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 안에서 칼이 울었다...
군왕은 미쳐 가고 있었소...
상황도 시간도 그 어떤 타당한 이유도 용납하지 않은채
그는 무조건, 무조건 수군이 부산을 쳐야 한다고 발악을 하고 있었소.
이나라의 군왕이란 자의 염원이란
다시는 옥좌가 놓여진 이곳 도성을 떠날 수 없는 것이며
다시는 북삼도를 전전하며 거친 메와 입에 안맞는 물을 마실 수 없는 것이며
명민한 아들과 잘난 신하의 발호를
멀쩡히 두 눈 뜨고는 결코 볼 수 없는 것, 그것이었소.
그는 끊임없이 조정 중신들에게 자신의 비위에 어긋남이 없는 충(忠)을 강요하느라
이성도, 냉철한 판단도 그 무엇보다도...
자신이 만백성의 [어버이] 라는 사실을 송두리째 잊어 버리고 있더이다...
...
권 율 -<원균과 수군은...부산으로 진격을 할 것이오.
내가...그리하라 했습니다.>
장수로서의 최후의 실낱같은 이성이 살아 있던 것일까,
차일 피일 부산 진격을 미루고만 있던 원 균은
도원수 권 율에 의해 추포 당하고 장까지 호되게 맞은 후에
부산 진격을 무섭게 종용 받았더랬소.
그날 밤, 도원수 권 율은 자신의 집무실로
수인의 옷을 입고 수인의 노역을 하고 있는 이순신을 불러
자신의 괴로운 양심을 달래기 위한 고해성사를 하려 하고 있더이다.
수군의 부산 진격...
그것이 장군이 만들어 놓았고 또 떠나온 조선 수군의
마지막이 될 것임을, 두 장수는 알고 있었소.
그 말을 들은 장군의 눈에 맺히는 은은한 눈물.
이년의 눈에는...그것이 눈물이 아닌 핏물로 보이더이다...
권 율-<누구나.. 이 장군 같을 수는 없소.
아무 계산 없이 모든 것을 내던지기엔..보통의 사람들은 두려운 것이 너무 많아요.
역도의 굴레를 감내하고 백의종군의 불명예를 견디기엔..우리는 가진 것이 너무 많고..
세상에 닳고 닳아 지나치게 영악해 졌소....>
마치 하얀 화석처럼 굳어진채 질긴 침묵으로 권 율을 응시하는 장군.
무슨 말이든 해 보라, 그리 초탈한척 앉아 있지 말고
[사람]답게 분기라도 터뜨려 보라는 권 율에게...장군은 그 질긴 침묵 끝에 간신히
피같은 아픔이 절절히 배인 목소리로 간신히 입을 열고 계시더이다
이순신-<...지금은 [말]이 바꾸어 놓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무슨 말을 할까보다는 무슨 일을 할까가 중요한 때입니다...>
그 자리에서 그 한마디 [말]을 꺼내기 까지
장군의 가슴속에서 날뛰었을 지옥같은 불덩어리는 얼마나 뜨거웠을 것이며
당장이라도 베어버리고 싶은 자들에게 향하는 지독한 증오는
...또 얼마나 감당키 어려웠겠소...
알량한 충성심과 정치적 상징성 사이에서
전쟁 또한 [말]로서 해결하고자 했던 군왕과 조정 중신들,
결국 그들은 이 땅에 파멸을 불러 오고 있었으며...
그 전란을 맞아 싸우던 수많은 사람들의 땀과 노고와 눈물과
또 목숨이 배어 있는 시간과 한(恨)을
처참하게 무(無)로 돌려 놓고 짓이기고 있는 것이오.
이순신- <내안에서 칼이 울었다. ...>
<노엽지 않은가..
그대를 조선군의 수괴라 부르는 적보다...
역도라 칭하는 군왕이 더욱 노엽지 않은가.
그 불의에 맞서지 못하고
그대의 함대를 사지로 이끌고자 하는 세상의 비겁이..노엽지 않은가..
...칼은 살뜰하게 내게 보챘다.
“적의 피로 물든 칼을 동족의 심장에 겨누지 마라..”
...그 무슨 가당찮은 오만인가..>
전란이 시작되고
이나라의 백성들의 희생을 끊임없이 강요받기 시작했던 그때로 부터,
장군의 심장을 감싸기 시작한 단단한 껍데기는
결코 벗겨질 줄 모르고 있었건만...
지금 그 피막은 찢겨지고 그 안에 고여 있던 더운 피는
이렇게 울음이 되어 장군의 입으로 터져 나오고 있더이다...
<내가 진정 베어야 할 것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내 자신이라.. 칼을 달래고자 했으나,
그 울음을 잠재울 수 없었다...
하여.. 차라리 육신이 죽어주었으면 했다.
그러나.. 이내 몸은 죽어지지 않았다...>
자식처럼 형제처럼 아꼈던 부하들이
적의 총탄에 맞고 포탄에 갈갈이 찢겨 날아가는 것을 보았을 때도,
전장에서 조차 굳건히 지켜 왔던 부하들의 목숨을
천여명이나 역병과 굶주림 앞에 어이없이 내어 놓아야 했을 때도,
목숨을 다 하여 충성하던 이 나라가 장군에게서 등을 돌려 버렸을 때도,
그렇게 당신의 손으로 지켜낸 임금이 장군을 죽이겠다 혈안이 되었을때도,
...장군은 당신의 육신과 영혼이 죽어지기를 바란 적은 없었소.
이제 이 바다를 내어 주고 이 나라의 명운을 내어 놓아야 한다는 예감에 떨며
어스름 새벽이 밝아 오는 바닷가에서
장군은 차라리 자신의 목숨이 죽어 지기를 바라며 오열하고 있더이다...
2. 해묵은 상처에 새 피가 흘렀다...
차라리 눈막고 귀막고 외면해 버리고 싶었던 그 날은
반드시 때가 되면 달려드는 밀물의 파도처럼 우리를 할퀴러 찾아 오고야 말았으니...
삼도수군통제사 원 균이 이끄는 조선 수군 만 삼천여명과 백여척의 함대는
출발선상에서부터 실패와 죽음을 예상하고 감내 하리라는 각오 속에서
희망 없는 싸움을 위해 닻을 올리고 있었소.
적은 강하고 우리는 약했소.
그리고 적은 거듭되는 패전속에서 천금같은 교훈을 얻어 가지고 있었소.
그러나 우리 조선 수군은...
그 자존심에 입은 상처와 수모를 감당할 수 없었던 지휘관의 용렬함에 의해,
연전연승이란 독한 술에 취해 있는 그 지휘관의 오만에 의해
반은 눈감고 또 귀가 먹은 채로 전장으로 출발하였소.
(이미지 출처-네이버 블로그 [초심] 님)
그리고 조선수군이 거둔 다대포에서의 작은 승리.
그것은 너무가 당연하게 예상 되어 질 수 있는 적의 미끼였소.
적이 개먹이 던지듯 던져준 승리에 고취되어
부산을 향해 진격 명령을 망설임 없이 내리는 통제사 원 균.
제발, 제발...
지금이라도,
지금이라도 함대를 돌려 주시오...
보는 이의 가슴에도 검은 멍이 맺힐 듯한 안타까움을 뿌리치고
무모하게 적진을 향해 한발 한발 진격한 조선의 함대는
적을 만나기 전에 자연이란 더 무서운 적을 만났고,
악천후를 뚫고 전진 하느라 기진하여 쓰러지는 격군들이 속출하는 가운데
단 하루의 기항도 하지 못해 탈진한 그들은...
허울좋은 정치적인 상징성 속에서 임금이란 자가 그토록 원했던,
수군 최고 지휘관이라는 자가 그에 부화뇌동하여 할 수 있다고 큰소리 쳤던
적의 본거지 - 부산포에 가까스로 당도하여 상륙을 준비하고 있던 그들은...
조선군은, 우리의 조선 함대들은 적의 미끼를 완벽하게 물고 덫 안으로
남김없이 뛰어 들고야 만 것이었소...
뿌우~
한줄기 뿔피리 소리와 함께 그 순간 여유도 만만하게,
그 위풍도 당당하게 절영도 양쪽에서 와키자카와 도도,
그리고 구키가 이끄는 수백척의 함대들이 그 무시무시한 위용을 드러내고 있었소.
- 이들은 실로 피맺힌 설욕전을 치를 준비를 완벽하게 끝내고 있던 것이오.
와키자카-<그저 지켜보시면 됩니다.
이순신에게 당한 그대로를 돌려주고 있는 것이니까요....>
그렇게 조선 수군들은 퇴각했고,
지칠대로 지쳐 가덕도에 기항을 해 버리고 말았소.
그리고...예상했던 대로 이것은 적이 정성들여 써 놓은 각본이었고
조선 수군은 말 잘듣는 배우처럼 한치 한푼도 틀리지 않게
적이 원하는 상황을 연출하고 있었으니...
지독한 항해와 무시무시한 불안감으로 몇날 며칠의 낮과 밤을 꼬박 새운 그들은
몸과 마음에 찌든 피로와 영혼까지 바싹 마른 목마름을 달래려
환호성을 지르며 냇가로 뛰어 들었소.
적들은 그런 그들을 보았고
조용히 에워 쌌으며...
손에 총칼을 쥔 채, 이들의 마지막을 보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더이다...
이 순간이 바로 이나라 조선 수군들의 끝의 시작이요,
그들의 삶이 부서지는 비극의 시작이었으며,
갈갈히 찢겨진 이나라의 희망 위로 조선 수군들의 피가 흐르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던 것이오...
(이미지 출처-네이버 블로그 [초심] 님)
이제 어쩝니까...
이들의 원통한 죽음들을 앞에두고
그때의 한산도가 피맺히게 그리워서 어쩐단 말입니까...
그때 통제영에 있던 조선 수군들,
그리고 이렇게 칠천도 앞바다에서 죽어간 이들이
6년 세월 동안 정성스럽게 쌓아 올린 승리의 기록들을, 그 환희의 기억들을
한 순간에 먼지처럼 날려 버린채 전멸하는 비극을
어찌 보며 감당하라 하시는 겁니까...
나의 통제영,
나의 수군,
그리고 나의 조선...
그 사이에 흐르지 않는 중심에 버티고 서서 그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그들의 목숨과 이나라의 명운을수호 하고 있던 장군의 존재가
그립고 안타까워서 어쩌란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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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하여 노여움을 참고 있는가...
이 바다에서 수많은 적에게 겨눴던 그 칼을..
그대의 노여움에 겨눠라...>
바다만큼 큰 울음을 밤새 울었던 조선의 장수는
아직 그 목숨이 죽지 않고 살아 있습니다.
그 서늘한 기운도, 단 한가지 염원만이 들어찬 영혼도
모진 고신과 일신에 가해졌던 비극속에서도
청정하게 살아 있는 것을...잘 알고 있습니다.
장군은 당신의 분노에 먼저 칼을 겨누고
나약해진 당신의 마음과 분노를 벤 칼로
그 수많은 비극과 부조리를 베어 버리기 위하여
또한 멈출 수 없는 당신의 발걸음을...옮기실 것을 알고 있나이다...
<...죽음 같은 세상의 중심으로...>
-당신의 고난을 함께 하려 합니다. 부디 강건하소서 -
(*이미지 출처- 네이버 블로그 [인디고]님, 감사합니다.)
첫댓글 언제 읽어도 가슴 먹먹해지는 은보리님의 글에 오랜만에 댓글을 다는 듯합니다. 좋은 글 올려 주셔서 항상 감사하고 있습니다. 칠천량 바다에서 죽어간 모든 수군들의 넋을 기리고, 이제 당장이라도 무너질 듯한 조선을 구하기 위해 죽음 같은 세상의 중심으로 걸어가야 하실 장군의 곁에서 끝까지 함께 하고 싶습니다..
인간으로서 감내할수 있는 한계를 넘어 다시 조선의 부활을 위해 죽음같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장군의 모습에 ..주체할수 없는 눈물을 어찌할 도리가 없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