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이름은 공모와 심사를 거친 끝에 ‘청룡’이 선정됐다. 당시 MBC 관계자는 신문 인터뷰에서 “공모결과 ‘드래곤즈’란 이름이 압도적으로 많았으나 외래어인데다 가까운 일본에도 유사한 팀명이 있어 청룡으로 부르기로 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MBC 사옥이 자리한 정동이 옛날부터 ‘용마루’로 불렸다는 것도 청룡이 선정된 이유 중 하나. 한편 MBC 초대 감독에는 원래는 ‘빨간 장갑의 마술사’ 김동엽 감독이 유력했다. 김동엽 감독은 당시 MBC에서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은 물론, MBC의 프로야구단 창단 과정에서도 많은 일을 했다. 하지만 김 감독을 데려간 것은 해태였다. 마찬가지로 재일교포 출신 김영덕 감독도 고려 대상이었지만 OB에서 먼저 영입했다. 대안으로 박현식, 배성서 등의 이름이 거론되다가 일본에서 돌아온 한 거물급 인사의 이름 석자에 모든 것이 정리됐다. 1981년까지 일본 프로야구에서 선수로 활약한 백인천이 주인공이다.
MBC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6천만 원의 거액을 주고 백인천을 감독으로 영입하며 팀 창단의 채비를 마쳤다. 이후 MBC는 프로야구 개막일까지 방송을 통해 연일 일본과 미국 프로야구의 명장면을 내보내며 프로야구 ‘붐’을 일으키는데 주력했다. 1982년 2월 26일, 서울 문화체육관에서 MBC 청룡의 화려한 창단식이 열렸다. 이날 창단식에는 박영수 서울시장, 서종철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는 물론 MBC 소속 인기 탤런트와 코미디언들이 대거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이날 참석한 22명의 원년 선수단과 코칭스태프 명단은 다음과 같다.
감독: 백인천 코치: 이재환, 유백만 투수: 하기룡, 정순명, 이길환, 이광권, 유종겸, 차준섭, 박석채, 김시철 포수: 유승안, 김용운, 최정기 내야수: 김용윤, 김용달, 김인식, 조호, 박재천, 이광은 외야수: 이종도, 신언호, 송영운, 배수희, 최정우, 김봉기
개막전 만루홈런과 불멸의 4할 타율
원년 시즌 전 대다수의 야구 전문가는 MBC가 삼성과 함께 상위권을 다툴 것으로 예상했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고교팀을 보유한 서울 지역을 연고로 둔만큼 최고의 선수들로 팀을 꾸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MBC는 프로 원년 46승 34패로 전체 3위에 머물렀다. 이유가 무엇일까.
한 고교야구 감독은 “창단 당시 MBC의 코칭스태프는 물론 선수단 구성에도 문제가 있었다”고 회고한다. 동년배인 백인천 감독과 이재환, 유백만 코치는 시즌 내내 매사에 불협화음을 빚었다. 게다가 두 코치는 모두 투수 출신으로, 백인천 감독이 선수로도 뛰는 점을 감안하면 비효율적인 코칭스태프 구성이었다. 결국 MBC는 후기리그 들어 충암고 감독 출신의 한동화를 코치로 영입해 코칭스태프를 보강해야 했다. 선수단 구성도 아쉬움을 남겼다. 서울지역 선수들을 대상으로 한 드래프트에서 그해 세계선수권 출전으로 팀 합류가 불가능한 김재박, 이해창을 지명한 것이다. 이에 서울지역 지명권을 함께 행사한 OB가 재빠르게 박철순을 지명했고, 이는 원년 OB 우승의 결정적인 원동력이 되었다. MBC는 하기룡과 이길환, 이광권이 마운드의 주축을 이뤘지만 확실한 에이스가 없다는 것은 분명 약점이었다. 게다가 지나치게 특정 포지션에 편중된 선수단 구성으로 포수 출신인 이종도와 신언호가 외야수를 보는 등 수비력에도 허점이 많았다.
여기에 백인천 감독과 구단 프런트와의 관계도 원만하지 못했다. 일본에서 프로야구를 먼저 경험하고 온 백 감독은 자신의 노하우를 최대한 구단에 전해주려고 했지만, 이는 받아들여지기보다는 충돌만을 낳았다. “전지훈련이 필요하다 생각해서 강릉에 가려고 했는데, 사람들은 아마야구 생각만 하고 ‘뭐 하러 멀리까지 가서 하느냐’고 반문했다. 전지훈련을 가서도 야구공과 장비를 지원해달라고 했더니, ‘뭐가 이렇게 많이 필요 하냐’면서 ‘공은 한 박스만 가지고 가서 하다가 모자라면 또 한 박스 올려달라고 요청해라’는 식이었다. 게다가 방송사가 민간 기업이 아닌 공기업 이다보니 뭐 하나 요구하는 것도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결재해서 상부의 승인을 받기까지 십 여 단계를 거쳐 올라가곤 했다. 그런 문제들을 회사 관계자들에게 이해시키려고 노력을 많이 했는데, 정작 사람들이나 언론에서는 ‘트러블을 일으킨다’는 식으로 말하더라.” 백인천 감독의 이야기다. |
첫댓글 부끄러운 기록이죠...10년 연속 플옵진출 실패...
어찌 보면 프런트의 입김이 팀에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를 보여준 명확한 사례가 아닌가 싶네요.
사랑한다 엘지...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