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반지로 짜 웅 하였다. 그런데 ….
권 병장 그는, 638고지를 1차 공격하였을 때, 자신이 체험했던 대로 적들의 벙커 정면을 피해서, 될 수 있으면 좌측 8부 능선을 따라 들어가라고 김태식 전우에게 신신당부 하는 걸 잊지 않았다. 그러면서 그들은, 부디! 살아서 고국에 돌아가자고 목이 메어, 둘이서 부둥켜안고 한참을 그렇게 울었다.
바로, 이때였다.
김태식 병장 그는, 제7중대에서 같이 올라 온 전우들과 행동을 같이 해야 된다고 하면서 급히 돌아가 버렸다. 권 병장 그는, 태식이가 돌아가는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는, 옆을 돌아보았다.
바로 옆에는 분대장 김 종일 하사와 부첨병인 김 영진 병장이 쓰러져 있는 모습이 보였다. 권 병장 그는, 김태식 전우가 주고 간 피보다 귀한 물을 두 사람 입에 수통을 물려 물을 먹여주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깨어난 두 사람은 물을 어디서 구했느냐고 반색을 하며 물었다. 권 병장 그는, 김태식 전우가 준 것이라고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김태식이란 그 전우는 강원도 화천군 간동면 오 음 리 훈련소에서 처음 만나게 되었다. 김태식 그의 계급은, 지금은 병장이다. 하지만, 처음 만난 그 당시에는 상병이었다. 권준 그는 병장이고, 김태식은 상병이었다. 하지만, 군번은, 권 병장보다 김 상병이 조금 빨랐다. 그러나 그 둘은 마음도 잘 맞아 의기 상통하는 막역한 사이로 지내기로 하였다.
때문에, 계급 따지지 않고 서로가 터놓고 다정한 친구처럼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라고 그들에게 대충 이야기해주었다.
김태식 상병 그는, 아는 게 많고 매우 똑똑한 전우였다. 저녁 일석점호 마치고 나면, 둘이서 개울가로 나와 개울 옆, 이동주부들한테 막걸리 사먹던 추억이 그의 뇌리에 환상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 둘은, 오 음 리 훈련소에서 훈련마치고 월남 전쟁터로 출국할 때도, 그와 함께 선발대에 차출되었다. 그와 함께 하루 먼저 부산 제3부두에 도착 하였다. 내일 본대를 싣고 월남으로 떠나 갈, 천 이백톤급의 바 레트 호에 승선하였다.
그 둘은 식당일에 대한 도우미 교육받고, 월남에 도착할 때까지 식당 조리 조에 편성되어 도우미 일을 같이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둘은, 배안에 있는 미군 승무원을 찾아가서 서툰 영어 써가며 손짓 발짓해서, 미군 승무원한테 배 멀미약을 타다 같이 나눠먹고, 두 사람은 배 멀미 한 번 하지 않았다. 때문에 그 둘은, 배 멀미 약을 먹은 탓인지, 멀쩡하게 잘 지내게 되었다.
처음 배를 타는 대부분의 전우들이 심한 배 멀미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배 멀미에서 해방된 그 둘은, 새벽 05시에 식당조리 조 도우미 하러 엘리베이터 타고 식당 조리실로 내려가곤 했다. 그 식당 부식창고는, 새벽, 한두 시간 정도는 한시적으로 부식창고를 개방해 놓았다.
그 둘은 부식창고에 들어가서 부식 포장지에 쓰여 있는 영어를 잘 몰라 닥치는 대로 두 개씩 골라가지고 엘리베이터 타고 8층 위에 있는 배, 갑판위에 올라가서 맛 한번 보고 맛있으면 먹고, 맛없으면 바다에 그냥 던져 버렸다. 그 철딱서니 없는 짓들이 새삼 권 병장의 뇌리에 클로즈업 되어 왔다.
권 준 병장 그는, 요령을 잘 몰랐다. 하지만, 김태식 상병은 요령 있고 재치도 있는 똑똑한 친구였다. 월남에 도착하면, 우리 돈은 필요 없고, 달러가 필요한데, 여기서는 달러 구하기가 힘드니까, 각자 금반지 3돈짜리 1개씩 하자고 제안하였다. 그것으로 짜 웅 하면 우리 둘은 정글 기는 것은 면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귀띔을 해주었다.
때문에 그 둘은, 이동 주부를 통해 3돈짜리 금반지를 각자 한 개씩을 구입하였다.
월남에 도착하여 또다시 현지 전투에서 필수 훈련 과정인, 헬기에서 뛰어내리는 랜딩 훈련과 클레모아 설치와 분리하는 방법 및 레 콘도 교육과 훈련을 2주간 받던 중, 일주간 교육이 끝나는 날이었다.
그 날 저녁 일석점호를 마친 바로 그때였다. 권 병장과 김 상병은 일석점호 마친 바로 그때, 정보사령부소속 MIG와 헌병들과 보안대의 감시를 교묘히 피해서 장교식당에서 영화를 관람하고 있는 인사과 홍 하사를 은밀히 찾아갔다. 그 둘은 고국에서 구입해 간 금반지를 건네주고 짜 웅을 하 기 위해서였다.
딴에는 멋진 뇌물 공세로 톡톡히 효과를 볼 것이라고 기대하였다. 하지만, 그렇게 기대하고 짜 웅한 보람도 없이 말짱 도루묵이 되고 말았다. 도대체 어찌된 영문인지?
권 병장은 보병중대 보다 두 배 이상 매복과 수색작전이 많은 정글만 빡빡 기는 수색중대에 떨어지고 말았다.
권 병장 그는 짜 웅이 실패 한 것을 직감하였다. 때문에 그는, 앞이 캄캄하였다. 그런데 수색중대에 전입해 온 지, 며칠 후였다. 중대 서무로부터 연대 인사과 홍 하사가 연대 인사과로 잠간 올라오라는 연락을 받고 홍 하사를 찾아 갔다. 홍 하사 그는, 미안하게 되었다고 하면서 짜 웅한 그 반지를 다시 돌려주었다.
반면에, 김 상병 그는, 수색작전 없고 매복 작전 없는 교량 경계근무만 하는 제7중대에 떨어졌던 것이다. 이렇게 하여, 김태식 전우는, 기갑연대에서 제일 특과인 제7중대에 떨어지고, 권 병장 그는, 기갑연대에서 정글을 제일 많이 기는 수색중대에 떨어져서, 월남 전 최대격전지 앙케 전투에 투입 되었던 것이다.
때문에 그 둘은, 그렇게 헤어지고 말았다. 그런데 그 둘은, 월남 전사에서 최대격전지 앙케 전투, 생사의 갈림길에서 오늘, 이렇게 상봉하게 되었던 것이다.
지금! 권 병장 그는, 첨병임무까지 수행하느라 생사의 갈림길에서 죽을 고비를 수십 차례 넘기고 있는 중이다. 과연! 이 생지옥 같은 앙케 전투에서 살아서 저 친구 김태식 전우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절망과 회한에 젖은, 그의 착잡한 심정이 썰물처럼 밀려왔다.
그는 가슴을 도려내는 것 같은 아픔을 견딜 수가 없었다. 그는 또다시 태식이가 사라져간 그 곳을 바라보며 한 없이 울었다. 그 둘은 단, 몇 초 사이에 생과 사가 갈리는 험준한 고비 길에서 서로가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이야, 이 무슨 기구한 운명이란 말인가?
출처 : 앙케 의 눈물에서 발췌
첫댓글 재미있게보았습니다..
짜웅이라,,새삼생각나는 장면이었습니다...
먼 이국 땅에서 우리 월남참전 전우들을 위해서 홈을 운영 하시느라 그 얼마나 수고가 많으십니까?
진심어린 댓글 감사합니다. 아울러 귀, 서북미 홈의 무궁한 발전과 행운을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짜웅이 성공했으면 오늘날 이런 추억거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제가 성공한 사례라고 생각 됩니다.
그래서 오늘날 참전유공자로써 기사거리가 상당히 부제합니다.
저는 포병 주특기 144 측지 상무대 포병학교서 근무하다 월남에 차출
월남 가기를 거부하며 출근을 거부하였다.69년도 전방근무하다가 월남서 귀국하면 후방으로
근무지를 배치받아 오는 하사관들로 완전 만원 인데다 제차 월남에 가겠다고 짜웅을 하며
디리밀던 병페가 만연하다보니 국방부에서 안간사람 부터 우선하여 순위를 메겨 버렸다.
월남안간 토종은 나박에 없으니 서열 1위였다.
1주일이 경과하자 절친한 고참이 찿아왔다.
지금 서로 갈려는 판에 안가겠다는
명대 전우님의 지적이 맞습니다. 명대 전우님이 지적한 대로 짜웅이 성공 했더라면 지금의 추억은 없었겠지요. 하지만, 그 당시 짜웅은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짜웅이었지요. 때문에 짜웅에 실패하여 수색중대에 떨어져서 앙케 전투에 참전하여 죽을 고비를 수십차례 넘기고 겨우! 살아 돌아 왔지요. 그런데 짜웅도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던군요? 감사합니다.
사람 궃이 보넬 이유가 없다며 출근을 권유하자 못이기는척 다음날 출근하였다.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나자 포대장이 불러 국방부 지시라 어떻게 변경이 안된다네
밤새 많은 생각하며 그래 한번 가보자 새상을 보고 인생을 느껴보자
아무도 배웅없이 부산항 부두에서 배에올라 군악대의 팡파레와 여고생들의 환송식을 받고
죽느냐 사느냐중 하나의 선택만을 미래에 결과물로 기약하며 긴 항에에 올랏다.
출발 이틀쩨 되던날 배안에서 나를 호출하는 방송이 울려나왔다.
인솔자인듯한 사람이 이것을 배아래서 누가 나에게 전해주라고 했다고 한다.
생각지도 못했는데 S누나 오00 여인이였다.
이자가 침을 흘리며 누구냐고 묻는다.
한미모 하는지라 사내가 물건을 받아서 전달하기까지 는 ...생략
부산 어느동에있는 비엔나 다방에 과오 마담입니다.
본국에 가시면 한번 들러보세요 이렇게 둘만의 이야기는 끝이나고
9일만에 퀴논항구에 도착 다시 차량에 타고 사단 사령부에 도착하였다.
다들 따블백을 든체 연병장에 정열하고 자리에 앙근담에 부대명과 개인별 호칭이 호명된다.
거의다 호출되고 다섯명 3명 두명 마지막 으로 내이름이 호명되고
사단사령부 로 근무지가 확장되였다. 아 이제는 죽음은 면했구나.안도의 한숨을 쉬며
이건 고국에서의 포병학교 이력같은 그런것은 아닐테고 순전히 부산부두에서 나에게 선물을
보내준 S누나의 선물이자 그여인의
향기에 취한 인솔자의 배려가 아니였나 생각한다.
아~~덥다
얼매나 놀랬는지 이틀간은 밥도못먹고 물만 켜댔다.
지금 식당이나 사무실에 는 냉온수가 나오는 정수기가 있는데 국내에서는 단 한번도 보지못한
정수기가 그때 우리 사무실에는 있었다.
시원해서 마시고 신기해서 마시고 더워서 마시고 정말맛난 물이였다.
지금 생각 하면 피와도 안바꾸는 귀한 물 한방을 먹지못하고 소변을 받아 마시는
최 전선에서 매복근무를 하던 병사들을 생각하면 부끄럽고 미안하고
죄송스럽고 그렇습니다. 그런곳에 아마 배치되어 근무를 했더라면 저는 그 고통과 인내를
감당 못하고 죽고 말았을 것입니다. 돌아오지 못한 전우여 미안합니다.
명대 전우님은 무척 운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그때, 짜웅이 실패하여 정글을 빡빡기는 보병중대에 떨어 졌더라면, 월남에서 살아 돌아 오지 못했을 수도 잊지 않겠습니까? 추억의 아쉬움은 남겠지만, 이렇게 살아 돌아 온 것은, 짜웅이 성공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밤이 깊었습니다. 좋은 꿈 많이 꾸세요. 감사합니다.
그 당시 전 주월한국군 부대가 황색비상에 있었죠. 일요일이라도 외출외박 금지,
외출을 해야 하는 근무자도 부대내 대기, 전투중인 앙케지역 상황보고는 긴박... 정말
피를 말리는 상황이었습니다. 대부분 장병들은 그 까닭을 모른 채 수군수군... 이게
주월한국군의 현실이었고 지금 우리나라 장병들이 겪는 문제입니다.
비밀도 아닌 거, 정보 공유가 통제된 까닭입니다.
풀씨님 안녕하세요?
풀씨님은 앙케 전투 당시 아주 중요한 직책에서 근무한 것 같습니다. 사실 앙케 전투 진실은 왜곡 되었습니다. 그 당시 전투 상보가 어떻게 작성 되었는지? 또, 앙케 전투 전사기록이 어떻게 편찬 되었는지? 우리 병사들은 알 수가 없었지요. 그리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지요. 그런데 40여 년이 지난 지금, 박정희 대통령 각하께서 이 세호 주월 사령관과 정득만 맹호 사단장에게 보낸 친서를 보면, 앙케 전투가 왜곡 되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앙케 전투에 대한 생생한 긴 댓글 감사합니다. 건필 하시기 바랍니다.
귀국 연기, 영문도 모르는 병사들은 갑갑합니다. 그러다 본국에서 온 교체병력 수용 때문에
조심조심 귀국선 승선, 하지만 비밀로 취급되는 작전상황, 함부로 얘기해줄 수도 없었습니다.
몇몇 전우들의 입소문에 의해 알음알음 작전상황을 이해하기 시작했고 드디어
새벽이면 오륙도 다다를 거라는 소식, 그리고 그 새벽에 안케패스 소식을 듣습니다.
귀국선 안에 있던 병사들은 누구라 할 것 없이 모두 함성을 지르며 좋아합니다.
귀국선에 함께 탄 전우들은 맹호와 십자성입니다.
함께 월남에 갔던 맹호 혹은 십자성 전우들, 학교 때부터 친구였던 태권도 4단인 박 상병은
끝내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이종사촌이었던 정일병은 병장으로 진급했지만 온몸에 이상한
피부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고엽제로 인한 병증이었습니다. 그렇게 사라지고
목숨 부지하고 지금도 그렇고 그렇게 사는 전우들이 참 많습니다. 물론, 병사들 등쳐먹는
사기꾼(?)들도 많이 보았죠. 지금도 그렇게 사는 인간도 있고... ^^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건필하십시오. ^^
추억이 깔려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