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난 안양에서 린저우로 가는 길, ‘태행대협곡’이라 쓴 중국어 간판 아래에 한글로 '태항대협곡'이라 쓰여 있다. Ⓒ최종명
허난 안양(安陽)에서 서쪽으로 1시간을 달리면 린저우다. 태행산 자락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하더니 중국어로 ‘太行大峽谷’이라 쓴 간판이 빠르게 시야에 사라진다. 아래에는 한글로 ‘태항대협곡’이라 표기해 놓았다. 왜 ‘항’이라 쓴 걸까? 논란이 좀 있다. 행(行)은 발음이 하나가 아니다. 중국어로 싱(xing)이나 항(hang)으로 발음되는데, 태행산에서는 항(hang)이다.
엇갈린 의견이 있다. 옛 지리나 역사를 다룬 기록물에도 다양한 근거가 등장한다. 린저우 사지(史志) 책임자의 논거가 흥미롭다. 열자(列子)는 ‘대형(大形)’, 회남자는 ‘오행(五行)’이라 했던 산이었다. 당나라 이후 ‘대행(大行)’이었다. ‘xing’은 남송 시대에 ‘hang’으로 변했다. ‘대행(大行)’이 황제나 황후가 사망하고 시호를 받기 전의 장례를 뜻하는 말이어서 감히 사용하기 힘들었다. 이를 피휘(避諱)라 한다. ‘태행'의 발음도 자연스레 'taihang’으로 변했다는 주장이다.
태행산을 가로막고 선 린저우 시내의 홍기거호텔. Ⓒ최종명
또 다른 문제는 국어의 한자어 발음에서 오는 혼란이다. 한자 '行'은 어떨 때는 ‘행’이고, 어떨 때는 ‘항’이다. ‘은행(銀行·yinhang)’도 있고 ‘항렬(行列·hanglie)’도 있다. 그럼 태행산과 태항산 모두 모범 답안일까? 어렵다. 그렇다고 ‘타이항산’이라 표기하면 정감이 떨어진다.
태행산맥 지도에 포함된 지명은 한자어로 발음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우타이산을 오대산, 헝산을 항산, 윈타이산을 운대산이라 쓴다. 바이터우산을 백두산이라 하듯이. 중국 땅이지만 대자연의 지명은 그냥 정겹게 쓰고 싶을 따름이다. 갑자기 경북 청송에 있는 태행산에 가고 싶어진다.
린저우의 홍기거 물길. Ⓒ최종명
린저우 시내를 통과하는데 대로에 있는 호텔이 홍기거(紅旗渠)다. '거'는 도랑인데, 붉은 깃발과 무슨 관계인가? 기록에 따르면 명나라 이후 500여 년 동안 린저우에 심각한 자연재해가 100차례가 넘는다고 한다. 큰 가뭄도 30차례나 발생했다. 심지어 인상식(人相食)이 5차례였다는 구전도 있다. 흉년에 사람끼리 서로 잡아먹는 행위를 말한다.
가뭄을 해소하기 위해 물길을 꽤 만들었는데도 그랬다. 1960년대에 이르러 대대적인 공사를 했다. 8m 너비로 높이 4.3m의 물길을 무려 70㎞나 만들었다. 지류로 연결하고 농토까지 실핏줄처럼 이었다. 총 1,500㎞가 넘는다. 공사 기간이 10년이었다. 1,250개의 봉우리를 깎고 211개의 동굴을 뚫었다. 협곡을 넘는 151개의 수로교도 세웠다. 잠시 홍기거 물길 앞에 선다. ‘인공천하(人工天河)’라 부른다. 연인원 5,000만 명 이상이 투입됐고 81명이 사망했다. 붉은 깃발 아래 선혈이 낭자한 공사였다. 감탄과 애도를 하고 산을 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