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구단소개 : MBC 청룡- LG 트윈스

[zzang]

‘MBC 청룡은 어디로 / 우승 한번 못하고 어디로 사라졌는가 / 딱 달라붙는 파란유니폼 우리 청룡을 찾아주세요 / 김재박은 정말 빨랐지 이종도는 정말 잘 쳤어 / 끈질긴 투지와 근성으로 무장한 우린 MBC 청룡(가자~) / 하기룡은 정말 잘던져 유승안이는 정말 잘 받지 / 끈질긴 투지와 근성으로 무장한 우린 MBC 청룡(가자~) / 청룡은 어디로 청룡은 어디로 우린 지금 어디로 / 누구 본사람 여기 있나요 / 청룡은 어디로 청룡은 어디로 우린 지금 어디로 / 우린 어디로 가고 있는가’
- 타카피 3집 [Super Star] 수록곡 “MBC 청룡” 中

서울의 터줏대감, MBC 청룡(현 LG 트윈스)은 프로야구 탄생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 팀이다. MBC는 1981년 6월부터 이미 창사 20주년 기념 사업의 일환으로 프로야구단 창단을 구상하고 있었다. MBC가 먼저 팀을 만들면 다른 팀이 뒤따라 창단해서 프로야구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이즈음 정부 차원에서 프로야구 창설이 추진되자 MBC는 자신들의 우선권을 주장하고 나섰고, 연고지도 최고 노른자위인 서울을 고집했다. 프로야구를 추진한 측에서도 이를 순순히 받아들였다. “방송이 참여해야 프로야구를 홍보하고 확산시키는 데 유리하다”는 이유였다.

팀 이름은 공모와 심사를 거친 끝에 ‘청룡’이 선정됐다. 당시 MBC 관계자는 신문 인터뷰에서 “공모결과 ‘드래곤즈’란 이름이 압도적으로 많았으나 외래어인데다 가까운 일본에도 유사한 팀명이 있어 청룡으로 부르기로 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MBC 사옥이 자리한 정동이 옛날부터 ‘용마루’로 불렸다는 것도 청룡이 선정된 이유 중 하나. 한편 MBC 초대 감독에는 원래는 ‘빨간 장갑의 마술사’ 김동엽 감독이 유력했다. 김동엽 감독은 당시 MBC에서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은 물론, MBC의 프로야구단 창단 과정에서도 많은 일을 했다. 하지만 김 감독을 데려간 것은 해태였다. 마찬가지로 재일교포 출신 김영덕 감독도 고려 대상이었지만 OB에서 먼저 영입했다. 대안으로 박현식, 배성서 등의 이름이 거론되다가 일본에서 돌아온 한 거물급 인사의 이름 석자에 모든 것이 정리됐다. 1981년까지 일본 프로야구에서 선수로 활약한 백인천이 주인공이다.

MBC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6천만 원의 거액을 주고 백인천을 감독으로 영입하며 팀 창단의 채비를 마쳤다. 이후 MBC는 프로야구 개막일까지 방송을 통해 연일 일본과 미국 프로야구의 명장면을 내보내며 프로야구 ‘붐’을 일으키는데 주력했다. 1982년 2월 26일, 서울 문화체육관에서 MBC 청룡의 화려한 창단식이 열렸다. 이날 창단식에는 박영수 서울시장, 서종철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는 물론 MBC 소속 인기 탤런트와 코미디언들이 대거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이날 참석한 22명의 원년 선수단과 코칭스태프 명단은 다음과 같다.

감독: 백인천
코치: 이재환, 유백만
투수: 하기룡, 정순명, 이길환, 이광권, 유종겸, 차준섭, 박석채, 김시철
포수: 유승안, 김용운, 최정기
내야수: 김용윤, 김용달, 김인식, 조호, 박재천, 이광은
외야수: 이종도, 신언호, 송영운, 배수희, 최정우, 김봉기

개막전 만루홈런과 불멸의 4할 타율

원년 시즌 전 대다수의 야구 전문가는 MBC가 삼성과 함께 상위권을 다툴 것으로 예상했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고교팀을 보유한 서울 지역을 연고로 둔만큼 최고의 선수들로 팀을 꾸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MBC는 프로 원년 46승 34패로 전체 3위에 머물렀다. 이유가 무엇일까.

한 고교야구 감독은 “창단 당시 MBC의 코칭스태프는 물론 선수단 구성에도 문제가 있었다”고 회고한다. 동년배인 백인천 감독과 이재환, 유백만 코치는 시즌 내내 매사에 불협화음을 빚었다. 게다가 두 코치는 모두 투수 출신으로, 백인천 감독이 선수로도 뛰는 점을 감안하면 비효율적인 코칭스태프 구성이었다. 결국 MBC는 후기리그 들어 충암고 감독 출신의 한동화를 코치로 영입해 코칭스태프를 보강해야 했다. 선수단 구성도 아쉬움을 남겼다. 서울지역 선수들을 대상으로 한 드래프트에서 그해 세계선수권 출전으로 팀 합류가 불가능한 김재박, 이해창을 지명한 것이다. 이에 서울지역 지명권을 함께 행사한 OB가 재빠르게 박철순을 지명했고, 이는 원년 OB 우승의 결정적인 원동력이 되었다. MBC는 하기룡과 이길환, 이광권이 마운드의 주축을 이뤘지만 확실한 에이스가 없다는 것은 분명 약점이었다. 게다가 지나치게 특정 포지션에 편중된 선수단 구성으로 포수 출신인 이종도와 신언호가 외야수를 보는 등 수비력에도 허점이 많았다.

여기에 백인천 감독과 구단 프런트와의 관계도 원만하지 못했다. 일본에서 프로야구를 먼저 경험하고 온 백 감독은 자신의 노하우를 최대한 구단에 전해주려고 했지만, 이는 받아들여지기보다는 충돌만을 낳았다. “전지훈련이 필요하다 생각해서 강릉에 가려고 했는데, 사람들은 아마야구 생각만 하고 ‘뭐 하러 멀리까지 가서 하느냐’고 반문했다. 전지훈련을 가서도 야구공과 장비를 지원해달라고 했더니, ‘뭐가 이렇게 많이 필요 하냐’면서 ‘공은 한 박스만 가지고 가서 하다가 모자라면 또 한 박스 올려달라고 요청해라’는 식이었다. 게다가 방송사가 민간 기업이 아닌 공기업 이다보니 뭐 하나 요구하는 것도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결재해서 상부의 승인을 받기까지 십 여 단계를 거쳐 올라가곤 했다. 그런 문제들을 회사 관계자들에게 이해시키려고 노력을 많이 했는데, 정작 사람들이나 언론에서는 ‘트러블을 일으킨다’는 식으로 말하더라.” 백인천 감독의 이야기다.

초창기부터 MBC는 스타 군단이었다. 이광은, 신언호, 이종도, 백인천, 유승안 등 스타 플레이어가 즐비했다. <출처: 어우홍>

MBC의 창단 첫 해를 이야기하는데 빼놓을 수 없는 두 가지가 개막전과 백인천의 4할 타율이다. 1982년 3월 27일 서울운동장(동대문야구장)에서 열린 삼성과의 개막전.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연장 10회말 터진 이종도의 끝내기 만루홈런이었지만 포수 유승안(현 경찰청 감독)에게도 영웅이 될 기회가 있었다. 유승안은 4-7로 뒤진 7회말 공격에서 동점 3점포를 쏘아 올려 경기를 원점으로 돌렸고, 7-7로 맞이한 연장 10회말에는 1사 1, 2루의 찬스에서 타석에 들어섰다. “삼성에선 그날 내가 잘 맞으니까 걸러서 만루를 채우고 백인천 감독과 상대하려 했다. 그런데 투 볼에서 3구째가 가운데에 약간 높은 코스로 오는데, 내가 무슨 생각이었는지 무의식적으로 방망이를 내밀었다. 결국 빗맞은 투수 앞 땅볼로 1사 만루가 될 상황이 2사 1, 3루가 되어 버렸다.” 유승안 감독의 회상이다. “그래놓고 2루에 가서 서있는데 하늘이 노래지더라. ‘감독님한테 죽었다’ 싶기고 하고. 지금 생각하면 치면 안 되는 공인데, 그날의 히어로가 되고 싶은 욕심이었는지 방망이가 나와 버렸다. 그래도 2아웃 만루에서 이종도 선수가 만루홈런을 치는 바람에 프로야구 첫 경기가 그렇게 극적인 승부가 되지 않았나. 농반진반이지만, 내가 거기에 큰 징검다리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유 감독의 말처럼 프로야구는 첫 경기부터 멋진 명승부를 펼치면서 사람들에 ‘프로야구는 뭔가 다르다’는 인상을 확실하게 심어주었다. 백인천 감독은 지금도 “그 개막 경기가 한국 프로야구를 살렸다”고 이야기한다.

백인천이 감독 겸 선수로 기록한 4할의 타율은 앞으로도 깨지지 않을 불멸의 기록이다. 일본 프로야구 퍼시픽리그 타격왕 출신의 백 감독이 구사한 타격 기술은 당시 국내 선수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특히 상대 투수의 투구 시 습관을 관찰해서 어떤 공을 던질지 예측하는 능력은 백인천의 장기였다. 하지만 백 감독 본인은 “기술적인 내용 이전에 정신력이 만들어낸 4할이었다”고 말한다. “일본에 있을 때도 내가 여기서 성공하지 못하면 죽는다는 각오가 있었다. 우리나라 프로야구에서도 그런 마음가짐은 마찬가지였다. 죽기 아니면 살기로, 목숨을 건다는 생각으로 야구를 했기에 가능했다고 본다. 그리고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나는 개인타이틀을 의식하지 않았다. 만약 의식하고 마음먹고 했으면 타격 3관왕도 얼마든지 했을 거다. 기록을 생각하지 않고 그저 매 순간 최선을 다한다는 마음으로 임한 게 4할 1푼 2리의 타율을 만들어낸 비결이다.”

감독들의 무덤

이듬해인 1983년, MBC는 부푼 희망을 안고 시즌을 시작했다. 국가대표 유격수 김재박과 '대도' 이해창이 팀에 합류한 것이다. 두 대형 선수의 합류로 MBC의 내외야는 더욱 짜임새 있는 구성을 갖추게 되었고, 롯데에서 트레이드로 영입한 차동렬과 신인 박철영의 가세로 포수 라인업도 두터워졌다. 마운드에도 수준급의 신인 오영일이 가세해 하기룡-이길환과 함께 10승 투수 3인방을 구성했다. 하지만 개막 직후인 4월 26일, 백인천 감독이 “위장이 안 좋은데다 심신이 피로하다”는 이유를 들어 휴가를 내고 팀을 떠나면서 MBC의 시즌이 꼬이기 시작했다. 실제로는 구단과의 계약 문제를 둘러싼 이견과 사생활 문제가 원인이었다. 이후 MBC는 한동안 유백만 코치의 대행 체제로 운영하다 결국 전기리그 막바지 김동엽 전 해태 감독을 새 사령탑에 선임한다고 발표했다. 백인천 감독은 후기리그 들어 삼미 슈퍼스타즈로 트레이드됐다.

전기 내내 분위기가 뒤숭숭하던 MBC는 후기 들어 코칭스태프가 안정되면서 급격한 상승세를 보였고, 결국 30승 1무 19패로 후기리그 1위를 차지하며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전문가들의 예상은 대부분 투타가 조화를 이룬 MBC의 우세. 하지만 변수가 발생했다. 당초 10월 1일로 예정됐던 한국시리즈가 정규시즌 지연과 전국체전, 그리고 10월 9일 터진 아웅산 테러 사건 등으로 계속 미뤄지며 10월 15일에 시작된 것이다. 시즌 막바지 하늘을 찌를 듯하던 MBC의 팀 분위기는 이 보름간의 기간 동안 엉망이 됐다. 김동엽 감독이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면 구단에서 보너스 5백만 원을 주기로 했다’을 선수들에 약속했지만, 기대가 어긋나면서 선수들이 불만을 갖게 된 것.

“김 감독님과 구단이 ‘우승하면 얼마를 주겠다’고 미리 약속을 한 걸로 알고 있다. 지금 같으면 확실하게 구단 책임자의 도장을 받아서 문서로 했을 거다. 결국 기대했던 보너스가 물 건너가면서 선수단의 사기가 말이 아니었다. 이미 경기 전에 승패가 결정된 상황이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이광권 SBS 해설위원의 이야기다. 게다가 이해창이 간염과 부상으로 입원하는 일까지 겹치면서 전력에 큰 구멍이 생겼다. 결국 MBC는 한국시리즈에서 해태에 1무 4패로 무릎을 꿇고 준우승에 그쳤다. 그리고 이후 1990년 LG로 이름을 바꿔 첫 우승을 할 때까지, 다시는 포스트시즌 무대를 밟지 못했다.

MBC는 서울팀이라는 유리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8년의 역사에 딱 1번밖에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우선 감독직의 잦은 교체가 가져온 혼란을 들 수 있다. 창단 첫 해부터 1989년까지 MBC를 거쳐 간 감독만 8명, 1984년부터 6년간의 ‘암흑기’에는 5명이 MBC 감독 명함을 받아들었다. 수시로 감독을 갈아치우는 구단에서 감독이 힘을 갖고 자기 야구를 제대로 펼치기란 처음부터 불가능했다. 김동엽 감독을 다시 불러들인 1986년이 대표적인 예다. 그해 MBC는 일본에서 미즈다니 코치를 투수코치로 영입, 투수와 관련된 모든 권한을 부여했다. 김동엽 감독이 취재진에게 “오늘 우리 팀 선발 투수가 누구인가?”를 물어봐야 할 정도였으니 제대로 된 리더십이 발휘될 리 없었다.

어우홍 감독은 1984년부터 MBC 3대 감독을 역임했다. 사진은 투수교체를 위해 마운드에 올라간 어 감독의 모습.
<출처: 어우홍>

특히 선수들의 개성이 강하고 팀 내 파벌 다툼이 심했던 초기 MBC 선수단에서 ‘힘없는 감독’은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했다. 그 결과 MBC는 김재박, 이해창, 이광은, 이해창, 김건우, 김상훈, 김용수, 김인식 등 무수히 많은 스타플레이어를 배출하면서도 팀 성적에서는 부진을 면치 못했다. 또한 1983년 한국시리즈 보너스 사건에서 드러나듯이, 공기업인 방송사의 특성상 야구단에 필요한 유연하고 기민한 야구단 운영을 기대하기도 어려웠다.

일본 프로야구 롯데 오리온스 이나오 감독과 MBC 어우홍 감독이 친선 경기를 앞두고 인사를 나누고 있다. 1984년 퍼시픽리그 2위 팀인 롯데 오리온스는 그해 10월 한국을 방문해 MBC와 3경기를 치렀다. 롯데 오리온스는 1983년 MBC가 영입했다 실패한 이원국이 잠시 속했던 팀이기도 하다. <출처: 어우홍>

1988년과 89년, 2년 연속으로 7개 팀 중에 ‘6위’라는 최악의 성적을 받아든 MBC는 결국 구단 매각을 결정한다. 1989년 12월 12일, MBC 노사합의를 통해 구단 매각이 공식 발표됐고 1990년 1월 18일 럭키금성 그룹이 130억 원에 MBC 청룡을 인수했다. 럭키금성은 1982년 프로 원년에도 프로야구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지만, 연고지 문제와 그룹 내부 결정이 늦어지며 참여가 무산됐던 바 있다. 당시 그룹 임직원을 대상으로 공모를 거친 끝에 나온 새로운 구단 명은 ‘LG 트윈스’. 그룹명인 ‘럭키금성’의 머리글자를 따서 LG로 이름을 정하고, “쌍둥이 어린이 로봇이 타격자세를 취하는 모습”을 묘사한 마스코트를 만들었다. “다른 구단이 동물을 채택한 것과 달리 인간을 존중하는 그룹정신을 표현”하려고 했다는 게 당시 구단의 발표 내용이다.

LG트윈스의 엠블럼과 마스코트. <출처: LG 트윈스>

‘신바람 야구’와 서울의 봄

LG는 MBC가 매각 이전에 새 감독으로 선임한 백인천의 계약을 그대로 승계했다. 결국 백인천은 MBC의 초대 감독이자 마지막 감독, 그리고 LG의 창단 감독을 모두 역임하게 된다. 파리 목숨이던 과거 MBC 감독들과 달리, 백인천 감독은 힘 있는 감독이었다. 그는 취임과 함께 구단에게 선수단 운영의 전권을 위임받았다. 그리고 코치진 구성에도 대거 권한을 발휘해서 김봉기, 김용달, 최정우 등 ‘자기 사람’들을 대거 중용하는데 성공했다. 무엇보다 강력한 카리스마로 개성 강한 선수들을 하나로 뭉치게 한 것이 주효했다. 백인천 감독은 “LG에서 우승한 시즌에는 선수들 실력도 워낙 좋았지만, 무엇보다 단합이 잘 됐다”고 회상한다. “우리 같이 한번 해 보자”는 분위기가 고참 선수부터 신인까지 선수단 전체에 형성이 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여기에 마운드에서는 문병권, 김기범, 정삼흠, 김용수가 맹활약을 펼쳤고 ‘만년 기대주’ 김태원이 18승을 올리며 에이스로 거듭났다. 결국 LG는 시즌 내내 1위 빙그레를 맹추격하다 시즌 최종전에서 극적인 9회말 끝내기 승리로 정규시즌 우승을 확정짓고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한국시리즈에서도 상승세를 타고 있던 삼성을 4전 전승으로 제압하며 창단 첫 해 우승의 감격을 누렸다.

하지만 이듬해 LG는 다시 하위권으로 추락했다. 백인천 감독이 MBC 시절 체결한 계약 조건을 놓고 LG와 마찰을 빚은 것이 단초가 됐다. 이후 구단은 물론 선수들과도 마찰이 생긴 백 감독은 시즌 중반 일찌감치 사퇴를 선언해 버렸다. 구단은 구단대로 시즌이 한창 진행 중인데도 주전급 선수들을 미국 플로리다 교육리그에 보내면서 일찌감치 시즌을 포기하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 LG는 1991년 9월 13일에 열린 쌍방울전에서 무려 22안타를 내주면서 18-4로 대패, 7위였던 쌍방울과 자리를 맞바꿨다. 전년도 우승팀이라고는 믿기 힘든 졸전에 언론과 팬들의 비난이 쏟아졌다. 시즌 최종 순위는 6위, 시즌 뒤 LG는 새 감독으로 전 OB 감독 출신의 이광환을 선임했다. 신생구단과 그룹 이미지에 맞는 참신한 감독감을 찾던 LG는 당시로서는 생소하던 ‘자율야구’를 주창한 이광환 감독을 적임자로 판단한 것이다.

1994년은 LG 트윈스 역사에서 최고의 해였다. ‘신바람 야구’ 돌풍을 일으키며 정규시즌은 물론 한국시리즈까지 완벽하게 재패했고, 프로야구 최고의 인기 구단으로 자리를 굳혔다. 사진은 이광환 현 서울대 감독. <출처: 한국야구전당>

이광환 감독의 출발은 OB 사령탑 시절 그랬듯이 순조롭지 못했다. 1992년 취임 첫 해 거둔 성적은 전해보다 한 단계 더 내려간 7위. 개혁에는 시간이 필요했다. “원래는 선수들이 경기 시작 2시간 반 전에 제일 먼저 나오고, 그 담에 코치, 맨 나중에 감독이 나오는 게 순서였다. 그런데 나는 전부 4시간 전에 나와서 훈련하고 비디오 보고 기록 체크하라고 했으니 다들 입이 삐죽 나올 수밖에.” 이광환 현 서울대 감독의 말이다. “또 전에는 경기장 곳곳에서 배팅연습 하던 걸 배팅 케이지에서만 하게 바꿨다. 그랬더니 선수들이 훈련량이 부족하다고 하소연을 하더라. 사실은 자기가 부족하다고 느끼면 경기 끝난 뒤에라도 자진해서 훈련하고 하는 게 정상인데, 그런 개념 자체가 없었던 거다.”

하지만 ‘최대어’ 이상훈 영입에 성공한 1993년부터 이광환 감독의 야구는 서서히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그해 LG는 정규시즌 4위로 3년 만에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한 뒤, 준플레이오프에서는 라이벌 OB를 꺾고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며 팬들을 열광하게 했다. 삼성에 2승 3패로 아깝게 패하면서 한국시리즈 진출은 실패했지만, 다음 시즌을 기대하게 만들기는 충분했다.

그리고 1994년, LG는 구단 역사상 최고의 해를 맞이했다. 시즌 내내 압도적인 전력을 과시하며 정규시즌 1위로 한국시리즈에 직행했고, 한국시리즈에서 태평양을 상대로 또 한 번 4전 전승의 ‘완벽 우승’을 이뤄낸 것. 15승 이상을 따낸 투수 3인방(이상훈, 김태원, 정삼흠)와 유지현, 김재현, 서용빈, 인현배 등 신인들의 활약, 그리고 프랜차이즈 스타 김상훈을 내주고 영입한 ‘해결사’ 한대화의 활약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스타 시스템’으로 대표된 이광환 감독의 투수 분업화와 자율야구는 새롭게 그 가치를 인정받았고, 프로야구 전체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았다. 또한 LG 특유의 호쾌하면서도 세련된 스타일의 야구는 ‘신바람 야구’로 불리며 야구 인기에 불을 지폈다. LG의 젊은 스타 선수들을 보러 야구장을 찾는 여성 관중이 크게 늘어나면서, 프로야구는 중흥기를 맞이했다.

이광환 감독은 우승 당시를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 “당시 럭키금성 그룹의 모토가 ‘자율경영’이었다. 기업이 추구하는 바와 야구단이 추구하는 바가 일치하면서 구단에서도 야구단에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1992년 7위를 하며 부진했을 때 구단에서 믿고 기다려준 것이 큰 힘이 됐다. 어찌나 야구팀 인기가 대단했던지, LG가 그룹명을 ‘럭키금성’에서 LG로 바꾼 것도 야구팀의 우승이 크게 작용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서울에 찾아온 봄은 이후로도 한동안 계속됐다. 1995년 LG는 전해의 막강한 전력을 그대로 이어가며 시즌 막판까지 OB와 치열한 1위 다툼을 벌였다. 하지만 OB에 0.5게임차로 아깝게 1위 자리를 내주고 한국시리즈 직행에는 실패했다. 이어 롯데와의 플레이오프에서 2승 4패로 물러나면서 2년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의 꿈을 접어야 했다. 에이스 이상훈이 20승을 달성하며 구단 사상 최초의 정규 시즌 MVP를 바라봤지만, 시즌 100타점의 OB 김상호가 트로피를 가져가며 수상에 실패한 것도 1995년이 남긴 아쉬움이다. 이듬해는 전년도 1위를 놓친 후유증과 코칭스태프 내홍이 겹치면서 7위로 추락했지만, 1997년 임선동과 이병규의 활약에 힘입어 다시 정규시즌 2위로 올라섰다. 1998년에도 이상훈의 일본 진출 공백을 딛고 정규시즌 3위에 오른 뒤 준플레이오프에서 OB를, 플레이오프에서 삼성을 누르고 또 한 번 한국시리즈 진출에 성공했다. 하지만 1997년에는 해태에 1승 4패로, 98년에는 현대 정민태에 꽁꽁 묶이면서 2승 4패를 기록하며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그리고 1994년 우승이 남긴 후광도 거기까지였다.

긴 터널의 시작

1999년, 양대 리그로 재편된 프로야구에서 LG는 매직리그 3위에 그쳤다. 전체 순위에서는 6위. 순위표에서 LG보다 뒤에 있는 팀은 모기업이 자금난에 시달리는 해태와 쌍방울 두 팀밖에 없었다. 외국인 선수 스카우트 실패와 기대했던 신인급 투수들의 부진이 주원인이었다. 결국 시즌 중 사임 의사를 밝힌 천보성 감독이 물러나고, 그 뒤를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인 이광은 2군 감독이 물려받았다. 이광은 감독은 부임 첫 해인 2000년 팀을 매직리그 1위에 올리면서 어느 정도 성과를 냈지만, 라이벌 두산과 치른 플레이오프에서 충격의 역전패를 당하면서 신임을 잃었다. 특히 주변 코치들의 만류에도 마무리로 장문석을 계속 밀어붙인 것이 시리즈 패배의 결정적인 원인으로 작용했다. 2001년은 더욱 비참했다. 투수진이 붕괴되며 LG는 시즌 초반 9승 25패를 기록하는 최악의 부진을 보였고, 결국 이광은 감독은 5월을 넘기지 못하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LG는 이후 2군 감독을 거쳐 1군 코치로 올라와 있던 김성근 감독에게 감독대행을 맡겨 시즌을 마무리했다.

흔히 LG의 암흑기가 2003년부터 시작되었다고 이야기하곤 하지만, 사실 LG의 하락세는 1999년부터 이미 시작된 상태였다. 2000년의 포스트시즌 진출도 어디까지나 강팀들이 전부 다른 리그에 소속된 덕을 톡톡히 본 ‘행운’의 결과(리그 1위-전체 4위, 승률 .515)였다. 1990년대 승승장구하던 LG의 신바람 야구가 하향곡선을 그리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는 주축 선수들의 세대교체 실패다. 1994년 우승의 주역들이 하나둘씩 팀을 떠나거나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러운 세대교체가 필요했지만, 새로 입단한 선수들이 기대만큼 하지 못했다. 특히 이병규, 조인성 등이 나타난 타선보다는 마운드 쪽에서의 공백이 심각했다. 또한 ‘자율야구’ 시절에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휘되던 LG 선수들의 ‘개인주의’가 1990년대 후반부터 다시 MBC 시절처럼 부정적인 방향으로 표출되기 시작했다. 감독이 선수단을 장악하기 쉽지 않은 환경이 된 것이다. 인위적으로 선수들을 휘어잡으려는 시도는 강한 반발만을 살 뿐이었다. 게다가 구단도 이때부터 ‘감독 흔들기’를 시작했다. 천보성 감독 취임과 함께 김영덕 전 빙그레 감독을 2군 감독으로 영입하는가 하면, 이광은 감독 2년차에는 김성근 전 쌍방울 감독을 2군 사령탑에 앉혔다. 감독 처지에서는 구단의 의도를 오해하기 딱 좋은 상황. 여기에 새로 도입된 외국인 선수제도와 자유계약선수 시장에서 번번이 실패만 거듭한 것도 전력에 큰 마이너스 요인이 되었다.

2001년 중반 김성근 감독이 팀을 맡았을 때, LG는 만신창이가 된 상태였다. 투수진에는 쓸 수 있는 선수가 거의 없다시피 했고, 팀워크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최악의 상황에서 김 감독이 꺼낸 카드는 2군에서 발굴한 신윤호였다. 김성근 감독의 집중 조련을 받은 신윤호는 그해 평균자책 3.12에 15승 18세이브를 거두며 투수 3관왕에 오르는 깜짝 활약을 펼쳤다. 이에 바닥을 기던 LG의 팀 성적도 조금씩 상승세를 타기 시작해 6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이듬해인 2002년은 ‘김성근 매직’이 펼쳐진 해다. 그해 LG는 돌아온 이상훈과 이동현이 마운드에서 맹위를 떨치며 시즌 팀 평균자책 부문 3위로 올라섰다. 타선에서도 신인 박용택과 만년 2군 선수였던 최동수가 맹타를 휘둘렀다. 4위로 포스트시즌에 오른 LG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연전연승, 현대와 KIA를 꺾고 한국시리즈에서 삼성과 만났다.

2002년의 한국시리즈는 역대 최고의 명승부로 손꼽힌다. 모두가 삼성의 우세를 예상한 가운데 펼쳐진 시리즈였지만 투혼으로 뭉친 LG 선수들은 삼성을 막다른 골목까지 몰아붙였다. 특히 고관절부상을 딛고 경기에 나선 김재현의 투혼은 삼성 팬들조차 경의를 보일 정도였다. 2승 3패로 뒤진 상태로 맞이한 6차전 9회말. LG가 9-6으로 앞선 상황에서 삼성이 마지막 공격에 나섰다. LG가 이길 경우 분위기상 7차전도 삼성이 잡기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준플레이오프부터 연일 혈전을 치르며 올라온 LG 선수들은 이미 체력이 바닥난 상태였다. 결국 힘이 빠진 마무리 이상훈이 이승엽에 동점 3점 홈런을 얻어맞고, 곧이어 마해영이 끝내기 홈런을 터뜨려 LG는 또 한 번 준우승에 그쳤다.

LG는 2002년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끝으로 부진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문제의 해결책은 무엇일까. 분명한 것은 플래카드를 떼어내고 새로 걸 듯 손쉬운, 눈에 보이는 해결책만으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명문 구단의 모습을 되찾기 위해서는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근본적이고 지속적인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 <출처: LG 트윈스>

최약체로 예상된 팀을 한국시리즈까지 끌어올린 공헌에도 불구하고, 한국시리즈 뒤 LG는 김성근 감독을 해임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김성근 야구는 LG 팀컬러와 맞지 않는다”는 것. 하지만 실제로는 노장 선수들을 정리하려는 구단과 이에 반대하는 감독 사이의 감정대립이 시즌 내내 계속된 결과였다. 김성근 감독은 팀에 대한 자신의 청사진을 설명하려고 구본무 구단주를 직접 찾아가기까지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김성근 감독을 내친 LG는 자신들의 팀 컬러가 ‘자율야구’라는 것을 보여주려는 듯, 한화 사령탑으로 있던 이광환 전 감독을 다시 영입했다. 하지만 신바람 야구를 펼친 1990년대와 2003년의 LG는 너무나도 다른 팀이었다. 대조적인 스타일의 사령탑 교체에 LG 선수들은 좀처럼 적응하지 못했고, 이병규와 김재현 등 부상자도 속출했다. 차세대 거포로 기대했던 김상현은 하필 구단주가 야구장을 방문한 날 팀을 패배로 몰아넣는 초대형 실책을 범한 뒤, 이후 자신감을 잃고 부진에 빠졌다. 결국 최종 순위는 6위.

시즌이 끝난 뒤 LG는 국내로 복귀한 선동열 영입전에 나섰다. 하지만 선동열이 뜻밖에 삼성 행을 택하면서 감독직에 갑작스런 공백이 생겼고, 결국 당시 ‘40대 젊은 감독’ 유행에 편승해 이순철 작전 코치를 새 감독으로 발탁했다. 모두가 깜짝 놀란 의외의 선택이었다. 이순철 감독은 2004년 시즌 중반까지만 해도 2위까지 치고 올라가며 기대를 모았지만, 이후 급격하게 성적이 추락하며 6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2005년에도 다시 6위에 그친 뒤, 2006년에는 총체적인 난국 속에 8위까지 추락해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최하위의 수모까지 겪었다. 결국 이순철 감독은 2006 시즌 도중 사퇴하고 양승호 수석코치가 감독대행을 맡아 남은 시즌을 수습했다.

선동열, 김경문, 조범현 등 이른바 ‘젊은 감독’들이 성공을 구가한 것과 달리 이순철의 LG는 실패로 끝난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채 감독직을 맡을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갑작스레 자리에 오른 것이 문제였다. 또한 구단에서는 ‘리빌딩’만을 주문했을 뿐 성적을 내기 위한 제대로 된 지원을 하지 않았다. 기껏 영입한 선수가 ‘홍현우 시즌 2’가 된 진필중. 당시 LG에선 “진필중이 KIA에서 부진했던 이유는 광주구장이 작아서 바깥쪽 일변도 승부를 했기 때문”이라며 “잠실구장이 넓어서 마음껏 몸쪽 승부를 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했지만, 사실 진필중은 원래부터 몸쪽 공을 잘 던지지 않는 투수였다.

무엇보다 이순철 감독 영입과 함께 LG는 팀의 구심점이 되는 선수 세 명을 한꺼번에 쫓아내는 최악의 실수를 저질렀다. LG는 2002년부터 이상훈, 유지현, 김재현 등 베테랑을 정리하려고 계획하고 있었다. 유지현은 연봉조정신청에서 팀에 승리하면서 미운털이 박혔고, 구단과 종종 대립각을 세우는 이상훈도 눈엣가시였다. 이광환 전 감독은 “2003년 7월쯤 단장이 와서는 노장 세 명을 시즌 뒤 정리하라고 했다”며 당시를 회고한다. “기가 차서 ‘이게 대체 누구 아이디어냐? 내가 있는 동안에는 절대 안 된다. 차라리 날 자르려면 잘라라’하고 강하게 야단쳤다.” 이 감독은 시즌 뒤 감독직에서 물러났고, 세 노장 선수도 순차적으로 ‘잘렸다.’

흔히 ‘노장 선수를 젊은 유망주로 대체하는 것’을 리빌딩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당시 LG가 한 구조조정은 제대로 된 리빌딩이라 하기 어렵다. 왜냐. 이광환 감독의 말을 계속 들어보자. “집을 리모델링하려면 기둥을 하나 빼고 하나를 교체하고, 안 무너지는 상태로 또 다른 기둥을 박고 해야 한다. 그런데 LG는 기둥 세 개를 한 번에 확 빼 버린 거다. 94년 우승 당시만 봐도 신인 3인방의 활약도 있긴 했지만, 마운드에 김용수도 있고 내야에도 한대화라는 기둥이 있었다. 그렇게 기둥이 있어야 팀도 살고 노장과 신인이 모두 살 수 있는 거다. 투수 세 명이 빠지는 것과, 당시 LG처럼 투수, 타격, 수비의 기둥이 모두 빠지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결국 팀의 기둥이 모두 빠져버린 상태에서 이순철 감독이 제대로 된 ‘리빌딩’을 하기란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단 얘기다. 오히려 이 감독은 인위적인 세대 교체에 총대를 메고 나섰다가 고참 선수들과 마찰을 빚었고, 이게 지도력에 큰 상처를 내는 결과로 돌아왔다.

김광삼은 2000년대 LG의 난맥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선수다. 지도자의 욕심과 원칙 없는 기용에 의해 김광삼은 투수와 타자를 수 차례 오가며 여러 해를 허비해야 했다. <출처: 안준철>

‘기둥 3인방’이 퇴출된 결과, LG의 젊은 선수단에는 ‘본받을 만한 롤모델’이 더는 존재하지 않게 됐다. 누구라도 절로 인정할 만한 실력과 품성을 모두 갖춘, 팀을 위해 자기를 희생할 줄 아는, 후배들이 누구나 따르고 존경할 만한 선배가 LG에는 없었다. 이숭용-송지만의 현대, 송진우의 한화, 양준혁의 삼성, 이종범의 KIA 등 대부분의 팀에 구심점이 되는 ‘프랜차이즈 스타’가 있는 것과는 딴판이었다.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은 개인주의와 ‘돈’. 2006년 시즌 막판 옵션이 잔뜩 걸린 고참급 선수들이 출전을 기피하면서 LG의 성적이 더욱 추락했던 일화는 유명하다. 김재박 감독이 부임한 2007년 이후에도 고비 때마다 LG의 발목을 잡은 것은 과도한 옵션 계약과 여기에 집착한 일부 선수들의 개인플레이였다. ‘우리’보다 ‘내’가 앞에 놓이는 팀이 좋은 성적을 낼 가능성은, ‘8888’을 눌렀는데 ‘1111’로 전화가 걸릴 가능성보다도 희박하다. 보고 배울 선배가 없는 팀에서 좋은 후배가 성장할 가능성도 마찬가지다. 당시 구단의 잘못된 판단이 낳은 결과는 한 시즌만이 아니라 지금까지도 석면가루처럼 LG를 떠돌고 있다.

터널의 끝은 어디일까

2006년 시즌 도중 감독대행을 맡게 된 양승호 현 롯데 감독은 임명과 동시에 “꼴찌 탈출이 목표가 아니다. 이름값으로 선수기용을 하지 않겠다. 성실한 플레이를 보이지 않으면 가차 없이 2군으로 보내겠다. 대신 젊은 선수들에게 많은 기회를 주겠다”고 선언했다. 실제로 LG는 시즌 초 KIA에서 데려온 노장 마해영과 최상덕이 2군으로 내려 보내고, 서용빈과 진필중 등 노장들도 뒷선으로 보냈다. 대신 2군 홈런왕 출신 최길성과 거포 유망주 박병호가 주전으로 중용됐다. 심수창은 유망주 꼬리표를 떼고 10승 투수로 올라섰고, 우규민도 LG 마무리투수로 자리를 잡았다.

여기서 조금만 더 참고 리빌딩을 진행하면 강팀이 될 수도 있었던 상황. 하지만 시즌 뒤 LG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리빌딩 대신 ‘즉각 성적’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거액을 들여 한국시리즈 4회 우승 경력의 김재박 감독을 영입한 것이다. 이는 곧바로 4강 싸움에 뛰어들겠다는 의미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김재박 감독의 LG는 첫해인 2007년 5위로 ‘반짝’한 것을 제외하면 실망스러웠다. 2008년에는 구단 역사상 두 번째 최하위의 수모를 맛봤고, 2009년에도 7위로 간신히 꼴찌를 면했다. 한 야구 관계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현대 시절 김재박 감독의 성공은 야구를 잘 아는 최고의 프런트가 뒷받침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LG는 그렇지가 못한 구단이다. 또 김재박 감독의 리더십은 현대처럼 어느 정도 전력이 갖춰진 팀에 적합하지, 리빌딩 중인 LG와는 처음부터 어울리지 않았다.”

김용휘 사장이 이끈 현대 유니콘스는 팀 전력에 필요한 부분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진단하고 해결책을 찾는 능력이 뛰어났다. 반면 김재박 감독의 LG는 선수 영입에서 매번 잘못된 판단으로 일관했다. 투수력이 허약한 팀이 엉뚱하게도 FA 시장에서 야수 2명을 영입한 것은 약과. 3루수를 새로 영입하면서 다른 팀에 보낸 기존 3루수(김상현)는 곧바로 2009 프로야구 최우수선수로 탈바꿈했다. 말끝마다 ‘선수가 없다’면서 정작 김상현 트레이드 때는 KIA에서 달라고 하지도 않은 전천후 내야수 박기남을 자진해서 얹어줬다. 포수 조인성과 거액의 FA 계약을 체결해 놓고는 ‘포수가 없다’며 김정민 코치를 현역으로 복귀시켰다. 그리고는 포수 최승환을 두산으로 트레이드했다. 투수력도 약하고 장거리 타자도 없는 팀이 팬서비스를 하겠다며 외야 펜스를 앞으로 훌쩍 당겼다. 애초에 좋은 성적이 나오기 어려웠다.

2009년을 끝으로 김재박 감독과 결별한 LG는 두산 2군 감독을 지내며 ‘화수분 야구’에 크게 공헌한 박종훈을 새 사령탑에 선임했다. 또한 ‘감독들의 무덤’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려는 듯 5년의 파격적인 계약 기간을 보장했다. 박 감독은 부임 첫해인 2010년 6위로 가능성을 보인 뒤, 2011년에는 시즌 초반 1위까지 순위를 끌어 올리며 팬들에게 한때 ‘가을야구’의 희망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마무리 부재와 선수들의 부상으로 시즌 중반부터 순위가 급격히 하락하기 시작해 결국 9년 역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거듭되는 성적 부진에 LG 구단은 스카우트팀을 대대적으로 강화하고, 신연봉제와 멘탈 트레이너를 도입하는 등 여러가지 변화를 시도하며 절치부심하고 있다. LG 관계자는 “변화의 성과가 나타나기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다”며 팀이 달라지는 과정을 지켜봐줄 것을 주문했다.

두산과 LG는 1985년 이후 잠실 야구장을 함께 사용하는 ‘한지붕 두 가족’이다. 두 팀은 성적이 좋을 때나 나쁠 때나, 한결같은 라이벌 관계를 이루며 많은 명승부를 연출했다. 다만 올 시즌에는 두 팀 모두 가을야구 진출에 실패하며, 잠실의 가을이 쓸쓸할 전망이다. <출처: 손윤>

팀이 6668-5876의 전화번호를 찍는 동안에도 LG 팬들은 때로는 열렬한 환호로, 어떤 때는 매서운 질책으로 팀에 대한 응원을 멈추지 않았다. LG의 성적에 관계없이 항상 잠실야구장과 구리야구장은 선수들을 응원하는 팬들의 발길로 한산할 새가 없다. 이는 1983년 이후 한번도 포스트시즌에 나가지 못한 MBC 시절에도 마찬가지였다. “신은 서울에 최악의 팀과 최고의 팬을 함께 주셨다”는 어느 LG 팬의 절규는 과장이 아니다. 과연 LG가 최고의 팬들에게 걸맞은, 최고의 팀으로 다시 돌아오는 날은 언제일까.

[술취한호랑이]

부끄러운 기록이죠...10년 연속 플옵진출 실패...
어찌 보면 프런트의 입김이 팀에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를 보여준 명확한 사례가 아닌가 싶네요.
사랑한다 엘지...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