쭉 뻗고
들깨밭에 서로서로 키 재기하는 어린순들
거친 땡볕 악랄한 가뭄에도
울 엄마 마음 잘 아는지 무럭무럭 잘도 자란다.
--「친정 엄마」 전문
이남순 시인은 엄마에 대한 생전의 형상들이 농촌의 풍경과 함께 적시되고 있어서 더욱 향수를 짙게 하고 있다. 그는 “검은 머리 흰머리 되고/ 이마엔 깊게 파인 밭고랑 주름/ 눈은 돋보기안경이 대신하고 치아는 틀니/ 볼 살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옹달샘/ 허리는 꼬부랑해져 유모차가 대신/ 무릎은 인공관절”이라는 “친정 엄마”에 대한 상황을 설정하면서 산골마을 초가지붕과 삼남 일녀가 북적이던 고향 집에는 지금 농사일에만 열중하는 어머니만 남았다는 현장감에서 더욱 그의 효심(孝心) 지향의 향수가 또 다른 사유를 확대시키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그는 고추밭과 참깨밭, 고구마밭, 들깨밭 등등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작물들을 상기하면서도 “자식들에게 보내줄” 농촌의 향수 넘치는 “울 엄마 마음”을 그는 시적으로 승화하고 있는 것이다.
녹음 짙어지는 오월이면
보리밭에 보리이삭 영글지 않고
뒤지는 텅텅 비어
엄마 속 새까맣게 타들어 간다
하루는 쑥버무리
다음날은 씨감자 남은 것으로 범벅
또 하루는 보리개떡
칡 캐고 소나무 껍질 벗겨 송구(송기)
마지막 남은 겉보리 두어 되 가지고
아랫집 디딜방아에 넣고 콩닥콩닥
한참 찧어 키질하면
철없는 아이 방아에 걸터앉아 시소 탄다.
--「보릿고개」 전문
그는 다시 “엄마 속 새까맣게 타들어” 갔던 “보릿고개”의 상황에서 당시 이러한 시절의 애환을 겪었던 독자들은 이해가 빠를 것이다. 초근목피(草根木皮)로 연명했던 보릿고개야말로 빈한(貧寒)했던 우리 사회의 현상을 어머니는 눈물로 인내한 정감이 그의 시적인 발상에 크게 어필(appeal)하고 있는 것이다.
이남순 시인의 사모곡은 이 시집 전체의 테마(thema) 중에서 향수를 유발하는 그의 의식에서 흡인력 있는 형상들을 적시하고 있어서 공감의 영역은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영글지 않은 보리이삭과 쑥버무리, 씨감자, 보리개떡, 칡뿌리와 소나무 껍질(송구) 그리고 겉보리와 디딜방아, 키질 등 시대적인 불안의 생활상을 잘 현현하고 있어서 공감하게 된다.
이러한 시법은 작품 「친정집 텃밭에 앉아」 「어머니」 「엄마」 「시어머니」 「우리 엄마는」 등등에서 눈물겨운 시대상과 더불어 생활상을 반영하는 당시의 현상들이 잘 나타나 있는 것이다. 그가 이처럼 어머니를 시적으로 형상화 어조는 다음과 같이 명민(明敏)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그 때 어린 맘에/ 저런 까실한 옷 왜 입을까 했는데/ 울 엄마 허리 구부러지고/ 옷 손질하 기 성가시다고 딸한테 건네주셨다 (「모시옷」 중에서)
- 별것 아닌 것 같아 보여도 막상 해 보면/ 삼층밥 되거나 죽밥 떡밥 / 쉬운 듯 어려운 엄마 솜씨/ 찬바람 불면 불현듯 / 가마솥 누룽지가 그립다. (「누룽지」 중에서)
- 귓전엔 엄마 음성 쟁쟁하고/ 입안은 단맛이 녹아드는데/ 이제 어디에서 그 맛 볼 수 있으 려나. (「고구마 빼데기」 중에서)
- 다음 날 아침상에도 같은 반찬/ 간이 들어 무에도 고등어 맛이 나는데/ 그래도 엄마는 안 드신다 (「자반 고등어」 중에서)
- 정신없이 놀다/ 살얼음에 한발 빠지면/ 오빠들 모닥불 피워주고/ 불 쬐다 양말 태워 집에 오면/ 엄마한테 야단맞으면서도/ 실실 웃음 나던/ 그때 그 시절 .(「설매」 중에서)
- 며칠 전 시골에서 택배 온 떡 반죽/ 동글동글 손맛 나게 빚어/ 시어머님 정성 얹어 찜솥에 찐다(「쑥개떡」 중에서)
- 소죽 속에 밥을 꺼내고/ 소는 소죽을 먹고/ 엄마와 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을 먹는다 (「땔감하러 가는 날은」 중에서)
이 밖에도 가족 사랑에 대한 다정다감한 작품들을 엿보게 하는데 “정지에서 나물 볶아 오곡밥 준비하시는 엄마/ 소죽 끓이시며 쥐불놀이 깡통 만드시는 아버지 (「정월 대보름」 중에서)” 또는 “콩밭 사이사이 갓 따온 열무 버무린 겉절이/ 찐 옥수수 김 모락모락 진수성찬/ 배불뚝이 올챙이배 남매/ 멍석에 누워 별을 헤는 밤/ 풀벌레 소리 가득한 밤/ 스르르 잠이 들면/ 별님도 따라 은하수 건너네.(「칼국수 먹는」 중에서)”라는 어조 외에도 작품 「김장하는 날」 「쉰의 설날」 「선물 같은 하루」 등등에서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가족들과의 사랑을 통한 향수에 젖어있는 것이다.
3. 아련한 농촌 풍물과 추억의 현장
이남순 시인이 탐색하는 시적인 정황(situation)은 전형적인 농촌의 풍물과 거기에서 동행하는 주변인등이 공동으로 펼치는 한 편의 드라마이며 한 폭의 산수화일 수도 있을 것이다. 참으로 아름다운 추억이 되살아나는 정경(情景)에서 그는 향수라는 진정한 사유에 의식의 중심축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농촌에서 흔히 대할 수 있었던 생활 현장을 가감없이 적시하면서 그가 동고동락(同苦同樂)한 농촌의 애환이 그의 가슴 속에서 되살아나서 작품으로 승화하는 애정어린 고백적인 감응을 유로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그는 작품 「보리타작」 중에서 “며칠 후 정부 수매 끝나면/ 돼지고기랑 고등어자반/ 숯불에 구워주시던 부모님/ 지금은 구경도 힘든 추억들/ 보리밥 해서 그리움과 버무린다.”거나 「깨복쟁이 친구」 중에서도 “꼬부랑 십 리길 산골 계곡물 따라/ 가슴엔 흰 손수건 달고/ 개구리 잡고 가재 잡다가/ 뱀 나오면 소리치고 도망가고/ 어쩌다가 들에 나가는 경운기 만나면/ 꽁무니 매달려 학교 가던 어릴 적 친구들”이라는 어조로 실감나는 기억의 현장을 재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물 잔잔한 논에 못단 던져지고
모심을 선수들 입장하면
못줄 팽팽히 당기고
어이
일제히 허리 굽혀
모를 떼어 내려 심는다
어이
허리 펴고
한발 뒤로 물러 다시 모를 심는다
나란히 줄을 서는 모들
땅맛에 길들여질 때까지
물도 대주고 비료도 뿌리고
연초록 잎들이 반들반들
모심던 어르신들 얼굴이
하늘하늘 아롱져 일렁인다.
--「모내기」 전문
그는 당시 농촌의 실상을 생생하게 현현하면서 향수에 젖고 있다. 요즘은 기계가 발달해서 이러한 풍경을 볼 수 없지만 당시 우리의 농촌에는 직접 “모심던 어르신들”(아버지를 포함해서)의 선하게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상상하는 농촌의 정경은 모를 심는 일이나 못줄을 당기는 일과 “땅맛에 길들여질 때까지/ 물도 대주고 비료도 뿌”려 주면서 땀 흘리는 노고(勞苦)는 어쩌면 우리의 시대적인 공동의 애환이기도 할 것이다.
모내기하는 날
품앗이 우리 집 차례
학교는 당연히 못가고
아버지부터 소까지 정신없이 분주하다
해뜨기 전 어르신들
집에서 제일 먼 불땅논 차지
텅빈 집에 혼자
텃밭 열무 뽑고 호박잎 따서 찌고 겉절이 한다
막걸리 받아 챙기고
큰솥에 밥 안치고 뽀글장 지져
양동이 가득 담아
똬리 받쳐 머리에 이고 들로 나간다
쑥 들어간 목, 떨어지게 아픈 팔
아무도 보이지도 않아도
목청껏 엄마 부르며 가다 보면
어느새 나타나 양동이 받아 내린다
설은 밥 아닐까 걱정하시며
기특한 어린 딸 손맛으로
논두렁에서 펼쳐지는
한낮 들밥 잔치.
--「새참」 전문
그렇다. 이남순 시인은 품앗이로 오늘은 우리 집에 모내기를 하는 날에는 어린 딸이 “막걸리 받아 챙기고/ 큰솥에 밥 안치고 뽀글장 지져/ 양동이 가득 담아/ 똬리 받쳐 머리에 이고 들로 나”가서 “논두렁에서 펼쳐지는/ 한낮 들밥 잔치.”로 허기를 때우면 잠시 휴식을 취하는 정겨운 사연들은 그의 심연(深淵)에서 잊혀질 수 없는 영원한 삶의 원류로 흐르고 있는 것이다.
이 밖에도 그는 “누렁이 몰고 금산으로 이랴/ 엄마 몰래 미수가루 라면 봉지에 담아/ 줄지어 산등성이 가면/ 푸른 초원은 소들의 천국이다(「소물이」 중에서)”라거나 “온 가족 힘 모아 딴 뽕잎/ 뿌려놓으면 먹는 소리 삭 삭삭/ 방안 가득 돈 쌓이는 소리 // 며칠 후 짚 타래 누에위에 올리고/ 뽕잎 덮어 하루 자고 또 자고 나면/ 하얀 집 지어 모두 돈 타래다.(「누에치기」 중에서)” 등으로 생활 현장에서 각인(刻印)되어 있는 실상(實狀)을 재생하고 있어서 공감하게 된다.
그는 그 당시의 농촌의 모습과 거기에서 생성하는 잡다한 일들이 이제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서 그의 심경(心境)에서 떠나지 못하는 희노애락(喜怒哀樂)의 순박한 정서로 형상하면서 그의 시법을 충만되게 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는 것이다.그가 “꼬부랑 십 리길 산골 계곡물 따라/ 가슴엔 흰 손수건 달고/ 개구리 잡고 가재 잡다가/ 뱀 나오면 소리치고 도망가고/ 어쩌다가 들에 나가는 경운기 만나면/ 꽁무니 매달려 학교 가던 어릴 적 친구들(「깨복쟁이 친구」 중에서)” 등의 어조와 작품 「장독대」 「곶감 동네」 「논물대기」 「추수」 「정월 대보름날」 등등에서 그의 의식은 ㅇ라직도 과거의 시간 속에 머물러 있음을 이해하게 된다.
4. 계절의 섭리에 대한 순정적 이미지
이남순 시인에게서 다시 살필 수 있는 것은 계절의 순환 섭리의 시간성에서 변화하는 자연 현상에 대해서 민감한 반응를 나타내고 있다. 누구나 사계절의 시간성이 우리들에게 보여주는(showing) 이미지가 다채롭게 전개되고 있어서 우리 인간들이 자연에 순응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그는 “연초록 나뭇잎 사이로/ 파란 하늘 윙크하면/ 신나 다람쥐 덩달아 바쁘다(「메아리」 중에서)”는 봄날의 향취(香臭)는 아카기아 향이 쏟아지는 원미산을 오르면서 새들의 재잘거림을 들으면서도 고향하늘로 날아가는 자연 서정의 속내를 읽을 수 있게 한다.
봄 햇살 주룩주룩
꽃들의 넓은 함박웃음
홀씨 흩날리는 날
도로에 기지개켜던 나무들
첫 울음 터트리고
하늘이 주는 영양분 받아
조막손 조물조물 곤지곤지
하루가 다르게
연두 빚 얼굴 내밀어 쌩긋
어린잎 쉬엄쉬엄 피어
활짝 보자기 펴는 날
풍경 속 한 자락
그림자 밑에 편히 쉬어 보련다
--「가로수」 전문
이남순 시인은 우선 “봄 햇살 주룩주룩/ 꽃들의 넓은 함박웃음/ 홀씨 흩날리는 날”가로수길을 걸으면서 봄날의 정취(情趣)를 만끽(滿喫)하고 있다. 그는 “풍경 속 한 자락/ 그림자 밑에 편히 쉬어 보련다”는 아주 온화하고 낭만적인 평온에서 봄의 계절적인 서정에 심취해 있는 것이다.
그는 이처럼 봄에 대한 자연 사물과의 교감은 작품 「찔레」 중에서 “하얀 면사포 덮어쓴 찔레꽃/ 통통하게 살 오른 어린순/ 가시병정 세워 꼭꼭 숨어있다”는 봄의 정경이 바로 고향과 유년시절의 기억으로 남아 있어서 더욱 향수를 아련하게 상기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 밖에도 작품 「참꽃」 「능소화」 「서리꽃」 등에서도 봄의 향훈이 그리움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작품 「여름날 풍경」 「덕진공원」 「겸손」 「산딸기」 「화채」 등에서 폭염과 매미들의 환호 그리고 고추밭 둥그런 수박, 장맛비 등으로 여름 계절의 언어로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어서 그에게서 봄과 여름의 생동감 넘치는 이미지들을 형상화하는 시법을 이해하게 한다.
하늘 높아지면
바람 서늘해지나 보다
텅 비어있는 가슴에
고이는 그리움
빗장 내린 흐린 기억들
마음도 그늘로 단풍 머금고
길가에 활짝 웃는 코스모스
가느다란 허리가 휘어지도록
애교 부리고 있는데
가슴 먹먹하고
눈시울 젖어 들어
난 나를
선글라스에 가린다
오색빛 흥청대는 이 가을날.
--「시월 어느 가을 날」 전문
그에게서 가을의 이미지는 어떠한가. 가을에 대한 상징이나 이미지는 풍요로움이다. 그러나 이남순 시인의 의식에는 “텅 비어있는 가슴에/ 고이는 그리움/ 빗장 내린 흐린 기억들”로 충만되어 있다. 그는 시월 어느 날 “길가에 활짝 웃는 코스모스”와 단풍 등의 가을 풍경에서 그는 그리움에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시울이 젖어서 선글라스로 자신을 가리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가을에 대한 상념(想念)은 “한낮 미련 많은 햇살/ 기어코 벼 이삭 빼 내어/ 황금물결 출렁출렁// 저 멀리 하늘가/ 붉은 노을 가로누워/ 초저녁 달빛 불러내고 있다.(「가을햇살」 중에서)”거나 매미들 목청 높이는 축가, 뭉게구름 양떼구름, 해바라기(이상 「가을」 중에서) 등의 어조에서 이남순 시인이 시적 상황을 전개하는 그의 내면 의식을 이해하게 한다.
이 밖에도 그는 겨울에 대하여 작품 「눈 내리며」 「눈 오는 날」 등에서 “동네를 빙 둘러친 산 때문에/ 어둠이 빨리 오던 촌 동네/ 눈 내리는 날이면 동굴 파고 들어앉아/ 실뜨기하던 그 날이 그립다.”거나 “아련한 옛이야기/ 아파트 사이사이 날아와/ 가슴 깊이 파고든다.”는 옛 이야기들이 가슴깊이 각인되어 모두가 그리움으로 형상화하고 있어서 그의 향수는 더욱 짙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남순 시인은 이렇게 사계절의 섭리를 민감하게 수용하면서 자신이 실제로 겪었던 삶의 체험들이 재생하여 작품으로 승화하는 현상은 시인들이 소망하고 기원하는 심리적인 발원이며 이를 망각할 수 없는 영원한 향수에의 동경(憧憬)이 이남순 시인의 심저(心底)에서 아직도 요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이남순 시인의 첫 시집 『촌 향수』의 읽기를 마무리해야겠다. 그는 이 시집 전체의 상황 설정이나 전개 그리고 주제의 정립이 모두 그가 자라면서 생활했던 고향과 가족 그리고 농촌의 풍물의 유래에서 남겨졌던 궤적이 작품으로 형상화하고 있음을 간과하지 못한다. 이러한 삶의 추적은 이를 재생하고 상기함으로써 자신을 성찰하면서 존재의 의미를 다시 음미하여 우리들이 여망하는 인본주의(humanism)의 실현에 화력소를 충전하는 계기가 될 것은 자명(自明)한 일이다.
일찍이 프랑스의 시인 보들레르는 시의 목적은 진리나 도덕을 노래하는 것이 아니고 기쁨이든 슬픔이든 항상 그 자체에서 이상을 쫓는 신과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말로 우리 인간들의 사소한 생활의 정감이 내포(內包)되어 있는 시는 나(自我)를 발견하면서 나를 사랑(自愛)하는 인생관을 재정립하는 동기가 되고 있는 것이다.
첫 시집 발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