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우울증이다.
애솔(2023 .5.30)
해경(가명)은 3월 학기가 시작되고 일주일을 버티다 결국 휴직계를 냈다. 월요일 아침, 몸을 일으켰지만 온몸이 마비된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로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1992년부터 시작한 교직 생활에서 해경은 학교가 집보다 편했고, 아이들은 삶의 비타민과도 같았다. 아니 그 이전 1988년 대학을 들어가면서 시작한 입주 과외부터 가르치는 일의 시작이라고 보면 35년 교사로서의 삶에서 생각하지도 못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해경의 병 휴직에 놀란 사람들은 그녀 대신 나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너도 알고 있었느냐, 병이라니 무슨 병이냐, 언제부터 안 좋았던 거냐... 그러나 나는 그들에게 아무런 대답을 해 줄 수 없었다. 누구보다도 활기차고, 학교생활이 삶의 모든 것이었던 해경이 학교를 갈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은 나에게도 충격이었다. 그녀는 나에게 같이 병원에 가달라고 했고, 우리는 거기에서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어떻게 그 밝던 사람이 저렇게 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눈빛을 잃어가고, 땅으로 꺼지듯 계속계속 침잠해 갔다.
그렇게 두어 달이 지나고 우리는 다시 마주할 수가 있었다. 해경은 몇 번의 정신과 상담과 치료를 통해 다행스럽게 자신에게 맞는 약을 만나게 되었고, 5월이 되어서는 약을 먹지 않아도 될 만큼 나아졌다. 해경의 첫 마디는
“우리집에 놀러 와. 김밥이랑 쑥떡을 만들 거야. 봄철 내내 쑥을 뜯으러 다녔더니 꽤 되더라. 쑥개떡을 해 볼까봐. 우리집에 모두 모여 스승의 날 파티를 하자!”
나는 이제야 해경이 우울증에서 벗어났다고 안심할 수 있었다. 사람들과 놀기 좋아하고, 무엇보다도 사람들에게 맛있는 거 해 먹이는 것을 좋아하는 해경의 원래 모습을 볼 수 있었으니. 그렇게 시끌벅적한 스승의 날을 보내고 해경과 단둘이 경주로 1박 2일 여행을 다녀왔다. 오가는 길에 해경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해경은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교사를 꿈꾸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맨날 예쁜 옷을 입고 오더라. 그렇게 맨날 예쁜 옷을 입고 싶어서 교사가 되고 싶었어! ”
열다섯 가구가 모여 사는 시골 구석에서 한 시간을 걸어 초등학교를 다닌 해경. 사남매 중 유일하게 장애가 없었던 해경(해경의 오빠와 여동생, 남동생은 모두 정신적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 알콜 중독 아버지에게 사흘에 한 번씩은 내동댕이쳐진 해경... 어린 시절 해경에게 즐거운 시간이자 가족이라는 족쇄에서 풀려난 해방의 시간은 오직 학교에서의 날들뿐이었다.
동네 사람들은 혀를 끌끌 차며
“지 혼자 다 가지고 태어나면 어떡해. 지 오빠랑 동생한테도 좀 나눠주지. ”
“저렇게 지밖에 모르는 것 좀 봐, 지 엄마는 혼자서 밭매는데 공부 좀 한다고 나몰라라 하고, 저런 년은 공부시켜봐야 혼자 도망간다니까.”
해경도 그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자신만 정상인 이 집구석에서 탈출할 방법은 공부 잘하는 것밖에 없다고. 그래서 엄마가 고추 따야 한다고, 깨 털어야한다고 하면 아예 무시하고 공부만 했다고 한다. 이를 악물고 공부해서 그녀는 동네에서 유일하게 4년제 대학을 갔다. 서울에서 방을 구할 수 없어 입주과외를 하고, 아르바이트를 몇 개씩 하면서 등록금과 생활비를 벌면서 대학을 다녔다. 입주과외를 할 수 없게 되자 이모네집, 먼 친적집 등에서 얹혀살기도 하고, 대학 4학년 때는 형편이 나아져서 아는 언니와 함께 자취를 하기도 하였다. 그렇게 대학을 가까스로 마치고 드디어 고등학교 영어교사로서의 생활을 시작했다.
해경의 살아온 이야기는 이전에도 드문드문 들었지만 이렇게 하나하나 짚어가다 보니, 나는 해경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경이 훌륭한 교사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아이들에게 하나라도 더 가르치려고 애쓰고, 학급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신경쓰려고 노력하는 교사인 것만은 확실하다. 그리고 그녀는 동네 아줌마들 말과는 다르게 친정 식구들을 하나하나 챙기며 살고 있다. 여동생이 사고로 죽으면서 두고 간 조카 둘을 돌보고, 부족한 오빠 부부 대신 장애를 가진 조카의 학부모 노릇까지 한다. 주말마다 요양원에 계신 친정엄마에게 가고, 오빠네를 돌보느나 그녀의 주말은 주중보다 더 바쁘다.
이렇게 쉼없이 달려온 그녀에게 우울증이라니. 그녀 역시 자신이 우울증일 거라고 생각지도 못했다. 우리는 왜 우울증에 걸렸을까를 내내 이야기했다. 그녀는 교사로서의 자아가 매우 크다. 그다음은 엄마로서의 자아, 딸로서의 자아가 차지하고 있다. 교사로서의 자아는 그녀에게 큰 기쁨이자 삶의 원동력이다. 그런데 최근 교사로서의 자아가 점점 허물어지고 있었다. 아이들은 하나라도 더 가르치려고 잔소리하는 교사를 원하지 않는다. 후배교사들은 아이들을 위해 시간을 더 내라는 선배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이러한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그만두어야 할 때라는 말이 맞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녀는 자신의 교육 철학으로 이겨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의사로서의 삶을 사는 딸과 대기업에 막 입사한 아들은 그녀에게 자랑이기도 하지만 허무함이기도 했다. 레지던트는 집어치우고 피부과 페이닥터로 돈 버는 재미에 빠져있는 딸, 한 달이 넘도록 연락 한 번 하지 않는 아들. 사랑으로 키우던 어린 시절만을 생각하며 붙잡고 있기에는 아이들은 훌쩍 커버렸다. 이러한 변화가 그녀를 서서히 곪아가게 한 것 같다.
그녀의 우울증은 끝났지만, 그녀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의사는 굳이 찾아내지 않는 우울증의 원인을 그녀는 찾아내고 싶어 한다. 그런 그녀의 이야기를 나는 그저 묵묵히 듣고 있다. 나 역시 그녀가 우울증의 원인을 찾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어디 한 가지 이유만으로 우울증이 올까. 하지만 그녀의 계속되는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고, 같이 욕하고, 같이 울다가 크게 손뼉을 치면서 내내 함께 할 것이다. 많은 것이 변해가고 그에 맞춰 나를 변화 시켜야 한다는 오십대의 삶이라지만, 이대로도 괜찮다고 말하는 친구 하나쯤 있으면 덜 외롭지 않을까하는 마음으로.
첫댓글 우아앙~~ 인터뷰 과제 참 어렵네요~~ 들은 것은 많은데 막상 쓰려니 중구남방이 되는 것 같고. 인터뷰도 주제가 있는 글이어야할텐데 말이지요. 다들 어떻게 마무리들 하셨는지.. 놀라웠어요!
합평하실때 전 주제가 분명하게 잘 읽혔던것 같아요. 애솔의 이전 글도 그랬던것 같고 그래서 기억에 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