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2014년 칸느영화제에서 입은 옷을 다시 입고 나왔다. 칸느 영화제에서 앞으로는 옷을 사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약속했고 그 약속을 지키는 의미로 같은 옷을 입었다.
제인 폰다는 시상식에서 '이제 아카데미상의 흐름과 인식이 바뀌고 있어 기쁘다'고 말하고 아카데미 작품상으로 <기생충!>를 호명한다. 그리고 봉준호 감독을 깊이 안아 준다. 진보의 포응이었다.
그녀는 1971년과 1978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고 이후 4번이나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다.
173cm의 건강한 신체조건, 연기력을 지녔고 여배우 최초로 다이어트 비디오를 만들었다. 할리우드 배우 가운데 가장 행동하는 진보성향의 여배우였다.
인종차별과 동성애차별반대를 주장하고 미국의 군사대국화와 힘을 통한 국제질서를 반대했고 베트남전에 대한 미국의 죄를 고발한다. 나중에는 미군전투기를 폭격하는 베트남 월맹군을 지원했다.
라이벌 두 배우
할리우드의 진보성향 상징인물은 ‘분노의 포도’ ‘전쟁과 평화’의 헨리 폰다(1905년~1982년)이고 보수의 상징 인물은 ‘역마차’ ‘수색자’ ‘앨도라도’의 존 웨인(1907년~1979년)이다,
헨리 폰다는 반전주의자로 평화 인권을 지향했다. 그래서 권력의 견제를 받는다. 보이는 탄합도 보이지 않는 탄압을 늘 받았다...
대중들은 누가 더 애국적 헌신을 했을까? 궁금했다. 결국 헨리 폰다였다.
해병을 연기한 존 웨인은 전쟁을 선호하고 미국의 정복군사정책을 지지하며 선동했지만 막상전쟁이 나서 징집이 될 때 계속 병역을 기피하다 면제를 받아 빈축을 사라.
반면 반전성향의 헨리 폰다는 2차 셰계 전쟁이 나자 징집대상 면제인 30대 중반이지만 자원입대하여 참전 영웅이 된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스튜디오에서 가짜 전쟁을 치르고 싶지 않다” 하사관으로 입대해 중위로 제대하고 1948년부터 예비역 해국장교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헨리 폰다는 보수적인 성향의 제임스 스튜어트 (1908년~1997년)와는 사상차이로 때론 폭력까지 가는 싸움을 했지만 인생 후반부 가장 친하게 지낸다. 선거가 되면 싸우니 선거 때는 거리를 두고 정치 이야기를 절제하며 마지막까지 우정을 지켰다.
제임스 스튜어트는192cm의 미남, 프린스턴대학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실현, 모범생이었고 군입대를 위해 신체검사에서 면제에 해당되는 저 체중이 나오자 스테이크를 막 먹으며 다시 체중기에 오르게 해달라고 면접관에게 사정해서 1941년 입대했고 공군 장교로 조종사를 한다.
한국의 보수는 아쉽게 공동체를 위한 지향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지향하기에 상당수가 존웨인처럼 군 문제에 하자가 있다. 손해 보는 것을 하지 않으려는 성향, 그래서 한국 보수는 가치가 아니라 수구이고 이익집단이다.
올 해 타임지 표지에 제인 폰다가 나왔고 타임지가 주는 지구상을 받았다. 헐리우드 영화사를 빛낸 배우이자 반전, 반핵 등 진보적 목소리를 낸 제인 폰다는 80대 중반의 나이에도 여전히 거리에서 불복종 시위에 참여한다.
최근에는 석유 시추 반대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타임지와의 인터뷰 중 "제가 이렇게 기후운동에 참여하는 이유 중 하나는 86세라는 제 나이 때문인 것 같다. 사람들이 '저 나이에도 하는 걸 봐요! 저 분이 할 수 있다면 나도 할 수 있겠구나'라고 말하는 느낌이 들고 이런 말을 들으면 참 좋다“
미국 극우들이 제인 폰다를 맹렬히 비난하지만 이렇게 그녀는 말한다.
"안타깝게도 기후위기에 대한 책임이 가장 적은 사람들이 가장 큰 타격을 받고 있다. 남반구, 섬에 사는 사람들, 가난한 유색인종들 말이에요. 우리가 절대적으로 멈춰 세워야 하는 비극이다...... 우리는 그 사람들을 체포하고 투옥해야 한다. 이 뒤에 있는 모든 백인남자들. 인종차별이 없다면 기후위기도 없었을 거라는 걸 모두가 깨달아야 한다.
가부장제가 없다면 기후위기도 없었을 것이다. 위계적으로 사물을 보는 사고방식. 백인 남성이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고, 다른 모든 존재는 그 아래에 있다. 역사에 대해 공부를 해보면 인종차별, 성차별, 여성혐오, 동성애 혐오 등 그 어떤 것이든 모든 게 연결돼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인종차별이 없었다면, 기후위기는 없었을 것이다."
존 웨인은 핵 개발을 찬성했고 영화 '정복자'가 방사능이 노출된 곳에서 촬영하다 암에 걸린 것을 속이고 자신의 암과 방사능과는 관계없다고 거짓말을 함으로 영화에 참여한 220명 가운데 91명이 암 진단을 받았고 46명이 사망했다.
해병은 시대의 키워드
서울의 봄 영화를 보면 계엄사령관이며 참모총장이 하나회 세력에 의해 대통령재가 없이 합수사로 연행될 때 해병! 해병! 외친다.
당시의 해병사령부가 한남동 공관을 다 경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승만은 강력한 군대 해병을 경무대와 서울을 지키는 임무를 주었기 때문이다. 부동시로 군 면제를 받은 그가 해병을 알 수가 없다. 거부권발동이 자신이 무너지는 지름길인 것을
헨리 폰다는 제인 폰다에게 진보가치관을 갖도록 엄하게 교육했다. 어느 시점 제인 폰다는 어머니의 자살로 인해 아버지에 대한 오해를 하고 거리가 생긴 시절이 있었다.
어느 날 한 영화에 부녀가 같이 출현했다. 1982년 상영된 영화 황금연못이다. 딸은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컸고 말로 풀지 않는 아버지로 인해 거리감이 커지는데 어느 날 자신의 아들을 남자로 양육하는 아버지를 보며 마음이 녹아진다.
드디어 딸은 아버지에게 “아버지 이제 우리 친구가 되어야”라는 대사를 연기하다 제인 폰다는 이 대사에 가슴이 뭉쿨해졌고 대사처럼 아버지 헨리 폰다에게 “우리 친구가 진짜 되자!” 고 화해를 먼저 청한다. 상복이 없었던 헨리 폰다는 이 영화에서 첫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고 부인역할의 한 캐서린 햅번은 4번째 여우주연상을 받는다.
핸리 폰다의 마지막 영화였고 76살에 받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무엇보다 진보의 아버지와 진보의 딸로 대를 이어가며 영화인으로 살아간 이들이 멋있다.
진보여 정진에 정진하라!
제익 폰다가 던진 말에 진보의 힘을 얻는다. 그녀의 어록으로 글을 마치며
"도전이 어설픈 것에 문제를 느끼지 마라! 승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도전은 늘 어설프고 시작함이 최고의 미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