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투메 프린시페(Sao Tome and Principe)
- 중앙아프리카 -
▶ 개관 : 공식명칭 - 상투메 프린시페 민주공화국(Democratic Republic Of Sao Tome And Principe
위치 - 아프리마 중서부
인구 - 약 23만명 세계 179위[23,12,14]
GDP - 약 6억2,500만 달러 세계 185위
수도 - 상투메 (한국과 -9시간 차)
면적 - 964㎢ (한반도의 0.004 배)
기후 - 열대우림성 기후 날씨 정보
종족 - 아프리카仁
언어 - 토착어와 포르투칼어 (국민 43%가 문맹)
정부 - 공화제 / 다당제&단원제 (대통령/총리)
종교 - 로마가톨릭(70%)
화폐 - 도브라 (Db)
국가번호 - 239
상투메와 프린시페 두 개의 섬과 여러 군소도서로 이루어져 있고, 우리나라
제주도의 절반 크기이다.
전통적인 농업국으로 코코아·코프라 등 열대성 농작물을 경작해 왔고 어업도
개발되고 있다. 2014년 현재 1인당 국민소득이 1,811달러이고, 교역 대부분
이 포르투갈·독일·네덜란드 등에 편중되어 있으며, 수출 90%가 코코아이다.
▶ 역사 : 1471년 포르투갈人이 발견하기까지는 무인도였으며, 1483년부터 포르투갈
본국으로부터의 유형수와 노예로서의 아프리카인의 이주가 시작되었다. 당시
는 서인도 제도에 앞서서 사탕수수의 플랜테이션 농업이 시도되어 16세기 전
반까지 이 섬의 산업의 중심이 되었다.
그러나 얼마 안 가서 그 중심은 서인도 제도로 옮겨졌으며, 그 대신 이 섬은
앙골라로부터의 노예 무역의 중계 기지가 되었다. 19세기에 노예 무역이 폐지
되면서 카카오와 커피의 플랜테이션 농업이 시작되어, 현재 이 나라의 주산업
이 되었다.
1885년 베를린 회의에서 포르투갈의 식민지로 승인되었으며, 1951년 포르투
갈의 해외주가 되었다. 1960년 포르투갈로부터의 독립을 요구하는 상투메프
린시페 해방위원회(CLSTP)가 창설되었고, CLSTP는 1972년 마누엘 핀투 다
코스타의 지도로 상투메프린시페 해방운동(MLSTP)으로 개칭되었다.
MLSTP의 투쟁은 지하 활동, 특히 지방 노동자에 의한 저임금 반대 투쟁의 형
태로 행해졌다. 1974년 4월 민주화 마누엘 핀투 다 코스타에 의해 성립된 포
르투갈 새 정권은, 상투메프린시페의 독립을 승인, 1974년 11월 독립 협정에
조인, 1975년 7월 12일 정식으로 독립되어, MLSTP의 코스타 서기장이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 독립을 한 후에도 1979년까지 빈번하게 쿠데타 미수
사건이 잇따랐고, 1981년에는 식량 부족으로 폭동이 발생하였다.
▶ 경제 : 상투메프린시페의 중앙계획경제는 주로 농업과 어업에 기반을 두고 있다. 국민
총생산(GNP)은 1981년에 4,000만 달러(1인당 GNP 약 370달러)를 기록했는데,
1970∼80년에 연평균 0.2%씩 감소했다. 국토의 약 36%가 경작지인데 대부분
해안 지대에 분포한다. 이 가운데 약 90%가 국가소유이며, 나머지는 소규모의
개인 토지이다.
주요 환금작물인 카카오 열매가 경작지의 55%에서 재배되며 그밖에 코코넛, 기
름야자(야자유·야자열매·코프라)·바나나·커피 등이 생산된다. 또한 토란·카사바·
빵나무열매·옥수수 등이 생산·자급된다.
▶ 대한 관계 : 1975년 북한과 수교, 1988년 대한민국과도 수교. 주 가봉대사관이 겸임
▶ 여행 정보 : 여행유의 전지역 / 긴급연락처 : 대사관 (00241)0173-4000 (가봉대사관)
전압 : 220 / 230 / 240V 콘센트 2구
참고 1) - 여행기 : http://blog.naver.com/jh2er/220758871165
참고 2) - 플랜테이션 농업이란?
16세기에 설탕 산업을 위해 대규모로 사탕수수를 재배한 것이 플랜테이션 농업의 출
발이었다. 플랜테이션 농업은 사탕수수 재배에서 보았듯이 주로 열대, 아열대 기후인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 및 라틴아메리카에서 이루어지는 농업으로, 식민 지배자인
유럽인이나 미국인들이 자본을 투자하고 식민지의 원주민과 이주노동자의 값싼 노
동력으로 이루어지는 농업이다.
플랜테이션 농업은 주로 단일작물을 재배하여 경제적 이익을 취하려는 목적에서 식
민지를 중심으로 확장되었다. 특히 유럽과 미국 본국에서 돈벌이가 될 만한 작물들,
사탕수수, 카카오, 커피, 차, 바나나 등을 재배하는 플랜테이션이 늘어 갔다. 그중에
서도 커피 재배는 매력적이었다.
19세기에 커피는 정신활성제 역할을 했다. 노동자들은 졸지 않고 계속 일하기 위해
커피에 의존했다. 그러나 커피는 유럽에선 기후가 맞지 않아 재배할 수 없었다. 그래
서 고소하고 매혹적인 커피 향기가 유럽의 카페와 가정으로 퍼져 나가는 만큼 식민지
에 커피와 설탕 플랜테이션이 점점 늘어 갔다. 커피는 이제 또 다른 형태의 금이 되어
식민지 플랜테이션 노예들의 피와 땀을 짜냈다.
브라질은 커피 재배에 완벽한 토양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농장주들은 노예를 동원해
원시의 숲으로 들어가 거대한 나무들을 한 그루도 남지 않을 때까지 베어 넘어뜨렸다
잘린 나무줄기가 충분히 햇볕에 마르면 고의로 불을 질렀고, 회색 재를 걷어 내고 커
피나무를 심었다.
1823년 프랑스와 스페인의 전쟁을 앞두고 해상봉쇄로 인해 커피 수입이 중단될 것이
라고 하자 커피 가격이 치솟았다. 이때 브라질 커피의 생산량은 급속도로 늘어났다.
브라질의 커피 플랜테이션 농장주들은 그 악명 높은 노예무역으로 아프리카의 서쪽
해안과 동쪽 해안에서 흑인 노예를 계속 수입했다. 그래서 브라질에는 1888년까지도
노예제도가 있었으며 노예의 발목에 쇠사슬을 채웠다고 한다.
브라질이 커피 생산 대국으로 부상하자 이에 자극받은 식민주의자들은 커피의 주요
소비지로 부상하던 북아메리카와 가까운 중앙아메리카에 플랜테이션을 만들었다.
동남아시아 지역에도 플랜테이션이 더 만들어졌다. 프랑스인들은 인도차이나에,
영국인들은 말레이 반도 남부에 있는 피낭과 말라카, 싱가포르와 부속도시에 커피
플랜테이션을 건설했다. 1898년 미국은 스페인과의 전쟁에서 이겨 미국 영토가 된
필리핀에 커피 플랜테이션을 만들었다. 프랑스인들은 마다가스카르, 기아나 등을
커피 생산지로 만들었다.
▲ 수리남 커피 재배지에서 흑인 노예들이 커피를 빻고 있다.
식민지 영토는 플랜테이션으로 이용되면서 열대의 처녀림과 처녀지가 무차별적으로 파괴되었다. 또한 커피와 카카오 플랜테이션은 식민지의 전통적이고 안정적인 농업을 파괴시켰다. 물론 독립한 뒤에는 거대 기업들에게 넘어가 플랜테이션이 큰 이윤을 올려 주기도 했다. 그러나 1960~1970년대에 자원 선물시장이 등장하면서 커피나 설탕 그리고 카카오 등의 기호식품이 안정적으로 공급되면서 식민지에서 막 벗어난 아프리카 같은 신생국들은 더 이상 커피 등의 플랜테이션으로 부를 창출하는 것이 불가능해졌고, 커피 농장들이 문을 닫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아프리카인들은 다시 벼나 콩을 재배하고 싶었지만 이미 커피를 재배한 땅은 더 이상 작물을 재배할 수 없는 죽음의 땅으로 변해 있었다.
오늘날에도 많은 국가들이 수출만을 위한 단일 경작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세네갈은 농민들에게 땅콩 농사만을 짓도록 강요한다. 그리고 정부가 땅콩을 사들여 유럽으로 수출하지만 정부의 수출 가격에 비해 농민들은 헐값으로 농산물을 팔고 있다. 세네갈은 땅콩을 팔아서 쌀을 대량으로 구입할 수밖에 없다. 세네갈 국민들은 식량을 자급자족할 능력이 있는데도 식량을 수입해야만 한다. 따라서 오늘날 아프리카에서 발생하는 굶주림의 고통은 플랜테이션 농업의 결과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