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8월 31일(수)
* 시작 기도
주님...
어느덧 8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시간은 화살과 같다는 말이 체감이 될 정도로 정말 빠르네요.
주님께서도 낚시로 고기를 끌어올리듯 시간을 구속하라고 말씀하셨지요.
그처럼 귀한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고 날마다 구속하여 쓰는 지혜로 살게 하옵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주의 보혈로 날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워주옵소서.
내가 누구 앞에 서겠습니까?
주님 앞에 서서 주님과 늘 연합하여 동행하는 자 되기 원합니다.
이 하루도 거룩한 불구자가 되어 영적 하루살이의 삶을 넉넉히 살아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본문 / 창 17:15-27
제목 : 불신앙의 실소를 넘어 기쁨의 웃음이 되기까지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
15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사라라 하라.
16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가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여러 왕이 그에게서 나리라.
17 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며 마음 속으로 이르되 100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90세니 어찌 출산하리요 하고
18 아브라함이 이에 하나님께 아뢰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서 살기를 원하나이다.
19 하나님이 이르시되 아니라, 네 아내가 사라가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
20 이스마엘에 대하여는 내가 네 말을 들었나니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매우 크게 생육하고 번성하게 할지라. 그가 열두 두령을 낳으리니 내가 그를 큰 나라가 되게 하려니와
21 내 언약은 내가 내년 이 시기에 사라가 네게 낳을 이삭과 세우리라.
22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시고 그를 떠나 올라가셨더라.
23 이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자기에게 말씀하신 대로 이 날에 그 아들 이스마엘과 집에서 태어난 모든 자와 돈으로 산 모든 자 곧 아브라함의 집 사람 중 모든 남자를 데려다가 그 포피를 베었으니
24 아브라함이 그의 포피를 벤 때는 99세였고
25 그의 아들 이스마엘이 그의 포피를 벤 때는 13세였더라.
26 그 날에 아브라함과 그 아들 이스마엘이 할례를 받았고
27 그 집의 모든 남자 곧 집에서 태어난 자와 돈으로 이방 사람에게서 사온 자가 다 그와 함께 할례를 받았더라.
* 나의 묵상
하나님은 아브라함에 이어서 그의 아내의 이름도 사래에서 사라로 바꿔주신다.
‘사래’의 뜻은 공주인데 그 이름을 ‘사라’로 바꿔주신 것이다.
사라는 왕비, 여주인, 열국의 어머니 등의 뜻을 가지며 이는 아브람 개인의 공주와 같은 존재에서 이제는 아브라함 곧 열국의 아버지와 대등한 열국의 어머니로서의 위상을 갖게 된다는 의미를 가진다.
무엇보다 이 사라를 통하여 민족의 여러 왕들이 나오게 하신단다.
이에 아브라함은 그 소리를 듣고 속으로 웃는다.
그것은 말이 안 된다는 의미의 실소(失笑)였다.
100세 된 자신과 90세가 된 사라가 어떻게 아이를 낳을 수 있겠냐는 말이다.
하여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이렇게 이야기한다.
“지금 내게 있는 이스마엘로 만족합니다. 이 아이라도 하나님 앞에서 살기를 원합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그것이 아니라고 하신다.
이스마엘이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낳은 아들과 언약을 세우겠다.
그 아이의 이름을 이삭이라고 하라.
또한 이삭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될 것이다.
이스마엘은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크게 생육하고 번성하게 할 터인데 그가 열두 두령을 낳아서 큰 나라가 되게 하겠다.
다만 나의 언약은 내년 이 맘 때에 사라가 낳을 이삭과 세울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신 후에 그를 떠나 올라가셨다.
이 후에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그 날 이스마엘과 집에서 태어난 자 그리고 돈으로 이방에서 산 자를 모두 할례를 행했다.
아브라함이 처음 할례를 행한 때는 99세였고 이스마엘이 할례를 받은 때는 13세였다.
이와 같이 그의 집에 있는 모든 남자들이 할례를 받았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듣고 실소를 금치 못한다.
내가 100이고, 아내 사라는 90세인데 어떻게 아이를 낳을 수 있겠냐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상속자로 제시한 이스마엘이 아니라 도무지 인간적인 생리현상으로는 불가능한 사라를 통해서 아들을 낳을 것이고 그 아들의 이름까지도 지어주시면서 그와 그의 후손과 언약을 맺을 것이며 그 언약은 영원한 언약이 될 것이라고 하신다.
아브라함의 믿을 수 없는 불신앙의 실소, 하지만 그 실소에는 진짜 불신앙의 모습만 있을까?
아마도 불신앙적 실소와 함께 그가 경외하는 하나님께 대한 경외감 또한 있을 것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그의 지내온 삶의 여정을 보면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브라함의 실소(失笑)는 그 자체로 끝나지 않는다.
이를 통하여 그가 아직 알지 못하는 놀라운 환희의 웃음으로 변할 것이다.
아브라함과 사라가 이삭을 낳는 것은 곧 동정녀 마리아가 예수 그리스도를 낳는 것과 맞닿아 있다.
마리아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 동정녀이다.
그런 그가 아들을 낳는다는 것은 실로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생리적으로도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행하셨다.
남자를 알지 못하는 처녀 마리아를 통하여 성령으로 잉태하게 하신 것이다.
마리아를 통하여 죄로 죽을 모든 인류를 구원시킬 그리스도를 태어나게 하기 위해서는 그 아이 또한 죄가 없어야 한다.
하지만 생리적 현상으로 태어나는 아담의 자손은 본질상 진노의 자식이므로 죄가 없을 수가 없다.
하여 아직 남자를 경험한 적이 없는 마리아를 택하시고 그에게 성령으로 잉태하게 하셔서 부정모혈(父精母血)이 아닌 하나님의 주권으로 완전한 하나님을 인간으로 나게 하신 것이다.
그래야만 그를 믿는 자들에게 그의 생명 곧 아들의 생명을 주어 영생을 얻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이어서 그의 후손에 대한 언약은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언약을 예표한다.
이는 누구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으면 영생을 얻어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된다.
또한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영원한 기업인 가나안 땅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 나라를 예표한다.
그리스도를 믿어 영생을 얻은 자는 하나님과의 사귐 안에서 그 나라를 현재로 누린다.
영생을 얻어 하나님 나라를 누리는 자는 곧 새 언약의 일꾼이다.
(고후 3:6) 그가 또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 율법 조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
바울은 생명 얻는 복음을 전한 새 언약의 일꾼이었다.
하지만 그의 상황은 언제나 인간적으로 최악이었다.
힘에 지나도록 큰 환난을 당하고 심지어 살 소망까지 끊어지며 마음에 사형선고를 받은 가운데 그에게 주어진 복음의 일꾼으로서의 사명을 다하였다.
그럴 때마다 자기를 의지하지 않고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므로 생명의 역사를 이루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역시 땅의 상황으로는 도무지 불가능한 일들의 연속이다.
하지만 신적인 능력을 쓰기보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온전히 하나님께 복종하기를 마다하지 않으셨다.
얼마든지 쓴 잔, 곧 십자가 지는 일을 회피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그 일을 피하지 않으시고 기꺼이 감당하셨다.
그로 인하여 주님의 십자가와 장사됨 그리고 부활을 믿는 자에게 아들의 생명을 주신다.
그 생명이 곧 영생이며 마지막 종말을 현재로 살아가는 능력이다.
나는 과연 어떠한 상황이 오더라도 이를 이겨내는 저력이 있는가?
중요한 것은 그 상황을 이겨내거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의 가치로는 닥친 상황이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능사이겠지만, 성경이 가르치는 복음은 그것이 아니다.
때로는 아브라함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실소를 머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불신앙의 실소가 지속되면 안 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거짓이 없기에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말씀을 굳게 붙잡고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바로 창세전 언약이다.
(딛 1:2) 영생의 소망을 위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그런데 나는 이런 언약을 알지 못하는 자였다.
언약을 알지 못하는데 어찌 창세전 언약을 알았겠는가?
하지만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이런 나를 아주 진멸하지 않으시고 심판을 통하여 복음을 알게 하셨다.
이 복음이 나를 살게 하였다.
곧 구약에 나오는 언약을 비롯하여 신약에 나오는 언약과 함께 창세전 언약을 깨닫게 하신 것이다.
언약은 하나님과의 공적인 일을 법적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과의 공적인 일을 하나님께서 법적으로 규정하시므로 비록 오늘도 넘어지고 자빠지는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워주신다.
그리고 내가 있어야 할 자리가 다른 곳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아버지 품에 있어야 함을 일깨워주신다.
하나님의 언약 안에서 내가 누리는 생명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믿음의 자리요 영원한 하나님 나라이다.
오늘도 그 나라 곧 영원에 잇대어 살아가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한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아브라함의 불신앙의 실소를 변하게 하셔서 기쁨의 웃음으로 바꿔주심을 감사합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을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게 하심도 감사합니다.
나의 무지함과 연약함이 주의 영광을 가리는 일임에도 이런 불충한 나를 아주 진멸하지 않으시고 심판을 통하여 복음을 알게 하신 그 크신 은혜 앞에 뭐라 할 말이 있겠습니까?
그저 두 손으로 입을 가리고 재와 티끌 가운데서 회개하며 주님이 베푸신 심판을 받아들일 뿐입니다.
죽기에만 합당한 나, 번갯불에 타 죽을 자인 나를 어찌 이렇게 살려주셔서 놀라운 사랑과 은혜를 베푸셨는지요?
이 하루도 내가 당하는 상황을 해결하려 하지 않게 하시고 그저 말씀으로 주님과 갖는 깊은 교제로 생명이 연합되게 하옵소서.
사랑하는 가족, 남편과 아빠를 만나러 올 조장로님 가족의 걸음을 지켜주시고 기쁨과 환희의 재회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