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9월 11일 - 칠레 쿠데타, 아옌데 정부 전복
아옌데 대통령 생전의 마지막 모습. 이 사진이 찍힌 직후 그는 쿠데타군에 맞서다 목숨을 잃었습니다. 1973년 9월 11일 아침,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 국영 라디오는 반복해서 “오늘 산티아고에 비가 내립니다”라는 방송을 내보냅니다. 이 날 산티아고는 화창한 날씨였지만, 아나운서의 잘못된 기상예보는 계속됩니다. “산티아고에 비가 내린다”는 말은 역사상 최초로 선거를 통해 집권한 아옌데 정부를 무너트리려는 쿠데타 군의 행동 개시 신호였습니다.
쿠바 혁명 이후 1960년대와 70년대 내내, 라틴아메리카는 격동기를 겪고 있었죠. 독점 자본주의의 횡포에 신음하던 남아메리카 민중은 혁명에 열광했고, 대의를 위해 죽어간 체 게바라의 혁명기운이 대륙 전역으로 퍼져나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칠레는 다른 남미 국가와는 다른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무장투쟁보다는 규칙과 질서를 존중하여 정파를 초월한 인민연합이 결성한 것이죠. 그리고 1970년 9월 4일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사회주의정당들의 연합 정당인 인민연합 후보로 출마한 살바도르 아옌데는 36.2%를 득표하여 호르헤 알렉산드리 전 대통령을 1.3% 차이로 누르고 승리합니다. 수 백년간 이어져 온 제도적 억압을 깨트린 위대한 칠레 민중의 승리였습니다.
대통령 취임 선서를 하는 아옌데. 하지만 칠레의 승리는 험난한 길을 예고하는 것이었죠. 미국은 대통령 선거 기간 내내 주요산업의 국유화와 소득의 재분배, 사회주의 국가들과의 연대를 공약으로 내건 아옌데의 승리를 저지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여왔고, 아옌데가 집권하자 칠레에 대한 경제 봉쇄에 들어갑니다. 미국 정부가 구리 재고를 있는 대로 풀어 칠레의 주력 수출품인 구리 국제가격을 떨어뜨리고 네슬레 같은 식품회사에까지 압력을 넣어 분유 수출까지 막는 압박을 가한 결과 아옌데가 집권한 1970년 34.9%였던 물가 상승률이 3년 만에 508.1%로 뛰고 성장률은 2년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죠. 그리고 CIA는 칠레 군부를 부추겨 쿠데타까지 사주한 것이죠.
대통령궁에 쿠데타군 전투기의 폭탄이 떨어지기 직전인 오전9시10분, 아옌데 대통령은 국민들을 향해 마지막 방송을 내보냅니다.
“역사의 전환점에서 나는 인민의 충성에 대해 내 생명을 바쳐 보답하겠습니다. 우리가 수많은 칠레 인민들의 가슴에 뿌린 씨앗은 반드시 싹을 피우게 될 것입니다. 적의 힘은 강대합니다. 아마도 적은 우리를 굴복시킬 것입니다. 그러나 사회의 진보는 범죄와 무력으로 결코 막을 수 없습니다. 역사는 우리들의 것입니다. 역사는 민중이 창조하는 것입니다. 곧 다시 역사의 큰 길이 열려 자유를 찾은 사람들이 보다 나은 사회를 향해 전진하는 날이 반드시 올 것임을 저는 믿습니다. 칠레 만세! 칠레 인민 만세! 칠레 노동자 만세!”
대통령궁을 포위한 쿠데타군. 아옌데 대통령은 자신을 경호하고 있던 경호원들에게 대통령 궁을 떠나라는 명령을 내리고 직접 소총을 들고 쿠데타군에 항전하다 머리에 실탄을 맞고 숨지고 말았죠. 쿠데타 직후 칠레에는 피바람이 불었습니다. 이후 17년간 계속된 칠레 군정 기간 2만8천 여명이 구금, 고문 등의 피해를 입었고, 3천명이 살해됩니다.
쿠데타로 헌정을 유린하고 철권통치를 휘둘렀던 ‘아우구스토 피노체트’는 1988년 10월 치루어진 대통령 집권연장찬반투표에서 패배하여 그해 대통령직을 사임하였지만, 생전에는 법의 단죄를 받지 않았고 지난 2006년 12월 91세로 사망합니다.
작년 8월 산티아고에서 연합뉴스 특파원이 보내 온 기사는 아직도 아물지 않은 쿠데타의 아픈 상처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35년 전 칠레 군부 쿠데타 과정에서 실종된 한 여성의 시신이 미라 상태로 보존된 채 발견됐다. 현지 경찰은 최근 칠레 북부 사막의 군사훈련지역에서 발견된 여성 미라의 신원이 지난 1973년 9월 실종된 모니카 베나로요라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일간 `라 나시온'이 30일 보도했다. 당시 지방정부 공무원이었던 베나로요는 쿠데타 직후 군부에 의해 구금됐지만, 이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졌다.
그러나 이번 미라 발견을 계기로 당시 군부가 베나로요를 살해한 뒤 시신을 사막지역에 유기했다는 사실이 밝혀지게 됐다. 세계에서 가장 건조한 지역으로 꼽히는 칠레 북부 아리카의 사막지역에 버려진 베나로요의 시신은 부패되지 않고 자연적으로 미라로 변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경찰은 완벽한 상태로 남아 있는 미라의 지문을 이용해 베나로요의 신원을 확인했다. 또한 경찰은 베나로요의 시신 뿐아니라 담배 등 소지품과 옷도 실종 당시 상태 그대로 보존됐다고 설명했다.
살바도르 아옌데 (1908.6.26~1973.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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