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침없이 하이킥> vs <거침없이 하이킥>
누가 뭐래도 <거침없이 하이킥>은 현재 최고의 시트콤으로 자리 잡았다. <거침없이 하이킥>이 비평적인 면과 대중적인 면 양쪽으로부터 고른 지지와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이 재기발랄한 일일시트콤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매일같이 새로운 사건과 짠한 드라마를 펼쳐보이던 <거침없이 하이킥>은 최근 새로운 이야기를 보여주기보다는 그동안 구축된 설정들과 에피소드들을 자꾸 반복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 한 편에서는 <거침없이 하이킥>의 소재가 마침내 바닥을 보이는 반증이라고 말하고, 다른 한 편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침없이 하이킥>의 재미는 여전할 뿐 아니라 지금까지와는 다른 쾌락을 제공하고 있다고도 말한다. 과연, <거침없이 하이킥>은 소재주의의 늪에 빠져 방향을 잃은 것일까, 아니면 호흡을 가다듬으며 새로운 지도를 펼치고 있는 것일까. 만약 둘 중에 반드시 하나의 입장을 취해야 한다면 당신은 어느 편에 설 것인가. 조지영 TV 평론가와 강명석 <매거진t> 기획위원이 <거침없이 하이킥>의 최근 행보에 대해 거침없이, 청기와 백기를 든다. 우리는 그 앞에서 과연 어떤 버튼을 누를 수 있을까. / 편집자
쇼핑에 돈이 들 듯, 성장엔 시간이 든다
<거침없이 하이킥>(이하 <하이킥>)의 이형사(윤서현)는 단기기억상실증에 걸렸다. 본인 말로는 많이 나아졌다지만, 아직 완치는 안 된 상태인 것 같다. 극중에선 대부분 재미있는 해프닝으로 끝나긴 하지만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을 기억을 못하는 이런 증상은 당사자 뿐 아니라 그 주변 사람들에게도 편치 않은 경험이다. ‘무의미한 반복’은 사람들을 지치게 만들기 때문이다. 90회가 넘어선 <하이킥>은 여전한 고공행진을 멈추지 않지만, 가끔은 불안해 보인다. 명절도 아니고 일요일도 아닐 때도 스페셜(결국 재방송)을 보여준다. 심지어 지난 16일 금요일에 방영한 스페셜 내용 대부은 일요일이었던 18일의 스페셜과 동일했다. 준하의 실직 에피소드를 비롯하여, 화장실 에피소드(그 중에 ‘변기해미’는 두 번이나)는 여러 번 반복된 패턴이다. 동일한 소재를 반복해서 쓰지 않더라도, 확실히 최근의 방영분에 이르러서 다소 ‘지루해진’ 부분이 있다. 그것은 <하이킥>에 대한 눈높이가 워낙 높았던 때문이기도 하다
날마다 새로웠던 <하이킥>
<하이킥>은 시작부터 달랐다. <하이킥>의 시작은 지금은 걸음마도 못하는 아기인 준이가 장성하여 우주선에 탑승, 그 우주선에서 지구를 바라보는 시점이었다. 우주에서 보자면 한 점도 안 되는 작은 존재들, 그러나 가까이서 보면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품고 있는 가족사를 종으로, 횡으로 분석하자는 이 원대한 포부는 놀라웠다. 그리고 곧장 캐릭터의 향연이 시작됐다. 모든 등장인물은 네티즌이 지어준 닉네임을 얻었다. 서로서로 보색 대비를 하듯, 선명한 캐릭터들은 옆집에 사는 사람들처럼 친근해졌다. 해미(박해미)는 ‘주도적 성향’을 대표하는 캐릭터가 됐고, 민정(서민정)과 민용(최민용)은 수줍게 사랑을 시작했다가 이별했고, 유미네 집 마루 밑에는 시체가 숨겨져 있었고, 범인은 이따금 탈옥을 하기도 했다. 민용은 형수와 여전히 사이가 좋지 않고, 준하와 문희의 식욕은 변함없다. 멜로물인가 싶으면 추리물이기도 했으며 코믹물이지만 눈물을 쏙 빼놓기 일쑤였다. <24>를 차용한 에피소드는 잭 바우어도 놀랄 만큼 박진감 있었다. 말하자면, <하이킥>은 언제나 새로웠다. 아슬아슬한 수위의 화장실 유머를 구사하다가도, 사람들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응시할 줄 알았다. ‘하이킥 월드’에선 장르를 마음껏 넘나드는 호쾌함, 만화 못지않은 상상력, 따뜻하고 먹먹한 여운까지, 그 모든 것이 30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가능했다. 언제나 새로웠기 때문에, 사람들의 기대감은 점점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오늘 이 가족에게는 또 무슨 일이 생길까하며 궁금해 했다. 말하자면, 이 가족과 그 주변 사람들이 다른 드라마들처럼 지루한 반복을 일삼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은 일이 되었다.
어쩌면 지금은 성장통?
우려의 목소리가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하이킥>의 본질이 바뀐 건 아니다. 최근 들어 코미디보다는 ‘드라마’에 좀 더 주력하고 있는 양상이고, 그렇게 주는 웃음 속에도 페이소스가 짙다. 방영 초기가 캐릭터를 안착시키는 기간이었다면, 이제 자기 자리를 찾은 캐릭터들이 진화해나갈 때다. 전반기 <하이킥>의 시청률을 견인했던 민용-민정-윤호의 알콩달콩 3각 라인은 이제 ‘어른들의 현실’로 넘어왔다. 어렴풋하긴 하지만 민정-민용-신지의 3각 관계는 어떤 결말로 나아갈까? ‘브래드 피트’같은 민용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던 민정은 바로 그 사랑 때문에 고통 받는다. 그건 ‘성장통’의 또 다른 면모일지도 모른다. 주춤거리는 사이, 시간은 지나가고 사랑도 지나가버린다. 거침없이, 한 발을 내딛거나 혹은 돌아서야 한다. 어쩌면 <하이킥>도 지금 성장통을 앓고 있는 건 아닐까? 우리는 매일매일 <하이킥>의 사람들에게 일어날 새로운 해프닝에 주목할 것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조금씩 달라지고 성장하는 ‘사람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쇼핑에 돈이 들 듯, 성장엔 시간이 든다. <하이킥>은 성공적인 한 학기를 마치고, 이제 새로운 학기를 시작했다. 다른 나라에서 유래를 찾기 힘든 ‘일일시트콤’의 살인적 일정, 그로 인한 피로감에 제작진과 출연진이 지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아마도 이건 평일 저녁 8시 20분이면 어김없이 ‘이&박 한의원’으로 채널을 고정시키는 사람들, 윤호와 함께 검색창에 ‘혜자존니’를 쳐보는 네티즌들의 한결 같은 바람일 것이다.
글 조지영
<거침없이 하이킥>은 멜로 드라마가 아니다
요즘 MBC <거침없이 하이킥>은 반쯤은 멜로 드라마다. <거침없이 하이킥>엔 민용(최민용)과 민정(서민정)처럼 가슴 아픈 이별을 하는 연인부터 그들과 묘한 삼각관계를 이루는 신지(신지)와 자기도 모르게 점점 민정에게 다가서는 연하의 고교생 윤호(정일우)도 있다. SBS <순풍 산부인과>에서 영란(허영란)이 오중(권오중)을 짝사랑하며 수없이 상처받고 아파하던 그 시절부터, 김병욱 감독의 시트콤은 늘 일종의 멜로 드라마였다. 그러나, 어떤 작품도 <거침없이 하이킥>처럼 복잡한 애정관계를 보이는 경우도 없었고, 민용과 민정의 경우처럼 멜로가 스토리의 연속성을 가지며 일주일치 에피소드의 절반을 차지하지도 않았다.
일상대신 사건이 작동하는 멜로 드라마
‘김병욱 시트콤’에서 사랑이란 남녀 두 사람의 일상이 쌓이는 것이었고, 남녀의 이별은 그 일상에서 파생된 문제로부터 비롯됐다.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에서 홍렬(이홍렬)은 종옥(배종옥)과 결혼하기까지 그의 연애사를 일기장에 빽빽이 적어야 할 만큼 수많은 일들을 겪었고, <똑바로 살아라>에서 정윤(최정윤)이 정명(천정명)과 헤어진 것은 아버지의 반대 때문이 아니라 이렇다 할 비전도 없는 정명을 스스로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거침없이 하이킥>의 멜로는 ‘일상’이 아닌 ‘사건’에 의해 움직인다. 민용이 민정과 헤어진 것은 민정의 언니가 민정과 이혼남인 민용과의 교제를 반대했기 때문이고, 이별의 ‘비밀’을 알게 된 민정이 민용에게 다가서려다 포기한 것은 민용과 신지가 다시 사귄다고 ‘오해’했기 때문이다.
멜로가 일상대신 비밀과 오해가 겹치는 사건들에 의해 전개되면서 <거침없이 하이킥>의 멜로 스토리는 보다 연속성이 강조된다. 그래서 민용과 민정은 매 회 괴로워하고, <거침없이 하이킥>은 이들의 감정선을 이어가기 위해 이들의 에피소드를 계속 집어넣는다. 물론 이는 연속성이 강한 서사구조의 도입으로 과거보다 훨씬 더 빠르게 자리를 잡은 <거침없이 하이킥> 특유의 캐릭터와 결합하고, 결과적으로 시트콤으로서는 유래가 없을 정도로 시청자들을 <거침없이 하이킥>의 멜로에 몰입하도록 만들었다. 단기간 내에 가장 평범하면서도 가장 사랑스러운 캐릭터를 만들어낸 민정의 러브스토리는 곧 시청자 개인의 연애담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오해와 비밀에 의해 점점 복잡해져만 가는 민용과 민정의 멜로 스토리는 점점 더 전형적인 멜로 드라마처럼 변하고, 그들의 에피소드가 <거침없이 하이킥>의 일주일치 방영 분의 절반에 가까워지는 사이, <거침없이 하이킥>은 김병욱 감독만의 달콤씁쓸한 일상의 한 자락을 잃어간다.
일상이 사라진 캐릭터들의 비현실성
윤호가 평소에는 거칠지만 연상의 여인에게는 한 없이 귀여운, 만화 속 주인공에 가까운 캐릭터이면서도 현실의 접점을 잃지 않았던 것은 그 사이 사이로 형을 편애하는 가족들에게 받는 상처에 아파하는 평범한 둘째 아들의 슬픔이 베어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요즘의 윤호는 가출했다는 핑계로 민정의 집에서 기거하며 그와 알콩달콩한 모습을 보여주며 ‘누나의 꿈’을 실현시켜 주고, 한의사 협회가 주는 상을 받게 된 해미(박해미)에게 꽃다발을 준다는 핑계로 수트를 빼 입고 나와 ‘캡쳐용 화면’을 제공해주는 등 철저히 <거침없이 하이킥>의 윤호 팬들이 바라는 모습만 보여준다. 또 러시아어를 몇 주 만에 마스터 하는 해미(박해미)가 그저 황당한 캐릭터가 되지 않은 것은 어머니의 과중한 가사노동에도 관심을 가지는 그의 똑부러진 모습 때문이었지만, 지금의 해미는 자신을 거슬리게 하는 사람들에게는 처절한 응징을 가하는 ‘복수해미’이자, 다른 일상이 없어 보일 정도로 민용과 민정의 관계에 간섭하는 ‘집착해미’다. 실직 가장의 비애를 다양한 모습으로 보여주던 준하는 어느새 주식값이 오르느냐 마느냐에 일희일비하는 캐릭터로 축소됐고, 유미(박민영)는 아예 민호(김혜성)와 범(김범)에게 온갖 방법으로 돈을 벌도록 만드는 역할 캐릭터에만 머문다. 현재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일상의 한 부분을 표현하는 캐릭터는 가사노동과 무뚝뚝한 남편이라는 현실적인 문제로 괴로워하는 문희(나문희)뿐이다.
분명히 <거침없이 하이킥>은 기존 시트콤이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새로운 스타일을 제시했고, 그것은 가족 시트콤이 인터넷을 들썩거리게 만드는 초유의 현상을 일으켰다. 그러나, <거침없이 하이킥>의 성과는 그것이 김병욱 감독의 단순한 변화가 아니라 기존의 장점을 그대로 안은 채 새로운 것을 융합한 ‘진화’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아무리 인터넷의 팬들이 민-민(민용-민정 커플의 줄임말)의 이야기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해도, <거침없이 하이킥>은 ‘멜로 드라마’이기 전에 김병욱 감독의 일일 시트콤, 혹은 가족 시트콤이다. <거침없이 하이킥>이 끝까지 그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글 강명석
첫댓글 거침업이하이킥역쉬짱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