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도예배
묵상기도 후
살아계신 하나님께 사도신경을 고백하며 추도예배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1) 신앙고백 ——————- 사도신경 ——————— 다같이
2) 찬송 ———찬송가325장으로 하나님께드리겠습니다
3) 기 도 ————————————————– 대표자
우리를 창조하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믿음과 희망을 가지고 살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오늘은 고 ( ) 성도님께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하늘나라에 가진지 ( )주년 되는 날이기에 사랑하는 아들, 딸, 며느리 그리고 고인의 혈육들이 모여서 고인이 사시던 집에서 추모예배를 드리고자 합니다.
오늘 이 추모예배를 통하여 우리의 믿음과 사랑을 다시 한 번 돌아볼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여기 모인 유족들 각자가 고인이 살아계실 때 모습을 생각하면서 못다 한 효도를 반성하며, 우리의 부족함을 고백합니다. 여기 유족들이 이제 어른이 되어 자식을 낳고, 키워보고, 나이가 들면서
( ) 님에 대한 거룩한 사랑과 자식들 모르게 흘리신 눈물을 늦게나마 깨닫게 하여주시니 감사합니다.
떠나신 고인의 자리가 얼마나 높고, 넓고 깊은 줄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자비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이 자리가 경건한 자리가 되게 하시고, 가족들이 외롭지 않게, 그리고 신앙적으로 어려움이 닥치지 않도록 축복하여 주시고,
믿음의 가문이 되도록 은총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추도예배 말씀>
은혜받을 말씀은 히브리서 11:13~16입니다
11:13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11:14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11:15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11:16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나그네와 본향
히브리서 11장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 모세와 같은 기라성 같은 믿음의 선진들이 소개되어 있는 믿음의 전당과도 같은 장입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믿음의 선진들의 특징을 소개할 때 자신들을 땅에서는 외국인이며 나그네라 고백했던 사람들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끝없이 무엇인가를 찾아 헤매는 우리의 삶 또한 나그네와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같은 나그네 삶이라고 말하지만 갈 곳을 알지 못해 헤매는 우리와 달리 믿음의 선진들은 가야 할 곳, 곧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더 나은 본향을 향하던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본향을 향한 나그네의 삶을 살았던 믿음의 선진들은 어떠한 삶의 자세를 가지고 살았을까요?
첫째, 나그네는 이 세상 삶에 대해 잠시 지나가는 것임을 잊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인생은 나그네길이라 말하면서도 이 세상에 영원히 안주할 것 같은 삶을 삽니다.
재물과 명예를 쌓아두고 천년이고 만년이고 길이길이 살 것처럼 살아갑니다.
그러나 믿음의 선진들이 자신을 ‘나그네’라고 말할 때는 이 세상의 삶은 지나가는 것이요, 자신은 잠시 살다가 떠날 자임을 엄숙히 고백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나그네입니까? 그렇다면 하루하루 세월을 아끼며 사십시오.
하루하루가, 지금 이 시간이 평생에 단 한 번뿐인 줄 알고 매순간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둘째, 나그네는 세상의 유혹을 뿌리치며 사는 사람입니다.
자신이 본향을 향하는 나그네임을 아는 사람은 이 세상에 영원한 가치를 두지 않습니다.
그래서 현세의 유혹을 뿌리치며 삽니다. 베드로전서 2:11을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나가는 길에 잠시 얻을 재물과 명예가 무엇이라고 그것에 의지하며 기대려고 합니까?
짐이 많아지면 나그네의 여행길은 오히려 괴롭습니다. 그래서 여행을 갈 때면 될 수 있는 대로 배낭을 가볍게 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이 세상에 영원히 머물지 않는 나그네라는 것을 안다면 세상의 유혹과 욕심들을 과감하게 떨쳐 버리는 용기와 결단을 가지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떨쳐버리고 물리쳐야할 욕심과 유혹은 무엇입니까?
셋째, 나그네는 본향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사는 사람입니다.
본문 16절을 보면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세상은 믿는 우리가 거할 곳이 되지 못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가 소망하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믿는 우리라면 영원한 생명을 소망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에는 영원한 생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믿는 우리가운데 세상을 소망하며 세상을 살만한 곳으로 여긴다면 그것은 결국 영원한 생명을 향한 소망이 없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믿는 자는 더 나은 본향, 천국 본향, 우리 주님이 계시는 그곳을 사모하며 삽니다.
따라서 믿음의 사람은 세상을 의지하지 않고 외국인처럼 나그네처럼 살아갑니다.
사람들이 인생을 나그네 길이라고 말할 때 그 속에는 일종의 허무주의가 배어있습니다. 현실에서 도피하고자 하는 나약한 마음이 스며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이 나그네라고 고백할 때는 그 속에 소망이 약동합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안전하고 견고한 본향에 대한 소망 말입니다. 때문에 하늘 나그네의 삶은 본향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는 순례자의 삶이지 정처 없는 방랑자의 삶이 아닙니다.
시련의 비바람이 아무리 거세더라도 본향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나아가는 우리를 결코 침몰시키지 못합니다.
방랑자의 삶이 아니라, 본향에 대한 천국소망을 품고 한 걸음씩 나아가는 순례자의 삶을 살아가도록 합시다.
입술로는 나그네라고 말하면서도 이 땅에서 천년만년 살 것 같은 어리석은 욕심에 사로잡혀 살지는 않았는지 우리 자신을 돌아봅시다.
그리고 올해 뿐 아니라 우리 평생의 삶 가운데 천국본향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부끄러움 없는, 후회 없는 순례자의 삶을 사는 가족 되기를 바랍니다.
주기도문을 추도예배를 마치겠습니다.
예배 후 준비된 음식을 함께 나누며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을 가지며 친교의 시간을 갖는 것도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