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1. 14. 불날. 날씨: 지난주 입동즈음에 겨울 날씨더니 날이 풀려 늦가을 기온으로 회복되었지만 밖에 나갈 때는 겨울옷을 잘 챙겨입을 때다.
[행복한 교육을 지키기 위해서]
잠이 일찍 깬다. 평소보다 일찍 나와 어제 씻어놓은 쌀 물을 뺐다. 막걸리를 빚기 위해서다. 지난주 3,4학년 어린이들과 과학 공부로 액체, 고체, 기체를 배우는 꼭지로 하는 활동인데, 두 번째 밥을 주는 날이다. 쌀을 씻고 고두밥을 짓고 누룩을 치댈 때면 마음이 정돈되는 느낌이다.
9시부터 10시까지 부엌에서 밥선생님과 이런 얘기 저런 얘기 하면서 고두밥을 지었다. 아이들이 맛있는 점심밥을 더 잘 먹게 해주시는 밥 선생님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누룩과 고두밥에 물을 잘 섞은 뒤 3, 4학년 어린이들을 불렀다. 철렁철렁한 액체가 가득한 항아리를 함께 봤다. 내일부터는 밥이 물을 싹 빨아들여 물이 보이지 않고, 효모가 내일부터 이산화탄소와 알콜을 만들어내는 모습을 날마다 관찰할 수 있겠다.
문득 가을이면 스산한 바람과 쌀쌀한 기운 탓인지 계절 탄다고 할 만할 텐데 올해는 그런 틈이 없다 싶다. 틈이 없이 바쁠 때는 시간을 잘 조직해야 한다. 그래도 학교와 집, 회의와 만남, 일상의 흐름 속에 웃을 일이 있어 살만하다. 교사들이 하루 쉬는 날 대신 담임 노릇을 하다, 과목 수업이나 쉬는 시간에 아이들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절로 웃음이 난다. 환하게 웃는 아이들만큼 큰 기쁨이 어디 있을까. 일놀이 이룸학교로 주말이 없는 11월에 하늘을 보고, 계절을 느끼고, 웃을 수 있는 틈이겠다.
요즘 날마다 대안교육현장의 안타까운 신입생 모집 현실이 전해지니 마음이 그렇다. 지난주에도 이번주에도 안타까운 전화가 온다. 큰 추세와 흐름으로 보아도 앞으로도 쉽지 않은 게 우리의 길이다. 한 학교에게 닥친 어려움만이 아니라 모든 대안교육 현장이 그렇다. 공립도 예외없다. 가만히 기다리며 사라지는 아픔을 겪어야 하는 것이 운명일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서글프다.
낮에 기후환경센터에서 한 분이 학교를 찾아왔다. 지역 안 네트워크와 행사를 제안했다. 반갑다. 날마다 뉴스에서 전쟁으로 죽어가는 사람들 소식이 들리는데, 주식 시장은 등락을 거듭하며 자본주의의 탐욕과 공포 지수는 올라가며 내 삶과 아무런 상관없는 것처럼 살아가게 한다. 내 삶에 훅 들어와야 그때야 내 문제가 되는 게 어디 한두 가지던가. 기후위기와 후쿠시마 방사능 쓰레기 소식도 마찬가지다. 일상의 삶에 갇혀 변명과 합리화로 그저 담론으로 소식으로 화를 내고 안타까워할 뿐이다. 깨어있는 시민의 삶, 여전히 어렵다.
컴퓨터 앞에서 보고서와 회계처리, 일상의 교무, 입학, 회계 행정들을 처리하다 시간이 휙 갈 때마다 모둠에서 들려오는 떠들썩한 아이들 소리와 교육활동을 부지런히 채비하는 교사들을 보며 힘을 낸다. 한 교육 현장을 가꾸기 위해 해야 되는 수많은 일은 어린이들이 행복한 교육을 지키기 위해서다, 다들 그런 마음으로 살고 있는 곳이 한국의 대안교육 현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