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 울프 독서법 / 버지니아 울프 / 정명진 옮김(7)
독서(2)
똑같은 시간의 층을 통해서, 사람은 기사들과 귀부인들의 보다 화려한 모습들을 똑같이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사람은 그들을 볼 수 있었으며, 그것은 사실이다. 귀부인들이 걸친 드레스의 잘 익은 살구색과 기사들의 금박 있는 삼홍색이 호수의 시커먼 잔물결들 위로 화려한 이미지들을 비추고 있었다. 교회에서도 사람들은 그들이 마치 승리에 취한 채 영원한 휴식을 취하고 있는 것처럼 배치되어 있는 것을 본다. 그들의 손은 포개져 있고, 눈은 감겼으며, 그들이 사랑하던 사냥개들은 그들의 발 옆에 앉아 있으며, 청홍색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는, 그들의 조상들의 온갖 방패들이 그들을 떠받치고 있다. 이런 식으로 꾸미고 준비를 끝낸 그들은 뭔가를 은근히 기대하며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심판의 날이 동튼다. 그의 눈이 뜨이고, 그의 손이 그녀의 손을 찾고, 그가 열린 문들과 나팔을 든 천사들의 행렬을 지나서 그녀를 앞으로, 더 부드러운 잔디와 더 호화로운 주거지와 더 하얀 석고 저택으로 이끈다. 그 사이에, 침묵은 거의 깨어지지 않는다. 어쨌든, 그것은 그들을 보는 문제이다.
표현의 기술은 잉글랜드에 늦게 당도했다. 펜샤우와 래그, 버니, 패스턴, 허친슨 가문의 사람들은 모두가 태생적으로 잘 타고 났으며, 기묘하고 섬세한 상감 세공 목판과 가구 같은 보물을 남겼으나, 거기에 겯들여진 글은 문법이 매우 불안전한 메시지 하나뿐이다. 어쩌면 이 메시지 자체는 완전했으나 그 물건이 너무 단단했던 탓에 단어들은 쓰는 즉시 잉크가 말라 버렸을지도 모른다. 당시의 사람들은 이 소유물들을 침묵 속에 즐겼을까, 아니면 삶이 이 딱딱한 다음절어들과 어울리게 장엄하게 영위되었을까? 혹은 이 손에서 저 손으로 전달되고, 십 여 개의 난롯가에서 겨울날 가십으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다가 마침내 부엌 벽난로 위에 위치한 건조한 방에 다른 중요한 문서들과 함께 보관될 그런 글을 쓰기 위해 자리를 앉을 때면, 그들은 일요일의 어린아이들처럼 자신을 가다듬고 수다를 멈추었을까?
패샤우 부인41)은 1647년경의 어느 시점에 대해 이렇게 썼다. "내가 말한 바와 같이, 10월에 남편과 나는 포츠머스42)를 경유해 프랑스로 갔다. 포츠머스에서 바닷가를 걷고 있을 때, --- 네덜란드 선박 2척이 우리 쪽으로 총을 쏘았다. 그 거리가 얼마나 가까웠던지, 총알이 핑 하고 날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놀라서 나는 남편에게 서둘러 돌아가자고 재촉하며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남편은 우리가 죽을 운명이라면 달려가나 걸어가나 죽기는 마찬가지라면서 걸음의 속도를 바꾸지 않았다.43) 틀림없이, 거기서 그녀를 제어하고 있는 것은 존엄의 정신이다. 총알이 모래사장을 가로질러 휙휙 날고 있지만, 리처드 팬샤우 경은 걸음을 조금도 더 빨리 걷지 않으며, 죽음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고 있다. 죽음은 눈에 보이고, 만져지고, 적이지만, 신사답게 칼을 빼들고 용감하게 맞아야 하는, 육신과 피를 가진 살아 있는 적이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그녀가 포츠머스 해변에서 결코 흉내 낼 수 없었음에도 존경심을 품게 만든 기질이었다. 품위와 성실, 아량, 이런 것들은 그녀가 칭찬하는 미덕들이고, 그녀의 말의 틀을 잡아주는 미덕들이다. 말실수를 하지 않거나 가벼운 말을 하지 않게 하고, 따라서 높은 도덕성을 지키는 점잖은 집안의 사람들의 삶을 품위 있고 숭고하게 만드는 미덕들인 것이다. 일상 삶의 사소한 총알이 그녀 주위로 휙휙 날라올 때 팬도,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걷기 위해 스스로를 억제해야 한다. 그녀는 21년 동안 18명의 아이를 낳아 대부분 땅에 묻었다. 그들에게 글쓰기는 만들기, 그러니까 후손의 눈에 용감한 모습으로 비칠 무엇인가를 만드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더 이상 글쓰기가 그런 것이 될 수 없지만 말이다.
후손이 이 이상(理想)들의 심판관이며, 팬샤우 부인과 루시 허친슨43)이 이 글을 쓰는 것은 먼 미래의 공정한 후손을 위해서지 런던의 범부 존이나 결혼해서 서식스로 살러 간 평범한 여인 엘리자베스를 위해서가 아니다. 아이들과 친구들이 아침 식탁으로 농작물의 작황과 하인들, 방문객들과 나쁜 기후에 관한 소식뿐만 아니라 사랑과 냉담이 미묘한 이야기, 시들어 가거나 안정적으로 지속되는 애정에 관한 소식을 갖고 오게 할 신문도 전혀 없고, 그런 사소한 일에 적절한 언어도 전혀 없는 것 같다.
41) 영국의 회고록 집필자이자 요리책 저자(1625~168)
42) 잉들랜드 남부 햄프셔 주의 군항이며 해수욕장으로도 유명하다
43) 영국의 시인이자 번역가, 전기 작가(1620~1681)
호레이스 월폴과 제인 칼라일, 에드워드 피츠제럴드는 시간의 한계선 위에 서 있는 귀신들이다. 따라서 우리 조상들은 위엄 있고 올려다보기에 적절할지라도 침묵하고 있다. 그들은 곧잘 주제넘게 나서는 현대적인 정신의 접근을 막는, 침묵의 작은 오아시스의 한가운데 있는 회랑들과 공원들을 통해 움직인다.
여기에 다시 레그 가문 사람들이 있다. 대를 내려오면서 그들은 모두 빨강 머리였으며, 또 모두가 3세기 이상 동안 건설되고 있는 라임(Lyme)44)에 살고 있다. 모든 남자들은 교육과 평판과 기회를 누렸으며, 현대적인 기준으로 보면 모두가 멍청하다. 그들은 여우 사냥에 대해, 후에 "여우 발을 넣어 끓인 뜨거운 펀치 한 사발"을 어떤 식으로 마셨는지에 대해, 그리고 "윌름(Willm) 경이 그것을 꽤 많이 마셨고 마침내 취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그가 '그래도 괜찮아. 오늘은 내가 여우를 한 마리 잡았으니까'라고 말한 것"에 대하여 글을 쓸 것이다. 그러나 여우를 죽이고, 펀치를 마시고, 경마를 하고, 투계를 하고, 물을 떠놓고 왕에게 조심스럽게 경의를 표했으니, 그들은 우리에게 들려줄 것이 더 이상 없다.
빨강 머리와 그 밑에 매우 작은 뇌를 물려받은 우둔한 남자들인 그들을 두고 우리는 과묵하거나 세련되지 못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평가하는 그 이상으로 많은 일이 그들에 의해 처리되었으며, 삶의 많은 부분이 그 주형을 우리가 평가하는 그 이상으로 그들로부터 얻었다. 만약에 라임이 완전히 지워지고 잉글랜드 곳곳에 문명의 작은 성채처럼 흩어져 있는. 똑같이 중요한 수많은 하우스들이 없어진다면, 그러니까 당신이 책을 읽고, 연극 공연을 하고, 법을 만들고, 이웃을 만나고, 외국에서 온 이방인들과 대화할 수 있는 곳이 없어진다면, 그리고 만약에 잠식해오는 야만으로부터 빼앗은 이 공간들의 토대가 늪지를 누르고 견고해질 때까지 버텨주지 못했다면, 우리의 보다 섬세한 정신들, 말하자면 우리의 작가들과 사상가들, 음악가들, 미술가들은 몸을 피할 벽도 없이, 또는 평화롭게 앉아서 자신들의 날개를 햇살에 쬘 수 있는 그런 꽃도 없이 어떻게 자신의 일을 수행할 수 있었겠는가?
겨울과 혹독한 기후 조건에서 해마다 전쟁을 치르는 한편, 구성원들 모두가 지붕을 튼튼하게 유지하고, 식료품 저장실을 채우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하인들을 돌봐야 했기 때문에, 자연히 우리 조상들은 여가 시간에 오히려 무뚝뚝하게 침묵을 지키는 것처럼 보인다. 쟁기를 단 소를 끄는 소년들이 긴 하루 일을 끝내고 부츠에 묻은 흙을 털어내고, 경련을 일으키는 등의 근육을 풀고,책이나 펜이나 석간신문에 대해서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고 곧장 침대로 비틀거리며 쓰러지듯이 말이다.
우리가 애정과 친교의 부드러운 언어를 추구하지만 그 노력이 허사로 돌아가다 보니, 포근한 베개와 편한 의자, 은 포크, 독방이 필요해졌다. 애정과 친교의 언어는 온화한 단어들을 쉽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하며, 그 단어들은 아주 사소한 일에도 쉽게 튀어나오고 대단히 섬세한 뉘앙스의 변화도 감당할 수 있도록 세련되게 다듬어져야 한다. 무엇보다, 아마 훌륭한 도로와 탈 것, 잦은 만남과 이별, 축제, 결연과 결별이 눈부신 문장들을 해체시킬 수 있을 것이다. 안락한 의자가 영국 산문의 죽음을 야기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테그 가처럼 오래되고 불분명한 가문의 연대기는 텅 빈 방들에 가구를 비치하고 런던행 마차를 타는 그 더딘 과정이 어떻게 그 가문을 고립에서 벗어나게 하고, 그 지방의 방언을 그 땅의 공통 언어로 흡수하게 하고, 통일된 철자법을 점진적으로 가르치게 되었는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사람은 공상 속에서 얼굴 자체가 변화하는 것을, 또 아버지의 태도가 아들에게, 어머니의 태도가 딸에게 각각 넘어가면서 한때 엄청난 인습이었고 의문의 대상이 될 수 없었던 권위를 잃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렇지만 더없는 품위와 더없는 아름다움이 그 모든 것을 두루 품고 있지 않는가!
44) 체셔 주 다즐리 남쪽에 위치한 사유지 라임 파크를 말한다. 이곳의 하우스는 체서 주에서 가장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