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필 이흥근
학창 시절부터 만년필이 갖고 싶었다.
결혼할 때 아내로부터 선물로 받고 싶었지만, 생각만 하고 60년 세월이 갔다. 환갑을 맞아 아들과 딸이 백화점에서 몽블랑 만년필을 선물로 사주었다. 영어로 만년필에 이름을 새기고 귀중하게 여겼는데 어디에서 잃어버렸는지 알 수가 없다. 가끔 잃어버린 만년필이 생각난다.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늦깎이로 석사과정을 마칠 때 아내가 몽블랑 만년필을 선물했다. 사용설명서를 읽지 않고 전에 사용하던 잉크를 썼다.
불편하고, 어색하여 매장에 가서 물었더니 잘못 사용하였다 한다.
전에는 잉크를 넣어 사용했는데 지금 나오는 만년필은 잉크가 카트리지로 되어 있어 편리하게 되었다고 하며 수선해야 한다고 한다. 잉크는 화학제품이기 때문에 장기간 사용하지 않을 때 변한다. ‘한 달에 한 번 정기적으로 미지근한 물에 펜촉을 2~3시간 담갔다가 헹군다음 말려 사용해야 하고 컨버터를 사용할 때는, 컨버터의 잉크를 모두 쓴 다음 컵에 물을 담고 빨아 들었다가 뱉는 방식을 반복하면 된다.’라고 한다.
몽블랑은 독일 브랜드로 수제품이다. 유럽 쪽에서 인기가 많은데 몽블랑산이 4개국에 걸쳐있는 광대한 산세로 만년필 닙(nib)에 각인된 ‘4,810’ 로고는 산의 높이다. 그리고 뚜껑의 흰색 문양은 몽블랑 정상의 만년설을 의미한다.
한글이나 한문체엔 파카 혹은 파일롯트 제품이 훨씬 잘 어울린다. 닙의 재질이 약간 탄력적이어야 한글체와 한문체에 적합하다. 한글체와 한문체는 글씨의 획을 긋는데 알파벳 필기체처럼 지속적이지 않고 그때그때 유연하고 날렵하게 처리 해야하는 특성을 띠기 때문이다. 몽블랑의 경우 수제품으로 만들어서 닙의 구조가 제품에 따라 각기 다른 걸 볼 수 있다.
모나미 153 네오 만년필은 색깔이 총 5개다. 블랙, 그레이, 아이고 아포레시, 인디고, 탄젤이다. 국내 필기구 시장 70%를 모나미가 점유한다고 한다.
Monami는 프랑스어로‘나의 친구’를 뜻한다. 대한민국에서 창립한 회사다. 모나미는 1960년 송삼석에 의하여 설립된 문구류와 사무용품을 개발하고 판매하는 문구회사다. 1963년 5월 1일부터 이 회사를 대표하는 물품인 153 볼펜을 만들었다.
모든 만년필 펜촉(nib)의 크기에 대한 설명이다. 만년필 펜촉은 회사별 제품
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다. 한글체에 F(fin e) 크기가 적당하다. 일제 파일
롯트나 세일러 같은 제품은 크기 정교한데 일제 만년필 대부분이 펜촉에 민감하다. 수제품인 경우도 돋보기나 확대경으로 들여다보면 양쪽의 닙 균형이 아주 정확하다. 사실 만년필의 펜촉은 그 자체가 생명이나 다름없다.
만년필은 처음 살 때 주의할 점은 진열장 형광등 불빛을 통해서 혹은 기타의 방식으로 닙의 균형이 정확한지 세심히 살펴야 한다. 또 한 몸통이 지나치게 가늘거나 굵은 제품은 피하는 것이 좋다. 손에 쥐어 편안하게 쥐어지는 굵기가 적당하다. 지나치게 가늘거나 굵은 몸통의 제품은 오랜 필기 시 피로감이 온다. 펜촉의 크기는 F(fine) 치수 닙의 만년필을 사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만년필을 잡았을 때 만년필 촉이 위를 향하게 잡아야 한다. 쓸 때는 최대한 힘을 뺀 상태에서 부드럽게 종이에 쓰면 된다고 설명해 주었다.
중국 당나라 때 인물을 등용하는 판단의 기준을 ‘신언서판’ 이라 했다. 몸, 말씨, 글씨, 판단력을 봤다. 현재도 크게 달라진 바 없다. 글씨는 그 사람의 얼굴이고 성격이라 한다. 프랑스인들은 만년필 중심으로 쓰기 교육을 한다. 창의성을 모색하고 개성을 키우는 훈련이라고 한다.
모든 것이 디지털화돼 가는 마당에 만년필을 선호한다는 것이 의외이지만 만년필에 대한 나만의 애착과 잃어버렸던 물건에 대한 그리움이 있다.
만년필은 단순히 필기도구라기보다 내 인생의 일부 같은 느낌이다. 아내가 준 만년필을 잘 관리해서 손주에게 물려주려고 했는데 올 이월 초에 장모님이 요양병원에 간지 일주일 만에 갑자기 돌아가셨다. 그 경황이 없어 만년필을 어디에서 잃어버렸는지 알 수가 없다. 책상 서랍에 카트리지만 남아있어 그것을 볼 때마다 생각난다. 잃어버린 것은 더 애틋한 마음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