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슬어 없어지기보다 닳아서 없어지기를
1순 혜영이와 경욱이의 가난함과 간절함으로 상근오빠가 오셨어요.
나이드니 불러주는 데가 없는데 청년부로 불러줘서 고맙다는 상근오빠,
오빠 오시니 잠이 확 깬다며 너무나 좋아하는 양경이를 비롯해 모두가
한층 업그레이드된 행복을 누렸어요.
전주에서 온 43살 박은경 자매,
청년부가 너무 자유롭고 생기 넘친다며
자주 대구 오고 싶다네요.
요셉에게 축복을 한다.
너와 같이 명철한 자가 없다.
내가 너보다 높은 게 단지 왕자라서 라고 하고 요셉을 총리가 되게 하고
반지도 끼워주고 축복을 다 했다.
그리스도는 세상을 다스리는 진정한 축복을 줄 수 있는 자리로 인도한다.
이런 축복의 결과를 보여주니까 우리의 갈 곳이고 열매이다.
목사님 말씀에 요셉이 다른 사람이 아니고 겉은 요셉이지만 속은 야곱으로
말씀 하셨다.
야곱의 연장선에 있는 요셉이다.
수많은 과정과 연단을 겪어서 그렇게 하나님께 피드백 당한 것 밖에 없는데
그 인생이 하나님께 연단되었기에 세상을 다스리고 모든 인생에게 축복할 수
있는 자리가 되었다.
인생이 감사하다.
저도 옛날에 카톨릭을 다녔는데 성당에서는 자기 생각을 보태서 얘기하는 것을
수준이 낮게 생각하고 주로 의식과 형식을 중요시 한다.
그 당시엔 나도 그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자기 생각을 얘기하는 것은 수준이 낮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사람이 입이 있고 생각할 수 있고 귀가 있는 것이 하나님이
만든 것인데 우리는 그것을 이용하지 못하고 답답한 인생을 살았다.
하나님이 만든 자리에서 온전히 말할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
감사하다.
그 축복이 내가 물질적으로 많아서도 아니고 어떤 수준에 올라서 하는
축복이 아니다.
내게 아무 것이 없어도 하나님이 주신 존재만으로 감사한 인생이고 축복이다.
이것이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는 복음이다.
환란이 그냥 환란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쓰실 수 있는 사람이 되기
때문에 복음이다.
고난을 피하기만 하면 안되고 사람이 가는 길에 있어서 고난은 필수적이라
하셨는데 성숙이 애들은 힘들면 못 견디는데 어른은 견디고 참는다.
그것이 어른이다.
이 환란을 견디고 환란 이후에 다른 것을 보면서 가는 것이다.
환란 다음에 오는 것을 보여주시는 분이 있어서 감사하다.
최근에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란 책을 보았다.
요즘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으로 검색을 쉽게 한다.
바로 바로 원하는 것을 찾는다.
이런 것을 보면 현대인은 효율성 측면에서는 굉장히 발달했는데
역으로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몸으로 깨달아야 오래간다.
환란을 주는 것도 그만큼 내게 다른 축복을 뼈져리게 각인 시키기 위해서 하는
하나님의 과정이란 생각이 든다.
이런 사람들이 모인 교회에서
이 사람들 가운데
이 사람을 보여주시고 사람으로 오신 주님을 찬양 합니다.
장은영:
요셉이나 야곱을 보면 아브라함과 이삭과 다르게 많은 과정을 겪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라 말하는데 성경을 보면 뭐 때문에 그렇지 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 아들인 야곱과 요셉은 업그레이드 된 과정을 거친다.
야곱은 자기의 꽤가 사라질 때까지
요셉은 꿈 꾼 얘기 때문에 형제들에게 미움을 받고 팔려가고
꿈으로 망하고 꿈으로 흥한다.
바로의 꿈을 해석해서 바로가 신뢰하는 사람이 된다.
한사람 한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아브라함부터 요셉까지 한사람의
과정으로 보여진다.
하나님의 왕권을 행사하는 사람이 된다.
구원은 공짜지만 하나님의 왕권을 행하는 것은 공짜가 아니다.
철저하게 값을 지불하고 왕권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 공평하다.
구원과 인생은 공짜같다.
그런데 그 삶 안에서 하나님을 표현하는 것은 공짜가 아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많은 과정을 마다하지 않고 걸어온 사람만이 하나님
보좌 우편에 갈 수 있다.
인생은 은혜지만 과정을 받은 만큼 하나님의 사람이 된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공평한 저울 안에 있다.
목사님을 봐도 끊임 없이 과정을 겪었다.
목사님은 한번도 자기 인생에서 자기 인생이 불만스러운 적이 없다 한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찾고 있다.
인생은 내가 처한 상황에서 최고로 좋은 상황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지배하고 다스린다.
나는 항상 초긍정으로 살았다.
나는 이전에 교회를 다닐 때 내가 다니는 교회가 세상에서 제일 좋은 교회라 생각했다.
내가 다니는 동안은 우리 교회가 최고로 알고 살았다.
뒤를 돌아보면 나는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도 엄마가 돌아간 사람중에 내가 가장 행복했고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부모가 없는 사람들 중에 내가 제일 행복했다.
우리 학교에서도 내가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 생각했다.
내가 가장 은혜를 많이 받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가장 행복하다고 인식하면 그것이 행복이다.
하나님은 가장 만족하는 사람을 통해 주위 사람의 자리를 옮기신다.
요셉도 많은 과정을 거쳐서 형과 아버지와 애굽의 왕까지 구원할 수 있다.
지금은 안되고 모자라도 결국 하나님은 우리를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게 하사
온전하게 세우실 것이라는 것이 기대가 된다.
김귀경:
말씀을 들을 때는 좋은 것 같았는데 간증을 할라하면 할 말이 얼마 없다.
경륜 안에서 연단을 거친 사람이 복이 있다는데 경륜이 뭘까?
교회에 다니면 하나님의 경륜 안에 있는 것인가? 모르겠다.
내가 생활하는 이것이 좋게 표현하면 연단이고 아니면 나의 어떠함 때문에 겪는 것이고.
교회와 하나님의 연단이 무슨 상관이 있겠나?
이런 모든 것들이 쓰인다고 하는데, 이런 과정들이 나중에 다른 사람에게 쓰인다는
것으로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데 실재로는 그것을 잘 모르겠다.
나의 인생이 하나님 경륜하고 상관이 없을 것 같은 의문이 든다.
하나님이 눈에 안보이니까 하나님 통치 안에 있다는 말이 막연하다.
그런데 하나님 통치가 없는 것도 아니니까 무시할 수도 없다.
오늘도 삼형제 간증을 들으니 하나님의 통치가 결과로 나타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롤레타리아와 운동권과 부르주아가 하나로 만나지는 것이 교회가 아니면 있을 수 없다.
하나님 말씀을 알아듣는 것은 원초적이라 하는데 나는 말씀을 잘 못
알아듣는다는 생각이 항상 있다.
원인이 국어실력이 부족한가? 어떤 원인이 있나?
이렇게 생각했는데 정말 중요한 것은
원초적인 자리에 있으면 알아듣는다고 하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십자가의 자리를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느껴질 때가 있었다.
목사님은 어떻게 저런 것을 세밀하게 표현할까? 대단하다고 생각된다.
예를 드는 것도 그렇고 모든 것이 존경스럽다.
내가 말씀을 알아듣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사람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목사님은 원초적인 것을 말하는데
나는 나의 틀로 해석을 하려 하니까 내가 말씀을 못 알아듣는 것으로 규정하게 된다.
목사님은 자격이 있어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항상 십자가의 자리를 이렇게도 저렇게도 말하는데 내가 항상 내 상태에 따라서 받아 들였다.
요셉의 삶이 과정이 굉장히 많고 많은 환란을 당했는데,
나도 요셉처럼 과정을 통해 어떤 통치 안에서 열매로 드러나는,
우리가 교회 안에 있으면 그렇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주에도 많은 얘기를 했는데 그런 것들은 다 지나간다.
내가 그렇게 말한 게 그렇게 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해도 부끄러움 같은 것이 없고 다 지나간다.
목사님이 추억이 없는 사람이 행복하다고 하는데 내가 그렇다.
나는 현재가 너무 힘들어서 과거를 추억할 겨를이 없었는데
교회에 사니까 현재적인 누림을 누리면서 행복하게 사는 것이 감사하다.
교회 안에서 내가 정해진다.
내가 어떻게 되는 것이 아니고 교회의 어떠함이 내가 된다.
그래서 교회가 더 아름다워지기를 바란다.
나의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고 교회가 아름다워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었다.
박은숙:
저는 오늘 교회 올 때 별로 안좋았는데 다른 사람 간증 들으니 행복하고 좋다.
전에는 행복을 내 안에서 찾으려 했다.
그것은 늘 제한이 있었다.
항상 교회 오면 형제들의 간증 속에서 나와 상관 없이 행복하다.
상도 오빠 삼형제 간증을 들어도 그렇고
인생은 그리스도가 없어서 불행하다.
인생이 하나님의 경륜 안에 있다는 이 말씀이 너무 좋다.
이 말씀이 없으면 재수 없다는 말이 되는데
하나님 경륜 안에 있으면 연단이 된다.
하나님에게 쓰일 수 있게 된다.
교회 사람들 얼굴을 보는데 나와 다른 것이 보였고 하늘의 이상이 보였다.
요셉이 이상을 본 것 때문에 고난을 받았다.
나도 모든 과정이 감사가 된다.
하나님 경륜 안에서 살다보니 추억이 없는 것이 그리스도를 만나서 모든 것이
보상이 된다.
현재 행복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신 것이 감사하다.
박은경(전주):
저는 오늘 여기 청년부 순모임에 들어왔는데 저하고는 다른 환경이다.
자매들이 애들에게 다 밥 먹여주고 하는데
사실은 저는 이런 모든 것들이 다 끝났다.
아들이 있는데 고2다.
실재적으로 저와 살지 않는다.
아내의 자리로부터, 엄마의 자리로부터, 며느리의 자리에서 다 끝난 사람이다.
여기 와서 그런 모습을 보니 다르지만 또 제게는 편하고 마음이 더 안식이 된다.
그리움이나 추억은 아닌데,
이제는 넉넉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이 된다.
야곱은 자신의 욕심과 교활함으로 다룸을 받았다.
우리가 아담 안에서는 자기의 필요나 목적 때문에 다룸을 받는다.
요셉은 하나님의 입장에서 어떤 목적 안에서 다룸을 받았다.
우리가 다 그 두가지의 요소를 가지고 있다.
하늘의 이상이라 했는데 사실은 그것 때문에 고난을 받았다.
목적은 그리스도와 교회 인데,
저도 내 필요나 내 목적은 다 태워져서 다 없어지는 그런 과정들이 진행되고 있다.
사라진 만큼 하늘의 이상이 보여지고 교회의 이상이 보여진 만큼 내게는 내 필요가
아닌 그분의 목적에 맞는 연단을 받게 된다.
살리기 위한 연단
복음에 대한 연단
교회 안에서의 죽음
그런 것들,
그런 연단이 있음으로 우리가 계속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은 자라 여겨지고
하나님이 쓰실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다.
아브라함 이삭 야곡 요셉,
이 네 사람을 하나님의 경륜 안에 있는 사람으로 말했는데,
내가 아브라함으로 이삭이고 야곱이고 요셉과 똑같은 사람으로 나도 발견이 된다.
경륜 안에서 발견이 되는 나가 정말 복이다.
내 안의 허무와 인생의 껍데기에서 하나님의 경륜을 감지하고 채워지니까
이것 자체가 내게 복이다.
너무 풍성하고,
오늘이 나의 최고의 날이다.
점점 날로 날로 더 좋은,
믿음에 믿음을 더하는,
약속을 따라 가는 인생으로 발견이 되니까,
이것 자체가 감격스럽고 풍성하다.
이 속에서 모든 만족이 다 채워진다.
세상이 부럽지 않고,
세상 것을 취하지 못해서 내안에 움켜지는 것이 많이 있었는데,
그런 것들을 하나씩 하나님께서 빼내니까,
하나님의 경륜이 내 안에 실재 경험으로 채워져 가니까,
그것이 내게는 하늘의 보화가 되어진다.
전에는 내가 재수 없고 저주 아래 있는 인생이었는데
이제는 하나님께서 심히 좋다하는 사람으로 나에 대해서 만족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보인다.
이런 사람이 되어가는구나!
하나님이 원래 이렇게 생각하고 지은 그 사람,
영화로운 사람 곱고 아름다운 사람,
당신을 찬양하며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그 사람으로 조성해 가시니까,
너무 기쁘다.
우리 교회가 전주 인데
거의 3년 되었다.
거기에선 제가 막내다.
다 어른이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분들하고 함께 살았다.
저는 제 나이보다 빨리 지나갔다.
대구에 와서 좀 다른 환경을 경험했다.
전주에서와 반대로 어제 청년부에 갔고 오늘도 교회에 왔는데 왜 하나님이
나를 이 자리로 오게 하시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실 것이 있고 내가 받을 것이 있어서다.
전에는 선악으로 내가 안되는 것은 정말 저주로 여기고,
되면 기대감과 소망으로 붕 떠서 살았는데,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버릴 것이 없는 인생으로,
생명의 말씀으로 해석을 하면서 살 수 있는 인생이 되어서 감사하다.
금토일 3일 동안 대구에 있으면서 한나님 경륜 안에 깊이 들어가는 삶이
준비 되어서 너무 감사하다.
정말 이 교회가 내 교회고,
형제들도 나와 같은 형제들이고,
함께 짜여지고,
어디에 메이지 않고 자주 와서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간단히 전주 교회 소개)
구례교회와 연결이 되어서 저희 사모님이 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우리에게 먹였다.
이 복음을 먹이는 사이에 파장이 왔다.
이단이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그것 때문에 저희 교회에서도 많은 분들이 떠나갔다.
우리 교회가 이단이라는 말을 듣게 되어서 이제 남아 있는 분이 10명이다.
70명에서 80명 되던 사람들이 다 나갔다.
저희 목사님께도 교회 사람들이 목사님이 나가시면 저희가 교회를 알아서
운영하겠다고 했다.
교회만 놓고 나가시라고 했다.
그런데 목사님께서
아니다.
지금까지 속고 거짓된 목회를 했는데
이제야 참 생명을 만나서 다시 시작하는데
나는 못 나간다고 했다.
그리고 끝까지 교회를 남겨놓고 가셨다.
목사님이 돌아 가시면서 우리를 생명 안으로 더 넘기고 가셨다.
우리를 낳고 가신 분이다.
가장 못나고 가난한 사람들만 12명이 남았다.
다 자기 의로운 자들은 다 나갔다.
능력 있는 분들은 다 나갔다.
70세 되시는 노인 두 분도 있는데 그냥 이 자리가 좋다고 항상 나오신다.
순모임도 잘하고 잘 되어 가고 있다.
일요일은 방송 보고 순모임도 한다.
하루도 빠짐 없이 교회에서 방송하는 것을 듣고 있다.
김소영:
목사님 말씀에 하나님의 경륜은 문 안에 있는 거라고 하셨다.
축복도 같은 의미로 하늘에 속한 것을 땅에 가져오는 거다.
사람의 깊은 속에 들어가 보면 문 밖에 있는 것을 축복이라 생각하고 바란다.
건강 자녀 돈 모든 것이 그렇다.
기도가 그런 것들에 관한 것이 대부분이다.
목사님의 말처럼 그런 은혜는 그때 뿐이고 만족이 없다.
목사님이 하나님의 경륜과 통치를 말씀 하셨다.
그렇게 쉽게 하나님의 통치를 말하는 것이 놀라웠다.
어린아이의 말은 생명대로 알아 듣는다
저게 참이다 싶다.
아까 은경 언니가 우리 순에 몇 주 더 있었으면 다른 것도 볼 수 있었을
것인데 아쉽다.
저희 가족도 그렇고,
전혀 언니와 다르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가족이 있고 아이가 있고 이런 것과 상관없이
저희도 순에 깊이 짜여 지면서 이렇게 되었다.
그때 모습이나 지금의 모습이나 겉으로는 큰 차이가 없게 생각된다.
내일 일을 모르는 것이 사람이다.
지금 현재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은혜이다.
목사님 말씀 중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상황을 만족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만족하고 있는 것이 문제다.
상도 오빠가 우리의 문제는 상황이 아니고 그리스도가 부족해서라고 하는데
하나님의 사람에게 연단이 너무 당연하다.
힘들 때는 하나님의 경륜이 어디가고 없어지고 하지만
알든 모르든 세상의 어려움과 하나님의 경륜 안에 있는 사람의 연단은
노선은 다르다
하나님의 경륜 안에 있는 사람은 모든 것이 복이다.
최고 안 좋은 상태에서 하나님께 가는 최고의 시발점이 된다.
나는 내 상황만 봐왔던 사람인데 그거와 상관이 없다.
하나님의 경륜에서 연단은 복이다.
내가 통치하는 자리는 나의 상황과 아무 상관이 없고 다 똑같다.
무엇이든 소망이 되는 세계 안에 있는 것이 복이다.
고수미:
오늘 고난이 당연하다는 말이 시원했다.
야곱은 교활함 때문에 고난을 받았고,
요셉은 하나님이 보여준 이상 때문에 고난을 받았다.
천연적인 것은 하나님이 쓸 수 없다.
교회를 나가서 잘 된 사람도 있고, 성공한 사람도 있다.
그럴 때 교회에 와서 잘 된다는 것을 붙잡고 있으면 옹색하다.
전주교회 목사님도 우리를 만나서 교인들 다 떠났는데 얼마 안있다
돌아가셨어.
그러면 송사가 있을 수 있다.
우리가 잘 되고 안되는 것으로는 옹색한 자리를 만나게 된다.
대구교회 나간 결과가 그거가?
그런 사람을 만나게 되면 결국 부끄러움을 당하게 된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고난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겪으면 당연하다.
하나님 만난 사람은 시온의 대로를 만난다 하면
교회 생활이 한편으로는 짐이고 한편으로는 복이 된다.
어차피 두 개를 다 같이 짋어지고 있다.
타고난 자질로는 하나님 나라를 이룰 수 없다.
그것이 자기 의가 되고 다른 사람을 판단하게 된다.
타고난 기질은 연단을 받아야 한다.
우리가 교회 밖에서나 안에서나 연단을 받는다
이왕이면 이유 없는 고난을 받는 것이 아니라
목적 있는 연단을 받는 것이 감사하다.
내 생명이 미약할 때는 연단이 오면 이 과정이 뭐지 이랬다.
지금은 좋든지 않좋든지 상관없이 산다.
어차피 타고난 나로서는 하나님 나라의 성분이 아니면 안된다.
환란은 필수고 인격의 소망을 가지고 기다리게 된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고난이 당연하다는 것이,
옹색한 자리를 걷어가는 시원한 자리가 된다.
뭐하러 이렇게 과정을 겪어야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안 맞는 사람과 맞추려고 피똥 싸고,
그러냐 말이지.
나는 교회 밖의 세상이 전혀 부럽지 않다.
담장 밖에 세상이
부러워 보이지가 않는다.
한 세계가 끝나게 되고,
교회 안에서 이런 저런 과정을 겪는 것이 헛된 것이 아니다.
기왕이면 교회 안에서 겪는 과정이 소망이 있다.
문제가 없지는 않지만 그것이 절망이 안되는 이유는
교회 안에서는 넘어져도 소망이 있다.
우리가 고난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 시원하고 감사했다.
성양경:
별로 좋은 간증이 없네.(자기 안에)
자매가 승마를 배우는 것이 돈이 많이 드는 취미라 생각했는데
너무 시간이 많이 써서 나의 시간을 너무 필요로 해.
에어로빅 운동할 때도 그냥 취미로 하면 되지 했다.
하튼 그랬었는데 자기 돈 내고 하던 운동이 돈을 받고 하는 운동으로 바뀌었다.
돈을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돈은 안들어가게 됐지요.
나중에 노후에 먹여 살린다 하니까 내가 감수하고 있다.
운동을 배우는 것이 쉽지가 않은데 대단해.
새벽에 와서 새벽에 가고 대단해.
경란이가 하겠다고 하면 뿌리를 뽑고 승부사 기질이 있다.
내가 밀어줄 형편은 안되지만 말리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영한:
아이 진짜 간증 할 것 없는데...
저번에 토요일날 앞에서 발표 한 것 때문에 생각이 빠져 있다.
순이 바뀌는 것이 몇 주 안남았는데 우리 1순이 발표할 때 말씀을 한 것도
그렇고 진짜 생각해 보니 재수가 없다는 간증을 했는데 마음에 걸린다.
하나님 경륜에서 하는 말이 아니라고 생각이 든다.
말을 좀 가려서 해야 했는데 하나님 경륜 안에서 쓸 수 있는 말이 아니니까.
재수 없다는 말은 안쓰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1순 발표할 때 그런 말을 했는데 내가 왜 그런 말을 했나 후회한다.
이러고 있는데 목사님이 오늘 그 말을 했는거라.
하나님의 경륜 안에 산다는 것이 좋고 감사합니다.
박래한:
그게 더 은혜가 됐어.
아무도 나쁘게 생각하는 사람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