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 무임승차 하지 말자
2021년 4월 8일(목)
지지대고개에서 출발하여 서호공원 입구까지 이어지는 7km 되는 구간으로, 숲길을 따라 걷고 화장실문화를 살필수있는 해우재를 지나 서호천변 에 조성된 길을 따라 걷다보면 여기산에서 도심 속 대규모 백로서식지를 볼 수 있다
지지대고개에는 버스정류장(승,하차장)이 없어 골사그네에서 내려 약 800m를 걸어 지지대고개에 왔다
(그래서 서호천길의 길이를 8km로 표현하는 경우도 있다)
지지대고개 (경기도 의왕시 왕곡동 산 92)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인 현륭원에 참배를 마치고 한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이 고개를 넘으면 더 이상 아버지의 묘가 보이지 않아, 그리워하는 마음에 안타까워하며 이 고개에서 눈물을 흘리며 한참 지체하였으며 이에 임금의 행차가 늦어지는 곳이라 하여, 느릴 지(遲)자를 두 번 붙여 지지대라 고 부른다고 전해진다
국도 제1호선으로 지정된 경수대로가 관통하며, 경기도 의왕시 왕곡동과 수원시 장안구 파장동 사이에 위치한다
지지대쉼터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경수대로 1283, 이목동 산 77)
멋들어진 기와 지붕으로 모양내고 지어진 지지대 고개 쉼터로 원래 작은 슈퍼였는데 편의점으로 리모델링 됐다
걷기길과 주의사항 안내, 스템프함, 수원둘레길 이야기등 여러 표지판이 비석군처럼 서있다
스탬프 찍고, 신발고쳐 신고 다시 걷는다
삼남대로 자동차길을 버리고 쉼터 오른쪽(남쪽) 뒤로 난 길을 찾아 간다
제4길 서호천길의 표지판이 있고
여기서부터는
한참 동안의 산길을 걷고
영동고속도로 지하도를 지나면
똥박물관, 해우재가 나온다
해우재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장안로 463, 아목동 184-6)
우리나라에 단 하나뿐인 똥박물관으로 사찰에서 근심을 푼다는 뜻으로 화장실을 ‘해우소’라고 부르는데, 여기에서 이름을 따왔다
오랫동안 공중화장실은 불결한 장소로 인식되어 왔다
평소 환경과 문화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던 심재덕은 수원시장 시절, 2002 월드컵 경기의 유치활동을 하던중 화장실개선의 필요성을 절감하여 전국최초 로 화장실 전담부서를 신설하여 공중화장실 환경 개선을 위한 본격적인 행정을 펼쳤다
수원의 아름다운 화장실 가꾸기 사업은 화장실이 더 이상 배설물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사색과 휴식, 전시와 만남등 에너지 재충전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재탄생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해우재는 외관부터 독특하다
'세계에서 가장 큰 변기 모양 건축물'로 2007년 기네스북에 올랐다(Daum에서 갈무리한 사진)
건물 앞에는 박물관의 마스코트 '토리'와 똥을 형상화한 대형 설치작품이 아이들을 반긴다
♤ 해우재전시관
♤ 야외 화장실 문화공원
♤ 왕궁리 화장실 - 우리나라 최초의 대형 공중화장 실
♤ 노돗돌 - 우리나라 최초의 수세식 화장실
♤ 호자 - 남자용 소변기
♤ 요강 - 여자용 소변기
♤ 그리고 어린이체험관이 있는 해우재 문화센터
♤ 심재덕 시장이 죽고 난 이후에는 그가 살았던 집을 자식들에게 물려주지 않고 수원시에 반환하 겠다는 약속이 지켜졌고, 그가 살았던 집은 이제는 더 이상 그의 집이 아니라 이렇게 박물관으로 변신 해서 사용이 되고 있다
해우재에서 서호천길 두 번째 스탬프를 찍고
오던 길을 다시 돌아 나왔다
(해우재 갈 때 이 표지판을 놓치고 가서 길 찾으려 한참을 헤맸다)
이목사거리 지하도를 지나고
괴목정교 이야기(STX - KAN아파트)를 지나
이목 2교에 도착하였다
여기서부터 축만제(서호)까지는 이 서호천변을 따라 걷는다
(실은 축만제를 지나 제5길 중복들길 끝 지점까지가 서호천이다)
서호천
서호천(西湖川)은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파장동 광교산 파장저수지에서 발원하여 권선구 고색동에 서 황구지천으로 합류하는 총 길이 13.6km의 하천이다
본래 물이 맑은 하천이었으나 생활하수와 각종 오폐수로 오염되고 집중호우 때 가옥과 농경지가 상습적으로 침수되자, 1998년부터 체계적인 하천정비사업이 시작된 후 하천가에 갯버들과 갈대를 심고 산책로를 만드는 등 생태도심하천으로 조성하여 주민들의 휴식공간으로 탈바꿈하였다
<서호천(가운데)이 황구지천으로 합류하는 지점 - Daum에서 갈무한 사진>
흐르는 도중에 경부선 화서역 인근에서 축만제 (서호)의 물을 이룬다
수원의 상업과 수원갈비
수원갈비의 시작은 1945년 문을 연 '화춘옥'으로 보는 것이 보통이지만, 수원의 농업관련 기관을 자주 찾았던 박정희 대통령이 수원에서 갈비를 자주 먹으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유명세를 탔다
그렇다면 수원에서 갈비가 발달한 이유는 무엇일까?
1906년 10월 17일자 황성신문 기사 중에서 “수원은 삼남대로의 요충이고, 사방의 물산과 재화 가 모여드는 곳이라 성 내외에 시장이 2개 있어서 곡식과 포목, 생선, 소금, 소 등의 물품을 매매하는 것이 자못 경성 이외의 대도시에 견줄지라”라는 기사가 나온다
수원은 삼남대로의 요충에 위치했기 때문에 상업이 크게 발달했고 부담 없이 소고기를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부를 축적한 사람도 많았다
다시 말해 수원갈비는 수원이 누렸던 풍요로움과 부의 상징이었던 것이다(안내판 내용을 옮김)
서호천 제8교(선화교)
(서호천에는 다리가 몇 개 일까요?)
바닥에 있는 안내판을 따라 터벅터벅 더 걸어보자
동남보건대학교가 나오고
1982년 "가정을 행복하게 하는 교회"를 목회 비전 으로 삼고 설립한 영화교회가 나온다
정겨운 돌다리도 있고
꽃뫼에 대해 좀 더 알아 보자
꽃뫼 유적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화서동 688-4)
평야지대의 중심에 솟아오른 야트막한 구릉에 위치하며 여러형태의 묘와 제사를 지내는 데 필요한 각종 용구들이 발견되어, 꽃뫼 제사 유적지라 부르고 향토 유적 제8호로 지정 되었다
발굴조사 결과 이 유적은 삼국시대 전기부터 조선시대까지 제사를 지냈던 제사유적으로 추정되었다
꽃뫼는 한자로 화산(花山) 또는 화산(華山)이라고 쓴다
♤ 꽃뫼의 유래
마을에 병든 홀아버지를 둔 착한 아가씨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밤 자기 집 머슴에게 몸을 유린당하자 집 뒤의 산에 올라가 목을 매 죽자 마을 사람들이 그곳에 시신을 묻었다
그 후 시신을 묻은 자리에서 해마다 꽃이 무더기로 피어났고 그 다음부터 이 산을 꽃뫼라고 부르게 되었다
근래까지도 주민들이 꽃뫼를 신성시하며 매년 음력 8월에 동제를 지내오는 풍습이 내려오고 있어, 고대 제사유적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수원시에서는 향토유적 8호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교각이 참 예쁜 다리 (화산교?)
수원성 감리교회를 지나면
저 앞에 여기산이 보이고
국립원예특작과학원 터 (경기도 권선구 수인로 126, 서둔동 225-1)
채소, 과수, 화훼, 인삼, 약초 및 버섯류 분야의 품종 개발, 유전육종기술, 유전자원관리·종묘생산, 재배법 개선, 토양·병해충·기상 등의 환경관리 및 재해경감, 재배시설의 구조·자재·기구 등의 개발, 원예 및 특작 산물의 품질평가·보전·이용에 관한 시험·연구와 기술지원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는 농촌진흥청의 소속기관이다
2008년 10월 8일 발족하였으며, 2015년 02월 27일 전북 전주시 혁신도시로 이전하였다
경기삼남길 제4길 - 서호천길 도착지인 축만제 (서호) 입구에 도착한다
이제 경기삼남길 제4길 - 서호천길을 마치고, 제5길 중복들길 시작점인 축만제(서호)를 한 바퀴 돌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