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의 서울시내 참꼬막 식당들 소개에서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며칠 전에 만들어 둔 것인데 24일 아침일찍 부터 지방에 다녀올 일이 생겨놔서는 이제야 올리게 되었습니다.
참꼬막의 주산지인 전남 벌교에서 참꼬막으로 유명한 대표적인 식당입니다. 오랜 세월을 각종 매체와 입소문을 통해 명성이 쌓인 곳이죠.
벌교읍내의 뒷길입니다. 우측에 보면 국일식당의 간판이 살짝 보이죠.
지방의 경우는 학교 이름 짓기가 참 쉽죠.
야식집에서 저런 스팩타클스러운 이름을 사용했으니 장사가 잘 될리 없었겠죠. 반대로 고급 한정식집 이름을 [머글래 싸갈래] [혹은 [밥이랑 찌개랑]이라고 지어도 곤란할 것이고.. 백화점식 메뉴구성도 망함에 일조를 했을 듯.
작은 동네다 보니 겸업이 흔한가 봅니다. 책방과 수퍼의 동거라... 그나저나 푸근한 상호로군요.^^
수타면이라고 하면 이해가 힘든 동네인 듯..
다컴;;;;; 전화로 웹주소 불러주면 말 더듬는 줄 알듯.. "프린트다닷컴"..
일제 강점기때는 일인들도 적잖이 살았던 듯 곳곳에 적산가옥이 보입니다.
요즈음은 거의 사라진 [음악사]가 보여 반갑기는 한데 영업을 않는 듯...
예전에는 거리 곳곳 버스 정거장 마다 있어놔서 최신음악 부터 계절별 제철음식... 아니;;; 제철음악들을 스피커를 통해 틀어줘서 오가는 사람들의 기분을 풀어주는 청량제 역할도 했었습니다. 그래서 예전의 크리스마스는 더 크리스마스다웠었죠.
노래모둠테이프를 주문제작해 주는 불법카피의 온상(당시는 저작권 개념이 희박했던지라 죄의식들은 거의 없었죠^^;;)이기도 해서 주머니 가벼운 청춘들에게는 오아시스와도 같았습니다.
이제는 저 점포 처럼 추억속의 존재로나 남게 된 동네 음악사.
꼬막으로 뜬 동네다 보니 꼬막자가 들어가서 어울리지 않을법한 업소도 보입니다. 조개다방보다 좀 더 강렬한 인상의 꼬막다방.
족발집 까지 꼬막 장사를.... 저런 경우는 주말에 몰려드는 외지 관광객들을 노리고 그러는 것이겠죠.
자, 동네구경 그만 하고 목적지인 국일식당으로 들어가 봅니다.
참꼬막은 사진 처럼 뻘에서 직접 캡니다. 새꼬막은 바다에서 어선의 쇠그물로 바닥을 긁어 대량채취하죠. 맛도 맛이지만 인건비로도 차이가 나기에 참꼬막이 더 비쌉니다.
출처 불분명.
두개의 테이블을 제외하고는 전부
살짝 들여다 본 주방은 지저분하지 않습니다.
꼬막정식으로 주문했습니다.
현대삼호중공업이라면 현대그룹의 창업주와 형제간인 고 정인영 회장의 한라그룹에서 야심차게 조성하다 IMF외환위기 때 무너지고 만 전남 영암의 한라조선을 인수해서 만든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한국 제계의 거목 형제분들 말년이 우울했었죠. 성우그룹 고 정상영 회장도 마찬가지였고...
워낙 명성이 화려한 업소라서 설명은 매스컴 소개기사로 대신합니다.
가져 가 마신 생떼밀리옹 샤또 페 라 슈발.
제일 먼저 데친 참꼬막 부터 나옵니다.
이 집도 대부분의 업소들이 그러하듯 데친 것은 참꼬막을 쓰고 무침이나 전 등의 양념조리음식에는 새꼬막을 씁니다. 홈이 깊고 적은 갯수의 골들로 참꼬막임이 외관상 분명하죠.
까는 것에 서투른 분들은 뒷쪽 연결부위에 동전이나 수저를 넣고 비틀어 따는 방식을 사용하는데 편리하기는 합니다만 많은 양을 까기에는 손이 아픕니다. 가급적 앞의 주둥이를 손톱만으로 벌리는 방식에 익숙하는게 좋죠.
어렵지 않습니다. 껍질을 양손으로 잡고 살짝 벌리듯 하면 미세한 틈이 생깁니다. 그 틈에 손톱을 넣고(넓지 않아 손톱이 들어가느는 않으니 실제로 넣어지지는 않습니다만 달리 표현방식이 떠오르지 않아서...) 약간만 힘을 주어 벌리면 예상외로 별 저항감 없이 활짝 벌어집니다. 뒷쪽 연결부위를 도구를 이용해 힘껏 제껴 따는 방식에 비해 아주 적은 힘만으로 벌릴 수 있어서 많은 양을 따도 힘들지 않습니다.
글로 설명해 봐야..... 직접 해 보시면 금새 이해가 될 듯..
참꼬막의 선명한 홈과 적은 갯수의 골.
갯펄의 풍요로움이 가득 담긴 맛이라고나 할까요...
일본 음식만화 [맛의달인]식 표현법을 빌리자면 '인류의 조상이 바다로 부터 왔다는 학설이 진실임이 느껴지는 듯 포근하고 그리운 맛'이라고나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