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칭다오 맥주
제 2 차대전은 유럽과 태평양(太平洋)의 전역(全域)에서 전쟁(戰爭)이 펼쳐져 세계대전(世界大戰)이라는 명성(名聲?)에 걸맞는 인류사 최대 전쟁(人類史最大戰爭)이었습니다.
그런데 1914년부터 1918년 사이에 벌어진 제1차 세계대전은 역사(歷史)에 한 획(獲)을 장식(裝飾)할 만큼 거대한 전쟁이기는 하였지만, 거의 유럽에서만 전쟁이 이뤄져 세계대전이라는 이름을 붙여야 하는지 의문(疑問)스러운 점도 있습니다.
↑제 1차대전의 도화선이 되었던 페르디난트 황태자의 장례식
때문에 영어권(英語圈)에서는 제1차 세계대전(World War I)으로 칭(稱)하기 보다는 大전쟁 Great War라는 이름으로 많이 통칭(通稱)되어집니다.
만일 유럽에서만 발생(發生)한 전쟁에 세계라는 타이틀을 붙인다면 그것은 서구 제국주의 국가(西歐帝國主義國家)들의 역사가 곧 세계의 역사라는 오만(傲慢)한 (?) 세계관(世界觀)이 작용(作用)하였다고 밖에는 생각 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위에서 제가 언급한 것처럼 제1차대전이 대부분 유럽에서 벌어지기는 하였지만 일부 전역(全域)은 유럽을 벗어난 곳에서도 이루어졌습니다.
비록 유럽 전선(戰線)만큼 거대한 규모(規模)는 아니었지만 전사(戰史)에는 제1차대전의 일부로 엄연히 기록(記錄)되고 있고, 이런 이유 때문에 세계대전으로 인정(認定)받고 있는 것은 아닌지는 모르겠습니다.
↑제 1차 대전 당시 폐허가 된 동프로이센 지역과 2차대전 드레스덴
이렇듯 20 세기 초에 발발(勃發)한 거대전쟁(巨大戰爭)을 유럽만의 전쟁이 아닌 세계화(世界化)하는데 일조(一助)한 나라가 바로 일본입니다.
제1차 대전 당시 일본은 모든 세계 강대국들이 전쟁에 뛰어들어 정신이 없을 때,
이에 편승(便乘)하여 이득(利得)을 취한 야비(野鄙)한 본성(本性)을 전세계에 적나라(赤裸裸)하게 발휘(發揮) 하였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변함없이 야비한 일본의 음흉(陰凶)한 행태(行態)가 제1차 세계대전 때 어떻게 작용(作用)하였는지 알아보고자 합니다.
↑山東省은 남한(南韓)에서 가장 가까운 중국의 영토(領土)입니다.
이곳의 서남부(西南部) 자오저우만(膠州灣)에 칭다오(靑島)라는 도시가 있습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 요트경기가 개최(開催) 될 예정인 이 도시는 중국에서도 깨끗하고 살기 좋은 도시 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이 칭다오에 유명한 것이 있는데 바로 맥주입니다.
↑칭다오맥주 (위) 와 매년 성대히 개최되는 맥주 페스티벌
이미 100년이 넘는 역사(繹史)를 가진 칭다오맥주는 세계적인 브랜드로 다섯 손가락안에 손꼽힐 만큼 맛도 좋은, 중국 공산품(工産品)으로는 세계에 자랑하는 몇 안돼는 일류 명품(名品)입니다. ( 개인적으로 상당히 좋아하며, 중국에 출장가면 반드시 마시고 옵니다....음 ~ 꿀걱 )
그런데 고량주(高粱酒)도 아니고 어떻게 중국산 맥주가 세계적인 명성(名聲)을 얻게 되었을 까요?
↑올림픽 요트 경기가 개최 될 칭다오시의 모습
청일전쟁(淸日戰爭)에서 패전(敗戰)하여 종이 호랑이임이 세계적으로 입증(立證?) 된 중국대륙(中國大陸)을 차지(借地)하기 위해 늑대같은 서양 열강(西洋列强)들이 파리 떼처럼 달려들어 중국 대륙의 이곳저곳을 강탈(强奪)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조차지(租借地)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중국 곳곳에 그들의 식민지(植民地)아닌 식민지를 건설(建設)하였습니다.
↑칭다오 시내에 위치한 구 독일조차지 총독 관저
영국이나 프랑스에 비해 상대적(相對的)으로 늦게 식민지 확보 경쟁(植民地確保競爭)에 뛰어든 독일은 아프리카에서 식민지 확보에 곤란(困難)을 겪자 아시아로 눈을 돌리고 중국대륙의 혼란(昏亂)을 틈타 1898년 칭다오에 조차지를 설치(設置)합니다.
이후 이곳을 차지한 독일인들이 칭다오의 최고 암반수(巖盤水)와 그들의 주조 기술(酒造技術)을 결합(結合)하여 맥주를 만들어내는데 그것이 바로 칭다오맥주였던 것입니다.
비록 지금은 중국을 알리는 세계적인 대표 브랜드가 되었지만 그 시작은 중국의 역사에서 아픈 것이었다 할 수 있겠습니다. ( 계속 ) [ august 의 軍史世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