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립고 보고픈 친구들
2016년 1월 16일(토) 15시30분에 2호선 잠실나루역에서 그립고 보고픈 친구들을 만난다.
미국에서 일시 귀국한 이주혁 동기생을 김건일 임재명 최정남 넷이서 정말로 오랫만이 아닌가.
1968년 2월에 성균관 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한 동기생으로 같은 친목 써클의 멤버들이다.
재학 시절의 별명도 새삼스럽다. 밥통은 밥을 많이 먹어서 임재명, 술통은 술을 잘 마신다는 강주수,
강원도 산골이 고향인 산통은 이주혁, 수원을 기차로 통학하는 화통은 유경한,
머리가 좋다고 꼴통은 이길송, 이상주의 철학자 김건일 철통,
깡이 쎄다고 깡통인 최정남 등이다.
애석게도 이길송이는 1학년말에 유급이다.
한 녀석이 1학년 년말에 무기약공인가 재시험을 보게된다.
통크럽 모두가 재시험장에 합류한다. 조교가 모를 리가 없다.
유독 길송이가 자신 이름이 아닌 재시험보는 녀석의 이름을 적은 것이다.
유급이라는 불명예 딱지가 게시판에 공고가 된다. 어찌해야 되는가.
1개월 정도 열심히 대학입시 공부에 빠진다. 카톨릭의과대학에 합격이다.
유급 낙제라는 순간을 한 걸음 앞선 의과대학으로 새출발의 계기가 된다.
통크럽에서는 제외가 되지만 약사가 아닌 의사로 의대교수로 꿈을 바꾼 것이다.
수 많은 세월이 물 흐르듯 흘러 갔다.
20대 청년이었던 우리들이 지금은 고희를 넘은 나이인 것이다.
겉으로 보이는 얼굴과 육체는 삶의 연륜만은 피할 수 없나 보다.
마음만은 그 때 그 시절 캠퍼스의 추억이 고스란히 묻어 나고 있다.
인간의 희로애락(喜老哀樂)을 온 몸으로 겪으며,
포기 하고픈 삶의 고통과 절망을 딛고 여기까지 왔으리다.
더구나 낮설고 물설은 미국에서 굴하지 않고 버텨온 친구 이주혁이다.
한국인의 끈기와 성실함을 보여준 친구에게 찬사를 보내고 싶기도 하다.
김건일 임재명 최정남 같은 한국 땅 같은 하늘 아래에서 살고 있는 절친한 벗들이다.
하지만 서로의 삶에 얽매여서 약국이라는 틀을 깨고 벗어나기가 그토록 힘들었나 보다.
전화 한 통화만 하면 언제든지 만날 수 있고 함께 할 수 있었지만 답답할 뿐이다.
무엇이 그렇게도 가슴을 옥죄였는지 모르겠다.
오늘처럼 만나면 이렇게 즐겁고 편안하고 행복감마저 드는 시간인 것을 미처 몰랐나 보다.
서로 손을 맞잡고 꿈같은 지나온 세월을 이야기는 끝이 없다.
부딪치는 술 한잔의 짜릿함이 가슴을 저미게 하는 순간이다.
꿈만 먹고 살던 그 시절 캠퍼스의 낭만을 되새기며 흐르는 이 순간이 아싑기만 하다.
부득이 함께 자리를 하지 못한 친구들도 있다.
부산에 삶의 샘터가 있는 강주수, 마길군 이길송 유경한 등이다.
" 정남아 ~ ~ ~ 내가 너를 지금 몸이 아파서 만날 수가 없구나 ~ 미안해 "
10여년전에 미국을 방문했을 때이다. 주혁이가 유경한에게 전화를 하여 바꿔준 것이다.
" 내가 병이 회복되어 서울에 가서 너를 만날 수 있으려는 ~ ~ ~ " 그저 전화를 끝는다.
무슨 말이 필요한가. 무슨 암이라는 흐느끼는 한 마디에 충격을 받아 병명은 생각도 없다.
얼마 후에 저 세상으로 훌쩍 떠나버린 유경한 친구이다.
경한이를 생각하면 대학교 3학년 때이리라.
학년말 시험 공부를 도서관에서 둘이 마주 앉아 열심이다.
세찬 바람이 몰아치고 눈보라가 휘날리고 있는 컴컴한 겨울 밤이다.
교문을 나서니 앞에 해삼 멍게를 파는 리어커가 있다. 출출한 뱃속을 자극하며 침샘이 흐른다.
" 경한 아 ~ 너 돈 좀 있니, 해삼 멍게가 너무 그립구나 "
각자의 주머니를 뒤적이며 50환 짜리 십환짜리 동전 몇푼을 꺼낸다.
멍게와 해삼 서너개를 거침없이 흡입이다. 옷핀으로 찍어서 먹는다.
수없이 하루 종일 사람들이 사용턴 옷핀이다. 오염이고 위생이고 관심밖이다.
" 정남아 ! 너 차비가 있냐, 난 1개월 사용하는 수원행 기차표가 있다."
어찌 녀석이 내 사정을 알았을까.
종로구 명륜동 성균관대학교 정문 앞에서 성동구 금호동까지 어쩌는가.
거리상으로도 아마 5 ~ 6KM 정도는 되리라.
시간상으로도 걸어서 거의 두시간은 걸렸을 게다.
창경원을 스쳐 종로 5가, 장충체육관, 약수동 로타리 ,해병대 산인 매봉산 중턱을 넘는다.
금호동 4가 1483번지 자그마한 개울물 건너 집이다.
옥수수대를 세우고 흙을 발라 지붕은 천막을 씌운 집이다.
겨울이면 자릿기에 물이 꽁꽁 언다. 숨을 쉬면 희뿌연 뭉게구름(?)이 시야를 가린다.
등잔불에는 까만 연기가 아물거리고 있다.
티비, 냉장고 , 전기도, 수도물도, 라디오도 언감생심이렸다.
라디오는 금호시장 근처의 라디오 가게에서 유선으로 보낸 것이다.
2 ~3십CM 정도의 나무 박스이다.
난생 처음 들은 연속극이 생각난다.
" 구중궁궐 긴 마루에 하염없이 눈물짓는 장희빈아
님 고이 든 그날 밤이 차마 그려 치마폭에 목메는가
대전마마 뫼시든 날에 칠보 단장 화사하든 장희빈아
버림받는 푸른 한에 흐느껴서 화관마저 떨리는가 "이라는 연속극이다.
온 가족이 웅크리고 앉아 조용히 듣곤한다. 이 시절이 꿈만 같은 세월이다.
흐른지도 몇몇해이던가. 누가 말을 했던가, 세월이 약이라고 말이다,
명약(名藥)이던가 독약(毒藥)이련가. 생각할수록 서글픔이 앞을 가리곤 한다.
주제가를 부른 가수는 누구이던가. 황금심(黃琴心)이다. 너무나 그립고 듣고픈 노래이다.
일제강점기인 1921년 12월 10일 출생하여 1960년대까지도 활발히 활동한다.
15세에 가수로 데뷔한다. " 왜 못 오시나요 " " 지는 석양 어이 하리오 "가 데뷔곡이다.
" 알뜰한 당신 "으로 일약 인기 가수에 오른다.
" 타향살이 "의 가수 고복수와 결혼이다. 고복수 사업 실패로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로 인해 고혈압 식도염으로 아내 곁을 떠나 사망이다.
황금심의 라디오 주제곡 " 장희빈" 이 유명하다.
꾀꼬리처럼 고운 목소리로 "꾀꼬리의 여왕"이라는 별명도 얻는다.
1996년부터 노환으로 파킨슨병으로 힘든 투병생활이다.
향년 80세로 황금심의 마지막 인생이다.
이 세상 모든 생명체와 인간인 우리들과 무엇이 다를까.
유전자가 다르고 생명체의 삶도 천차만별일 테이다.
하나뿐인 지구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유한한 생명체들이다.
1년이든 10년이든 100년이든지 언젠가는 추풍낙엽 신세이리다.
단 하나뿐인 인생 그저 허공에 뜰 미약한 존재들이 아닌가.
언제 또 다시 만나자는 기약은 없다.
언제든 시간되는대로 만나자는 약속의 약속을 다짐도 한다.
붙잡을 수도 뿌리칠 수도 없는 서로의 발길을 돌려야만 한다.
오늘과 같이 건강한 모습으로 아프지 말기를 마음 속으로 기원을 한다.
아울러 성대 약대 12회 동기생 여러분도 보고싶고 그립습니다. 모두 사랑합니다.
2016년 1월 19일 무 무 최 정 남
***언제 또 한자리에서 오늘 같은 환한 모습 함께 하려는가.
왼쪽부터 임재명 김건일 이주혁 최정남
우리집에서 친구들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