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족하는 삶
성경본문: 전도서 5:10-17
10.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함이 없고 풍부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함이 없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11. 재산이 더하면 먹는 자도 더하나니 그 소유주가 눈으로 보는 외에 무엇이 유익하랴
12. 노동자는 먹는 것이 많든지 적든지 잠을 달게 자거니와 부자는 배부름으로 자지 못하느니라
13. 내가 해 아래서 큰 폐단 되는 것을 보았나니 곧 소유주가 재물을 자기에게 해 되도록 지키는 것이라
14. 그 재물이 재난을 인하여 패하나니 비록 아들은 낳았으나 그 손에 아무 것도 없느니라
15. 저가 모태에서 벌거벗고 나왔은즉 그 나온대로 돌아가고 수고하여 얻은 것을 아무 것도 손에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16. 이것도 폐단이라 어떻게 왔든지 그대로 가리니 바람을 잡으려는 수고가 저에게 무엇이 유익하랴
17. 일평생을 어두운데서 먹으며 번뇌와 병과 분노가 저에게 있느니라
18. 사람이 하나님의 주신바 그 일평생에 먹고 마시며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 중에서 낙을 누리는 것이 선하고 아름다움을 내가 보았나니 이것이 그의 분복이로다
19.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분복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
20. 저는 그 생명의 날을 깊이 관념치 아니하리니 이는 하나님이 저의 마음의 기뻐하는 것으로 응하심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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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전서 6: 3-10
3. 내가 마게도냐로 갈 때에 너를 권하여 에베소에 머물라 한 것은 어떤 사람들을 명하여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며
4.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착념치 말게 하려 함이라 이런 것은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룸보다 도리어 변론을 내는 것이라
5. 경계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나는 사랑이거늘
6. 사람들이 이에서 벗어나 헛된 말에 빠져
7. 율법의 선생이 되려 하나 자기의 말하는 것이나 자기의 확증하는 것도 깨닫지 못하는도다
8. 그러나 사람이 율법을 법 있게 쓰면 율법은 선한 것인줄 우리는 아노라
9. 알것은 이것이니 법은 옳은 사람을 위하여 세운 것이 아니요 오직 불법한 자와 복종치 아니하는 자며 경건치 아니한 자와 죄인이며 거룩하지 아니한 자와 망령된 자며 아비를 치는 자와 어미를 치는 자며 살인하는 자며
10. 음행하는 자며 남색하는 자며 사람을 탈취하는 자며 거짓말 하는 자며 거짓 맹세하는 자와 기타 바른 교훈을 거스리는 자를 위함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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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본문인 전도서에서는 "돈 좋아하는 사람은, 돈이 아무리 많아도 만족하지 못하고, 부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리 많이 벌어도 만족하지 못하니, 돈을 많이 버는 것도 헛되다"고 하였고, 디모데전서에서는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라고 하였습니다. 돈을 많이 버는 것이나 돈을 사랑하는 것은 헛될 뿐만 아니라 악의 근원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성경 말씀과 상관없이 돈을 좋아하고 돈을 사랑합니다. 우리가 돈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은 그것이 생존을 위한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돈이 없으면 우리의 생존은 위협을 받으며, 결국 인간 이하의 삶을 살거나 자살로 그 생명을 일찍 끝내버리게 됩니다. 그만큼 돈은 우리 생존을 위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기에 우리가 돈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의 생존을 위한 만큼만 가지면 거기에 만족하면서 더 이상의 돈을 가지려 하지 말아야 할텐데, 우리는 거기에 머물지 않고 보다 많은 돈을 가지려 하게 됩니다. 우리는 누구나 돈은 다다익선(多多益善)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을수록 좋다는 생각입니다.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브스>(Forbes)가 선정한 세계 갑부 중 1위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회장인데, 그의 재산은 430억 달라라고 합니다. 현재 환율로 환산해 보니까 51조원 정도가 됩니다. 물론 그는 자기가 가진 재산의 반 이상(229억 달라)을 기부하여 여러 가지 좋은 일들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너도나도 빌 게이츠처럼 돈을 많이 가지려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미국의 갑부 400명의 재산을 합치면 모두 9550억 달라라고 합니다. 우리 돈으로 1134조5400억원입니다. 금년도 우리나라 예산 117조 5429억원의 10배쯤 됩니다. 우리나라 인구가 4천만이라고 할 때 그 열배인 4억의 사람들의 삶을 운영할 돈이 400명에게 몰려 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돈이 너무 한쪽으로 몰려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지구의 수명을 단축시키는 과소비
돈이란 한정된 재화(財貨)를 뜻합니다. 경제가 성장하면 그만큼 재화가 늘어나는 것은 사실이지만, 경제는 무한정 성장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돈은 바로 자연 자원(資源)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자원은 무제한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수준에 달하면 더 이상 경제는 성장할 수 없습니다. 매년 우리는 생물권이 재생산할 수 있는 것보다 30% 이상을 더 소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매년 지구의 적재(摘載)능력보다 약 30% 이상을 과소비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 말은 지구의 수명을 그만큼 단축시키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결국 우리 후손들이 써야할 재화까지 미리 댕겨서 쓰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더 이상의 경제 성장은 안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다 문제는 이렇게 30% 이상을 과소비하고 있으면서도 전 세계 인구의 80%가 가난을 면치 못한다는데 있습니다. 20%의 고소비자들이 나머지 80% 사람들이 써야 할 것들과 그리고 그 후손들이 써야할 것까지 쓰는 과소비를 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시애틀 타임스에 따르면 빌 게이츠 부부는 지난 1997년 1억1,000만 달러를 들여 시애틀 메디나시 호수변의 약 6,000평 대지에 건평 1,400평에 이르는 대저택을 짓고 입주한 뒤 10년 동안 주변의 주택 9채를 비롯해 모두 11건의 인근 부동산을 매입, 고용인들을 거주시키고 있다고 합니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중세 시대 영주가 가신(家臣)들을 위해 성 주변에 집을 마련해 주던 것과 같다며 이는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라는 비판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가진 자들의 삶을 선망(羨望)하면서 가난한 나라들도 앞다투어 경제를 성장시키려고 여러 모양으로 힘쓰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나라가 중국인데 지난해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6년만의 최고인 9.1%를 기록했습니다. 2003년 국내총생산(GDP)이 11조7천억위안(1조4천1백억달러)에 달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되면 지구 자원 적정 능력에 과부하(誇負荷)가 걸려 자원은 신속하게 말라버리고, 지구는 더 이상 지탱될 수 없는 자리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경제 성장을 지고의 선으로 떠받들어 왔지만, 가만히 돌이켜 보면 그것은 결국은 이 지구 자원을 쥐어짜는 일이요, 후손들에게 물려줄 자원까지 다 써버리는 죄악이라는 결론을 얻게 됩니다.
이렇게 볼 때 돈을 많이 갖는 개인은 좋을지 모르지만, 전 지구적으로 볼 때 그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돈을 사랑함이 모든 악의 뿌리"라는 말씀은 단순히 도덕적인 측면에서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결국은 하느님이 지으신 세계를 파괴하는 것이기에 죄악으로 규정되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덜 먹고 덜 쓰는 것이 정의
그러면 이 지구가 멸망하지 않고 계속 지속하려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녹색평론>에 실린 독일학자인 볼프강 작스의 강연에 보면 "지속가능성은 잘사는 이들이 자원에 대한 갈망을 억제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더 적은 석유, 더 적은 목재, 더 적은 물고기를 소비할 수 있는 사회, 다른 말로 하자면 지금보다 자원에 덜 의존하면서 부를 창조하는 사회 체계를 만드는 것"만이 이 지구를 지속시킬 수 있는 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잘 사는 나라들은 지금 너무 많은 자원을 소비하고 있으니까 그 소비를 줄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독일인들은 매년 80톤의 물자를 소비한다고 하는데, 이런 식으로 계속 쓸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잘 사는 서구인들이 훨씬 더 적은 자원을 소비하고도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지 않으면 지구는 더 이상 견딜 수 없다는 것입니다.
80%의 가난한 사람들로 하여금 좀더 부지런히 노력하여 잘 살게 하면 될 것같이 생각이 들지만, 한계를 가진 자원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이 모두 잘 살수가 없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모두 잘 살려면 지구가 두 개가 있어도 모자라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런 방향으로 세계 경제가 나아가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와 반대로 이제는 고소비자(高消費者)들이 그 소비를 주리는 쪽으로 정책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볼프강 작스 박사는 세 가지 길을 제시하였는데 그 중 두 번째로 '만족'의 길을 이야기하였습니다. 적게 쓰면서도 만족할 줄 아는 가치관을 길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미국 사람 가운데는 지독하게 아껴 쓰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설날 우리 형제들 식구가 다 모였는데, 그 때 미국에 유학을 간 조카의 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느 기독교학교에 입학을 하였는데, 인도 선교사로 나갈 가정에 숙박을 배정 받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요즈음 뉴욕 기온이 영하 30도를 오르내리는데도 좀처럼 방에 불을 때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전기 담요를 구입하여 쓰려고 하였더니 전기값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쓰지 못하게 하였답니다. 그런데 그 아이에게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녀가 여섯인데 모두 똑같이 생활하기 때문에 불평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아이의 할아버지에게서 들은 이야기니까 사실 그대로인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이효종 장로님께서 한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작년 1월에 대학합창단을 이끌고 영국 순회 연주를 하는 중에 어떤 집에 민박을 하였는데, 추운 겨울인데도 초저녁만 조금 난방을 하고는 난방을 하지 않아 밤새 떨었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오히려 우리가 저들보다 개인적으로는 더 많은 열에너지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됩니다. 볼프강 작스 박사는 강연을 이런 말로 끝냈습니다.
"오늘날의 정의는 더 많은 것을 제공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더 적은 것을 취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우리가 덜 먹고 덜 쓰는 것이 곧 정의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디모데전서에서는 "우리는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소비를 최소화하여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려면 결국 우리의 생각을 바꾸는 길밖에 없습니다. 적게 쓰면서도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마음의 자세 곧 자족(自足)하는 마음을 갖지 않고서는 소비를 최소화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자족할 줄 아는 마음의 자세는 우리에게 행복과 평화를 가져다 줄 것입니다.
자족하는 삶의 원리
이 지구의 생존과 평화는 결국 자족하는 삶에서 오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일찍이 빌립보 교인들에게 자족하는 삶을 간증하였습니다.
“나는 어떤 처지에서도 자족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비천하게 살 줄도 알며 풍족하게 살 줄도 압니다. 배부르거나 배고프거나 넉넉하거나 궁핍하거나 그 어떤 경우에도 적응할 수 있는 비결을 알고 있습니다. 나에게 능력을 주시는 분을 힘입어 나는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빌 4:11-13(공동번역)
우리가 스스로 만족할 줄 알면, 어떤 형편에서든지 감사할 수 있고 평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 비결을 어떻게 배우느냐 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것을 주안에서 배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해서 그는 변화되었습니다. 자기의 모든 욕심을 버렸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인간의 욕심이란 어리석은 것이요, 헛된 것이라는 사실을 그는 배웠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리스도와 일치된 삶을 추구하기로 작정하였고, 또 하느님이 제시하여 주신 목표를 향하여 달려가기로 작정을 하였습니다. 그가 그리스도 안에 있게 되면서 전에 자랑스럽게 생각하였던 것들이 인간의 욕심에 불과하였다는 사실을 깨달아 알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전까지는 이 땅의 삶이 가장 귀한 것으로 알았는데, 그리스도 안에서 영생에 대한 비밀을 발견하면서 그것이야말로 값진 보배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다고 표현하므로 이전의 삶은 질그릇과 같다면 새로 발견한 능력과 비밀은 보배와 같다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그는 전에 자랑스럽게 생각하였던 것들을 모두 버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발견되려 한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부터 바울의 자족하는 마음이 시작되었다고 하겠습니다.
사실상 우리가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그 안에서 거듭나지 않으면 우리에게 있는 욕망을 잠재우기 어렵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 나라의 영광과 우리가 받을 기업의 풍성함을 발견할 때 비로소 우리가 그렇게 얻기를 원했던 이 땅의 것들이 쓰레기처럼 보일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다음과 같이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느님이신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여러분에게 주셔서, 하느님을 알게 하시고, 마음의 눈을 밝혀 주셔서, 하느님의 부르심에 속한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들에게 베푸시는 하느님의 영광스러운 상속이 얼마나 풍성한지를, 여러분이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 또한 믿는 사람들인 우리에게 강한 힘으로 활동하시는 하느님의 능력이 얼마나 엄청나게 큰지를, 여러분이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 (엡 1:17-19)
우리가 '하느님의 영광스러운 상속'이 얼마나 풍성한지를 안다면 바울처럼 이 땅에 대한 미련을 아낌없이 떨쳐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의 영이 눈뜨지 못하고 우리의 귀가 열리지 않아 '하느님의 영광스러운 상속'의 풍성함을 보지 못한다는데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는 언제나 이 땅의 삶을 풍성하게 해달라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어서 우리가 열심히 기도는 해도 우리의 영이 자라지 않으며, 따라서 영원한 생명의 세계를 바라보지 못합니다. 우리가 가진 신앙은, 때로 우리가 갖고 있는 성공에 대한 꿈을 뒷받침하는 역할을 할 뿐입니다. 빌 게이츠처럼 세계적인 갑부가 되는 꿈, 아무것도 가진 것 없었던 데서 놀라운 아이디어 하나로 세계를 장악하여 큰 부자가 되는 꿈, 그렇게 거창한 꿈은 아니어도 남부럽지 않은 행복한 삶을 이루는 꿈, 이런 꿈을 실현시키는데 있어 보조적인 역할을 할 뿐인 것이 바로 우리의 신앙이며 기도입니다. 이런 꿈을 이루기 위해 기도하는 한 우리는 결코 자족하는 삶을 이룰 수 없으며, 끝없는 욕망의 포로가 되어 피곤하여 지칠 때까지 그 욕망을 좇아 달려갈 수밖에 없습니다. 대체로 우리는 그 욕망을 좇아가다가 한 번 크게 실패하거나 좌절을 맛본 후에야 자기의 욕망이 어리석은 것이며 헛된 것이었음을 깨닫고 돌이켜 하느님께로 나아가곤 합니다.
지금의 세계는 과거와 같이 성공신화를 이룬 사람들을 위인(偉人)으로 존경하고 받들던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오히려 그런 사람들은 환경을 파괴하고 세계를 빈곤으로 몰고 가는 위험한 인물로 지목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제는 한정된 자원을 어떻게 아끼며 어떻게 나눌까를 생각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는 과학자, 세계가 더불어 살아갈 이념을 이끌어내는 철학자, 그 이념을 따라 정치하는 정치가, 먹고 입을 것만 있으면 자족할 줄 아는 신앙과 도덕심을 불어넣을 종교인이 필요한 때입니다.
현실을 무시 못하는 정치인들이 이런 꿈을 실현시킬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를 목표로 자족하는 삶을 추구하는 기독교인이야말로 이런 운동을 하기에 가장 적합한 사람들일 것입니다. 욕망을 따라 계속 넓은 길로 나아가면 이 세계는 곧 파멸할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우리가 앞장서서 경건과 절제, 자족하는 삶의 본을 보여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자린고비'가 되어 물자를 아끼고, 소비를 주리며, 최소한의 삶으로 돌아가야 할 것입니다. 옛날의 '자린고비'는 재산을 모으기 위한 것이었지만, 기독교의 '자린고비' 정신은 무너져가는 생태계를 살리기 위한 것이며, 영적 성장을 위한 것이며, 더 나아가 하느님 나라에 이르기 위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생명의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 위해 자족하는 삶을 익혀야 하겠습니다. 금년에 여러분의 삶을 절약하는 삶으로 바꾸어 가시기를 바랍니다. 방안 온도를 좀더 낮추고, 전기와 물과 가스를 절약하며, 새로운 가구를 사기보다는 옛것을 수선하여 쓰며, 통장에 저축을 늘려 가난한 이웃들을 돕는 한 해가 되도록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서 이제는 내 욕망을 이루기 위하여 기도하는 대신에,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해 두신 영광스러운 세계를 볼 수 있도록 우리의 영이 자라고 영의 눈이 떠지기를 위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영이 깨어나므로 우리의 삶에 경건이 깃들고, 자연스럽게 자족하는 마음으로 이 땅의 욕망을 제어해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제 자족하는 삶을 통해 이 땅의 욕망 대신 하느님 나라를 열심히 찾고 구하시기 바라며, 이로써 하느님의 뜻을 이루어 그에게 영광을 돌리는 여러분의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출처:은혜목회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