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密陽)이란 영화의 감상
-밀양(secret sunshine)이 말해주고자 하는 의미를 생각해 봄-
밀양이란 영화를 봤습니다. 이 영화에 대한 어떤 재미나 흥미 내용에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우선 나는 한국 영화를 잘 안 봅니다. 울고 짜고 하며 결과가 이미 뻔히 보이는 스토리....., 그런데 밀양에 대해서 우리 안 사람이 집요합니다. 한 번 가서 보자고 여러 번 졸라매기에 이를 끝까지 거부했다가는 나에게 돌아올 엄청난 결과가 뻔히 보임으로 못 이기는 척하고 결국 함께 가서 보았습니다.
본래 영화의 평이라는 것은 영화를 본 관람자의 마음과 생각대로 입니다. 영화평론가라는 전문가가 있지만, 그 역시 영화를 본 모든 관람자의 한 사람의 입장에서 또 다른 관람자의 영화의 평과 똑같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영화의 평이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안 사람의 무서움을 피하기 위하기도 했지만, 밀양이란 영화를 결국 보게 된 데에는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의 평이 하도 입방아를 찧은 데 대한 궁금함이 있기도 해서입니다. 전도연이란 여배우가 그 유명한 칸 영화제(제60회)에서 여우주연상을 탄 것과 함께 영화의 평이 이 사람 저 사람의 입을 통해서 회자가 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는 그 내용을 모르기에 그냥 듣고만 있으니 어느 때부터인가 궁금해졌습니다.
영화를 보고서는 관람자는 나름대로 자신들이 본 것에 대한 평을 하기 마련입니다. 아니면 생각으로 담고 나오죠. 가령 재미있다거나 재미없다거나, 그래서 얼마를 내고 본 영화치고는 괜찮다거나, 돈이 아깝다거나 하는 말로 해서, 보다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합니다. 사실은 영화의 평을 한다기보다 자신들이 본 영화에 대한 감상을 말한다고 보아야 하겠습니다.
나 자신은 영화를 평할 위치에 있지 않다는 것을 잘 알기에 영화평이니 하는 말은 하지 않고, 영화의 감상을 말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영화의 감상을 말하기에 앞서 먼저 영화의 내용부터 말해야겠습니다. 무슨 내용인지가 이야기되고서야 감상한 것에 대한 이야기도 해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영화를 본 것이 보면서 무슨 기록에 남겨놓은 것도 아니고, 영화관을 나오고 시간이 지나면서 보았던 영화의 내용은 머리 속에서 희미해지며 지워지기 마련이기에 일일이 다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본 것을 제대로 내용을 이야기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며, 그런 까닭에 때로는 내용 전개가 앞뒤가 뒤바뀌어서 말해지기도 하겠습니다만, 기억하기로는 이렇습니다.
요즘은 영화를 시작할 때 미리 나오는 광고나 다음 영화의 맛보기인 예고편도 상영되지 않고 바로 본 영화의 화면이 나오더군요. 우선 이런 변화에 마음 속으로 박수를 쳤습니다. 기다림으로 인한 지루함이 사라졌으니 말입니다.
여배우 전도연이 몰던 차가 고장이 나서 밀양 입구에서 그만 서고 말았습니다. 다급한 전도연은 핸드폰으로 전화를 하고 있었습니다. 도로에 다니는 차 소리로 목소리가 커집니다. 자신이 지금 도로 어디에 있는지가 설명이 잘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럴 수 밖에요. 처음 찾아온 밀양이란 지역의 도로 상황을 모르는 그로서는 자신의 차가 서 있는 곳을 이렇게 저렇게 설명을 하느라 애쓰지만 상대방이 납득이 되도록 끔은 잘 전달이 안 됩니다. 그러던 차에 지나가는 차를 세우게 되었는데 그의 설명이 잘 된 도움으로 차를 수리하는 직업을 가진 배우 송강호가 렉카를 끌고 도착합니다. 차는 카센타로 끌어가지면서 송강호의 차에 탄 전도연과 송강호간에 대화가 오고 갑니다. 밀양에 왜 오게 되었느냐는 송강호의 질문에 전도연은 밀양에 오게 된 이유는 교통 사고로 죽은 남편의 고향이 밀양이기에 이곳에 살러 왔노라고 대답합니다. 그리고 밀양이 어떤 곳이냐는 전도연의 질문에 밀양 지역의 주민인 송강호는 다른 지역과 무슨 차이가 있겠느냐며 그냥 사람 사는 곳이라는 대답을 합니다. 전도연은 송강호에게 자신이 살아갈 집과 가게를 알아보아 달라고 부탁하고, 송강호는 잘 알고 있는 부동산 업자를 통해서 소개해 줍니다.
이렇게 시작되는 영화의 화면은 제목이 밀양(密陽)입니다. 전도연은 밀양(密陽)이 무슨 의미인지 아느냐면서 이 이름이 지닌 한문의 뜻을 풀이합니다. 비밀의 밀과 볕의 양, 그래서 비밀스런 (햇)볕이라고.....그래서 영화 제목의 밀양의 영어 자막이 secret sunshine 이었습니다. 이 제목으로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햇볕이라고 하는 것을 들어서 이것이 담고 있는 비밀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자 의도했을 것입니다. 집에 들어와서 궁금해 찾아봤습니다. 정말 밀양이란 지역 이름의 뜻이 그런가 해서요.
인터넷 백과에는 밀양(密陽)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밀양은 삼한시대에 미리미동국(彌離彌東國)이 있던 곳으로 비정되고 있다. 신라 때에는 추화군(推火郡:밀벌 또는 미리벌의 한자 표기)이 설치되었다. 757년(경덕왕 16)에 밀성군(密城郡)으로 고치고 밀진현(密津縣)·상약현(尙藥縣)·오악현(烏嶽縣:또는 烏兵縣)·형산현(荊山縣)·소산현(蘇山縣)을 영현(領縣)으로 관할했다. 고려시대에 들어 995년(성종 14)에 밀주(密州)로 개칭했다. 고려초에 오악현·형산현·소산현은 청도군으로 이관되었다. 1018년(현종 9)에 밀성군(密城郡)이 되어 창령군·청도군과 현풍현·계성현(桂城縣)·영산현(靈山縣)·풍각현(豊角縣)을 속군현으로 포함했다. 1275년(충렬왕 1)에 군민의 모반 사건으로 귀화부곡(歸化部曲)으로 강등되어 계림부(鷄林府:경주)에 병합되었다. 후에 현으로, 1285년에는 군으로 승격되었으나 곧 현으로 강등되었다가 1390년(공양왕 2)에 밀양부로 승격되었다. 조선초의 군현제 개편으로 1415년(태종 15)에 밀양도호부가 되었다. 1518~22년에 현으로 강등되기도 했다. 별호는 응천(凝川)·밀산(密山)이었다. 지방제도 개정으로 1895년에 대구부 밀양군, 1896년에 경상남도 밀양군이 되었다. 1918년에 군의 중심지인 부내면이 밀양면으로 개칭되고, 1931년에 밀양읍으로, 1989년에 밀양시로 승격되어 밀양군에서 분리되었다. 1995년 지방자치선거를 앞두고 실시된 대대적인 전국행정구역개편으로 전형적인 농촌지역이던 밀양군과 중심도시기능을 담당했던 밀양시가 하나로 통합되어 새로운 형태의 도농통합시인 밀양시가 되었다. "
정작 밀양(密陽)시의 밀양이란 말의 뜻은 설명이 되어 있지를 않았습니다. 다른 이곳 저곳을 검색하여 찾아보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심지어는 밀양에 대한 관광 안내에도 밀양이 지닌 뜻은 설명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할 수 없이 내 자신 스스로 밀양(密陽)이란 지역 이름이 지닌 뜻을 찾아 알아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전도연이 말한 대로 밀양(密陽)의 밀(密)에는 "비밀로 하다"란 뜻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런데 밀양시(密陽市)가 쓰고자 하는 '밀'(密)은 "빽빽하다"는 뜻으로 그 단어가 쓰여지고 있는 것이라 여겨집니다. 추측컨대, 아마도 햇볕이 빽빽하게 들어서는 양지바른 곳을 의미하는 것이라 여겨집니다. 그런데 밀양 영화를 만든 감독은 비밀스런 햇볕이 드는 곳으로 그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이 영화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를 암시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는 신애 역을 맡은 전도연을 통해서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기독교 신앙의 문제점을 고발하는 것에서 전개해 나가고 있습니다.
전도연은 밀양이 죽은 남편의 고향이란 사실만으로도 친근감을 가지며 이곳에 정착합니다. 그리고서는 성실하고 진실하게 이웃에게 다가서려고 합니다. 그런 그녀를 보는 이웃 주민인 약사의 집사님이 전도를 합니다. 남편이 죽고 없이 홀로 아들을 키우는 전도연을 측은히 여깁니다. 그러나 전도연은 자신은 하나도 불행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런 전도연에게 약사는 자신도 약사이지만 사람은 약으로만 치료되는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사람의 아픔과 상처를 싸매어 치료하시는 하나님의 존재와 사랑을 전합니다. 그러자 전도연은 약국에 스며드는 햇빛을 손바닥으로 받아 보이면서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고 반문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부정하는 전도연에게 약사는 나름대로의 논리를 가지고서 하나님을 믿을 것을 권합니다. 그러나 전도연은 아들 준이를 걱정하며 약국 문을 나섭니다. 그리고 집에서 꼭꼭 숨어 머리카락도 보이지 않는 아들을 엄마는 애타게 찾습니다. "준이야!, 어디 있니?." 하며 울음을 터뜨리는 연기를 하자, 엄마를 놀래게 하려고 살짝 다가오는 아들을 향해, 오히려 와락 일어서며 아들을 안아 아들을 놀래게 하는 데서 엄마와 아들의 정을 말해 줍니다.
'준', 약간의 자폐증이 있어 보이는 듯한, 그러나 전도연에게는 이 아들이 전부입니다. 당연히 엄마의 집중은 아들에게 전부 가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회식 자리를 마치고 돌아온 전도연은 온 몸이 부들부들 떨리는 일을 겪습니다. 아들이 납치된 것입니다. 전도연이 아들 준이 다니는 웅변학원장에게 좋은 땅을 사고자 한다고 말한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전도연은 납치된 아들을 구하기 위해 있는 재산(사실 얼마되지 않은 돈을 가지고 있었다)을 은행에서 다 찾아 납치범이 요구하는 대로 넘겨주었습니다. 그러나 전도연은 그렇게 애절하게 요구하였건만 아들의 목소리조차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그녀에게 형사가 찾아왔고, 아들의 시신이 있는 곳으로 가게 됩니다.
사랑하는 아들 준이를 잃은 전도연, 그녀는 너무나 기가 막힌 현실 앞에서 말을 잃었습니다. 눈물도 나오지 않습니다. 화장터에서 그런 전도연을 향해 시어머니께서는 역정을 내십니다. 아들을 잡아먹더니 손자마저 잡아먹은 년이라고 하면서 그런 그녀의 눈에는 눈물마저 없냐고 소리지르며 역정내십니다. 그런 시어머니께 송강호가 나서서 준이의 할머니의 심정도 이해되지만 정작 준이 엄마의 슬픔은 더 크지 않겠느냐고 한 마디 하다가 난처해집니다.
전도연이 칸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탈만한 연기는 이렇게 해서 실감나게 펼쳐집니다. 전에 멜깁슨이 납치당한 아들을 구하는 연기를 하는 영화가 있었는데, 그의 유명한 배우 명성만큼이나 연기를 잘한다고 생각했었는데, 남편을 잃고 또한 아들마저 잃은 전도연이 펼쳐나가는 연기는 어떤 큰 액션이 있는 것이 아니면서도 멜깁슨의 연기보다 더 낫게 강하게 와 닿았습니다.
슬픔에 잠겨 있는 전도연이 아픈 가슴을 안고 약국으로 들어옵니다. 그런 전도연을 보고 약사가 근심어린 눈으로 물어봅니다. 어디가 아파서 왔느냐고. 전도연은 가슴의 통증을 가리키며 이곳이 아프다고 말합니다. 그런 전도연을 약사는 위로하면서 다시 한번 전도합니다. 그러나 전도연은 항변합니다. "남편도 잃고, 아들도 잃고, 모든 사랑을 다 잃었다. 그런데도 당신이면 살아갈 수 있느냐?"고 말입니다. 그런 전도연에게 교회 집사인 약사는 그런 그녀에게 하나님의 존재를 말하며 그분의 사랑을 받아들일 것을 권합니다. 그러면서 마침 집회가 열리고 있는 교회를 소개합니다. "상처받은 영혼의 치유", 이곳에 꼭 한번 가볼 것을 권합니다.
전도연은 아들을 잃은 슬픔에 못견뎌 하며 넋을 잃고 있는데 납치범이 아들 준이를 납치하고 돈을 요구하는 악몽에 시달립니다. 그래서 오지도 않은 전화를 받으며 제발 아들의 목소리를 한 번만이라도 듣게 해주어야 하지 않느냐고 온 몸이 떨리는 목소리로 애절하게 말합니다. 그리고 송강호에게 전화하여서 도움을 구합니다. 그런 전도연을 안정시키려고 하는 송강호, 그러나 전도연은 송강호를 뿌리치며 가는 중에 가슴에 심한 통증을 느끼며 얼굴을 드는데, 그 앞에 약사가 전도하며 소개한 교회의 현수막이 눈에 들어옵니다. "상처받은 영혼의 치유". 전도연은 자신도 모르게 끌리듯이 들어가 자리에 앉습니다. 그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이 부르는 찬송, 그리고 기도.....그런데 한 구석에서 점점 목소리가 커져 가는 통곡이 터져 나옵니다. 그동안 눈물마저 말랐던 전도연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져 나오면서 말입니다. 이를 뒤에서 어쩔줄 모르고 그저 안타깝게 바라면 보는 송강호의 모습 또한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후에 전도연의 모습이 달라졌습니다. 그녀가 그렇게 약사의 전도를 외면하였던 하나님을 믿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꽉 막힌 가슴을 시원하게 뚫어준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열심히 교회 예배도 참석하며 교인들의 모임에도 참석하여서 자신이 받은 하나님의 사랑을 전합니다. 그리고 어느날 전도연은 자신의 아들을 죽인 살인자의 딸이 거리에서 폭행당하는 모습을 봅니다. 그리고 다시 화면이 흐르고 전도연은 자신이 교도소에 찾아가서 아들을 죽인 살인자를 용서하겠다는 마음을 교인에게 밝힙니다. 교인은 의아해 하면서 마음으로 용서하면 됐지 꼭 그렇게 교도소까지 찾아가서 용서하겠다는 말을 해줄 필요가 있느냐고 합니다. 하지만 전도연은 마음에 용서뿐만 아니라 직접 그에게 용서의 말을 해주어야겠다는 것을 굽히지 않습니다. 그녀는 직접 용서를 전달함으로써 살인을 함으로써 고통에 있을 그를 자신이 받은 하나님의 사랑에 있게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전도연을 교회 목사도 이해하면서 그런 그녀를 하나님이 함께 하실 것이라고 격려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교도소에 도착하여 면회를 신청하였습니다. 아들을 죽인 살인자를 용서하여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려는 전도연의 마음은 떨렸습니다. 그 마음을 억누르면서 살인자와 대면하여 말을 합니다. 그런데 살인자의 행세와 얼굴이 너무 편하고 좋습니다. 그래서 전도연은 그의 얼굴이 의외로 좋다는 인사를 하면서 작정한 말을 전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그의 말에 대답하는 살인자의 말을 듣는 순간 전도연은 온 몸이 굳고 말을 잃습니다. 살인자는 말합니다. 자신에게 그렇게 하나님의 사랑을 말해주어서 고맙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자신은 이미 이 교도소에서 전도를 받아 하나님을 믿고 그분의 사랑으로 자기의 죄를 용서받아 마음이 너무 마음이 편안하다고 말합니다.
교도소를 나온 전도연은 정신을 잃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악을 쓰는 여인으로 돌변합니다. 전도연과 동행했던 송강호를 비롯해서 교우들은 도무지 그 영문을 알지 못하여 전도연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급기야는 목사를 비롯해서 교우들이 심방을 왔습니다. 나름대로의 추측된 생각을 갖고 전도연의 마음을 위로합니다. 마음먹고 살인자를 용서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전해주려고 갔는데 막상 그 앞에 가게 되니 그렇게 하지 못한 심정을 이해한다면서.
그러한 그들 앞에서 마침내 전도연이 자신이 왜 그렇게 태도가 돌변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유를 밝힙니다. "내가 아직 그를 용서한다는 말을 하지도 않았는데,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이미 용서받았다고 합디다. 그래서 지금 자신은 너무 편안하고 행복하다고 합디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가?"라는 것이 그녀의 항변이었습니다. 자신의 아들이 살인자에게 죽임을 당할 때에 전혀 도와주지 않았던 그 하나님이 자신은 아직 그 살인자를 용서해 주지 않았는데 벌써 이미 그를 용서해 주었다니, 그래서 그가 자신으로부터 용서의 받을 듣기 전부터 이렇게 평안해 있다니..... 전도연의 이러한 외침은, 아들을 잃고 정작 자신은 아픔을 안고서 살인자에 대한 원망과 저주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를 하나님의 사랑으로 감당하면서 살아가고 있는데, 살인자는 자신의 아들을 죽여놓고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아들을 잃은 엄마에 대한 아무런 미안해 함도 없으며 아무런 고통도 없이 평안히 있는 것에 대한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반항이었습니다.
이에 이후의 전도연은 하나님께 도전적인 행동을 해 나갑니다. 전도연은 자신을 전도한 약사의 남편으로 역시 약사인 교회 장로를 그 아내가 없는 틈을 타서 의도적으로 유혹하여 드라이브를 신청하고 조용한 분위기의 들판에서 성관계를 갖게 하려고 합니다. 그런 그녀가 하늘을 향한 몸의 상태에서 반복하여 말합니다.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이죠. "보여? 보여요? 잘 보이냐구요?" 그리고 이는 외침이 됩니다. 전도연의 이 외침은 지금 자신의 유혹에 이끌려 자신을 범하려는 장로에게 그런 장로를 내려다 보는 하나님이 보이느냐는 것이 아니라, 하늘을 향해 하나님에게 만일 하나님이 있다면 지금 자신이 어떻게 행동하고 있는지를 똑똑히 보라고 하는 신의 존재의 부정의 외침이며 도전을 갖는 것이었습니다.
교회 장로는 성관계의 직전에서 죄 의식을 갖고 자신의 행동을 중단합니다. 하나님이 보는 것 같기에 도무지 양심이 찔려서 말이죠.
동네로 돌아온 전도연은 송강호가 있는 가게로 와서(이때 송강호는 몹시 화가 나 있었다. 그것은 전도연이 자신과 음식점에서 만나 같이 식사하기로 약속하고서는 나타나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도 송강호에게 추파를 던지는 듯한 행동을 합니다. 그런 전도연의 행동에 송강호는 몹시 화를 냅니다.
이 시간에 약사인 교회 장로는 자신의 행동으로 죄 의식에 사로잡혀 전도연을 위한 특별 기도 모임을 갖는 장로의 집에서 자신이 기도 모임을 인도하지 못하고 아내인 약사에게 인도하게 합니다. 영문을 모르는 장로 부인은 그런 남편을 대견해 하면서 전도연(신애)를 위해서 기도하자고 합니다. 그런데 뭐가 박살나는 큰 소리에 모두가 놀랍니다. 돌에 맞아 쫙 금이 가 있는 대형 유리창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리고 나서 전도연은 한 가게에서 CD를 훔칩니다. 이를 종업원이 보고 가방을 검사하려고 하지만 막무가내로 막아 나서 CD를 뺏기지 않고 지킵니다. 이것으로 그녀는 걸어오는 도중의 한 장소에서 하고 있는 연합집회를 봅니다. 그는 몰래 앰프 시설이 설치되어 있는 곳으로 들어가 훔친 CD를 넣고 틉니다. 부흥강사가 기도하자며 통성기도를 시키고 자신도 마이크를 잡고 기도하는데 노래가 흘러나옵니다. 김추자가 부르는 거짓말이야 라는 노래가 흘러 나와 연합집회의 기도를 방해하는 것입니다.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사랑도 거짓말 웃음도 거짓말 거짓말이야......"
이 노래를 통해서 전도연은 그가 전도 받아왔고 또한 그 자신이 그동안 말해 왔던 하나님의 존재와 그 사랑이 모두 다 거짓되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가게로 들어온 전도연은 사과가 두 개 놓인 광경에서 사과 하나를 들어 과도로 과일을 깎아 두 점 정도 먹다가 팔을 그어 동맥을 끊어 피가 흘러내리는 모습으로 문 밖으로 나가 정신 없이 헤맵니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죽음의 두려움의 공포 속에서 "살려주세요"라는 말이 나옵니다. 주변에 몇 사람이 당황해 하며 모여들고 어떤 한 여자분이 핸드폰으로 신고하는 내용이 잡힙니다. 이때의 전도연의 얼굴 모습이 형언할 길이 없습니다.
이후 전도연은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다 퇴원합니다. 전도연의 동생이 송강호를 만나 차에 타고 오면서 병원으로 향합니다. 그 때 전도연의 동생이 처음 전도연이 밀양에서 송강호를 만나 했던 질문과 똑같은 질문을 합니다. "밀양이 어떤 곳이에요?" 송강호는 전에 전도연도 똑같은 질문을 했었다고 하면서 그때 했던 대답을 합니다. "다른 지역과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그냥 사람 사는 곳이니 사는 것이죠"라고 말입니다.
퇴원한 전도연을 두고 그의 동생은 며칠 후에 다시 오겠다며 떠나고, 전도연을 위해 송강호는 맛있는 음식을 사주겠다며 같이 식사부터 하자고 합니다. 그러나 전도연은 먼저 머리부터 잘라야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송강호가 미장원으로 전도연을 데리고 가서 머리를 깎게 했는데, 그녀의 머리를 깎는 미용사로 등장한 사람은 다름 아닌 자신의 아들을 죽인 살인자의 딸이었습니다. 잠시 정막이 흐르고 마침내 전도연이 입을 여는 것으로 일상적인 인사가 오고 가면서 전도연은 미용사가 된 살인자의 딸의 상황을 묻습니다. 사고 쳐서 학교를 그만 두고 미용 기술을 배워서 이렇게 미용사로 일하게 되었노라는 대답이 돌아옵니다. 그리고 미용사인 살인자의 딸이 전도연의 머리를 잘라가는데, 도중에 전도연은 소리지르며 머리 자르는 것을 중단하고 뛰쳐나옵니다. 영문을 모르며 왜 그런지를 묻는 송강호에게 전도연은 왜 하필 자신을 이곳 미용실로 데리고 왔느냐고 말합니다. 송강호는 머리를 자르겠다고 하니 미용실에 데리고 온 것이 아니냐고 대답하는데, 그런 송강호를 뒤에 두고 전도연은 택시를 타고 혼자 집에 와 버립니다. 그리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마당에서 작은 유리를 받치고 가위로 자기의 머리를 자릅니다. 그런 뒤를 송강호가 따라 들어와 유리를 전도연의 앞에 비취게 하여 잘 보이게 합니다. 전도연은 아무런 말 없이 거울에 보이는 자신의 얼굴의 모습을 보며 머리에 가위를 대고 자릅니다. 그런 전도연의 얼굴은 핏기가 없이 무표정합니다. 그러면서 전도연이 의자에 앉아 머리를 자르는 주위에는 잘린 머리카락이 날리며 그동안 집이 비워 있음으로 인해서 수채구멍 지저분한 쓰레기가 있는 광경이 보이고, 그런 그곳에도 햇볕은 내리쬡니다.......영화는 그렇게 끝이 났습니다.
영화를 보았으니 여기에 대한 감상을 말해보겠습니다. 영화의 내용이 좋다거나 나쁘다는, 잘됐다거나 잘못 만들었다는 식의 이야기가 아니라, 밀양이란 영화에서 이야기되고 있는 하나님의 사랑, 용서에 대해서 말하고자 합니다.
이 영화는 현하 교회가 말하는 용서가 의미하는 하나님의 사랑의 문제성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전도하여 말하는 하나님의 사랑, 이 사랑이 갖는 용서가 살인한 죄인의 죄 의식도 갖지 않게 하는 것이며, 살인자에 의해서 아들을 잃은 엄마의 슬픔과 고통이 존재하는 데도 불구하고 아들을 죽인 살인자는 아무런 미안해 함도 고통도 없이 편안케 하는 것인가 하는 점이 두각되고 있습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사랑과 그에 의한 용서라는 것은 우리의 육체에서 현저하게 나타나는 욕망에 따른 죄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첫 사람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죄인된 인간이 구속주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그 이름을 믿는 믿음과 관련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전도연은 사랑하는 남편을 교통사고로 잃고서 그 남편에 의해서 남은 하나 밖에 없는 사랑인 아들마저 잃었을 때 모든 사랑을 다 잃은 자가 되었습니다. 그런 그녀에게서는 살아갈 희망이 없었습니다. 그러한 그녀가 상처받은 영혼을 치료한다는 집회에 참석하고서, 모든 사랑을 잃고 상처받은 자신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강하게 느껴졌습니다. 여기서 통곡하며 전도연이 받아들이는 하나님의 사랑은 절망과 한(恨)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은 이제 남편의 자리를 대신하고 아들의 자리를 대신하는 힘이 되었습니다. 이것에 의한 기쁨으로 전도연은 자신이 받은 하나님의 사랑과 그 기쁨을 전합니다.
전도연이 전도를 받고 상처받은 영혼의 치유 집회의 참석을 통해서 받은 하나님의 사랑에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말해주는 하나님의 사랑이 없습니다. 목놓아 울면서 단지 그의 마음이 속시원히 후련해진 것뿐이었습니다. 그런 그녀는 그 후 자신에게 하나님이 찾아오셨다고 여기고 있으면서 하나님의 사랑에 의한 기쁨으로 사는 모습을 보입니다.
하지만 이런 하나님의 사랑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진정한 하나님의 사랑이 아닙니다. 이는 자신이 아직 자신의 아들을 죽인 살인자를 용서하지 않았는데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아 평안을 누리고 있다는 살인자의 말에 분노하며 하나님께 반항하여 도전적인 행동을 갖는 것에서 나타납니다.
이 영화를 보는 기독교 신자들의 평에는 일만 달란트의 비유를 들어서 참된 신앙인이라면, 그래서 일만 달란트의 빚을 탕감 받은 용서의 체험이 있다면 자신이 아직 용서하지도 않았는데도 너무나도 평안한 살인자의 미소를 보고서도 용서해 줄 수 있어야 한다는 논리로 말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밀양이란 영화에서 보는 것은 하늘에서 내리쬐는 하나님의 사랑의 비밀스러움에 있습니다. 지상에서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곡해하여서, 그래서 왜곡되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란 말로 사람들을 현혹합니다. 그래서 전도연은 "거짓말이야"를 연합집회에서 갖는 기도에 틀어놓았는지 모릅니다. 연합집회 강사가 기도하고, 그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 운운하며 기도하는데, 모두 다 거짓말이라고 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전도연이 당한 것과 같은, 또는 그 이상의 상처를 입은 사람에게도 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강도에게도 오며, 살인자에게도 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은 전도연이 연기로 보인 것에서 말하듯이 모든 것을 다 잃고서 상처투성이가 되어 살아갈 아무런 희망이 없는 사람에게 힘을 가져다 주는 것으로 오는 것이 아니며, 또한 돈의 욕심으로 어린 아이를 납치하여 처참하게 죽인 악한 웅변학원장의 연기가 보인 것에서 말하듯이 무슨 잘못과 큰 죄를 저질렀든지 간에 그들이 지닌 두려움과 무서움의 공포를 없애주고 평안한 상태에 있게 하는 것으로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런 그들이 저지른 죄를 다 끄집어내면서 그들의 본질적 상태가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 속에 있는 것을 알게 하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그런 자신들 속에 오셔야만 하는 죄인 됨을 회개케 하는 것에서 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예수 그리스도가 빠짐으로 해서 이분이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위해서 행하신 구속(救贖)이 전해지지 않고서 다만 하나님의 사랑만 말하고 있는 것이 교회의 모습입니다. 전도연은 구속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사랑이 말하는 비밀스러운 햇볕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다녔던 교회의 모든 교인들도, 또한 각종 집회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감옥 생활을 하고 있는 살인자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런 모습이 현하 교회의 실상입니다.
전도연이 남편을 교통사고로 잃고 아들마저 살인자의 손에 잃음으로써 겪는 슬픔과 고통은 단지 마음의 병으로만 남지 않고 그녀가 가슴에 쥐어짜며 통증을 갖는 것으로 평생 가는 것입니다. 전도연의 하나 남은 사랑마저 납치와 죽음으로 빼앗아간 살인자가 겪는 고통과 무서움도 죄 값을 감옥살이로 치름에도 불구하고 평생 안고 가는 것입니다. 용서를 하고 용서를 받았어도 그들이 각각 가지고 있는 상처 속에서 받는 고통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은, 그리고 그 사랑에서 나오는 용서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 아들을 보내셔서 그를 믿는 자들을 영생을 얻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이를 배척하며 살아왔던 자들에게, 그래서 자신들이 한 일을 알지 못하고 있는 자들에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있을 것이다"는 것을 알게 해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에 의해서 하나님을 믿는 자는 살아가는 것이며, 또한 자신에게 악을 행한 자에게도 그로 인해서 일생을 슬픔과 고통 속에 살아가지만 하나님의 사랑의 공급을 입어 비록 자신의 아들을 죽인 살인자까지도 용서를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살인자는 남에게 씻을 수 없는 슬픔과 고통을 주는 무서운 일을 한 것에 대한 죄의식을 평생을 가지며 그 고통 속에 삽니다만, 그래서 피해를 입은 가족에게 평생을 용서를 빌며 살아야 합니다만, 그런 그에게도 하나님의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 역사를 합니다. 그런 그들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약속으로 주신 아브라함의 아들들이 되게 하시는 은혜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보는 것입니다.
밀양(密陽)이란 영화에서는 이 하나님의 사랑이 비밀스런 햇볕으로 감추어져 있고, 지상에서 사람들의 입에서 행동에서 온갖 모습에서 추악한 거짓말로 위선되어 있습니다.
그러면서 마지막에서 인상적인 장면이 나옵니다. 전도연이 스스로 가위를 들고 자신의 머리를 잘라가는 광경에서 그동안 집이 비워있음으로 해서 쓰레기로 지저분한 환경이 되어 있는 수채구멍 주위의 모습과 거울에 비취는 머리를 잘라 가는 전도연의 핏기 없으며 무표정의 얼굴이 잘 어우러져 있어서 나약한 인간의 모습이 연기되고 있습니다. secret sunshine, 곧 밀양(密陽)의 제목이 왜 등장해야 하는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것은 밀양(secret sunshine)이란 영화를 감상하면서 이 영화의 제목이 갖는 secret sunshine이 의미하는 바에서 갖는 내 생각이 이렇다는 것입니다. 해서, 나도 정작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가 궁금하며 모릅니다. 그 궁금증은 밀양이란 영화를 보는 관람자나 영화평론가가 풀어줄 수가 없습니다. 영화를 만든 이는 감독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만든 밀양의 원작은 이청준씨가 쓴 '벌레이야기'인데, 이 책을 가지고서 어떤 의도의 제목에 의해서 시나리오를 가지고서 영화를 제작했을 것이기에 감독 이창동씨에게 가서 물어봐야 비로소 정확한 대답이 나오지 않겠나 싶습니다. 그래서 말입니다. 밀양이란 영화가 의미하는 바가 정확히 무엇이냐고 묻는 분에게는 이렇게 대답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감독 이창동씨에게 가서 물어보세요!. 아님 별들에게 물어보시거나요!." (*) 출처 : 부천 개혁교회 (개혁주의 신앙공동체) 이천우 목사
밀양에 살붙임.( 시간날때 링크 클릭 *^* )
<밀양> 능가하는 기독교 영화를 바라며
http://www.christiantoday.co.kr/view.htm?code=cul&id=186001
기독교인의 모습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 <밀양>
http://www.christiantoday.co.kr/view.htm?code=cul&id=185899
<밀양>을 통해 본 성경적 기독교의 바른 모습
http://www.christiantoday.co.kr/view.htm?code=pd&id=188055
이창동 감독의 말...
밀양 이창동감독 인터뷰 "희망과 구원, 결국 인간의 것"
이 이영화를 통해 칸 국제 영화제에서 전도연은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작품속에 스며 있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기 힘들지만 "우리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 최악의 순간이라도 주님이 주신은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한다는...ㅣ 모양새 좋지 않게 밀양에 살붙임을 하였습니다. 이창동 감독의 인터뷰 리뷰에서 묘한 느낌을 발견하였고 - 기독교 언론에서 말하는 <밀양>에 대한 자료도 링크를 걸어 두었습니다. .이런한 내용을 통해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는 - 그리고 주 예수님의 다시오심을 사모고하고 기다리는 성숙하고 차원 높은 신앙인으로 날마다 변화되어가시길 기도드립니다. 예수안에서.-
여기 까지 인내하며 읽어 주신 분께 감사드립니다. (*)
고사성어. 得魚忘筌 : 득어망전
: 물고기를 잡고 나면 통발을 잊어버린다는 뜻으로,
목적을 이루면 그 때까지 수단으로 삼았던 사물은 무용지물이 됨을 이르는 말. (**)
첫댓글 귀한 글 잘보았습니다. 문화를 통해서 사단은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님으로 부터 멀어지게 하고자 하는 목적이 있겠죠. 교묘하게 믿는 자들에게 까지도 자기가 믿는 신앙이란 무엇인가 하는 회의감을 갖게 함으로써 사단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함이었을 것입니다. 또한 살인자의 태도에 대해서도 잘못된 신앙을 심어놓은 것같습니다. 살인자가 비록 회개를 통해 주님께 용서함 받았을지라도 그가 피해자에게 진심으로 뉘우치며 잘못을 고백하는 마음이 진정으로 회개한 마음인데 그러한 모습을 잘못그려놓음으로써(주님께용서받음으로 평안한 모습)참된 신앙을 오해하게 하는 부분이 되어버린것 같습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이 영화를 봄으로
많은 혼동을 가져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어찌 한 순간에 다 알수가 있겠습니까. 많은 연단을 통해 신앙이 다져가는 것이고 하나님을 조금씩 알아가는 것인데 누군가 신앙을 갖고 잠시 주님이 주시는 기쁨을 맛보았을 지라도 그것은 초보적인 신앙에 불과한 것이고 많은 실패와 좌절을 통해 또한 자신의 나약함과 무기력함을 통해 전능하신 하나님께 의탁해 나가는것이 신앙인 것을 영화에서는 전도연이 잠깐 맛보았던 기쁨과 사랑을 마치 온전한 것으로 그려놓은 것도 잘못된 것인것 같습니다. 그러한 갈등을 통해 더 온전한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아가는 과정을 잘 표현했더라면 좋았을 것을.......샬롬!!!
귀한 댓글은 글의 균형을 잡아 줍니다... 균형을 잡아주는 댓글이 있기에 말하고자 하는 의도를 충분히 나타나게 되며 핵심을 뽑아 올릴수 있는것입니다..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