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엄시장의 확대와 함께 한국의 준대형차시장도 날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GM대우의 야심찬 출사표 알페온은 오펠 플랫폼을 바탕으로 개발된 뷰익 라크로스의 한국형 버전. 카리스마 넘치는 당당한 외형에 안락한 인테리어와 고급스런 편의장비로 무장했고, V6 3.0L 직분사 엔진은 파워풀한 주행능력까지 제공한다.
1980년대만 해도 프리미엄카는 매우 희귀한 존재였다. 영국의 유서 깊은 롤스로이스나 재규어, 독일의 메르세데스 벤츠 정도만이 손에 꼽혔으며 일반인은 감히 앉아보기도 힘들어 그야말로 동경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30년이 흐른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프리미엄카시장이 확대되고 다양해져 보다 많은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호사가 되었다.
한국차 프리미엄화를 이끌고 있는 것은 누가 뭐래도 준대형 클래스. 현재 GM대우 알페온과 현대 그랜저, 기아 K7, 르노삼성 SM7 등이 포진하고 있는 이 클래스는 사실 예전 대형차 사이즈의 당당한 몸체에 고급스러운 인테리어, 다양한 편의장비로 무장하고 있다.
이 클래스는 세계 자동차시장을 보아도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다. 메르세데스 벤츠의 E클래스와 BMW 5시리즈, 아우디 A6 등 전통적인 고급차 브랜드의 주요 수입원들이 여기에 포진해 있기 때문에 여러 메이커들이 비슷한 등급의 모델을 개발해 시장에 진입하고자 애쓰고 있다. 지나치지 않은 사이즈와 고급스러움으로 많은 사람들의 드림카로 사랑받고 있을 뿐 아니라 메이커에게는 많은 이익을 안겨주는 캐시 카우(cash cow)이기도 하다. 프리미엄카는 회사의 미래를 책임질 중요한 분야이다 보니 경쟁이 점차 치열해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
이런 상황에서 새롭게 주목받는 것이 한국의 준대형차시장. 매력적인 신차들의 등장으로 경쟁이 한층 치열해졌다. 그 중에서도 알페온은 한국은 물론 GM 브랜드를 통해 세계 프리미엄시장에서 조용하고도 격렬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준대형 세단. 이 차의 실력을 검증하기 위해 서해안고속도로를 달려 서천까지의 시승코스를 잡았다.
뷰익 라크로스가 한국에 적응하다
대우시절의 대형 세단은 선택권이 그리 다양하지 않았다. 물론 당시는 한국차 수준 자체가 그러했다. 그 중에서 기억에 남는 것이 바로 브로엄. 91년 데뷔한 수퍼살롱 브로엄은 당시의 딱딱하고 각진 대형 세단과 확연히 구분된 아름다운 유선형 라인이 인상적이었다. 오펠 레코드 로얄 시리즈의 플랫폼을 사용하면서 칼리브라와 비슷한 날렵한 보디는 당시 국내 중형차 중 가장 큰 사이즈였다. 따라서 브로엄을 한국 준대형 모델의 뿌리라 해도 크게 무리가 없다. 아울러 오펠과의 오랜 인연 역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한동안 이 클래스의 신차를 내지 못했던 GM대우는 지난해 12월 VS300이라는 프로젝트명으로 개발 중이던 프로토타입을 비공개 발표한 후 올해 부산모터쇼에서 비로소 일반에 공개했다.
이미 알려진 대로 이 차는 뷰익 라크로스의 한국형 버전으로 2008년 발표된 뷰익 인빅타 컨셉트 디자인을 그대로 사용한 뷰익의 새로운 주력 모델이다. 뷰익은 현재 오펠 인시그니아를 리갈로 개명해 엔트리 모델로 판매 중이며 주력 모델 라크로스, 풀사이즈 세단 루체른 그리고 SUV 엔클레이브 등 4가지 라인업을 운영 중이다.
뷰익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솔직히 걱정이 앞섰던 것이 사실이다. 기자가 기억하는 뷰익은 미국의 보수적 색체가 매우 강한 브랜드여서 해외시장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체질개선한 GM은 전세계 다양한 산하 브랜드의 경쟁력 있는 모델을 솎아내 라인업을 재정비했고, 그 결과 오펠 인시그니아와 플랫폼을 공유하는 라크로스는 보수적인 느낌 대신 당당한 크기와 카리스마 넘치는 디자인에 세계적으로도 통할 수 있는 매력적인 디자인과 품질까지 손에 넣었다. 두 세대 전의 뷰익 센추리나 리갈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알페온의 첫인상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그릴과 헤드램프의 콤비네이션. 크롬라인이 수직으로 배치된 강렬한 그릴은 폭포수(waterfall)라는 별칭을 가진 뷰익의 상징이다. 여간해서는 매칭시키기 어려운 GM대우 엠블럼 대신 알페온 전용 엠블럼을 만들어 붙인 것은 탁월한 선택이다. 헤드램프는 어찌 보면 펼쳐진 날개처럼 또 어찌 보면 치켜 뜬 야수의 눈처럼 시선을 잡아끈다. 노즈 끝단이 높아 도도하게 코를 치켜세운 귀부인 같은 느낌도 든다.
마치 거대한 암석을 깎아내 만든 듯한 무게감의 옆모습은 벨트라인이 높아 자칫 단순하고 무거워지기 쉬운데, 허리부분에 다이내믹한 사이드 캐릭터라인을 넣어 역동적인 느낌을 살렸다. LED 깜빡이를 내장한 사이드미러, 헤드램프와 닮은 LED 타입 브레이크램프도 전체적인 디자인에 잘 녹아들면서 시선을 끄는 포인트. 최근 너무 젊은 스타일을 강조한 경쟁 모델에 비해 약간 단순하면서도 무게감 있고, 안정적인 인상을 준다.
고급스럽고 편의장비 다양한 인테리어
인테리어 역시 라크로스의 디자인을 그대로 사용했다. 트윈 실린더 형태의 계기판과 특징적인 센터콘솔 디자인이 눈에 띈다. 오션블루라 불리는 속도계와 타코미터의 청록색 조명은 인테리어 디자인의 기본 테마. 대시보드를 가로지르는 긴 라인과 센터페시아의 아치형으로 들어간 조명은 밤에는 물론이고 낮에도 은은한 멋을 풍긴다. 계기판 사이에는 컬러 모니터를 달아 다양한 정보를 표시한다.
한편 완만하게 경사진 센터콘솔에는 8인치 모니터를 깊숙하게 밀어넣고 큼직한 스위치를 바로 밑에 집중적으로 배치했다. 모니터 바로 아래 놓인 프리셋 스위치는 라디오와 DMB 방송을 한꺼번에 메모리해 관리할 수 있고 차에 관한 각종 세팅을 바꾸는 회전식 노브도 조작이 무척 간편해 마음에 든다.
키를 주머니에 넣은 채 도어 핸들을 당기는 것만으로도 록이 해제되고 반대로 핸들 터치센서를 건드려 문을 잠글 수도 있다. 문을 열거나 시동을 끄면 시트가 자동으로 뒤로 밀려 승하차 편의성을 높여준다. 이것은 차체 기능 조절에서 해제할 수 있다. 허리를 탄탄하게 받쳐 편하면서도 곧은 자세를 유지시켜 주는 시트는 히팅과 통풍 기능이 모두 달려 한여름부터 한겨울까지 쾌적한 운전을 돕는다.
뒷좌석은 레그룸이 충분해 장거리 이동이 무척 쾌적하다. 요즘 세단 중 많은 수가 루프라인을 쿠페처럼 만드느라 헤드룸이 부족한 경우가 많은데 알페온은 175cm의 기자가 등을 꼿꼿하게 세우더라도 머리카락이 천장에 살짝 닿을락 말락 할 정도였다. 수천만원 하는 수입차 중에도 정수리가 꽉 끼는 모델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매우 훌륭한 거주공간이다. 아울러 뒷좌석 센터 암레스트에는 오디오와 히터를 조절하는 컨트롤 박스와 컵홀더를 내장하고 전동식 파노라마 선루프 등 고급 편의장비를 충실하게 갖추었다.
멀티미디어 패키지에 포함된 인피티니(Infinity) 오디오는 11개의 스피커와 8채널 앰프로 구성된 본격적인 구성으로 DVD의 5.1채널의 깔끔한 사운드를 재생한다. 고음질 사운드는 알페온의 뛰어난 정숙성과 만나 더욱 빛을 발한다. 섀시 각부의 차음재와 흡음제, 이중접합 윈드실드 등 NVH 개선을 위한 다양한 노력의 결과다. 무작정 조용하기만 한 렉서스와 달리 운전에 필요한 최소한의 정보를 전달하면서 드라이버의 신경을 거스를 만한 소리나 진동은 철저하게 잡아냈다.
미국에서 팔리는 라크로스는 4기통 2.4L, V6 3.6L 두 가지 엔진을 얹지만 알페온은 국내 시장의 특성을 고려해 2.4L와 V6 3.0L 두 가지 선택권을 마련했다. 시승차인 EL300은 V6 3.0L 모델로 최신 환경기준과 연비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가변 밸브 타이밍 기구(VVT)와 직분사 시스템 등 최신예 기술을 집중적으로 사용했다. 그 결과 263마력의 최고출력과 9.3km/L의 연비를 조화시켰다.
알페온은 오펠 인시그니아와 사브 9-5에 쓰였고 캐딜락이 준비 중인 풀사이즈 세단 XTS의 기반이 되기도 하는 입실론Ⅱ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다. GM은 하나의 플랫폼으로 워낙 많은 차종을 소화하다 보니 설계를 여유 있게 하는 경향이 있는데, 알페온 역시 그 덕분에 뛰어난 안전성과 높은 하체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1,785kg의 체중은 순발력과 연비에서 다소 불리하지만 낮은 무게중심으로 안정적일 뿐 아니라 묵직한 감각이 믿음직한 느낌을 준다. 스포티함보다는 부드러운 주행에 어울리는 차의 성격에 따라 6단 AT는 반응이 여유롭고 변속 쇼크를 거의 느낄 수 없다. 반면 출력이 263마력이나 되고 29.6kg·m의 넉넉한 토크를 갖추어 순발력에서도 부족함을 느낄 수 없다. 시속 60~150km 영역에서는 어지간한 차들의 추격을 허용하지 않을 뿐 아니라 시속 200km까지 스트레스 없이 가속할 수 있다.
승차감이 부드럽고 나긋하며 차체가 무거운 것에 비해서는 롤링이 의외로 적고 안정적이어서 놀라게 된다. 알페온으로 와인딩에서 스포츠주행을 즐길 일은 거의 없겠지만 운전자가 의도한 대로 움직이는 능력은 능동적 안전성과 직결되므로 매우 중요하다. 설령 사고가 난다 해도 북미 고속도로 보험 안전협회(IIHS)에서 최고등급을 받은 실력이니만큼 걱정할 필요가 없다.
전세계 아우르는 GM의 역량
한국 고급차시장을 호령했던 대우는 어려운 시기를 겪으면서 한때 중소형차에 주력하기도 했다. 하지만 예전의 대우가 그랬듯 경쟁 브랜드의 독주가 언제까지 지속된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글로벌화되는 시장, 급변하는 트렌드는 언제나 새로운 상품을 원하며 변화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전세계를 아우르는 GM이 높은 역량과 기술을 투입해 개발한 입실론Ⅱ 플랫폼은 한국시장에서 알페온이라는 이름으로 거듭났다. 어쩌면 뷰익 엠블럼을 달고 수입차로 판매되었다면 족히 5,000~6,000만원은 되었을 이 차는 이제 한국 GM대우의 품안에서 훨씬 매력적인 가격표를 달게 되었다. 글로벌 경제환경이 우리에게 준 매우 특별한 선물임에 다름없다.
GM DAEWOO ALPHEON EL300
BODY
보디형식, 승차정원 4도어 세단, 5명
길이×너비×높이 4995×1860×1510mm
휠베이스 2837mm
트레드 앞/뒤 1581/1581mm
무게 1785kg
CHASSIS
서스펜션 앞/뒤 맥퍼슨 스트럿/멀티링크
스티어링 랙 앤드 피니언
브레이크 V디스크/디스크
타이어 245/40 R19
굿이어 이글 RS-A
PRICE
기본/시승차 3,895만원/4,227만원
DRIVE TRAIN
엔진형식 V6 직분사
밸브구성 DOHC 24밸브
배기량 2997cc
최고출력 263마력/6900rpm
최대토크 29.6kgㆍm/5600rpm
구동계 배치 앞 엔진 앞바퀴굴림
변속기 형식 6단 자동
PERFORMANCE
0→시속 100km 가속 ―
최고시속 ―
연비, 에너지소비효율 9.3km/L, 4등급
CO₂ 배출량 252g/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