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 오늘 날씨가 영화 8도에 바람까지 세다
서울은 -16도고, 엄마가 계시는 곳은 -11도라니 과히 동장군의 기세가
북방 오랑캐의 철퇴를 앞세운 수탈 못지 않게 거세고 드세다.
그래, 이 난리통 앞에 무분별한 저항보다는 슬기를 모은
지략이 절실한 때다.
창칼과 다름 없이 살을 에는 냉기로 부터 신체를 감쌀 내피와 갑옷 같은 외투가
진군에 필수적이긴 전략적으로 부화뇌동 보다는 주둔지에서 요지부동으로
적군의 동태를 세밀히 살펴 운신하는 게 이 전쟁에 승리를 이끌테다.
간간히 적의 동태를 살피고 온 정찰대나 보초를 서고 온 초병의 말에 의하면
지금 이 시점이 적의 흉맹이 고조라 하니 더욱 때를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진군과 소탕을 일거에 이루기 위해 일보 후퇴의
심정으로 지금은 개인 화기를 점검할 때다.
순간적인 분개와 격분으로 섣불리 나섰다가는
성의 함락과 패전은 불보 듯한 일일 터이니.
춥다 춥다, 하여도 예전 보다는 덜 추운 것 같다.
어릴적을 회상해 보면 문고리가 쩍쩍 달라붙고 가마솥에 데운 물로
머리를 감고 돌아서면 얼음이 얼었다. 그리고 엄마 아부자 사이에서 잠깨어
방문을 열면 어린 나의 무릎까지 찰 눈이 와 있는 광경이 흔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닌 것 같다.
농수로 쓰기위해 막아둔 보에서 흘러내린 물이 허연 빙벽을 이루었고
개울은 스케이트 타기에 아무 걱정없을 정도로 꽝꽝 얼었다. 그리고 저수지에서는
언 얼음이 갈라지는 소리를 흉측하게 밤새 내었다. 쩌엉~ 쩌엉!
회상은 하나의 기억에서 가지를 뻗어 또 다른 추억을
생산하기 마련이다. 요즘에야 경작을 손 놓은 농토가 넘쳐 나지만
먹거리가 부실했던 그 시절만 하더라도 손바닥만한 토지도 놀리지 않았다.
따라서 국가 시책에 따른 경지 정리 전인 꼬불꼬불한 논두렁마저 콩밭으로 유용했다.
그 콩을 베고 남은 밑둥은 우리들이 겨울철에 몸 녹이는 땔감으로 활용되었다.
어느 친구가 말려둔 떡국을 가져오거나 스케이트를 타다가 발이 빠졌을 때
우리들은 계단식 논의 바람 막아주는 아늑한 어느 곳에 콩대 끌띠기를
모아 모닥불을 지펴서 말린 떡국을 굽고 젖은 양말을 말리곤 했다.
요즘에야 섬유 직조 기술이 발달하고 품질 좋은 천이 흔하지만
70년대 중후반만 하더라도 나일론 제품이 옷과 양말 등의 재료로 주류를 이룰 때다.
그마저도 귀해 구멍난 양말은 덧대 기워서 신곤 하였지. 그 나일론 양말을 두 커레나 신고
나선 얼음장에서, 훌렁 발이 빠져버리면 벗어서 말렸지만 얼음지지다 젖은 양말은
신은 채 모닥불로 발을 뻗어 말렸는데, 어떨땐 양말이 마르면서 김이 모락모락 나다가
나일론 섬유가 녹아 살갗에 쩍 달라붙어 기겁하는 경우도 있었다. 얼마간 시간이 지나
고통이 사라질 쯤 양말을 벗어보면 떨어진 살갗이 양말에 달라 붙어 있다.
그 모습을 보면서도 깔깔거리며 웃었던 시절이었는데, 이제는
두 번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아득한 먼 일이 되었네.
그렇게 해야 할 숙제는 제쳐두고 바같으로만 내돌았다.
그러다 보니 손은 트고 갈라져 빨간 볼펜으로 찍찍 그어논 것처럼 피가 맺혔다.
그 총중에 동상까지 들어 퉁퉁부어 있으니 안그래도 늘그막에 낳은 자식이 걱정스러운데
그 걱정에 염려를 더하고 시름을 보탰으니 참으로 철부지였나 보다.
그런 나를 보던 엄마가 한날은 한데로 못 나가게 딱 붙잡아 놓고
동상에 쩐 내 손을 민간 조약법으로 치료를 해주었다.
'고추대를 푹 삶은 뜨끈한 물에 손을 담궈 있으면 살속에 스며 있는 얼음덩이가
빠져 동상이 치료된다'는 민간 요법이었는데, 요즘 사람이 들으면 우스울지 몰라도
그렇게 수일간 하고 나니 신통하게도 붓기도 빠지고 매끄럽게 변하더라고요.
이제야 말이지만 약물 담은 세수대야에 두어 시간 손을 담그고 있는 일은
7단 곱셈을 한번에 못마쳐 나머지 공부를 할 때와 불주사를 맞기 위해 대기해서
먼저 맞는 사람의 고통을 지켜보는 그 순간보다 더 싫고 지겨웠다.
한마디로 목줄을 차고 있는 구속 같았다.
민간요법 이야기가 나왔으니 어릴 때 들었고
그 처방법으로 말끔히 나았다는 그 약을 하나 이야기 하고자 한다.
그 이야기는 다음에 해야겠슴.
아~~~ 밥도 하기 싫어요
반찬가게나 가보까 싶어요
@벨라 며칠전,
엄마 주려고 몰에 콩나물 섞어 무친 것 사려고 난전 앞에 얼쩡거리니 주인이 얼마 치를 줄까 묻더라고.
그래서 오천 원 어치를 주라고 했다. 그러면서 두군데로 나눠 담아 달라고 했더니
나이 지긋한 아줌씨가 눈에 흰자를 있는 대로 드러내며 가잖다는 냉소에
들릴 듯 말 듯한 옴붙었다는 말 비스한 말을 지껄여가며
장사를 하더라구. 시장에 인정이 넘치고 싸다는 말. 개 똥이다.
시장 활성화나 그 사람들 위해 일부러 한번씩 가는데
이제는 되도록 마크만 이용해야 할 듯.
@더하기 빼기 그니까요
바가지요금이 엄청나다고 뉴스에서도 나오고...
저희집에선 시장이 멀어서 안사게 되지만 언젠가 시장서 사온 부침개가 너무 맛없어서 가고싶지 않아요
@벨라 성질 같으면 담아 논 것 안 산다고 하고 싶더만...참앗다.ㅋㅋ
@더하기 빼기 잘하셨어요
그럼 같은 사람 되는 격
@더하기 빼기 재래시장 안싼거 같아요.;;
여기 날씨는 내일까지만 춥고 좀 풀리는데...
고향은 남은 올해 내내 춥고 새해 첫날도 영하 6도로 예상 되나 보다. ㅜㅜ
엄니땜에 계속 걱정이시겠어요
날씨가 좀 풀리면 좋으련만
@벨라 그러게...비교적 남쪽인데도 왜 그리 그긴 추운지.ㅜㅜ
도시락 한개만요!!
저도 아빠가 만들어주신 썰매가 생각나요
나도 저거 탔다
완전 기억 돋네 ㅎ
추억의 장난감이네.
타러 타녔던 기억이 솔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