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그막이 학교추억.
오 솔 길
늘그막이 들어 선 대학원 문턱
들어서기 전에는 그렇게 높아 내 인생에 대학원이란 단어는 없는 유토피아 세계로 알았지만 막상 들어 서 서 보니 누구나 올 수 있는 학문의 전당 일 뿐이다.
벌써 대학원 한문학과 석사과정 4기 졸업반이다.
처음 문을 두두리던 2020년 가을, 지금처럼 학교 교정에는 낙엽이 뒹굴고 있었지.
한문학과 면접을 볼 때, 가로로 쓰여 있던 옛 붓글씨 논어 학이편 책을 펴 놓고 해석 해 보라고 하는 것이 면접 문제였다. 나는 더듬더듬 최선을 다해 기를 쓰고 손가락을 집어
가며 아는 척 했지만, 가로 붓글씨 옛 고서는 한 번도 본적도, 읽은 적도 없었기에 닭이
거위 울음을 울고, 거위가 비들기 울음 울 듯, 무슨 말을 하는지 도통 할 수 없는 대답을
하자, 면접하시던 교수님께서
“나이도 그렇고 지금 읽는 것과 해석하는 것이 모두 틀린데, 대학원 공부를 따라 갈 수 있겠어요?”
라는 핀잔 주는 듯한 억양으로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던지는 것이었다. 기왕 떨어질 것을 생각했었고, 역시 내 인생에 대학에 ‘대’자도 없는 인생이니 어짜피 떨어질 거면 큰 소리나 치자는 김삿갓 선생님의 힌트를 얻어서 내 의지와는 다르게 순간 큰 소리로 대답하게 되었다.
“교수님, 세로로 쓴 한문은 봤지만, 가로로 쓴 붓글씨 한자는 처음입니다. 그러니 틀 릴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대한검정에서 출제한 ‘훈장시험’도 합격 했고, 한자진흥 회에서 ‘사범’도 합격했으며, 2020년도 전국 중어중문학과 한자 경시대회에서 우수상
(2등)을 받았습니다. 가로 쓴 글씨는 처음이니 세로로 쓴 글을 주시면 해석하겠습니다.”
그렇게 강한 어조로 말을 하자, 약간 머뭇거리는 표정을 지으며 몇 초간의 공백 시간이 있기에 다시 기회다 싶어 준비한 전국 2등 상장을 보여 주고, 한자 자격증 한자 '훈장'과 '사범'을 보여 주면서 다시 강한 어조와 자신에 찬 어조로 말을 했다.
“합격시켜 주십시오. 제도권에 들어와서 공부하고 싶었습니다. 방송통신대 중어중문 학과를 나왔지만, 학교로써는 뭔가 부족함을 느낍니다. 그래서 대학원에 들어와서
공부를 하고 싶습니다.”
교수들이 막 웃었다. 세 사람 모두 웃고는 대답은 하지 않았다.
나는 그리고는 나왔다. 면접 대기실 들어오자, 다른 대기자가 면접실로 들어간다. 나는 왜 그렇게 허망한지. 눈물이 왈콱 쏟아졌다. 다른 사람들이 볼 까 등을 돌려 봐로 집으로 가는데, 학교 교정에 나뭇잎들이 바람에 쓸려 지나가는 모양과 소리가 아우성이다.
인생 가을을 지나는 내가 바람에 쓸려가는 낙엽에 동정을 느낀다. 꼭 대학원을 나와야 되는 것은 아니지만, 살면서 뭔가 배움의 부족함에 주눅이 들었던 것은 사회현상이 그러하듯 나 또한 그랬다. 꼭 학교를 나와야 한다는 생각은 아니지만 그래도 뭔가 아쉬움이 있다는 마음이다.
이것이 2년 전의 일이다. 지금은 졸업을 앞두고 교정에 낙엽을 밟는다. 다른 곳 낙엽보다 학교 교정에 낙엽은 추억이 쌓여 있는 것 같다. 추억이라고 해야 세미나 발표하고,
논문 쓰고, 옛 고전 풀이 하고, 또 발표하는 것이 전부다. 나이가 들고 부족한 면이 많다고 생각해 나름대로는 열심히 했다. 공부하는 곳이라 공부만 하면 어디 무엇 하나 부족함 보이지 않는다. 젊은 낭만은 내 자리가 아니기에 멀리 두었고, 오직 공부만 했다.
이제는 대학원생 외국어 제출 통과 시험 대상자들에게 논어와 맹자를 3개월간 강의하였다. 처음 논어 가로쓰기를 잘 읽지 못했는데, 지금도 능숙하지는 않다. 붓글씨라 어조사 같은 한자를 간단한 약자로 쓰기 때문에 그것을 모르면 너무나 쉬운 글자도 틀리게 된다.
가을은 모든 것을 익게 한다. 나 또한 이런 분위기 속에 익어가고 싶다. 나이가 드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과정이라고 여기고 싶다. HSK 중국어 5급 시험도 앞두고 있다.
“배워서 뭐하려고?”
하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나는 대답이 없다. 나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냥 익어가려면
배워야 할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뿐이다. 내년부터는 한자 논어 선생으로 익어갈 것 같다.
낙엽 뒹구는 교정은 젊은 학생들의 추억 쌓는 젊음을 보낸다. 하루하루 단풍이 물들어 학생들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 준다. 가을 낙엽 지는 교정에는 외로운 벤치가 없다.
어디를 보아도 선남선녀들이 아름답다. 나는 어제 밤샘 한문 풀이에 눈이 벌게 차에서
잠을 자고 나와 그 젊음이들 사이로 늙은이가 지나간다. 그 또한 아름답다고 여긴다.
가을이 간다. 가을은 달콤한 익음을 두고 간다. 나도 따라 간다.
첫댓글
쑥스럽다. 이화룡의 유머어가 생각날 때가 많다. "이 나이에 내가하리" 이제 적응이 되니 졸업이다. 졸업 후에도 학교에 남아 있으려고 계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