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우지간 오랜 벗은 만나면 반갑고 즐거운 것이다.
다른 학교를 다녔지만 같은 지역에 살았다는 더구나 촌놈 촌년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그때가 중학교 시절, 남중, 여중으로 분리되었던 시절, 보리피리 부는 사월이면 가끔 논둑길에서나 힐끔거리며
서로 쳐다보았던 그런 거리에서 친구와 나는 그렇게 컸었다.
가끔, 친구의 어머니를 통해 잘 살고 있다는 후기 정도 듣고 살았는데 오늘 후배의 점심 주선으로 우리는 맞선보듯
그렇게 덜컥 마주 앉았다.
그것도 수사해당화가 만발한 어느 개울가 정원에서 지금도 바로는 부끄러워 쳐다보지 못하고 그저 곁눈으로 슬쩍 슬쩍 거렸지만
그 친구도 잘 살아온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친구나 나나 가난한 마을에서 태어나 가난한 시골의 바람 속에 컸으니 살아온 무늬야 서로 엇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는데
다행이 생각과 같아서 기분마저 좋아졌다.
한 접시의 간장 게장을 비우는 사이, 늘어난 가족과 벌어진 틈을 메우는데 그리 더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내가 실천하지 못한 꿈만 꾸는 쌍둥이 아빠가 된 친구는 무척 편안한 중년의 사내가 되었고 나는 수다스런 아줌마가
되어 있었음을 깨닫는 시간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친구가 제의한 합천 해인사를 미루고 나는 되돌아오는 길에 가슴으로 들어왔던 수도사로 차를 몰았다.
어느 날 남편과 함께 바람처럼 떠나왔던 길목에서 돌아갔던 곳이기도 하여 오늘은 홀로 가리라 다짐하며
산 속으로 마음만 집어넣고 나머지는 등 뒤로 툴툴 날려버리며 들어선 길, 먼저 한적한 소 눈망울처럼 깊은 저수지가 나왔다.
"아, 이 곳이야."
제일 큰 언니가 시집왔던 그 곳, 배꽃 마을 이목리 5번지다.
큰 언니는 내가 겨우 몇 살일 때 그러니까 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이곳으로 시집을 갔다.
지금은 배꽃처럼 가볍게 날아간 셋째 오빠의 손을 잡고 언니 집으로 왔었다.
아마 오빠는 고등학생이었는지, 형부 동생 중의 한 분과 친구였으니, 그러니까 지금 언니는 환갑을 지냈고 내가 마흔일곱이니까.
사탕 좋아하고 엄마 그리워 잠 못 드는 밤이 지나고 아침에 일어나 문을 열면 금방이라도 저수지 물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던
아찔하면서도 꿈같은 날들을 나는 그렇게 그 곳에서 며칠 보냈었다.
하루는 개울에 빨래 가시는 사돈어른 치마꼬리를 잡고 사탕 사 달라 마구 조르기도 했었다는 막무가내 조르기 어린 꼬마가
오늘 다시 그 연못 그 자리에 앉았는데 그동안 물빛은 더 깊어 푸르고 넓어졌으나 햇살같이 따사로웠던 사돈어른은 아니 계신다.
바람에 벚꽃만 휘휘 날릴 뿐, 언니와 형부도 이사를 가 그 곳엔 아무도 없다.
어디쯤이었을까, 그 골목 그 다리 밑 그 집 마루는.
다시 여고 친구를 찾아 저수지 위 수도사로 향한다.
그때 우리는 빛나는 청춘이었다.
이유 없이 삼성 카세트를 어깨에 메고 수도사행 완행버스를 탔고 쫓아오는 먼지를 뒤로 한 채 오늘처럼 산을 찾아 들었다.
사실, 나는 신반에서 의령여고를 갔으니 대단한 유학을 간 셈이었다.
그 조신했어야했던 유학길에 친구들은 수도사로 나를 꾀었다.
절 뒤에서 팝송을 틀어놓고 얼마나 흔들었는지 허리 아픈 줄 몰랐으며 해 지는 줄 몰랐다.
그 순간 갑자기 나타나셨던 스님 덕분에 우리는 버거웠던 청춘들을 나뭇짐 꾸리듯 잘 꾸렸기에 지금껏 잘 살고 있는지도.
오만가지 생각으로 고갤 들었는데 아, 아, 오, 오, 배꽃이 눈처럼 내린다.
자유로웠던 그때의 영혼들처럼 그렇게 마구 폭격을 가하듯이 쌓이고 쌓여간다.
아, 이 행복함을 이 기쁨을 누구에게 전해야 할 텐데.
그녀들은 어디로 다 사라졌을까, 부처님 엉덩이까지 들썩이게 노래 불렀던 그 소녀들,
영걸들 어느 곳으로 꼭꼭 숨었나......,
아, 보고 싶다! 배꽃의 그 순수함으로 그녀들을 호명한다.
정희야, 미경이야, 정숙아, 그리고 미숙아, 인숙아.
빨리 모여라 배꽃이 흩날리는 그 뒷산으로.
*오늘 하루 참 행복했습니다.
30년 더 지난 친구 만나 따뜻한 밥 한 그릇 나누었으며 이보다 더 오랜 추억속의 친구를 호명하였으며
며칠 전에는 문산사에서 마구 떨어지는 목련꽃을 보았으며 오늘은 배꽃이 흐느끼는 수도사의 봄 길을 다녀왔으니
이만하면 제일 행복한 여자 아니겠습니까?
첫댓글 그랬구나. 아주 행복한 날이었겠다.
한 가지 더 말해줄까?
오는 길에 정곡에서 꽃 사태를 맞았다는 사실.
올 봄처럼 꽃 속에 파묻혀 본 적도 없네.
행복하다. 너도 그렇지?
그대가 말하는 그 수도사 내 유년의 텃밭이었지... 저수지 밑에 동네 살면서
그곳에 가서 도토리 털고 모감주 줍고 동네 기집애들 요사체 공부하는 학생
들에게 연애하러 가면 훼방 놓고.... 가을날 절골 감나무의 홍시는 왜그리 붉고
맛있게 보였던지
저에게도 추억이 깊은 곳입니다.
이목리 마을이 참 정겨웠습니다.
그때 그 집과 사람은 사라져도 마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