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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행일자: 2014년 5월 4일
☞ 산행거리: 도상거리 약 20km / 7시간 40분 소요
☞ 참석인원: 진권이 아우랑 둘이서
☞ 산행코스: 주자재-임도(남해환경)-지적산-지적산 웅지봉-120봉-117봉-1번국도(목포도시가스)
NO83 송전탑-NO 84송전탑-산죽터널-대박산-목포재활용센터-대운레미콘 삼거리
100봉-꽃무릇삼거리-양을산-체육공원-길상사 입구-용해지하차도-목포경찰서
마리아고교-유방봉-목포농협 산정지점-석산-59.4봉-목포노인복지회관-호남오피스텔
목포여고 오거리-정명여고 후문-故이 난영여사 생가-북촌초교-대운수퍼-유달산 순환도로
유달산 이등봉-소요정-유달산-관운각-아리랑고개-다순금
☞ 소 재 지: 전남 무안군 삼향읍 / 목포시 일원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와 고도표(신선님 블로그 자료인용)
센트럴시티 터미널(17:30)
요즘은 세월호 여파로 인한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1년동안의 기획에 의해 하는
목적산행도 하기가 참으로 조심스럽기만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오늘 영산기맥의
마지막 구간을 가기 위해서 호남 고속터미널을 나와 표를 예매하려는데 4일간의
황금연휴라 그런지 목포가는 고속버스가 심야고속버스 표까지 매진되어 버려 난감하다
더군더나 오늘 마지막구간을 축하 해주기 위해 백두대간 대장을 맡고있는 진권아우가
동참해 주겠다는데 표를 구하지 못해서 난감하기만 하다.
하는 수 없이 광주가는 21시 05분 표를 예매하고 진권아우와 최근에 백두대간길에 동참한
봄..봄님과 함께 터미널 건너편 상가 식당에서 삼겹살에 소주를 곁들여 느긋하게 저녁식사를
마치고 시간을 맞춰나와 광주가는 고속버스에 몸을 싣는다
서울발→광주행 버스표
21시 05분발 광주행 고속버스
식당에서 터미널로 와서 버스에 몸을 싣고 고속도로에 접어드니 4일간의
황금연휴라 그런지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도로는 마치 주차장을 방불케 한다
운전이야 내가 신경쓸 바 아니고 술 힘을 빌어서 깊은 잠에 빠졌다가 버스가
정안 휴게소에 서는 바람에 깨어나는데 시간이 벌써 자정이 훌쩍 지나 버렸다
화장실에 갔다와서 다시 깊은 잠에 빠지는데 광주에 도착하니 새벽 01시 40분이다
유.스퀘어 사우나(02:00~04:00)
터미널 2층에 있는 수면실에 올라가니 자리가 없다고 입장을 거절한다
땅바닥에 자던 그냥 앉아서 자던 알아서 할 터이니 입장을 시켜 달라고
사정을 하여 겨우 거금 11,000원을 주고 입장하여 샤워를 한 다음에
수면실 침대가 있는 쪽 이리저리를 살펴보니 세상에 죽으란 법은 없는지
빈 침대 2칸이 있어서 얼른 이불을 깔고 잠을 청하는데 바로 옆에 코고는 넘
이빨가는 넘들 때문에 잠 한숨 못자고 새벽 4시에 침대에서 빠져나와 샤워를
한 다음에 수면실을 빠져나와 목포가는 버스표를 산 다음 식당에 들려 국밥
한 그릇을 억지로 먹는다... 먹지 않으면 길을 갈 수 없기에...
광주발 목포행 버스표
목포가는 버스(05:20)
목포가는 버스에 오르자마자 밤에 잠을 못잔 탓인지 깊은 잠에
빠지는데 버스는 정확하게 50분만에 목포 터미널에 도착을 한다.
터미널에 도착하여 서울 올라가는 버스표를 미리 예매해 놓고는
택시를 타고 오늘 산행 들머리인 주자재로 향한다.
목포 터미널에서 주자재가는 택시는 미터기를 안 꺽는다
왜 미터기를 안 꺽는냐고 하니까 목포와 무안은 행정구역이 달라서
그렇다고 하면서 13,000원을 달라고 하는데 장성, 영광의 택시기사와는
달리 좀 흠흉하다... 15분만에 우리를 실어다 주고 목포로 돌아간다
주자재(06:40)
주자재에서 장비를 점검한 다음에 산행을 시작하는데 초반부터 잡목과 짤레꽃,
땅까시, 아카시아 나무가 뒤엉켜져 있어 길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명품길만 다니는 진권 아우님에게 괜스레 미안스럽기만 하다.
이리저리 잡목으로 헤치며 능선으로 올라서니 엄청나게 큰 채석장이
나타나는데 기가 딱 막힌다. 산 하나가 통채로 날아가버린 영산기맥이다
인간의 탐욕과 집착, 오만함을 다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
저 능선위에 보이는 송전탑을 기준으로 걸어간다
기맥 산꾼들이 처절하게 맥길을 이어가려는지 공작산 아우팀이 붙혀논 띠지가 애처롭다.
이제 파먹을만큼 다 파먹었는지 원상복구를 하는 소나무를 심고있다
송전탑을 바라보며 계속 걸어간다
뒤돌아 본 채석장의 모습
임도를 올라서니 능선 좌측으로 또 다른 채석장이 보인다
잠시 후 능선으로 올라서니 NO 75 송전탑이 나온다
NO75 송전탑(07:15)
NO75 송전탑을 따라 편한 임도로 내려서니 현풍곽씨 묘지가 나오고 우측으로는
건축 폐기물 업체인 남해환경이 보이고 잠시 후에 남해환경으로 통하는 임도가 나온다
등로에서 보이는 남해환경
임도(07:18)
목포시와 무안군 경계인 지도상의 삼향읍 유교리에서 목포시 임성리역으로 가는
비포장 도로로 남해환경이라는 건축물 폐기업체가 있다
도로를 가로질러 올라서니 무명묘지 1기가 있고 급경사의 오르막을
오르니 서해안 고속도로와 지난 구간 걸었던 산그리메가 보인다
지적산 오름길에서 바라본 지난구간 걸었던 능선의 모습
NO77 송전탑(07:28)
NO77 송전탑이 있는 정상에는 이정표가 있고 뒤돌아 보니 지난구간에
걸었던 대봉산, 국사봉, 승달산이 한 눈에 들어올 정도이다.
사진찍기 좋아하는 진권 아우가 포즈를 취한다 200m를 가니 지적산이 나온다
지적산 (芝積山:187:07:30)
전남 목포시 대양동과 석현동에 걸쳐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표식이 없는
삼각점이 있고 좌측으로는 희미하게나마 영산강 하구언이 보이고 전남도청이
들어 서있는 남악 신도시가 한 눈에 들어오며 바로 아래에는 석현마을이 보인다
지적산의 이름 유래를 살펴보면 조선환여승람에 지적산이 지족산(芝足山)으로
기록되어 있을 뿐 그 이유는 알 길이 없다고 한다. 또한 지적산의 동남쪽 기슭에는 여러 개의
고인돌이 있으나 여기에 대한 연구 자료도 남은 것이 전혀 없다고 하니 아쉬움이 크다
아무런 표식이 없는 지적산 정상 삼각점
지적산 정상에서 바라본 남악과 하당 신도시... 그 너머로 영산강 하구언이 보인다
지적산 정상에서 바라본 석현(石峴)마을의 모습
석현 현대APT 동쪽에 있는 마을로서 독갓제의 고인돌이 언덕에서 굽어 본다고 해서 석현리라 했다 한다.
이곳이 초의대사(草衣大師)의 출생지라는 설이 있었으나 지금은 무안군 삼향읍 왕산리에
생가를 복원하고 성역화 하였다. 지리적으로 여자가 성하는 지형이어서 아들들은 외지로 나가고
데릴사위들이 마을을 지킨다는 말이 전해지기도 한다.
지적산에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잠시후 조릿대 군락지가 나오고
삼거리가 나오나 기맥길은 편한 임도를 따라서 직진으로 진행한다
석현마을 갈림길(07:40)
석현마을 사거리를 지나 오르막으로 올라서니 수령 50~100여 년이 됨직한 곧게 뻗은 곰솔군락과
30~40년생 편백림 조림수가 어우러져 있으며 편백나무 숲사이로는 침대형 의자들이 보인다
오름길에서 만난 울님만큼이나 예쁜 철쭉
현대 아파트 갈림길(07:45)
신지동(新芝洞) 내려가는 길로서 임성리 역 앞, 임성초등학교가 있는 마을이다.
옛부터 지초(芝草)가 흔한 곳이었다 한다. 국립 목포병원쪽 마을을 신지 작은 마을이라 한다
지적산 웅지봉(140m:07:47)
120봉(07:50)
정상에는 NO 81 송전탑과 운동기구들이 설치되어 있다
120봉에서 설치되어 있는 NO 81 송전탑
마사토 지역의 미끄러운 등로를 따라서 내려간다
목포시내와 영산강 하구언인듯한 남해바다가 보인다
117봉(08:00)
정상에는 넓은 공터와 휴게용 벤치, 그리고 이정표가 설치되어 있다
2% 부족한 이정표
이정표에서 우측으로 가면 검문소가 나오고 기맥길은 삼향동 사무소로 향한다
그런데 친절한 이정표에 정상 1.8km라고 표기하였는데 어느 산 정상이란 말이냐?
목포시장 나리! 이곳은 목포시민만 다니는 산이 아니란 걸 명심하소
한번도 뵌 적은 없지만 늘 친근감이 드는 소머즈 부부님의 시그널을 만난다
등로에서 내려와 1번 국도로 떨어진다
1번 국도를 건너기 위해서 육교로 올라선다.
육교 우측 산 속에는 목포도시가스 회사가 있고...
무안군 삼향면 대양리 7개마을(산계, 산양, 월산, 장자곡, 노득동, 내화촌, 대박산)과
이로동 관내 석현동 2개마을(석현, 신지)을 합병하여 목포시 삼향동으로 편성한 동이다.
신도청 소재지와 인접하고 있으며, 축구센터 건립을 비롯한 일반 산업단지 개발 계획등으로
발전 잠재력이 높은 지역이다. 9개의 자연마을과 5개 아파트단지로 형성된 도.농
복합지역으로 서해안 고속도로와 국도 1ㆍ2 호선이 통과하는 목포시의 관문지역이다
1번국도(08:05)
목포에서 신의주까지 전체 길이 약 1068㎞이나, 남북 분단으로 인하여 실질적 종점인
경기도 파주시까지 길이는 496.05㎞이다. 왕복 2차선은 152.9㎞, 왕복 4차선은 279.6㎞,
왕복 6차선은 64.9㎞로 목포시 석현동에서 부산 방면의 2번국도와 교차하고,
목포인터체인지에서는 인천 방면의 서해안고속도로(고속국도15)가 개통되어 인천까지
4시간 만에 달릴 수 있으며 무안·서광주·광주·백양사·정읍·태인·김제·천안 인터체인지에서
호남고속도로(고속국도 25)를 이용할 수 있다
1번국도를 지나는 육교에서 내려와 삼향동사무소 담벼락을 끼고 등로로 올라선다
삼향동 사무소 담벼락을 끼고 올라서는데 잡목과 잡초가 태클을 걸더니
잠시 후 다시 길이 좋아진다... 명품족(?) 진권 아우님에게 조금은 덜 미안하다
편백나무 숲사이의 나무 계단으로 올라서니 우측에는 호화묘지가 있고...
83번 송전탑을 지나니 안부가 나오면서 148번 84번 송전탑이 연속으로 만난다.
오늘 산에서 처음으로 사람을 만나는데 고사리 꺽는 아줌마 둘을 만난다.
안부 능선에서 조릿대 군락지로 올라서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헬기 소리가
요란하여 위로 쳐다보는데 아우가 그 방면을 잘 아는지 VIP가 지나가고 있다고 한다
자세히 보니 선두에 3대 중간에 3대 후미에 3대의 헬기가 지나가는데 후미의
헬기 아래에는 미사일이 장착되어 있는게 보인다... 아마 진도로 가는 모양이다
요즘에 느끼는게 한 가지는 참으로 대통령이란 자리는 외롭고 고독하게 보인다.
저 힘든 자리를 왜 하려고들 아둥바둥 하는지 범여의 머리로는 이해가 안된다
국회의원, 공무원들... 하나도 박대통령을 도와 주는 사람이 없으니...
요즘 야당 공동대표를 맡고있는 安 某씨 예전에 참으로 순수하고 참신하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여의도에 발들여 놓은지 1년도 안되어 요즘 형태로 보면
개인적으로는 VIP감은 아닌 것 같다...국가가 어려운 난국에 취해 있으면
여.야가 합심하여 난국을 헤쳐나가야 하는게 도리이지 비판해서 될 일은 아닌데
그렇다고 당신네들이 대안도 제시하지 않았잖아...현재 썩어빠진 국가의 재난 시스템이
현재 VIP 혼자의 책임은 아니잖은가... 야당을 하고 있는 당신들도 10년동안
집권하면서 뭣했단 말인가... 이번 기회에 과감하게 개혁하여 시스템을 바꾸도록 하자
300명이 넘는 많은 희생자들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서라도...
그래도 이 나라에는 희망이 보이잖은가... 순수한 마음으로 봉사활동을 하는 民草들을 보면서...
잘 정리된 조리대 숲 사이를 걷는다
조리대 숲속에 있는 호조참판을 지낸 김해김공 묘지
*호조참판(戶曹參判이란)?
조선시대 호조(戶曹)에 둔 종이품(從二品) 관직으로 정원은 1원이다.
위로 호조판서(戶曹判書: 正二品)가 있고, 아래로 호조참의(戶曹參議: 正三品 堂上) 1원,
호조정랑(戶曹正郞: 正五品), 호조좌랑(戶曹佐郞: 正六品) 각 3원이 있다.
판서를 정경(正卿)이라고 하고, 참판은 아경(亞卿)이라고 한다.
원래 사평부(司平府)에 두었던 좌사(左使)·우사(右使)를 1404년(태종 4) 3월
참판사평부사(參判司平府使)라고 개칭했다가, 1405년 1월 사평부가 호조(戶曹)에
병합되고 육조의 의랑(議郞) 각 2원을 좌·우참의(左右參議)로 바꾸었다.
1432년(세종 14)에 참판·참의 각각 1원으로 개편되어 각 조(曹)의 판서를
보좌하는 차관으로, 예하 주요기관의 제조(提調)를 겸하였다.
1894년(고종 31)의 갑오개혁 이후에는 협판(協辦: 勅任官)이라 하였다
조리대 숲을 지나면서 좌측으로 이어지는 좋은 임도를 버리고
직진으로 올라서니 잡풀과 찔레꽃 넝쿨들이 태클을 건다
베낭이 할키고 옷이 뜯기면서 올라서니 대박산이 나타난다.
2개의 통신탑이 있는 대박산 정상으로 올라선다
대박산(大朴山:155.4m:08:30)
목포시 삼향동과 용해동에 걸쳐 있는 산으로 천박산이라고도 부른다.
삼향동사무소 뒷편에 있는 산으로 동쪽으로 조금전에 지나온 지적산과
남쪽으로는 가야할 양을산이 보이며 북쪽에는 대박마을과 월산마을이 있다
산 정상에는 이름과는 달리 통신탑 2개만 덩그러니 있고 그 아래는 통신탑을
관리하는 건물이 있지만 정상에는 칡넝쿨만이 가득하여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이곳 역시 목포시의 무관심으로 그 어디에도 표지판 하나없고 송정님이 붙혀둔
코팅지마저도 변해버려 알아 볼 수가 없다
대박산의 명칭에 관한 유래를 찾아보면, 산골마을 초가지붕위에 열려있는
박이 크게 보여 대박산으로 불리게 된 대박산마을과 연관이 있는 듯하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무안현조에 따르면 옛 이름이 함박산(含朴山)이었으나
언제부터 대박산으로 부르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고 한다
통신탑이 있는 철조망을 끼고 좌측으로 내려서지만 좌.우
어디로 가던간에 잠시후에 만나니 무방할 듯 싶다
철조망을 끼고 우측으로 돌다가 다시 좌측으로 내려선다
길이없는 등로를 따라 잡목을 헤치고 내려서니 포장도로가 나온다
포장도로를 따라서 내려서니...
목포 재활용센터 제2선별장이 보이고...
목포재활용센터 정문(08:40)
도로를 따라서 계속 내려간다
대운레미콘 삼거리(08:43)
대운 레미콘 공장앞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꺽어져서 도로를 따라 걸어간다
도로를 따라서 30m 정도 걸어가다가 우측으로 꺽어져 등로로 접어든다
등로로 접어드니 둘레길 같은 곳인지 여러갈래의 길이 보인다
우측으로 레미콘 공장을 끼고 양을산으로 향한다
봉우리도 아닌 그냥 평지의 등로에 삼각점(△목포451 1999재설)이 있다
양을산 가는 길에서 진권아우님
체육시설(08:50)
레미콘 공장 뒤 능선을 지나니 등로 가운데 무덤 4기가 나오고 이곳부터는
운동나온 목포 시민들을 만나는데 좌측에 커피파는 아줌마가 있다
진권 아우가 션한 맥주가 생각나는지 형님 맥주 한 잔 하자고 하는데
오케이 하면서 맥주 2개 달라고 하니 커피만 판다고 하기에 입맛만
다시고 그냥 양을산 정상으로 향한다
잠시후 육각정이 나오고 좌측 안내판에 이곳에 양을산의 유래를 세워놔서
처음오는 산꾼들을 혼란스럽게 하는데 양을산 정상은 이곳에서 1km이상 떨어져 있다
아마 이곳 전체를 양을산이라 지칭하는 모양이다
육각정옆에 세워져 있는 양을산의 유래 안내판
Y자 갈림길
이곳에서 우측이 기맥길이나 아무곳으로 가도 무방하다
2~3분만에 금방 만나기에 기맥길의 의미가 별로 없는 곳이다
넓은 등로에서 사람들을 자주 만나는데 능선 곳곳에 거미줄처럼 등로가
나있어서 마치 우리동네 뒷산인 대모산에 온 듯한 착각이 든다
태을계곡 가는 길
잠시 오르막으로 오르니 좌측으로 육각정이 있다
kt 송신소가 정상을 점령하고 있는 양을산의 모습
꽃무릇 사거리(09:05)
사거리 좌측으로 성신고등학교, 우측으로는 빛과소금의 교회 이정표가 있고
5m 더 진행하니 y 자 길이 나오는데 우측으로 용해동사무소가는 길이 나온다
과 달리 석산화를 꽃무릇이라고 부른다고 표지판에 써있다
꽃무릇 사거리에서 오르막을 올라서니 또다른 사거리가 나오고
다시 오르막을 치고 오르면서 양을산 정상으로 올라선다
정상 오름길은 편백숲 가운데로 나있다
양을산 도로(09:12)
편백나무 숲을 지나 올라서니 양을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도로가 나온다
도로 좌측으로 올라가서 KT 중계소 담벼락을 끼고 정상으로 간다
양을산 정상을 완벽하게 점령하고 있는 KT중계기지
꿩대신 닭이라 했던가
양을산 정상옆에 陽乙亭이란 육각정이 자리잡고 있고 목포시내가 한 눈에 보인다
양을산 정상에서 바라본 목포시내
목포는 무안반도 서남쪽 끝에 위치하여, 육지부와 도서부를 연결하는 관문에 해당한다.
북동쪽은 무안군과 접하고, 북서쪽은 신안군과 접하며, 남동쪽은 영암군과 접하고,
남서쪽은 바다를 사이에 두고 해남군과 접해 있다. 전체적으로 보아 북동부 무안군과의
접경지를 제외하고는 시 경계가 모두 바다로 이루어져 있다.
목포라는 지명의 유래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견해가 제기되어 있다.
목포 부근 해안의 도서지방에 수목(樹木)이 울창하여 신시(薪柴)를 운반하였기
때문에 '나무의 고장','나무의 포구' 에서 목포라는 지명이 유래하였다는 견해,
목포부근이 옛부터 목화의 주산지였기 때문에 지명이 유래하였다는 견해,
서해로부터 깊게 만입되어 들어온 영산강의 어구, 즉 목(?)·목덜미에 해당되는
곳이어서 '목덜미의 포구' 라는 의미로 목포 또는 목개로 불려진 것이
한자어로 목포(木浦)로 표기되었다는 주장 등이 있다.
이 가운데 두 번째의 주장은 목화의 생산이 후대의 일이기 때문에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그런데 이른 시기부터 사서(史書)에 보이는 목포는 나주의 남쪽 영산강부근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의 목포를 목포로 표기한 최초의 기록은 것은 조선 세종대 목포만호진이 설치되면서부터이다.
(1) 결국 현재의 목포를 목포로 표기하기 시작한 것은 조선초이지만,
그 유래는 단정짓기 어려운 것이 현재의 실정이라 하겠다.
양을산(陽乙山:156m:09:15)
목포시 양동과 용해동 사이에 우뚝 솟은 산으로 정상에는 KT 중계소와
양을정이란 육각정이 있으며 목포시내가 시원스럽게 한 눈에 들어온다.
양을산은 본래의 이름이 비녀산이라고 한다.
비녀산의 지명이 언제부터 불리워지게 되었는지의 유래를 알 수 없지만
산의 정상이 유난히도 일자형(一字形)이다보니 흡사 비녀 형상이고 산 기슭에
있는 바위가 여인네의 비녀쪽지처럼 닮았다고 하여 비녀산으로 불리워지게
되었다고 하는데 양을산으로 바뀌게 불리워 진 것은 등산및 산책을 즐기는
시민들이 늘어나면서 산 밑자락 양을촌 마을을 시발점으로 오르다보니 차츰
양을산으로 불리워지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양을산 스켓타 통신시설터 표시석
양을산 정상에 자리잡은 KT 중계소를 한바퀴 빙돌아서 정문을 지나서
조금전에 올랐던 도로를 따라서 목포경찰서 방향으로 기맥길을 이어간다
조금 내려서니 벧엩교회 수련관을 지나면서 체육공원으로 내려선다
생활체육광장(09:20)
이른 아침에 밥을 먹은 탓인지 이곳 체육광장에서 휴식겸 간식을 먹는다
오렌지 하나에 빵과 쥬스를 마시면서 10분정도의 휴식을 취한다
도로를 따라서 내려오니...
도로 좌측에 송광사 목포분원인 길상사가 나오고...
길상사 정문 앞에서 넓은 도로를 버리고 좁은 주택가 도로를 택한다
좌측으론 잠시후에 가야 할 유방봉과 멀리 C & N 조선소 크레인이 보인다
도로를 따라서 내려서니 청산아파트 102동이 보이고 좌측 도로를 따라간다
도로를 따라서 계속 내려가니 ⊃ 도로가 나오고 아래에는 용해지하차도가 보인다
용해지하차도의 모습
목포 경찰서 사거리(09:45)
도로를 건너서 우측으로 가니 건너편에 목포경찰서가 있다
목포경찰서 정문
목포 경찰서 정문 맞은편 박종영 행정사에서 좌측으로 들어가니 용해동 경로당이
나오고 좁은 골목으로 들어서니 용해 주공아파트 후문으로 들어선다
후문으로 들어서서 아파트 단지를 통과하여 뒷문으로 나가니...
엄마랑 유치원 간판이 보이고...
도로를 따라서 올라서니 목포선린교회와 단독 주택이 나온다.
단독주택 담벼락을 끼고 밭 가운데를 지나가는데 고구마를 심는 사람이
개지랄을 떠는데 연신 미안하다고 하면서 고집스럽게 밭 가운데를 통과한다
마늘과 완두콩을 심은 밭 가운데를 지나는데 여름에는 우회해야 할 듯 싶다
밭 철조망중에 다행히 뚫어진데가 있어서 철조망을 넘어선다
넓은 초지가 나오고..
.
대밭을 지나니 마리아회 고등학교 마리아홀이 나온다
마리아회 고등학교(09:55)
목포마리아회고등학교는 마리아수도회에서 설립한 학교로 1966년에 개교했다고 한다
마리아회 고등학교 사거리를 지나서 맞은편 단독주택을 바라보며 걷는다
등로로 올라서서 넓은 길을 버리고 좌측으로 접어든다
삼나무를 심어놓은 마리아회 고등학교 학습림을 지나니 유방봉이 나온다
이정표에는 유방봉을 옥녀봉으로 표기를 해놨다
유방1봉(101m:10:02)
목포시 산정동의 뒷산으로 2개의 봉우리가 있는데 멀리서 보면 2개의
봉우리가 마치 여인의 젖가슴처럼 보인다고 해서 유방봉이라 불리웠는데
性的인 의미가 있다고 해서 최근에는 옥녀봉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유방1봉 정상에는 체육시설과 NO3라고 쓰여있는 삼각점이 보인다
유방1봉에서 진권 아우님의 유달산을 배경으로 멋진 포즈
유방1봉에서 바라본 목포시
이곳 목포시는 故 김대중 前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이기도 한 곳이다
특히 목포는 藝人들을 많이 배출한 도시로 호남예술의 거장으로 불리는
한국무용의 大家이신 우봉 이 매방선생, 목포의 눈물을 부른 가수 이 난영선생
유신 독재시절에 사상가이자 시인이었던 김 지하선생, 극작가 차 범석 선생이
이곳 목포 출신이라고 한다
특히 이매방 선생의 승무는 선생님의 춤에서 유달산의 기운찬 율동미가 보였다고 한다
승무(僧舞)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臺)에 황촉(黃燭) 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 올린 외씨보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오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世事)에 시달려도 번뇌(煩惱)는 별빛이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속 거룩한 합장(합장)인 양하고,
이 밤사 귀또리도 지새우는 삼경(三更)인데,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조지훈(趙芝薰 1920∼1968)의 詩
유방2봉(99m:10:05)
유방1봉에서 3분정도를 걸어니 유방2봉이 나오는데 정상에는
산불감시초소와 표식이 없는 삼각점이 있다.
유방 2봉에서 바라본 C & N 중공업 도크 크레인과 그 뒤로 압해대교가 보인다
유방2봉에서 임도를 따라 50m 정도를 내려오다가 뚜렸한 임도를
버리고 좌측 근화아파트로 향하는 희미한 임도를 따라서 내려선다
근화아파트 방향으로 내려가다가...우측 등로가 보이지 않는 쪽으로 꺽으니
풀이 수북한데 자세히보니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보인다
길은 아예 보이지 않고...
반가운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산꾼을 반긴다.
길이없는 등로로 내려서니 풀섶사이에 해주정씨 묘비가 보이고...
잡풀을 헤치고 내려서니 좌측으로 대밭이 나오면서 민가가 나타난다
마구 버려진 쓰레기더미 사이로 내려서니 철조망이 나오고 롯데수퍼 간판이 보인다
숲을지나 도로로 내려서서 나가니 도로가 나오고...
목포농협 산정지점앞 도로(10:15)
도로를 가로질러 골목안으로 들어서니...
잔등식육식당이 나오면서 우측으로 꺽어진다
식당에서 우측으로 꺽어져 가니 아파트 단지가 나오는데 기맥길은
아파트 단지를 가로지르나 철조망이 가로막혀서 우회하여 주택가를 통과한다.
주택가를 통과하여 원 기맥길로 가니 담장이 있는데 높이가
3m가 넘어 내려가기를 포기하고 되돌아 와서 우회길로 내려선다
원 기맥 능선
3m 가는 넘는 담벼락을 뛰어내릴 자신이 없어서 되돌아 간다
우리세향교회를 지나니 좌측으로 종원나이스빌 아파트 담장이 나오고...
좌측에 종원나이스빌 아파트를 끼고 밭 가운데를 올라선다
밭 가장자리를 지나서 능선으로 올라서니...
정상에는 녹색 펜스가 처져있고 그 아래에는 엄청나게 깊은 파서 도로를 만들고 있다
자꾸만 없어지는 영산기맥길... 이곳이 후답자들의 산행기에는 어떻게 기록될까?
도로 개설로 인해 끊겨버린 영산기맥길... 참으로 안타깝다
휀스를 타고 따라 우회길로 내려서면서도 마음은 그리 편치만은 않다
도로로 내려서서 주택가로 간다
주택가로 가로질러 올라서는데 좌측으로 무화과 나무가 보인다
무화과(無花果)
뽕나뭇과의 갈잎 중간키 나무인 무화과는 아라비아 서부 및 지중해가 원산지다.
무화과(無花果)는 ‘꽃이 없는 열매’라는 뜻이다.
중국 명나라의 의학자 이시진의 『본초강목(本草綱目)』에서도
무화과를 꽃이 피지 않고 열매 맺는 나무로 소개하고 있다.
과연 무화과는 꽃 없이 열매를 맺을까? 그렇지 않다.
이 나무의 이름을 꽃이 없는 과실로 생각한 것은 대부분의 나무처럼 가지에서 꽃이 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화과도 분명 꽃이 핀다. 무화과는 봄부터 여름 동안 잎겨드랑이(葉腋)에 주머니 모양의 열매를 맺는다.
열매 안에는 작은 꽃이 많이 들어 있다. 그러면 열매 안의 꽃에는 어떻게 벌레가 날아올까?
바로 무화과는 무화과좀벌레를 유인하여 열매를 맺는다.
중국 윈난 지역에서는 무화과를 나무만두, 즉 목만두(木饅頭)라 불렀다.
이는 열매 모양이 만두를 닮아 붙인 이름이다. 우리나라 식물도감에서 사용하고 있는
무화과의 또 다른 이름인 선도(仙桃)는 이 나무의 열매가 복숭아를 닮았기 때문이다.
선도는 어떤 사람이 마음으로 병을 낫게 해 달라고 빌자 하늘에서 떨어졌다고 붙인 이름이다
3~6m 높이로 자라는 관목으로 햇가지에는 잔털이 있다.
잎은 장상엽으로 3~7열로 갈라져 있고 호생한다.
잎 뒷면은 녹백색으로 뿌연 잔 털이 나 있다.
엽맥은 선명하게 나타나고 가지와 잎은 자르면 흰색의 유액이 흐른다.
꽃은 연홍백색이고 과실은 청록색의 육질로 변태한 것인데 도란형이며 익으면 암자색을 띤다.
원예종에는 황색, 녹색, 갈색 또는 흑색의 것도 있다. 나무 줄기는 검은 흑갈색이다.
한국에서는 제주도에서 야생한다. 원산지는 주로 열대 지방이고 소수는 온대 지방에서도 난다.
세계적으로 약 800~2000종이 분포되어 있으며 한국은 제주도와 남해안에서 5종이 난다.
열대 지방에서도 녹음수 또는 가로수로 이용된다. 온대 지방에서는 온실 관엽식물로 이용된다
우리나라에서 전남 영암군에서 90% 이상이 생산된다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에서 인용)
이곳도 영산기맥 주 능선에는 주택이 점령하고 있어 도로를
따라서 20여m 를 더 진행한 다음에 우측으로 올라선다
이 집 앞에서 우측으로 꺽어져서 등로로 올라선다
주택가 뒤를 우회하여 올라서니 보도블럭이 깔린 등로가 나오고
잠시 오르막을 오르니 조금전 지나온 유방봉이 뚜렸히 보인다
석산(石山:74m:10:35)
석산 정상에는 각종 체육시설과 벤치가 있고 이곳에서 좌측으로
내려서야 하나 바로앞에 팔각정이 있어서 팔각정까지 간다
팔각정에서 좌측으로 꺽어져 우측에 중앙하이츠 아파트를 보면서 내려간다
영산기맥을 논할 때 호남정맥에서 갈라져 순창새재 위 분기봉에서 이곳까지는
아무 무리가 없으나 이곳 석산에서부터 여러가지의 의견과 설이 난무하다.
▼ 현재 지형도 : 연두색선은 예전에 바다였다.
▼ 1919년 지형도 木浦府 (분홍색 : 마루금)
▲ 위쪽 務安, 아래쪽 삼학도 바깥쪽 점선따라 매립이 됨
산경표에 木浦鎭으로 마감하는 영산기맥이다. '목포' 지명은 나무가 많은 포구라 하여 목포(木浦),
또는 목화가 많이 난다하여 그렇게 불렀다는 설도 있으나, 서해로부터 육지로 들어가는
길목이라 하여 목포라고 불렀다고 하는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길목에 있는 포구’라 목포라 하던 것이 어느날 한자로 표기하면서 뜬금없이 나무목(木)을 갖다
붙인게 아닌가 싶다만, 산경표(木浦鎭)와 대동여지도(木浦)에도 나무목인걸 보면 일제가 지형도를 만들기 훨씬 이전이다.
목포의 옛지도를 보면 현재와는 많이 다르다. 조선시대 지도와 비교하는 것은 의미가 없고
현대식 측량술에 근거한 지도가 1919년 일제에 의해 발행된 지도인데 현재의 지형도와
비교해보면 반도형태의 아래위쪽 대부분이 예전에 바다였음을 알 수 있다.
다른부분은 언급할 형편도 못되고, 순전히 우리 산꾼들이 마루금을 잇는 시각으로 보자면
대박산, 양을산을 넘고, 목포시청 뒷산 ×99봉(일명 유방봉)에서 내려와 목포농협(산정지점)앞
도로를 건너고, 중앙하이츠아파트 뒷봉인 약 75m봉까지는 마루금을 따르는데 별다른 문제가 없는데,
이 75봉에서 유달산을 직선으로 향하면 예전의 바다 위를 지나는 꼴이 된다.
현재는 도심지가 형성되어 어디가 마루금인지 눈으로는 찾을 수도 없지만 옛지도를 보면
현재 대성초등학교 일대는 바다였고, 남동쪽에 대형 배수지가 묻혀있는 59.4봉을 지나
카톨릭병원 목포여고 북교초등학교를 잇는 선이 마루금이 된다. 그렇다 하더라도 현재의
사정상 정확하게 마루금을 밟을 수는 없는 일이고, 다만 그렇게 알고 지나갈 일이다
(조은산님 블로그 인용)
중앙하이츠 아파트 뒷쪽 능선에는 각종 체육시설들이 있고 삼각점이 있다
표식이 없는 삼각점이 있고...
체육시설들이 많이있다.
맞은편에 유달산도 보이겠다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을것 같아서 편백나무
숲 아래 벤치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30분간의 여유로움을 느낀다
이곳에서 옛 산경표를 인용하여 우측 중앙하이츠 아파트쪽으로 기맥길을
이어가시는 분들도 있으나 난 좌측 일신아파트 방향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편백나무 숲을 지나 좌측으로 내려서니 텃밭이 나오고 일신아파트 101동이 보인다
아파트 담장을 끼고 내려서니 도로가 보이고 우측에 수 PC방이
보이는 곳에서 좌측으로 꺽어진다
좌측으로 가서 도로를 건너 신신마트와 궁노래방 골목으로 기맥길을 이어 가야한다
선진포크 간판이 있는 곳에서 우측으로 조금가면 목포 산정지구대가 있다
점심식사(11:10~11:50)
도로를 건너기 전에 진권 아우님 점심을 먹자고 하여 신촌식육식당에 들려서
김치찌게에다가 소주 한병을 나눠 마시고 양말까지 벗고 휴식을 취한다.
밥을 먹고나니 주인 아줌마가 집에서 한 식혜라고 하면서 누른색의 식혜를
주는데 정말 맛이 기가 막히다... 어떡게 만들었냐고 하니까 늙은 호박으로
만든 것이라 하여 한 병만 팔라고 하니까 자기 식구들이 먹을거라고 하면서
팔지는 않고 한 잔씩 더 주는데 진권 아우는 넉살좋게 조그만 패트병에다가 얻는다
밥도 잘먹고 잘 쉬어간다고 인사를 하고 기맥길을 이어간다
신신마트 골목으로 올라서니 정금교회가 나온다
잠시 후에 한성사 절 간판을 보고 계단으로 오른다
막다른 골목까지 올라간다
막다른 골목에서 우측으로 꺽어져 올라서니...
텃밭이 있는 59.4봉이 나온다
59.4봉(12:05)
59.4봉 정상에서 뭔 시설물을 철거한 흔적이 보이고 맞은편의 유달산이
손에 잡힐듯이 가까워졌고 바로 아래에는 배수지와 팔각정이 있는 공원이 보인다
59.4봉 아래에 보이는 배수지
59.4봉 아래로 내려서니 팔각정과 운동기구가 설치되어 있는 조그만 공원을 만난다
공원 옆에는 뭔 시설물인지 모를 시멘트 건물과 내용을 모를 글씨가 쓰여있다
공원에서 좌측으로 돌아 나오니 연산배수지 나온다
연산배수지에서 계단으로 내려서서 목포시 노인복지관을 바라보며 걷는다
목포시노인복지관(12:10)
카톨릭에서 운영하는 목포시 노인복지관 정문에서 좌측으로 꺽어진다
노인복지관 담벼락을 끼고도니 Y자 길이 나오고 이곳에서 우측으로 꺽어진다
호남오피스텔Ⅱ 앞을 지나니...
금호직업전문학교가 나오고...
골목으로 내려서니 엔젤오피스텔이 나오면서 계속 내려가니...목포여고앞 오거리가 나온다
목포여고 앞 오거리(12:20)
횡단보도를 건너니 목포농협이 나오고 좌측으로 꺽어진다
목포농협 건물에서 미진사 간판을 보고 우측으로 꺽어진다
농협 건너편에는 목포여고가 보인다
골목으로 접어드니 목포정명여고 후문이 나온다
목포정명여고 후문에 있는 양동컴퓨터 세탁소에서 우측으로 꺽어진다
세탁소를 지나 첫번째 사거리 일로보살이라는 점집에서 좌측으로 꺽어진다.
꺽어지자마자 목포의 눈물을 부른 가수 이 난영 선생의 생가터가 나온다
이 난영 선생 생가터(12:25)
1916년 목포시 양동에서 이남순(李南順)의 장녀로 태어났다.
목포공립보통학교(현 목포북교초등학교)를 4학년까지 다니다가 집안이 어려워서 중도에 자퇴했다.
엄마와 함께 제주도의 생활이 시작되고 극장을 경영하는 주인집의 아이를
돌보면서 흥얼거리는 노래소리를 높이 평가하게 된 집주인이 그녀를 소위
막간가수(영화나 연극이 시작 되기전 나와 노래하는 가수)로 활동하게 하였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삼천리 가극단장의 권유로 특별단원으로 채용된 것이 1932년 열여섯살 되던 해였다.
이후 우연히 OK레코드 이철 사장의 눈에 띄어 작곡가 손목인에게 소개되어 목포출신 문일석 작사인
[목포의 눈물]을 부르게 된 것이 드디어 노래의 여왕 이난영이 탄생하는 계기가 되었다.
목포의 눈물은 이난영 특유의 목소리와 우리의 한(恨이) 서린 가사로 지금도 널리 애창되고 있다.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면
삼학도 파도 깊이 스며드는데
부두의 새악시 아롱젖은 옷자락
이별의 눈물이냐 목포의 설움
삼백년 원한 품은 노적봉 밑에
임자취 완연하다 애달픈 정조
유달산 바람도 영산강을 안으니
임그려 우는 마음 목포의 사랑
이 난영 선생 생가터에서 내려서니 목포 북교초등학교가 보인다
故 김 대중 前대통령의 모교인 목포북교초등학교(12:30)
북교초등학교 정문 앞에 있는 김 전대통령 기념비 앞에서 진권아우
북교초등학교 담벼락을 끼고 유달산으로 향한다
대운수퍼(12:40)
대운수퍼, 달산쉼터와 교회건물 사이 골목으로 지나간다
골목을 지나서 유달산 순환도로로 올라선다
유달산 순환도로로 올라선 다음 조금 진행하다가 우측 돌계단으로 올라간다
우측에 팔각정과 운동시설이 있고 좌측 능선으로 걸어간다
등로는 상당히 편안한데 일반 등산객은 이곳으로 오는 사람이 거의없다
넓은 안부를 지나니 체육시설이 있고 잠시후 좌측으로 유달산조각공원 철조망이 나온다
이정표(13:00)
소요정 방향으로 기맥길을 이어간다
잠시후에 갈림길이 나오고 우측에 있는 이등바위 쪽으로 향한다
목포대교와 목포 해양대학교의 모습
유달산 정상에서 바라본 목포해양대학교의 전경
목포해양대학교는 목포시 대반동에 1950년 4월 5일 항해과 15명 전문대학으로 개교,
1994년 대학교로 승격, 현재 2500명으로 장보고의 기상을 이어 받아 해양분야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목포의 꿈과 희망의 선구자 역할을 한다.
두 척의 유달호(3644톤급)와 새누리호(4701톤급)를 보유 실무교육을 담당한다.
목포해양대학교 부근에 '해양시비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뒤로 고하도로 이어지는 목포대교의 교각이 보인다
잠시후에 가야할 소요정과 유달산 정상의 모습
유달산 이등봉(13:15)
유달산에서 두번째 높은 봉우리라 하여 이등봉이라고 한다
이등봉 정상에서
이등봉 옆에 있는 유달산 수도바위(똥바위)의 모습
정상의 평평한 터에서 용맹정진하는 수도자의 모습같다 붙여진 이름이란다
일명 똥바위라고도 부른다
이등봉과 수도바위를 감상하고 다시 되돌아 내려와서 소요정으로 향한다
소요정 가는 길에서
소요정(逍遙亭:13:20)
소요정에서 막걸리 한잔씩 마신다음 보리마당을 지나 유달산으로 향한다
얼굴바위
유달산에서 바라본 신안비치호텔의 모습
1등봉 가는 길에서 만난 흔들바위... 그러나 흔들리지 않는다
유달산 정상인 일등바위로 올라선다
유달산 정상봉은 일등봉 또는 일등바위라 하는 데,
사람이 죽어서 영혼의 심판을 받는다 하여 '율동(律動)바위'라고도 한다
유달산(儒達山:228m:13:35)
목포시 유달동·대반동·온금동·북교동 에 걸쳐 있는 산으로 그리 높지는 않으나
산세가 험하고 층층기암과 절벽이 많아 호남의 개골산(皆骨山)이라는 불리우기도 하는
유달산은 옛부터 영혼이 거쳐가는 곳이라 하여 영달산이라 불리웠으며 동쪽에서 해가
떠오를 때 그 햇빛을 받아 봉우리가 마치 쇠가 녹아내리는 듯한 색으로 변한다 하여
유달산(鍮達山)이라 하였다. 이후 구한말 대학자인 무정 정만조가 유배되었다가
돌아오는 길에 유달산에서 시회를 열자 자극을 받은 지방 선비들이 유달정(儒達亭)
건립을 논의하게 되었고, 그 때부터 산 이름도 유달산(儒達山)이 되었다고 하는데
유달산에 지명유래가 하도 많아서 어느게 맞는지 상당히 혼란스럽다
정상에서의 시원스런 다도해의 경관, 그 사이를 오가는 크고 작은 선박들의 모습과
다도해의 일몰, 목포항의 야경등이 빼어나 목포 8경중의 하나인 유달산은 목포의
진산으로 목포시민들의 정신적인 지주 역할을 하는 산이다
유달산의 대표 수종은 소나무(곰솔)이고 왕자귀나무, 신갈나무, 굴참나무 등이 있다.
식생 구성으로 볼 때 인공 조림 수종을 제외하면 토양 조건은 척박한 편이다.
목포시와 다도해를 조망할 수 있는 곳에 위치하므로 산정에 두 개의
봉수대를 설치해 멀리 바다에서 들어오는 외적을 경계하였다.
달성각(達成閣)에서 약 100m 내려오면 정오를 알리던 오포대(午砲臺)와 노적봉(露積峯)이 있다.
노적봉은 임진왜란 때 이순신이 군량을 쌓아둔 것처럼 가장하여 적을 속인 곳이라는 전설이 전하여진다.
남쪽 기슭의 해안을 광복 전에 일본 사람들이 매축하여 신시가지를 만들었는데,
현재의 만호동과 무안동이 이 지역에 해당한다.
유달산은 목포 시민의 공원일 뿐만 아니라 전국적인 명소로 알려져 있어 전국에서
모여드는 관광객이 많다.
1982년부터 유달산 공원화가 추진되어 유달공원, 난공원, 달성공원, 조각공원 등이 있다.
서쪽 사면은 비교적 경사가 급하여 도시화가 덜 진행되었고, 해안에는 유달산해수욕장이 있다.
이 산에는 대학루(待鶴樓)·달성각·유선각(儒仙閣)·관운각(觀雲閣)·소요정(逍遙亭) 등의 정자가 있다.
달성각은 1958년 광복 13주년을 기념하여 건립하였고, 유선각은 1932년 10월 목포 개항 35주년을
기념하여 건립하였는데, 처음에는 목조로 건립하였으나 현재는 콘크리트건물로 개축되었다.
그리고 230평의 어린이 놀이터와 4·19기념탑·충혼탑(忠魂塔) 등이 있으며, 산 중턱에는
가수 이난영이 부른 「목포의 눈물」 노래비가 세워져 있다.
유달사(儒達寺)·관음사(觀音寺)·수도사(修道寺) 등의 사찰이 산 중봉에 있으며, 활터도 있다.
산의 정상인 일등암(一等巖)에 오르면 다도해를 한눈에 볼 수 있으며, 그 경관은 장관을 이룬다.
다도해관광권의 중심이며 산 주변에 2.7㎞의 유달산 일주도로가 있다.
목포역에서 도보로 30분 거리에 있고, 시내버스는 1번, 101번, 108번,
105번, 2번을 이용하여 목포역에서 하차하면 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인용)
유달산 정상에서 진권이 아우와 함께
마지막 구간에 진권이 아우님 동행하여 외롭지 않아 너무 좋았는데
거기다가 직접 프랑카드까지 직접 만들어와서 축하해주니 너무 고맙기만 하다.
아우님 고마우이! 복받을 겨
유달산 정상에서 바라본 목포시내
유달산 정상에 있는 표식을 알 수 없는 삼각점
유달산 정상에서 바라본 영산강 하구언과 목포항의 모습
유달산 정상의 이곳저곳을 두루 살펴본 다음에 다순금으로 향한다
뒤돌아본 유달산 정상 일등바위의 모습
다순금을 향하는 길 아래에는 사찰에서 들려오는 천수경의
독경소리가 오늘따라 더욱 처량하게만 들려온다
관운각 옆에는 나막신바위와 입석바위가 있고 우측으로 조금 올라가니 마당바위가 있다
나막신 바위
입석바위
마당바위
마당바위는 꽤나 넓은 공간으로 목포 앞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망원경이 설치되어 있다
마당바위에서 바라본 부동명왕상(不動明王像)
부동명왕은 대일여래(大日如來-밀교 진언종의 본존)가 모든 악마와 번뇌를
항복시키기 위하여 분노한 모습으로 나타난 형상으로 오대명왕(五大明王)의 하나이다.
1920년대 말 일인(日人)들이 일본불교의 부흥을 꾀하기 위하여
일등봉 아래쪽 암벽에 조각했다고 전해진다.
철퇴를 들고있는 모습 위에 '不動明王'이라 새겨져 있는데,
홍법대사가 중국에서 유학하고 일본으로 돌아올 때 배를 타고 모시고
왔는데 이 부동명왕이 대사의 항해 안전을 지켜줬다고 하며 홍법대사가
안치된 곳에는 어김없이 부동명왕상이 함께 있다
유달산 곳곳에는 일제시대의 잔재인 왜색불교의 흔적들이 많이 보인다
부동명왕상, 나막신바위, 입석바위, 마당바위, 거북바위를
감상한 뒤에 다시 영산기맥길을 나선다
애기바위(두 엄씨바위)
큰 엄씨가 애기를 업고 작은 엄씨에게 등을 돌리고
작은 엄씨도 애기를 업었는데 큰 엄씨를 보려고 하는 모양이다
'애기바위' 옆에는 '낚시터바위(釣臺)'가 서 있는데...
고하도 앞 바다에 낚시대를 드리워 놓고 팔장을 끼고 앉아 조용히 생각에 잠겨있는 낚시꾼 모양이란다
유달산은 마치 암릉으로 만든 자연사 조각장같은 느낌이다
여러가지 바위들을 두루 감상하고 애기바위에서 되돌아 나와서
좌측 노적봉가는 좋은 길을 버리고 우측 희미한 길을 따라 나선다
애기바위 우측으로 우회하여 내려서니 대리석으로 만든 쉼터를 만난다.
이곳에서 다시 급경사를 내려서니 넓은 임도와 만난다.
임도로 내려서니 이정표를 만나 조금을 더 진행하니...
임도 가운데에 체육시설이 설치되어 있는 넓은 공터가 나온다
목포항 맞은편 영산강 하구언 건너에는 현대삼호 조선소가 보이고...
등로에서 내려서서 동네 골목길을 지나간다
잠시후에 부광상회와 부광통닭집이 나온다
아리랑고개(14:00)
아리랑고개에서 직진하여 영산기맥 마지막 봉우리로 올라선다
영산기맥 마지막 봉우리(14:05)
마지막 봉우리 정상에는 재난시설물이 설치되어 있다
암릉사이로 걸어간다.... 조금을 내려서니 ‘경상도우회기념회장’이란 음각을 한 암릉을 만난다.
바위에 1921년에 음각한 것으로 보이는 ‘경상도우회기념회장’이란
문구가 새겨져 있어 세월의 무상(無常)을 말해주고 있다.
당시 개항 목포에 돈을 투자하고 벌었던 상인들은 대부분 목포보다
먼저 개항을 경험해 부를 축적한 부산 사람였다고 전해진다.
당시 목포의 대부분 상인들은 경남과 부산 사람들이었으며 이곳
목포사람들은 항만, 철로공사의 잡부 역할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그런 영향 탓인지 목포의 음식은 전라도 지역의 음식과 약간 다르다고 한다
남원산방 유 용철님의 자료인용
다시 편한 길을 따라서 마지막 기맥을 걸어간다
똥바위(?)
바다 가운데에는 용머리섬이라 불리는 고하도가 목포대교와 연결되어 있다
일제시대깨 가슴속에 아픔과 희망을 간직한 채 목포로 몰려들었던
조선인들은 이곳에 옹기종기 모여들어 살았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는듯 하다
온금동은 매립권을 둘러싸고 조선인 무안 출신 정래성과
일본 상인 후쿠다 간의 분쟁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목포의 포구를 막아 매립하면서 형성된 온금동은 자연스럽게 아리랑고개를
사이에 두고 일본인 거루지역과 통하면서 자리를 잡아갔다는 다순금 마을
마을 한가운데 자립잡고 있는 커다란 벽돌공장이 옛 영화를 말해주는 듯하다
다순금 마을 위에서
다순금 마을
목포 에서 가장먼저 생겼다는 이동네는 유달산 아래, 국제여객선 터미널이 보이는 비탈진곳에
다닥다닥붙어 있는집과 비좁은 골목, 비탈진 계단으로 된 달동네로 유달로를 사이에두고
좌우측에 위치하고 있는 이곳을 걷고 있노라면 참 묘한 기분이 듣다.
어떻게 이런곳에 사람이 살까. 하지만 그것도 잠시 금새 정감이 느껴진다
다순구미는 " 따습다"의 다순과 바닷가나 강가의 "후미진곳" 의 구미의 합성어로 다순구미 라고 한다.
목포의 온금동(溫錦洞)의 다순구미 마을을 일컫는 말들이다.
쪽방촌의 다순금 마을 벗어나 ‘홍어야 놀자’라는 가계를 지나니 해안도로가 나오면서
영산기맥의 마지막 맥을 다하는 입수점이 보이기 시작한다’
1897년에 개항한 목포항은 부산, 원산, 인천에 이어 4번째로 개항된 항구이다
진권아우 기맥완주 축하하이 ㅋㅋㅋ
지난해 12월 순창새재에 시작한 영산기맥길 아무런 연고도 없는 낯설은 남도땅
거친 잡목과 가시나무 등 수많은 장애물을 이겨내면서 마지막 목포 앞바다에
맥을 다하는 영산기맥길은 너무나 힘들었기에 가슴깊이 간직할 듯 싶다
그 와중에서 인심좋은 택시기사, 식당 쥔장들... 잊지못할 추억거리도 많다
지금까지 해 온 18좌(백두대간, 9정맥, 8기맥)중에서 가장 힘이 들었다
더군더나 길이 없어서 애를 많이 먹었다. 이젠 19좌 중 마지막 땅끝기맥
다시 도전해 보련다... 기왕 가야할 길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하지 않았던가
마지막에 동행하여 많은 도움을 줬던 진권 아우님 너무너무 고마웠소.
마지막을 끝내는 바다물에 손을 담그는 의식으로 영산기맥을 마무리 한다
이곳에서 1번버스를 타고 20분정도 지나니 목포 고속버스 터미널 앞에 도착한다
고속버스 탑승시간이 50분정도 남아있어 근처에 있는 사우나에 들려서 샤워를
하고 냉탕에 들어가서 발목과 도가니의 열을 식힌 다음에 옷을 갈아입고 터미널로 향한다
목포 고속버스 터미널(15:45)
목포발 서울행 버스표
목포에서 오후 4시 버스를 타고 서울로 향하는데 공주구간을 지나는데 차가
얼마나 밀리는지 모르겠다...정안 휴게소에 도착하여 용인가는 버스를 환승하는
진권아우와 헤어지고 버스는 5시간 30분만에 서울에 도착하니 긴장이 풀린
탓인지 갑자기 피로가 엄습해오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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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졸업 축하해요~~~
유방봉. 똥바위 ~~ㅎ
그리고 진권대장의 명품 뒷태!!
연휴 뒷날이지만 힘내야죠??!
출근 잘하시고 다음 여행후기 기대 합니다.~~
고맙습니다
졸업축하합니다!
그날 모델하시느라 고생했습니다
범여님 우째졸업을 잎케도 마니하시남요
드려요
솜낭자 꼬라지 좀 보고 삽시다
백두대간 이번구간 안오실거요? 코스도 짧고 전망도 끝내주고...
거기다가 회장님이 삼겹살 쏜다고 하는데 군침만 흘리지 말고 갑시다
축하합니다~ 긍데 음주산행까징 ㅎㅎㅎ 이난영 생가 가느라 조각공원은 건너뛰셨네요~~
먼저주보니 독사 어린놈이 인사하던데~ 뱜 조심하시고 안전 산행하세요~
아우님 고마우이... 조각공원은 지도상의 마루금이 아니더군... 그래서 정자에서 조각공원
철조망 옆길을 탔제...남도지역은 비얌은 진작부터 보이더군... 영산기맥길에서
녹색띠지 덕을 많이봤네그려 암튼고마우이... 셋째주부터 땅끝기맥을 시작하는데
거기에도 있을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