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그렇게 걱정한가 그냥 해 부러 / 정희연
두세 살의 연년생 아이가 있을 때 직장생활을 뒤로하고 7년의 경력으로 토목 회사을 창업했다. 나이도 젊고 해서 작게 시작했던 터라 나는 현장을 아내는 자금을 담당했다. 새벽 동이 트기 전 아침을 먹고 나가면 저녁 늦게 들어왔다. 저녁을 먹고 나면 졸음이 밀려와 이른 잠을 청했고 또 일찍 나가야 해서 집안일과 아이를 돌보는 일을 아내가 도맡았다.
아내는 많이 힘들어 했다. 둘째 아이가 밤낮이 바뀌어 봐달라고 보채면 아내는 나를 흔들어 깨우며 도움을 청했지만 일어나지 못했다. 아니 일어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더 가까웠다. 잠을 설쳐 현장 일을 그릇되게 할 수 없어서가 그 이유였다.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도 혼자서 해결해야 했고 어디 말할 곳도 찾지 못했다. 힘들 때 마다 손을 내밀었지만 마음을 나누지 못했다. 아내는 혼자서 많이 울었다.
도로를 만들려면 지표면에 있는 이물질을 제거하고 30cm 두께로 층층이 다져야 한다. 그 후 잘 다져졌는지 시험을 하고 합격이 되면 다음 층을 쌓는다. 가령 지반보다 도로가 10m 높으면 층다짐 33회, 보조기층 2회, 아스팔트 2회, 코팅 2회, 완성면 2회 등 어림으로 총 41회의 시험이 필요하며, 재료 와 자재, 작업방법과 순서. 도면에 맞게 시공하고 있는지를 검토하고 확인해야 한다. 이런 것들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다음으로 넘어갈 수 없고 잘 못되었을 경우에는 다시 시작해야 한다. 2~3개 현장을 혼자서 관리하다 보니 항상 바빴다. 집안일이나 아내를 돕는 일은 점점 더 멀어졌다. 그렇게 10년의 시간을 보냈다. 그러면서 아내와 자주 다투게 되었다.
태풍으로 20hr의 농경지 침수와 계획된 곳에서 흙을 가져오지 않고 덤프트럭 기사들이 기름 값을 아끼려고 가까운 곳에서 흙을 가져와 그 이윤을 착복해 큰 피해를 입었다. 두 번의 큰 일로 사업은 힘을 잃었다. 회사를 접고 나는 감리회사에 취직 했고 아내는 ○○○공부방을 하고 싶은데 괜찮은지를 물어왔다. 45년 전에 선립한 업체로 할 수만 있다면 너무 좋겠는데 "뭘 그렇게 걱정을 그냥 해 부러” 하며 응했다.
0회원으로 시작해 첫 회원은 초등학교 2학년 이었다. 3개월 동안 한명의 학생을 가르쳤다. 중간쯤 하던 성적은 상위로 올라섰다. 그 후로 한두 명 회원이 늘어났고 3학년반 4학년반 차례로 반을 늘려 나갔다. 내가 하는 일은 주말이면 전단지를 만들고 붙이는 일, 저학년 학생의 오답 정리, 회원의 성적, 회원의 증가 현황, 학년별 학생수, 매출 추이 등 실적을 데이터화 하는 일을 도왔다. 5년 만에 150회원 까지 늘어났다. 짧은 시간에 만들어 낸 유일무이한 성과였다. 아내는 해마다 해외여행을 다녔다. 회사에서 우수 공부방에게 주는 포상이었다. 아내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능력이 있다. 그것이 어디서 나오는지 꼭 끄집어 내기도 어려운 일이지만 관계를 잘 만들어 나갔다. 부득이하게 일이 생기면 미리 알고 빠르게 해결하지는 않지만 끝까지 완성해 내는 끈기가 있다.
학급 수는 점차 늘어 중학교 3학년까지 가르치게 되었다. 동네 길거리를 걸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여기저기서 선생님 선생님 하며 아내를 불러댔다. 아이들을 그냥 보내기 미안해 슈퍼마켓이 보이면 아이스크림을 사 주었다. 아내는 주는 것을 무척 좋아 했다. 수업시간이 늘어 하루 종일 말을 하다 보니 무리가 되었는지 목이 아프다며 걱정을 했다. 그 무렵 지점장 자리가 생겼다. 또 나에게 묻는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돈 보다도 건강이 우선이고 자신의 역량을 키우며 꾸준히 계속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싶어, "뭘 그렇게 걱정을 그냥 해 부러” 라고 대답했다.
부동산에 연락해 사무실을 알아봐 달라고 요청했다. 일에 있어 계획이 전체의 반을 좌우 한다고 본다. 회원 증가, 매출 및 이익 등 공부방 운영계획서를 만들었다. 그리고 본사로 올라가는 서류는 내가 확인해 줄 테니 꼭 나를 거쳐서 올려주기를 당부했다. 잘 하지는 못하지만 문서를 많이 다루다 보니 아내 보다는 더 나았다. 좋은 시간을 보냈고 경험도 많이 쌓았다. 공부방 운영과 지점장 총14년의 시간을 뒤로하고, 아내는 개인 사업장을 열었다. 아내는 코치들을 양성하는 교육기관 선정을 목표로 하나하나 이루어 가고 있다. 이번에는 장소를 봐달라고 요청했다. 평일에는 시간이 없어 주말에 시간을 냈다. 몇 주 동안 성과 없이 보내다 보니 아내는 시간이 촉박했는지 마음의 결정을 한 후 내게 확인을 요청했다. 앞으로 4차선 도로가 있고 뒤쪽으로 단독주택들이 있고 주차시설은 없었다. 벽을 조립식 패널로 막아 옆 사무실에서 작은 소음이 들려 왔다. 나는 그 자리에서 안되겠다고 잘라 말해 버렸다. 아내는 당혹스러워 했다. 도와주기 싫어서 그런 거라며 1주일동안 궂은소리를 모두 들어야했다. 2주일 후 풍암동에 8층 건물에 있는 사무실 확인해 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바닥에는 데코 타일이 깔려져 있고 벽은 편백나무로 실내 인테리어가 깔끔한 사무실 이었다. 40평 남짓 보이는 공간은 사무와 교육이 가능한 장소였고, 상업 단지 내 위치하고 있었다. 근처에 주차장과 도로 반대편에 아파트가 있어서 주차가 용이했다. 그 자리에서 유선으로 계약을 진행하겠다는 연락을 하라고 흔쾌히 승낙 했다. “뭘 그렇게 걱정 하는가 그냥 해 부러” 아내는 이 말을 가장 좋아한다. 그 뒤에는 남편이 돕겠다는 말이 숨어있기 때문이었다.
제 1기 코칭 강의를 준비했다. 아내는 무료 또는 50% 할인하여 8만원을 딸과 나는 3~5만원을 고집했다. 낙제점이 아니길 진심으로 바랐다. 1회/주, 총 4주 강의 중 1강을 마쳤다. 한 시간 삼십분 이었다. 여덟명이 참석한 것도 그렇지만 강의 자료를 넘길 때 마다 다른 구성으로 짜임새 있게 만들어진 파워 포인트는 집중할 수 있도록 잘 만들어 졌다. 아내는 잘 해냈다. 지난주에 이어 두 번째 강의도 마무리 되었다. 하루 아침에 이루어낸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는 좋은 강의였다. 나도 아들도 박수를 보냈다.
아내와 나는 많이 다르다. 생각 하는 것과 행동 하는 것이 다르고, 일을 할 때도 순서와 방법도 다르다. 옷을 고르거나 물건을 살 때도 보는 관점이 다르다. 맞지 않은 톱니가 부딪치고 깨지고 헛돌기를 반복했던 것이 점차 맞춰지고 있다. 서로 다르므로 보완되는 일들도 많았는데 그동안 그러지 못했다. 나는 51%를 좋아한다. 그 다음은 그냥 가는 거다. 양분을 계속 공급해주면서 달리면 되는 것이다. 오는 목요일 3강이 시작된다. 강의를 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딸이 만든 파워포인트가 기대된다. 이번에는 어떻게 구성했을지 궁금하다. 자료를 늦게 넘겨준 탓에 딸은 30장 내외로 밤새가며 만든다. 뒤에서 보고 있으면 둘이 똑같다. 그래도 한층 나아진 것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아내 2' 가 있어서 안심이 된다.
10년 동안 아내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지만 해준 것이 별로 없다. 많이 미안하다. 식사 후 적극적으로 밥값을 계산하는 사람은 돈이 많아서가 아니라 관계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번 주말엔 아내와 외식을 해야겠다. 밥값은 내고 술 한잔 권해야 겠다.
첫댓글 사모님이 강단이 있으신 분 같습니다.
하하하. 고맙습니다.
능력이 대단하신 분입니다. 잘 가르치니 학생이 모여들겠지요. 사모님께는 정희연 선생님 밥값이 껌값이겠는데요.
이제 시작하는 단계라 미미합니다. 고맙습니다.
대단하신 사모님입니다. 정희연 선생님도 그렇고요. 전문 지식도, 열정도 뛰어나십니다.
과찬입니다. 고맙습니다.
배경이 탄탄하시군요.
안생을 개척해 나가는 멋진 사모님께 박수를 보냅니다.
짝짝짝!
색깔을 바꿔 자리를 잡을 때까지 1년에서 3년은 고등학교 3학년 수험생 대하듯 하니 모두가 고생입니다. 그래도 할 수 있음에 감사하게 생각하며 가족 모두가 집중하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사모님이 대단하시네요. 더 잘할 수 있는 분야에서 서로 도와 주는 선생님 부부의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지금도 즐거운 마음으로 아웅다웅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정말 멋지십니다. 저도 풍암동에 사는 데 혹시 어디일지 궁금해지네요.
자연드림 8층(리베르코칭센터)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