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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부도를 초래할 원전범죄 관료들이 덮었다
< 사진 설명> 울진 3,4호기는 설계위변조 및 부실시공으로 치명적인 사고가 일어날 수 있는 진동현상과 증기발생기 세관마모 손상이 지금쯤이면 급격히 진전되고 있을 것이다. 원자로설비중 가장 무겁고 큰 증기발생기가 통째로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지는 미국원전에서 팔로버데원전 원자로원자로냉각재펌프의 고진동으로 펌프 축 파단 사고에 관한 NRC 조사보고서이다.
들어가면서
2021. 11월 중순에 현대엔지니어링을 명퇴한 아우로부터 <허경영의 초일류국가 건설지침서>와 ‘<허경영의 영성시대가 세계를 이끈다.> 책 두 권을 보내왔다. 이 아우와의 인연은 월성원전 2호기 건설 현장에 발령 받았을 때, 현대건설 품질감사과(quality audit)에 같이 근무한 1991년 12월부터 지금까지 이어져왔다. 피를 나눈 형제도 아닌데 긴 세월 이어져 온 것은 이심전심으로 맺어진 인연이기 때문이리라.
이 아우로부터 국가혁명당의 산업에너지 분야 특보제안이 있었지만, 그런 큰일을 할 만한 그릇이 못됨을 알기에 대답을 하지 않다가 생각을 해보니 작금의 울진원전을 위험을 주권자들이 알게 된다면 뭔가 변화를 이끌어 낼 수가 있을 것이라 생각을 했다. 그래서 이 글은 쓴다,
오십이지천명(五十而知天命)이라 숙명을 만나다.
가수 이장희 님의 ‘내 나이 육십하고 하나일 때’란 노랫말 중에 ‘열아홉 살, 스물한 살, 스물하고 아홉일 때, 육십하고 하나일 때’ 란 4가지 나이에 꿈을 노래하는 부분이 있다. 열아홉이 못 되던 중학교 다닐 때는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수업을 마치고 학교 도서관에서 ‘비룡(1959년 와룡생 작)’이라는 정통 무협지를 감명 깊게 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45년이 지난 지금 이 포스트를 쓰면서 문득 주인공 이름이 떠올랐다. 주인공 양몽환이 무림의 적과 싸우다 장풍을 맞아 중상을 입고 깊이를 알 수 없는 단애로 떨어져 의식을 잃었다. 여러 날 지나서 눈을 떠보니 신비한 지하세계(아바타에 나오는 그런 광경)에서 기연을 만나 귀원비급이라는 무공비급를 얻는다. 이 비급을 연마하여 삼 갑자의 내공을 연마하여 다시 세상에 나가서 도탄에 빠진 무림을 구 한다‘라는 줄거리였다. 천년 학을 타고 다니는 ’주백이‘란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는 절세고수 주인공의 스토리를 청소년 때 보았으니, 얼마나 깊이 빠졌으면 쉬지 않고 내리 5권(권당 700페이지가 넘었다)을 읽었다. 이후부터 공부는 손 놓았었다.
무협만화는 예나 지금이나 젊은 세대로부터 중년까지 즐겨보는 것 같다. 요즘 세상은 많이 배운 자(무협소설을 보지 않고 공부만 내리 한)들이 도둑질하는 세상이니, 공부보다 정의를 위해 힘을 길러 무찌르는 주인공을 꿈꾸던 청소년 시절 비룡이란 무협소설에 심취해서 쿵푸를 배운 것이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쿵푸의 한자어는 功夫(아비가 되는 힘을 쌓는다)이다. 아비 노릇을 제대로 하려면 공력을 쌓아야지 지식을 쌓아 도둑질 하는 인간에 되어서야 되겠는가?
쿵푸 도장에 다니며 교본으로 받은 ‘달마 역근경’에 있는 내공 수련을 혼자 하다가 어렵기도 했고, 내공 연마를 잘못하다 탈(주화입마?)이 날 것 같아 포기했다. 그런 시절 인연으로 30년이란 세월이 흘러 울주군에 있는 신고리원전 3,4호기 건설현장(비학 마을)에 근무하던 어느 날, 퇴근버스에서 내려 숙소로 가던 중에 ‘단월드’란 간판이 눈에 쏙 들어 왔다. 숙소와 지간 거리에 기공 수련장이 있었다는 것을 몰랐다. 몰랐다기보다 퇴근 때면 동료들과 어울려 술판을 벌이다보니 맨 정신으로 숙소에 들어가는 일이 드물었기 때문에 도장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丹學(저자 일지 이승헌) 서적과 사범의 체계적인 지도를 받으면서, 달마역근경을 혼자 연마하여 몸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내공수련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포기하고, 누구나 체험할 수 있는 지감 수련, 뇌 호흡, 天符經(인류최초의 경전)을 통해 나를 찾는 여정을 시작했다. 센터에서 天祭(천제)를 지내면서 나의 근원이 천지(天地)를 부모로 하여 태어난 天孫(천손) 이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오십의 나이를 지천명이라
수행을 통해 세운 서원
기장군 일광에 살던 벗이 경남하동으로 귀농하던 중에 불법과 인연이 되어서 지리산 맥전골 홍서원의 선지식을 만나 불법에 귀의를 했다. 그 당시 나는 한민족의 경전(천부경, 삼일신고등)을 통해 도통스쿨을 수행했을 때였고, 내가 귀농 선배였던 관계로 그의 귀농에 도움이 될 것이 없나 싶어 하동에 여행 삼아 갔었고, 그날 자연스레 홍서원 예불에 참여했다. 절을 하는데 자세가 영 불안했고, 지기의 몸짓에 따라 절을 했었다. 벗이 나에게 일일기도문을 주었고, 남창에 있는 숙소로 돌아와서부터, 천부경 수행과 병행해서 백발참회기도 및 츰부다라니를 독송했었다.
새벽 4시에 숙소를 나서서 울주군에 있는 대운산 대운암의 산신각에 모셔진 신선들께 예배를 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주차장을 지나서 우측 길로 들어서면 초입부터 비탈길이다. 비탈길을 다 오를 때면 산새 한 마리가 맑은 소리로 새벽인사를 한다. 나 역시 새소리를 흉내 내며 인사를 하니 졸졸 따라온다. 이 새벽에 자기에게 새소리로 화답하는 사람을 보니 새도 무척이나 반가웠을 것이다. 울진의 산골에서 자연인 같이 살아서 새도 선한 사람임을 알아 본 것이리라.
대운암 터에서 800년이란 성상의 세월을 보낸 팽나무 보살에게 합장하고 세 바퀴 돌고서 양팔을 벌려 팽나무 보살께 안겨 본다. 나무가 얼마나 우람했던지 양팔로 세 번을 안아야 나무를 온전하게 안을 수 있었다. 팽나무보살의 기운을 느끼고 대운암에 들어갔다. 절에는 공양주 보살만 거주하시는지 동안거 중인지 스님의 새벽예불소리는 거의 듣지 못했다. 그래서 인지 산사에서 맞이한 새벽은 삼라만상의 고요함 그 자체다. 산신각과 대웅전에 삼배를 하고 하산하노라면 산새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인사를 하며 내려가는 비탈까지 마중을 한다, 아마도 붙박이 새여서 그 곳에 사는 것이리라.
퇴근을 하면, 단학수련을 마치고 숙소로 가서 천부경과 츰부다라니를 3회 독송하며 명상과 行功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던 이 시기가 나의 생애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 이였다. 또 다른 행운도 있었다. 미국 스틸 포인트 연구소 교사로 있는 ‘수자타‘란 선지식이 쓴 觀(관)의 첫 장에 이런 글이 있었다. 수자타란 선지식의 이름이 낯설지 않았다, 중학교가 불교재단이여서 매주 월요일마다 전교생조례에서 삼귀의와 사홍서원을 내용도 모르면서 불렀고, 보리수 나무 아래서 깨달음을 얻은 부처님께 죽을 올린 양치기 소녀였던 수자타가 이천오백년이 지나 사람들을 해탈의 길로 인도하는 일을 하는 수행자라니....
<여기, 이 순간이 아닌
다른 어느 곳에 있으려고 하는 자의 삶에는 많은 괴로움이 찾아든다.>
신고리 현장에서 느낀 것은 기술자들이 장인정신이 결여된 함량미달 기술자들이 참 많았다(기회가 나면 대표적인 인물을 소개할 것이다). 기술은 제쳐두더라고 인간들이 회사를 등쳐먹거나 거짓말이 일상화 되어 있는 것을 보고, 단학을 수행을 시작하면서 수행자가 있을 곳이 못 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고, 이곳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에 담당 임원(김용묵)에서 이메일로 의사를 밝혔다(이것도 소개할 것이다). 이 무리들로부터 멀어지는 것이 수행자가 해야 할 첫 번째 일 이였다. 책에는 수행자가 가져야 할 자세에 대한 가르침도 있었다.
<수행자의 일상생활에서 선택이란 지극히 단순하다: 그는 자신의 깨달음에 도움이 되는 일들을 하고, 그렇지 않은 일들은 하지 않아>
선택을 해야 했다, 일일기도를 통해 악연으로 인한 마음의 갈등을 참회하며, 산골가족에게 회향을 하리라 기도하며 사직서를 낼 결심하던 차에, 기자재사무소 소장(정용식)이 나의 고민을 알았던지 나에게 창원 본사에 근무해 볼 의향이 없느냐는 제안하였다. 울진원전 3,4,5,6 호기 건설 당시 현장소장(후에 원자력BG장이 된 김태우, 배명성)과 인연이 있었기에 창원 조직은 낮 설지 않은 곳 이였고, 신울진 1,2호기가 건설 중에 있으니 창원에서 일 년 정도 근무하다가 울진으로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창원에 내려가서 원자력서비스 담당임원(박창환)과 면담을 했다(정용식 소장과 박창환은 부산대학교 선후배 지간 이였다.).
그런데 이리를 피하니 늑대를 만나게 된다. 전생의 業報(업보)였는지 페이스북에 #원전비리게이트1에서 #원전비리게이트_110 회의 포스팅 그리고 원전설계결함을 밝혀야 할 숙명 이였던 것 같다. 서비스 임원 박창환은 울진원전 3,4,5,6 건설 당시에 나의 대한 이야기를 다른 임원으로부터 들었던 것 같다. 짐작 가는 이가 있었다. 그래서인지 처음에는 경계를 하는 눈치였다. 나는 울진사무소 현장대리인으로 당당하게 일했던 덕에 김태우 현장소장(고려대 출신으로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자 원전수출협회 이사장을 지냄)으로 부터 독불장군이란 칭호까지 얻었다. ‘부서장 회의 때 소장이 나에 대해 ‘독불장군에게는 미래가 없다’(기회가 나면 소개를 할 것이다).‘ 라는 말을 했다고 관리과장(김유현)이 홋날 이야기해서 알았다. 옳은 것을 옳다고 말한 것은 꼬갑 게 여기니, 상관이 무서워 꼬리 내리는 것보다 바른 소리를 하여 불이익을 받더라도 독불장군 소리를 듣는 편이 편했다. 이것이 내가 타고난 龍의 성품이지 않을까 싶다.
후임 현장소장도 원자력BG장(배명성)을 하였기에 원자력BG는 친정과 같은 곳이라 창원에서 일 년 정도 근무하다, 신울진1,2 프로젝트를 마무리하고 남은 생을 울진에서 보내리라는 생각하며 창원근무를 결정 했었다. 2011.3월에 후쿠시마원전 사고가 터졌다. 두산중공업 EPC BG에서 원자력BG로 부서이동은 원전 르네상스시대가 핵발전소 사고가 있어 BG간 인력이동이 쉽지 않았다. 이웃 나라에서 일어난 사고였지만, 일본과 후쿠시마 주민의 업보라고 조심스레 말하는 불자도 있었다. 지구를 수탈한 인간에게 내리는 하늘의 경고였을 것이다.
부서이동을 하자마자 영광원자력 2호기 가압기 노즐 예방정비 현장에 파견되었고, 그동안 이 조직에서 일한 것들이 문제가 많았던 것을 알게 된다. 영광1호기에서 난생 처음 방사능이 높게 나오는 증기발생기 수실 내부로 10초간 상반신을 넣어 손톱크기의 腐蝕空(부식공)을 최초로 발견 했다. 이 부식공 보수에 두산중공업은 부실공사를 하여 근로자로부터 투서가 접수되어 민원 무마에 곤욕을 치렀다. 나는 담당 임원(박창환)에게 이 상황에 대해 “(잘못을) 비는 것도 기술입니다”라는 조언을 했었다. 별 짓을 다해도 결국은 발주처에 손해배상을 60억원 이상했다. 이 사건의 특별조사위원회(원자력안전위원회)는 예측치 못한 현장문제가 발생 시 업자에게 면죄부를 주는 내용이 포함된 조사보고서를 원안위위원장 이은철에게 제출했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짓을 원전교수와 전문가들이 저지른 것이다. 이 짓을 정부가 방조했으니 업자의 간이 배밖에 나올 수밖에....
방사능 피폭경험당
가동원전에서는 방사능이 나오는 증기발생기 일차 측 수실에 들어가는 것을, KPS 직원들은 공수부대들이 하는 ‘점프 한다‘라고 부른다. 영광원전 1호기에서 증기발생기 수실에 상반식을 넣을때 방호복을 입었다고 하지만, 비닐로 되어 있어 방사능을 고스란히 맞을 수밖에 없었다. 단지 입으로 코로 방사능 입자가 들어가지 않은 것뿐이다. 10초 이상 있을 수 없어 방호관리자들이 뒤에서 지키고 있다가 시간을 알려준다. 방사능은 뇌에 직접 손상을 주는 것이어서 머리가 하해 지는 느낌이 들었다.
울진3호기에서는 증기발생기 수실보다 상대적으로 방사능이 적게 나오는 2차 측에 들어갔던 적(습분분리기 파단사고)이 있었기 때문에 공포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수실에 들어가는 것에 한전기공(KPS) 직원들도 이 속에 들어가는 것을 극도로 꺼린다. 결함을 확인하러 머리를 내밀었으니 참 용감 무식한 짓을 한 것이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났을까. 울진원전 3,4호기 증기발생기가 조기 교체 될 것이라는 것을 기술연구소 정인철로부터 듣게 되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세월이 지나 지금 생각해보니 두산중공업 원자력BG는 울진원전 문제에 나를 이용해 먹으려고 했다는 생각이 든다. 울진원전 3,4호기 증기발생기 교체사업 공고가 나기 전에, 두산중공업 원자력서비스 영업팀은 한수원에서 입찰 정보(입찰용기술시방서)를 한수원 설비개선팀으로부터 빼냈던 것이 2011년 12월초다. 두산중공업과 그 일가의 업보는 이때부터 시작되었고, 앞으로 감당 못할 共業의 피해를 수많은 생명이 입을 것이다. 차라리 기술이 없었으며 AREVA에게 양보를 해야 했다, 쓸데없는 욕심이 화를 자초한 것이다.
내가 울진원전 3,4호기 건설 때 원자로, 증기발생기 시공검사를 담당했기에 증기발생기 조기교체의 원인이 2차측 환경관리 실패에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기술자로서 일말의 책임의식을 가졌다. 그래서 가족이 울진에서 대를 이어 살아갈 생명의 터에 가장 안전한 원전이 가동되게 하리라는 서원의 여러 불보살님께 세웠다. 세월이 지나 이 서원이 참으로 큰 서원이라는 것을 알았다. 서원을 여러 불보살님들께 세웠으니 이 일을 하지 않으면 불보살님을 속인 죄로 지옥에 떨어질 것이니, 원자력BG로 부서 이동한 이후부터 벌어진 원전비리사건은 내가 해결해야 할 숙명이라 할 것이다.
영광원전 증기발생기 수실 점프로 뇌에 조사된 방사능 덕에 내 IQ가 급격히 좋아졌던 경험을 이야기 한다. 현대건설에서 한국중공업으로 이직한 이후 직원들과 재미삼아 친 고스톱판에서 3년 동안 수익을 한 번도 낸 적이 없었다. 이 자들은 일은 안하고 고스톱만 쳤는지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1996년 가을 울진원전 3호기 상업운전 들어가기 직전에 중대 사고가 발생되었다. 증기발생기 2차 측에 있는 오십 여개의 습분분리기가 마치 기관총을 맞은 병사들이 순식간에 전부 쓰러지는 전쟁터의 모습을 방불케 하는 그러한 사고였다.
이 사고가 생긴 원인은 습분분리기와 그 지지대를 체결하는 커플링 재질을 변경했던 관계로 스테인레스강 재질이 유리조각처럼 깨지는 중대 사고다. 재질을 바꾸는 설계를 한 설계담당자(박정용)은 얼굴이 사색이 되어 현장사무소에 나타났고, 발주처에 해명하느라 진땀을 흘렸다. 한수원 울진2발에 거짓해명을 하고 넘어 갔다. 습관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것이 몸에 벤 조직 이였다. 실질적인 문제해결은 스테인레스 304재질을 원래의 재질인 카본 스틸(A516 재질)로 만든 재고 제품을 미국으로부터 긴급 항공화물로 공수하여 해결 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 또 다른 이슈가 두 가지 있었다.
첫 번째는 한수원 울진2발 기계부장(김용태)은 두산증공업에서 습분분리기에 고착된 시커먼 방사능 분진을 제거할 것을 요구했다. 습분분리기를 쓰러지게 한 원죄가 한국중공업 원자력 설계담당자(박정용)에 있었으니 울며 겨자 먹기로 제거 할 수밖에 없었다. 이 작업에는 한국중공업 울진건설사무소 사무직 간부직원(과장급~차장급)이 투입되어 원자로 건물 142피트 공간에서 증기발생기내에서 꺼낸 습분분리기에 시커멓게 고착된 물질(방사능 물질)을 제거하는 작업을 했다. 나는 그라인드를 잡았고 습분분리기에 고착된 방사능물질을 갈아내는 일을 직접 했다. 비닐로 둘러진 밀폐공간에서 시커먼 분진이 날리는 작업에서는 방진 마스크는 별 효용이 없었다. 작업이 끝나고 가래를 뺏으니 시커먼 것이 가래에 섞여 있었다. 방사능에 대전된 하이드라진 분진으로 인체 내부까지 방사능 피폭이 된 날이다. 지금 생각하니 영화 「판도라」에 한 장면이 문득 연상된다. 앞으로 이 보다 더 끔찍한 일이 필연적으로 벌어질 것이다. 판도라는 감독 박정우의 공상이 만든 픽션 이였지만, 내가 말하는 것은 노픽션 이라는 사실이다. 2017년 6월 서울프레스센터 10층에서 탈핵행동연대 모임에서 나는 그날 PPT설명을 할 때 울진원전 3,4호기 안전성 문제는 「판도라 속의 판도라 상자」라고 설명했었고, 근래에 탈핵인사 중에 그때 나의 말을 기억하는 이가 있었다.
두 번째는 그라인드로 갈아 낸 습분분리기를 한국중공업 원자력부분 생산직 직원이 투입되어 재조립하는 과정에 사건이 벌어졌다. 습분분리기와 지지대를 고정하는 부품인 커플링이 항공화물로 공수되어 조립작업을 착수되었다. 한수원 기계부장(이용태)이 커플링 볼트에 있는 시커먼 물질을 제거하라는 요구가 있었다. 이 자는 시커먼 것에 노이로제가 걸려 있었던지 요구를 또 한 것이다. 아마 이 시커먼 물질이 습증기의 순도에 악영향 또는 다른 부품에 손상을 준다는 것을 경험했을 것이다. 이용태 부장의 요구가 있었을 때 나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었다. “볼트/너트 표면에 묻은 시커먼 것은 윤활제다. 이것을 벗기면 안 된다”고 했더니, 이용태부장이 막무가내로 요구 였다. 아세톤으로 시커먼 물질을 제거를 했고, 그 볼트를 이용하여 습분분리기를 조립하기 시작했을 때, 너트를 체결하는 과정에 ‘서걱서걱’ 소리를 내면 너트가 돌아가지 않는 현상이 있었다. 방사능 도시메터 에서는 ‘삐이~ 삐~’ 거리니, 방사능을 처음으로 맞아보는 창원공장에서 투입된 생산직 직원들은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협소한 공간에 여러 명이 동시에 작업을 하니 나 역시도 분위기 영 아니었다. 내가 “모두 철수 합시다”고 말하자마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증기발생기 2차 측에서 빠져나갔다. 상황실로 돌아가니 한국중공업 원자력생산기술팀장(서정국 차장)이 “문과장! 니가 뭔데 작업자를 철수시켜~”라고 허세를 부렸다. 그 자리에는 한국중공업 전무 이윤영, 김태우 현장소장, 설계차장 박정용, 그리고 한수원 직원들이 여럿이 있었다. 작업에 투입되었던 생산직 직원들이 방사능피폭 때문에 습분분리기 조립작업을 보이콧 하고 창원으로 모두 복귀하는 일이 벌어진 것을 나에게 전가 시키는 수작을 부린 것이다. 서정국 차장이 익히 성질머리가 나쁜 자 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거친 원자력공장 생산직 노조 관리책임자였으니 그리 할 수밖에 위치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후 회사는 습분분리기 사건으로 철수한 직원들은 대상으로 인사위원회에서 징계를 결정하는 사태까지 벌어진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커플링 설계를 잘못한 박정용 차장도 징계를 받아 3개월 감봉 조치가 있었다는 것을 초대 원자력BG장을 지냈던 배명성 전무로부터 그 때 사건을 2012년 서울에서 만나 들었다. 사건 사고 당시 설계부장을 지냈던 그는 설계부 직원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걷어 생활에 보탬을 준 덕담도 했었다.
생산직 직원이 작업을 거부한 것의 원인 제공은 한수원 2발전소 기계부장이 제공한 것이다. 그는 ‘볼트/너트에 도포된 윤활제를 제거하라’고 요구 했고 나는 ‘안 된다’고 했었다. 윤활제를 제거한 상태에서 너트를 조이는 ‘서걱 서걱’ 쇠를 갉아먹는 소리가 났고, 너트 조임이 되지를 않는 문제가 있었다. 서정국 차장과 고성이 오갈 때 이 문제를 상기 시켰고 더는 기술적으로 딴 소리를 못하게 했다.
그렇다면 결국 생산직 직원의 징계를 한 한국중공업의 인사위원회 징계는 잘못된 것이다. 나는 그 자리에서 한수원 이용태 부장을 원망하지는 않았다. 그가 윤활제 제거를 요구 할 때, 한국중공업 다른 관계자는 입도 뻥끗하지 안했기 때문이다.
두 사례는 기술자들의 공학 기초가 부족해서 벌어진 웃지 못한 그런 사건 이였다. 나는 이때부터 김태우 현장소장으로부터 ‘독불장군에게는 미래가 없다’로 찍혔던 것 같다. 현장소장(김태우)은 그라인드 잡은 그 날 개고생 하였다는 이유로 북면에 있는 일미식당에서 소고기 회식을 열어 주었다. 회식 전에 의례 고스톱 판이 여기저기서 벌어졌는데 이 날은 쳤다하면 내가 위너였다. 그것도 쓰리고 피막을 연속으로 씌우니 30분 만에 모두 나가 떨어져 나갔다. 마친 신들린 판 이였다.
1997년 울진원전과 2011년 영광원전에서 받은 방사능 피폭이 나의 뇌를 깨어나게 했는지 나는 정보분석 능력과 학습능력의 급격한 향상을 가져 왔다. 그덕에 울진3,4호기 증기발생기교체 국제입찰에서 나의 혁혁한 공로로 메이져를 제치고 단돈 1억원 차이로 수주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2012년 국제 입찰 당시에 있었던 숨겨진 뒷이야기를 기회가 나면 할 것이다.
2016년 정부 R&D를 마무리하던 시기에 미국도 알지 못했던 CE형원전 원천적인 설계결함을 해결할 수 있는 원천특허 기술을 미국으로부터 특허를 받아냈으니, 핵발전소 사고를 방지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으니 이게 숙명이 아니고 뭐겠는가? 미국 NRC에 접속해서 관련 정보를 찾아내서 열 번 스무 번이고 읽으면서 완전한 이해가 될 때까지 읽고 또 읽으며 깊이 사유하는 스타일이다. 공부 중에 가장 싫어했던 것은 영어단어 암기다. 징글맞게 싫어했다. 하지만 꼭 필요한 전공서적은 영어로 된 것을 보고 있다. 영어 공부도 삼년 전에 목숨 걸고 일 년간 해본 적이 있다. 외우는 것은 질색 이였지만 원자로설비가 위태롭게 가동되는데 이게 보통 사건이던가?
두산중공업 원자력부문장과 그 무리들이 벌린 사악한 짓
간악하고 사악하기까지 한 두산중공업 원자력BG(대표이사 김하방)과 그 무리들은 나에 관한 인사정보를 통해 나의 토익점수(1996년 이후에는 시험을 보지 않았다)가 400점이 점이 못 된다는 것을 이용해서 최병전이란 자를 내세워 ‘니가 풀모스키의 말귀를 알아 먹었겠나’라고 했다. 이것은 수작질의 시작에 불과했다. ‘니가 폴모스키씨를 말을 알아먹기나 했을까?’라는 고의로 명예를 훼손하는 댓글을 여러 차례 유포했다. 이 짓을 한 것은 내가 허위 제보를 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부린 수작 이였다. 최병전의 댓글을 본 불특정다수의 시민들은 어찌 생각하였을까? 한편 한국수력원자력 범죄 가담자 및 사장(조석),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장(이은철), 산업통산부 장관(백운기), 두산중공업 대표이사(김하방)의 대응노력을 치하했을 것이다. 그 결과로 신고리 5,6 건설재개 공론화를 통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이후 SNS상에 퍼뜨린 허위사실 유포 내용들을 모두 삭제하였다. 여기에는 두산중공업 법무팀(변호사 이경환)과 김엔장 법무조직도 가담을 했다. 이 주도했다. 해서 수년간 했지만 한번 내뺏은 말과 글을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앞으로 통감을 하게 될 것이다.
이 짓을 했다가 범죄음모 및 사실을 입증할 수 증거를 결정적으로 노출하는 최악의 실수를 저질렀다. 이번에는 이와 관련된 사례를 소개한다. 이 내용을 검찰 고발장에 진술한 내용이므로 범죄의 전모를 확연하게 파악할 수 있다. 대권을 꿈꾸는 자는 반드시 챙겨야 할 것이다. 윤석열은 범죄기업에 면죄부를 준 당사자이니 오리발 내밀 궁리나 하기 바란다.
공익신고 면죄부를 준 관료집단
2021년 가을, 방송기자협회에서 주관한 교육 프로그램에 ‘원전설계 결함 및 대책’이란 제목의 강연을 제안 받고 부산 MBC 기자를 상대로 2시간 강연을 한 적이 있다. PPT 만드는데 공력은 엄청나게 소모되나, 고작 두 시간 강연했는데 목이 쉴 정도였으니, 이처럼 미련한 중생들을 계몽시키는 것이 참으로 고되고 지난한 세월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강제해고를 당한 2015.1.5.부터 현재까지 핵발전소 안전성문제를 SNS를 통해 계몽시키고 있으니 말이다. 원안위 옴부즈만 2회, 공익신고 2회, 공익감사청구 1회, 검찰청 고발 12번, 정보공개청구 5회, 국민신문고2회, 국민청원3회 그리고 SNS상에 500회 이상 포스팅을 해왔다. 핵발전소 사고 방지를 위한 공익신고를 8년간 했었다. 두산중공업 사내에서 3년을 포함하면 도합 11년째다.
나는 기득권의 수작질은 원전비리게이트란 제목으로 백회 이상 포스팅 하면서 그 실상을 세상에 알려왔다, 기득권 무리들은 이 사실을 알면서도 서로 약속이나 한 듯이 침묵하고 있다, 이 무리들은 핵사고 나면 그간 끌어 모으고 착복한 돈을 들고 해외로 분명 튈 자들이 분명하다. 부처님께서도 전쟁에 나가는 왕에게 ‘깨어 있으라’라고 하셨다. 이 핵문제에 관한한 나도 늘 깨어 있었다. 그래서 실질적인 위험과 사고가 어디에서 날 것인지 말한다. 깊은 사유의 결과다.
‘깨어나지 않으면 핵으로 인해 피똥 싸게 될 것이다.
핵발전소 사고는 그야말로 온갖 생명들이 주검으로 내 모는 일이다.
내진설계 빼먹은 원전 어느 곳에서 핵사고가 날것인가?
울진이 아니라 경주 신월성 원전 아니면 신고리원전이 될 것이다.
울진 원전은 부실공사와 땜방질 보수로 이미 도가 넘었다.
2017년 울진원전 3호기 원자로에 共振이 있었다없었다 했으니 말이다.
영광원전도 이미 부실교체공사 되었으니 똑 같은 일이 벌어질
것을 自明하다.
주권자들은 이제 깨어나야 한다.
전국민이 피박쓰기 전에 말이다.
지난밤에 三世諸佛 보살님과 天神께 빌었다.
‘저 사악한 무리들을 帝釋天께 命하셔서 저들을 罰을 내리게 하고,
天孫들이 깨어나게 하여, 이 땅에서 핵사고의 위험이 사라질 때
저의 목숨을 거두어 가시옵소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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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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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하루되십시요 문인득 님.
까페지기님이 반가이 맞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라가 도탄에 빠져들고 있어 난리네요
@문인득
그러게 말입니다.
특히, 윤석열, 김건희,
매우 우려스럽습니다. 아휴
@문인득
오늘도 좋은 하루되십시요 문인득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