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온 지 수년이 지났지만 옳게 동네 한 바퀴 휘 돌아보지 못 했다. 무엇이 그리 바빴는지 직선주로만 걷다 보니 모난
성정이 자꾸 더 각이 질 것만 같아 큰 맘 먹고 동네 한 바퀴 동그랗게 돌아봤다.
점점 커져가는 다산초등학교, 신축아파트들이 들어오기 시작하자 점점 학교는 활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학교가 워낙 넓어 고향을 오랜만에 찾은 어른들도 유년시절의 감정을 축소하지않고 그대로 간직할 수 있어 보기에 좋았다.
좌측에 위치한 '다산관', 실내 체육관은 최근 신축하여 지역민들의 운동장소와 각종 행사장소로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곧 만여명의 인구를 관장하게 될 다산면사무소,
들일 하다가 면에 볼 일 보러 온 아저씨의 흙 묻은 오토바이가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말라가는 것들, - 다산의 명물 연밭을 지나며
하지만 그 뿌리는 의미의 속삭임으로 내면 속으로 속으로 여물어 가고 있다.
그래, 그들의 속삭임이 곧 드러날 것이다. 지금은 단지 해걸이처럼 보일 뿐이지만...
5월이면 출하될 수박을 기다리며 오늘도 아낙은 수박순을 손 보고 있다. 확확 거리는 40도의 실내온도,
수박속, 그 핏빛 고독들이 우리 입속으로 들어오는 과정은 결코 녹록치만은 않다.
수월케만 살아 온 한 사내는 그 인고의 노력 앞에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던져버리듯 나오며 한 말 "수고 하이소" 더 이상 무슨 할 말이 필요하겠는가.
낙동강과 금호강이 만나는 합수머리 화원유원지, 4대강 살리기의 일환으로 화원유원지 사문진교 다리 밑을 파낸 모래들이
근처 하천부지에 능처럼 도열해 있다. 예전 남명 조식선생이 대가야 왕릉을 보고 '저게 뭐꼬!'라고 했듯 처음 보는 이들이
분명 말 할 것이다. "갑자기 웬 무덤 들이고..." 멀리 화원유원지 상화대가 보인다.
지난 해에 개통된 사문진교, 대구화원과 고령 다산을 잇는 관문이 초현대식으로 탈바꿈 하였다.
이 다리로 인해 부동산은 들먹거리고 각종 신식 문물과 문화(?)들이 많이 유입되었다.
근처 다산주물단지의 물류수송에 많은 편리함과 주민들의 숙원 사업이 차차 이루어진 순간이었다.
예전 이 곳을 지나려면 배를 타고 건너왔다고 머리 희끗한 할매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편리할진 모르지만 인심은 차츰 흉흉해 지는 것은 우짜꼬..."
부자(父子)가 채 이른 봄농사 준비를 하고 있다. 과연 저들은 언제까지 농사를 지을 수 있을까. 저 흙들의 긍정 앞에
부정(不正)의 속도전들이 밀어닥친다면 저들은 어디로 갈까. 경운기의 거처를 잠시 생각해 본다.
이유 있는 반항 - 고랑 따라 일령종대로 시들어가고 있는 구멍 난 농심
수확하지 않은 배추는 말라가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비틀린 마음만은 아니리라.
올봄엔 저 피같은 땅에 무엇을 심을까. 벌써 부터 밭머리에 선 농심은 신발에 성급히 들어 온 흙부터 턴다.
마른 입에 피워 문 담배조차 소태맛이다.
화원유원지 일대에 곧 자본주의의 내공들이 들이닥칠 기미가 보인다.
대형 위락시설에 카지노를 능가하는 경륜장, 초호화 수상 레저타운 그라고 뭐라카더라......
더 이상 까치들도 살 수 없어 이사를 가야 한다. 깨춤을 추는 이들은 과연 누구인가. 원지주인가, 부재지주인가?
동네사람들은 입을 모은다. "아이고, 이 근처 땅 임자는 80% 이상이 외지인인줄 모르능교, 앞으로 우에 살아갈 지 막막합니더"
대충 그런 줄 알면서 괜히 물어봤다. 돌아서는데 구시렁 거리는 소리가 정수리에 박힌다.
다산파밭, 예전 홍수가 많이 나서 화원유원지 일대와 다산은 늘 물밭이었다. 물 빠지자 흘러넘친 토사들이 스폰지처럼
폭신폭신하여 무슨 작물을 심어도 잘 자랐다. 그래 다산 일대에서 나온 채소들은 근처 도시로 검역 없이 출하되었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다산파(다끼파) 명맥만 유지하듯 올 추운 겨울에도 고맙게 잘 자라주었구나.
묘한 대립각 -
멀리 4대강 살리기 현장인 '강정보 공사 현장'이 보이는 곳에 하천부지 농사를 짓던 경운기가 일인 시위라도 하듯
서 있다. 성서 죽곡지구 아파트 단지에서 다산으로 교량이 완성되면 불과 5분 거리, 걸어서, 달려서, 돌아 온 그 길이
가까워서 그 또한 좋긴 하지만 이 길로 또 많은 도시의 문명들이 유입될 것이다.
개발은 빠르지만 아직 나오지 않은 겨울잠 자는 개구리들의 울음소리를 잠시 생각해 본다.
거처를 더 깊은 곳으로 옮겨야 하나.
아직도 끝나지 않은 캐치프레이드!
반대급부의 현수막 하나 걸 수 없는 지줏대 없는 강둑에 서서 늙은 바람 하나 실낱같은 북풍 한 점 토해내고 있다.
" 나는 인자 어디로 가야 하노' 갈대수염은 이제 어디에서도 볼 수 없단 말인가.
얼마나 더 오래 잘 살라꼬, 지금 여기서 조금만 더 발버둥치고 싶은데.
괴물처럼 버티고 서 있는 강 건너 아파트들이 큰 아가리를 벌리고 곧 쳐들어 오겠지.
피난처도 정하지 않은 원주민들은 잠 못 이루고 있는데 포크레인들은 맹물 먹고 이를 후비곤
쉬지도 않고 또 쳐들어 오고 있다.
새로 생길 이 길을 따라가면 어디에 닿을까.
늘 꿈꾸던 무릉도원이 손에 잡힐까, 아틀란티스의 낙원이 저기에 있을까.
문전옥답 다 팔아 자식들 대처에 보내 사업하고 공부한 놈들 '아이고, 옴마, 아부지 어서 오이소'하며 손짓할까.
지금은 이것저것 남은 것 없어 이백평 파밭 소작 지으며 사는 신세인데, 올해부터는 농사 못 짓는다고 비켜달라고 하네.
다산댁아, 화원댁아 우리 인자 이사가야 하네, 오늘도 강 너머 간 자식 하마 오나 해거름까지 기다리던 박노인,
구판장 좌판에 앉아 막소주를 마시며 꺼이꺼이 마른울음 토하고 있다네.
우리 동네엔 꾸불꾸불 남도 가는 길처럼, 한하운의 시구처럼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 하나 떨어지고...'인 듯한
먼지 나는 꾸부러진 길들도 있는데 눈 들어 다른 곳엔 개발의 물결이 일어 시끌벅적 하루를 부수고 있다.
빈 들에 괴물들이 하나 둘, 흙 밟고 다닐 자리를 야금야금 뜯어먹고 있다.
밭 귀퉁이에 쉬고 있는 농구는 말이 없고 팍팍한 내 무릎 관절은 삐걱소리를 낸다.
아, 다음 동네 한 바퀴를 돌 땐 동네지도를 다시 그려야 한단 말인가.
직선과 곡선의 갈림길에 서서 한숨만 폭폭 쉬는 실루엣 하나, 비단 나 혼자만의 헛헛한 소갈머리일까.
문득 사라질 듯 떠오르는 시 한 편, 강물 위에 부유하듯......
딱딱하게 발기만 하는 문명에게
함민복
거대한 반죽 뻘은 큰 말씀이다.
쉽게 만들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물컹물컹한 말씀이다
수천 수만년 밤낮으로
조금 무쉬 한물 두물 사리
소금물 다시 잡으며
반죽을 개고 또 개는
무엇을 만드는 법을 보여주는게 아니라
함부로 만들지 않는 법을 펼쳐 보여주는
물컹물컹 깊은 말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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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대구 서구 내당동에서 달성군 논공읍 상리까지 오는길. 고속도로고 국도고 상관없이 공사 현장입니다. 우리나라는 현재 리모델링 중입니다. 현정권이 들어서고 어느 장관이 말했지요. 전 국토를 공사장으로 만들겠다고. 그 말은 그대로 실천할 모양입니다. 고속도로에 걸린 플랭카드 불편하시죠? 1년을 앞당겨 2011년까지 마루리를 하겠습니다. 이 문구를 볼때마다 무섬증이 드는것은 저의 소심함 탓일까요? 날치기 공사로 인해 발생할 사고때문일까요? 어쨌든 우리나라는 현재 리모델링 중입니다.
이 봄에 서샘은 어떻게 리모델링을 준비하고 있을까? *^0^*
선배님, 하시는일 어떠하신지요?
네, 박선생님 잘 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0^*
체념하기엔 너무 서글픈 현실입니다. 역사의 수레바퀴라고나 할까요. 앞으로만 가지 않고 한쪽 바퀴가 빠진 채 덜컹거리며 갈지자로 가는...언젠가는 바른 길로 갈 날이 있지 않을까요...상식이 세상을 이끄는 시대가 오면...
그런 세상이 올까 저어하네요. 요사인 아이나 어른이나 워낙 직선주로를 선호하다보니 말입니다. 교육현장에서 가치관 혼란의 기로에 서있는 아이들을 지도하느라 많은 혼돈이 오시리라... 신샘 파이팅!!
성묘를 가자면 건너야 하는 다리가 사문진교였군요. 대구 근교의 분들은 고향을 잃어버린지 오래 되었습니다.
미분양아파트가 대구경제의 목줄을 죄고 있다고 하더니만 웬 놈의 공사는 저리도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조금 돌아가도 아깝지 않을 곡선의 도로... 느림의 미학이 그립습니다
오호라, 이 쪽 방면이었군요. 신샘 내년부터는 한 바퀴 휘 돌지 않아도 성서방면에서 이 곳으로 직선다리공사가 완공된다는데 기쁜 소식인지 모르겠네요. *^0^*
그게 잘사는 건지 이게 잘 사는 건지 나도 헷갈립니다. 윷놀이 할 때는 오시이소.
변명만 늘어놓다 보니 이젠 완전히 '늑대소년'이 되어버렸네요. 마음은 한 걸음에 가고 싶지만 고놈의 시간 때문에 우야지예. 흑흑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