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성모 마리아께서 지상 생애를 마치신 다음 하늘로 불려 올라가셨다는 신앙 교의에 따라 성모님의 승천을 기리는 의무 축일이다. 성모님의 승천은 성경에 기록되지는 않았지만, 초대 교회 때부터 내려오는 진승에 따른 것이다. 1950년 비오 12세 교황은 성모 승천의 신비를 "믿을 교리"로 선포하였다, 성모 승천은 그리스도 안에서 산 모든 사람이 누리게 될 구원의 영광을 미리 보여 주는 "위로와 희망의 표지"이다.
- 2022년 다해, 8월 매일 미사책 93쪽에서 옮겨 적음 -
[여름 밤]
글 / 노천명
앞벌 논가에선 개구리들이 소나기
소리처럼 울어 대고,
삼밭에선 오이 냄새가 풍겨오는 저녁,
마당 한 귀퉁이에서 엉겅퀴, 다북쑥,
이런 것들이 생짜로 들어가
한 데 섞여 타는 냄새란 제법
독기가 있다.
거기에는 모깃불 이외의 값진 여름
밤의 운치가 있다.
달 아래 호박꽃이 화사한 저녁이면,
군색스럽지 않아서 좋은 넓은
마당에는 모깃불이 피워지고,
그 옆에는 멍석이 깔려지고,
여기선 여름살이 다람질이 한창
벌어진다.
멍석에 이렇게 앉아 보면,
시누이와 올케도 그렇게 정다울 수가
없고,
지긋한 나이를 한 어머니가 큰
아기에게 다림질감을
붙잡히고 들려주는
별처럼 머언 얘기가 그렇게 진지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런 저녁,
함지박에는 갓쪄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노오라 옥수수가
먹음직스럽게 담겨 나오는 법이다.
쑥댓불의 알싸한 내를 싫잖게 맡으며,
종이라에 덤비는 모기를 불부채로
날리면서 옥수수를 뜯어 먹고
누웠으면,
여인네들의 이야기꽃이 핀다.
멍석으로 나오는 별식은 옥수수뿐이
아니다.
연자간에서 갓 빻아 온 햇밀에다
굵직굵직하고 얼쑹얼쑹한 강낭콩을
두고 한 밀범복이 또 있다.
그 구수한 맛은 이런 도시의 식당
음식점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것이다.
온 집안에 매케한 연기가 골고루 퍼질
때쯔ㅜㅁ 되면,
쑥 냄새는 한층 짙어져서
가정으로
들어간다.
영악스럽던 모기들도 어릿어릿하면,
수풀로 반딧불을 쫓아다니던 아이들도
하나둘 잠자리로 들어가고,
마을의 여름밤은 깊어만 간다.
그리고 아낙네들은 멍석 위에 누워서,
생초 모기장도, 불면증도 들어 보지
못한 채,
꿀 같은 단잠에 단잠에 빠져든다.
쑥을 더 집어넣는 사람도 없어
모깃불의 연기도 차차 가늘어지고
보면,
주위는 바다 밑처럼 고요해진다.
굴 속에서 베를 짜면 마귀 할미라도
나와서 다닐 성싶은 이런 밤엔,
헛간 지붕 위에 핀 박꽃의 하이얀 빛이
나는 무서워진다.
한잠을 나고 난 아기는 밤중 뒷산
뻐꾸기 울음 소리에 선득해서
엄마 가슴을 파고들고,
삽살개란 놈이 괜히 짖어 대면
마침내 옹 동네 개들이 달을 보고
싱겁게 짖어 댄다.
성모 승천 대축일 새벽 6시 미사에 참례하였다.
오전 10시 미사에서 성세 성사를 집전하게 된다고 ㅏ여 아내와 함께 새벽 미사에 참례하였다.
위의 노천명 시인이 지은 가슴이 싸하고, 옛날 시골 풍경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한 [여름밤] - 名詩였다 - 이라는 시를 골라 지인들에게 친절하게 일일이 송부하고 있는데, K 선배가 낮 1시경 인사동에서 만나 점심 식사를 한 다음, 광화문 집회 현장을 주욱 둘러 보자고 하였는데, 아닌 게 아니라 어제 N 선배도 오후에 집회 현장에서 보자는 연락이 와 있었기에 그러마 하고 대답하고 시간 맞춰 시내로 진출하였다.
된장이 예술이라는 식당에서 막걸리 한 주전자를 시켜 세 명이 나워 마신 후 된장 2인분으로 세 명이 나눠 먹고 나니 평상시 아침밥 대신에 삶은 달걀 한 알과 과일 조금만 먹고 밥을 잘 먹지 않는 내 입장에서는 왠지 모르게 배가 허전함을 느끼기;도 하였다.
그런데 식사 도중에 몇 마디 나눈 대화로 봐서는 도저히 화합이 불가능한 사람들이구나 함을 절실히 깨달으면서도 중재(?)나 아무런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묵묵히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내 사정도 딱하기는 매 한가지였지 싶다.
식사 후 만 2년 만에 집회가 열린다는 광화문으로 걸어 가는데, 제77주년 광복절 공휴일의 도심 풍경은 한산하면서도 집회 영향인 듯, 왠지 모르게 긴장감 마저 감도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고 있었다.
2년 전에는 참가자들을 코로나로 ㅇ니한 방역법을 어긴 범범자 취급을 하는 통에 한동안 마음이 불편했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광화문에 다드르니, 전국 가 지방에서 전세벼스 편으로 올라 온 지방 국민들을 비롯하여 서울의 각지에서 온 시민들로 제법 많은 인파가 모여 있었다.
한편 내가 1970년대 말과 80년대 초에 근무했던 종로구청이 완전히 헐고 종합 청사를 신축한다며 펜스를 치고 ㄱ오사중에 있어 깜짝 놀라기도 하였다.얼마나 시내에 나오지 않았던가 싶었던 게다.
옛 수송초등(국민)학교 건물이었던 종로구청 옛 청사는 이제 사람들의 기억 속에만 머무르게 되었다는 사살이 세월의 유장함을 느끼게 하고도 남게 하였지 싶다.
그런데 우리는 마치 집회 모양을 취재(?)라도 하는 사람들 처럼 어느 한 곳에 머무리지를 않고 KT 건물을 시작으로 프레스센터 옆 파이넨스빌딩 까지 주욱 걸어 가다 보니 이 집회에 온다고 기별해 온 이들 단 한 명과도 조우하지 못하고 카톡으로만 상황을 살폈는데, 나중에는 현장에서 일체의 ㅈ너화 통화가 불통일 만큼 통신 장애까지 생겨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을 포기하게 만들었는데, 그러다 보니 현장에 늦게 도착하신 듯한 N 선배와는결국 조우하지 못하고 그냥 헤어진 결과가 되었다.
우리도 만나기로 했던 파이넨스 빌딩 까지 갔다가 두 K 선배들은 후속 일정들이 있다며 간다고 하길래, 시청역에서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정작 4시에 시작한다는 집회는 전혀 참관치 못하고 그대로 온 ㄱ서이 종래 마음에 걸렸던 게다.
기실은 2시 반에 만나기로 한 막월회 멤버들과의 당구 약속이 잡혀 있었던 터라, 선배들의 이유 아닌 이유를 대며 간다고 하니, 에라, 잘(?) 되었다 라고 하며 그대로 창동으로 오고 말았던 게다.
그런데 무아지경(?)에 빠지는 당구 게임의 열풍은 도가 지나칠 정도로 세서 저녁 식사 후에도 밤 11시 넘어 까지 게임을 즐겼으니, 급기야 아내로 부터 경고성(?) 전화가 걸려 오는 등 분위기가 험악(?)하였는데, 나이 칠십 줄을 넘기고서도 젊은이들 처럼 그대로 놀면 어떻게 하느냐는 지적이 공연히 할 말을 잃게 만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정 ㄴ머어 귀가한 후에 땀으로 흠뻑 젖은 몸부터 씻고 나서 모바일로 하는 복음쓰기를 한 다음, 일지를 적는데, 졸음이 쏟아져 횡설수설을 늘어 놓고 미완성으로 둔 채 새벽 3시 넘어 그만 잠이 들고 말았던 것이다.
어느새 광복 77주년이나 된 세월이다.
자유 대한민국이 영원하기를 두 손 모아 기도를 바친다.
아무튼 오늘도 천주님께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