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뿌리 파리 / 이미옥
지난해 까만 날벌레가 화장실, 주방, 다용도실에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흔하게 보던 초파리가 아니었다. 베란다 상자 안에 있는 감자에서 나왔나 싶어 뒤적여 상한 것을 골라내고 저장 통에 담긴 콩, 팥, 찹쌀 등을 확인했지만 그것이 나올 만한 곳은 없었다. 초파리보다 날개가 좀 더 큰 새까만 벌레는 행동이 빠르지 않아서 쉽게 잡혔다. 날아다니는 녀석을 수건으로 탁 치면 바로 죽었다. 처음엔 눈에 거슬려 닥치는 대로 잡았다.
파리처럼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더러운 발을 비비지 않고 초파리처럼 약 올리듯 눈앞에서 빙빙 돌지 않는 그것에게 전의를 잃어갈 즘, 남편에게 벌레가 자꾸 나오는데 보이는 대로 죽이는 게 맞는지 고민된다고 했더니 “너, 그러다 지옥 간다.”라고 한다. 그래서 일단 같이 살기로 했다. 무더위에 서식지를 잘못 찾은 이로운 곤충일지도 모르니, 잠시 들르는 철새쯤으로 여기기로 했다. 거의 비행이란 걸 하지 않지만 한 번씩 날개를 휘저을 땐 정신없고 파리가 생각나 불결해 보였다. 같이 사는 데 인내심이 많이 필요했다.
그 벌레는 주로 물기 있는 욕실에 옹기종기 모여 조용히 지냈다. 변기에 앉아서 보면 초파리보다 넓고 둥근 날개를 이불 삼아 타일에 바짝 붙어 미동도 하지 않았다. 몸을 구분할 것도 없이 까만 날개가 그들의 존재를 알리는 전부였다. 어디서 생겨났는지 알 수 없는 그들과의 동거가 며칠 계속되었다. 가족들은 벌레를 보는 것보다 죽이는 걸 더 싫어해서 내 변심만 아니면 그것들은 잘 지낼 수 있었다.
폭염 경보 문자가 연일 울리던 어느 날, 스피커 폰에서 안내 방송이 나왔다. “요즘 우리 아파트에 검은 뿌리 파리가 출몰하여 오늘 보건소에서 비상 방역을 한다고 하니….” ‘뭐? 파리라고?’ 양심을 걸고 지키려 했던 존재가 해충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잘못 들었나 싶어 반복해 나오는 방송을 스피커 아래에 바짝 붙어서 들었다. 그것의 정확한 이름은 ‘검은 뿌리 파리’였고 보건소에서 비상사태라고 방역하러 올 정도의 해충이었다.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닌데….’ 라며 내 어리석음을 위로했다. 방역의 효과였는지 아니면 원래 수명이 짧은 것인지 그날 이후로 보이지 않았다.
크게 해를 끼치지 않는 녀석을 왜 꼭 없애야 하는지 궁금해서 인터넷을 검색했다. 그것은 ‘작은 뿌리 파리’라고도 하는데 주로 성충은 4월 중순에 증가하고 5월 하순에 가장 많이 발생하며 유충은 딸기, 백합, 오이, 수박 등의 작물의 뿌리를 갉아 먹거나 심지어 집안의 화분에도 피해를 준다고 했다. 해충이었다. 괜히 이름에 ‘파리’가 붙은 게 아니었다.
이삼 주쯤 잠잠하던 녀석들이 다시 욕실에 나타났다. 실외기 통풍구로 들어온 거 같았다. 그들의 등장과 함께 또 안내 방송이 나왔다. 방역 후에도 사라지지 않는 그것들을 보이는 대로 잡기 시작했다. 욕실에 나타난 녀석들은 샤워기로 수장시켰고 바닥에 앉아 있는 것은 슬리퍼에 압사당했다. 날아다니는 것들은 청소기로 빨아들였다. 남편의 지옥 타령은 귓등으로 날려 버리고 햇살에 실해져 가는 화초를 지키려 그해 여름 참 많이도 죽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