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최고봉 키나발루(4095m)는 말레이시아의 사바州를 대표하는 얼굴마담격인 곳이다. 열대우림지대에 우뚝 솟은 이 산은 시설과 등반로도 잘 정비되어있고 이 산을 등정하기 위해 해외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든다. 일대는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있을 뿐만이 아니라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자연문화유산으로 되어있어서 생태계가 잘 보존되고 있고 이를 위한 각종 시설과 트렉킹루트가 정비되어있다.
라나우에서 본 키나발루의 위용. 이처럼 활짝 갠 상태의 키나발루 산전체를 볼 수 있는 것은 운이 좋아야만 한다.
이번 산행은 2007년 6월2일~6월6일 4박5일의 일정으로 이루어 졌고, 8명의 우리 일행과 인천의 태화산악회 일행과 함께하는 말레이시아 사바州의 코타 市에 있는 키나바루산을 향해 인천공항을 떠났다.
말레이시아 항공을 탔는데 이 말레이시아항공은 서비스나 이것저것 우리 항공사보다 쳐진 감이 있었다.
승무원 중 한국인 여승무원은 웃음기 하나 없는, 쌀쌀맞은 느낌이 들 정도의 태도였다.
제일 중요한 식사 준비조차 ‘일사불란’ 그 자체인 한국 항공사와는 사뭇 달랐다.
6시간 정도의 비행 끝에 코타시 공항에 내려 버스를 갈아타고 2시간 여를 시내 외곽 one way를(정말 신호등도 없고, 따라서 멈추고 기다릴게 없이) 달리고, 쓸데없이 중간에 한 번 휴게소에 내리게 하여
휴게소 매상 올려 주고( 가이드가 식수도 주지 않는 樣 말을 하여 불필요하게 생수도 샀다) 키나바루 산길을 구불구불 한참을 달렸다. 놀랍게도 산골짝이라고 할 수 있는 높은 산에 길도 너무너무 잘 닦여 있었고, 길 가에는 허수룩한 가옥에 승용차가 여러 대 있었다. 가이드 말인 즉 이 사람들은 잘 살지는 못해도 차는 여러 대 있고, 거의가 중고 차라고 하였다. 하긴 기름, 가스가 나오는 나라니까 뭘 걱정하겠나. 고도가 높은 곳인데도 집 옆에는 바나나가 달린 나무도 있고 성당은 왜 그리 많은지 산골 마을 곳곳에 성당이 있다. 궁금하여 가이드에게 물었더니 분소 성격을 띤 성당이라고 한다. 그런 걸 보면 이 산 속에 사람들이 꽤 많이 사는가 보다.
20시경‘로즈캐빈’이라는 숙소에 도착했다. 난 이 여행이 끝나도록 이‘로즈캐빈’을 ‘로즈가든’이라고 말했다. 내가 국민학교 시절 ‘충주’와 ‘청주’를 헷갈리기 시작한 게 이 나이에도 구분을 잘 못하고, 이성을 가다듬어야 구별하는 행동을 또 구현했다. 이 산장의 주인은 화교라고 하며, 일하는 사람들은 말레이인과 화교로서 친절하였고, 음식도 풍성하게 아낌없이 내 놓는 정서가 푸근함을 느끼게 하였다. 왁자지껄 떠들며 늦은 식사를 한 후 방 배정을 받아 숙소에 들어갔는데, 공기가 싸늘하면서도 눅눅함, 바닥도 나무마루,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시답잖은 상식의 고정관념이, 뭐랄까~ 독거미가 나올 것 같은 기분! 아무튼 최신식이 아닌 샤워기에 샤워하고 추울 듯하여 겉옷까지 입고 잠을 청한다. 조용하다 못해 적막강산인 듯한 기분으로 잠을 청한다. 여행 나온 들뜬 기분은 전혀 발동하지 않는다. 휴양지가 맞긴 맞나 봐. 자려다 말고 후진으로 오는 우리 팀이 걱정되어 가이드를 찾아 물었더니 밤 늦게 공항에 도착하기 때문에 시내에서 자고 아침 일찍 여길 올 것이라고 하여 걱정 없이 자기로 했다.
둘쨋 날
아침에 일어나서 뒤 창문을 여니 바로 숲이고 산이었다. 테라스도 있고, 삐걱거리는 실내보다 운치가 있어 보였다. 식당에서 아침식사를 하려는데 우리 후진 일행이 도착했다. 분위기 메이커인 장원장, 든든한 박국장님, 이번 여행 동안 장원장의 내조(?)를 담당할 이선희님, 아! 사선을 넘어온 일행을 맞이하는 기분으로, 내가 새롭게 개발한 고추장 볶음과 다른 팀이 준비해 온 한국야채. 맛있고 즐거운 아침식사를 한 후, 등산 할 때 필요한 짐과 맡겨놓을 짐을 구별하여 챙긴 후 버스를 타고 20분 정도를 가니 키나발루 초입이었다. 가이드가 공원본부에서 받아 온 명찰을 목에 걸고 기념 촬영하고, 공원본부 건물과(작년 가을 우리집에서 성단장님이 아주 소중한 듯 보여 준 멋지게 보이는 그 키나발루 사무소, 사진과는 달리 좀 실망스런 건물이었다) 산 정상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한다.
공원본부(1554m). 키나발루의 정상을 향하는 등산객들의 기지이자 레크리에이션 센터를 겸하고 있다. 등반등록과 가이드배정이 이곳에서 이루어진다.
공원본부에서 등록을 마치면 사진과 같은 목에 거는 인식표가 발급된다. 등반과정 중 인원통제와 조난 등에 대비하여 일정 내내 지참하던지 목에 걸고 다녀야 한다. 기념품으로. 간직해도 괜찮은 물건이다
산길은 외길이다. 잘 닦여 있고 오르내림 없이 하염없이 오르기만 한다. 가파르지도 않다. 그러나 시간과의 싸움은 힘들다. 중간 중간 쉼터가 있다. 갑자기 쏟아지는 비를 피할 수 있도록 지붕도 있다. 수도꼭지가 달린 물도 있다. 그래서 굳이 물을 많이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 일단의 포터들이 동네 나들이하 듯 슬리퍼 끌고, 더러는 운동화를 신고, 마대에 끈을 매달아 이마에 걸치고 3~40Kg 되는 짐을 지고 따라온다. 그들은 우리를 앞서가지 않는다. 우리가 쉼터에서 쉬면 쉼터 주변에서 쉬곤 한다. 5번째 쉼터 쯤에서 점심을 먹는데, 어쩌면 그렇게 짭짤한 도시락인지! 오랫동안 거래한 한국사람네 도시락이란다. 양도 너무 많다. 많이 남겼다. 아깝다. 우린 너무 잘 먹고 잘 사는 것 같다. 내가 mp3를 귀에 꽂고 있으니 “코리안 송?”이라고 묻는다. 자기도 코리안 송 안다며 아리랑을 한 구절 한다. 나는 song을 듣지 않고, 등산하면서 앞으로 먹고 살기 위한 궁리를 듣고 있다. 우리 남편은 날 버려두고 선희씨랑 다른 일행과 쏜살같이 올라가서 보이지도 않는다. 내가 호랑이한테 잡혀가도 괜찮은지 걱정이 안되나 봐. 길은 외길 걱정이 없을 꺼야. 그러나 자기 체력하고 나랑 같은가? 나는 6번째 쉼터(2900m?) 쯤에서 지치기 시작한다. 마침 캐나다 사람이라는 젊은 부부가 등산을 하는데 여자는 씩씩한데 남자는 무릎이 아프다며 힘들게 걷는다. 미 투. 나도 절룩거리며 오른다. 이인기 사장님은 “이모부는 의리가 없구먼” 하면서 연신 나를 챙겨 주신다. 작년 북알프스에서 엄청 고생하며 함께 등산한 정 때문인지, 특별히 예쁜 꽃이 나타나면 사진도 찍어 주고, 고맙다. 드디어 산장에 도착했다. 내가 제일 꼴찌로 올라오긴 했지만, 나는 둘레를 휘휘 구경하며 즐겁게 등산을 했다. 그런데 그 산장이 우리가 묵을 곳이 아니란다. 200m 위에 있는 저~어 산장에 가야 된단다. 그리고 여기서 저녁을 먹어야 한단다. 그래서 나는 저~어 산장에는 도저히 왔다갔다 할 힘이 없어 저녁 먹고 가겠다며 눌러 앉아, 사람으로 가득 차 자리가 없는 곳을 겨우 잡고 앉았더니 옆 사람은 중국계 말레이인이었다. 대충 영어로 마주 한 12~3세 살 되어 보이는 남자애를 looks like brilliant, very strong 하며 엄지손가락을 세워 칭찬했더니 아이 엄마는 아주 좋아한다. 피곤하지만 기분 좋게 식사를 하는데, 갑자기 큰소리가 났다. 우리 팀의 남자들에게 이 식당 바닥에 매트리스를 깔고 자라고 하여 항의 하는 소리였다. 같은 여행사이지만 우리와 다른 팀을 인솔하고 온 사장이 자기 직원(가이드 등)들은 윗 산장 정식 방 침대에서 자고, 돈 주고 여행 온 손님을 바닥에 재우겠다는 이상한 발상에 항의하는 소리였다. 외국사람들 있는 곳에서 큰소리를 내는 것은 볼썽 사납긴 했지만 도리가 아닌 건 아니다. 결국은 우리 항의가 받아져 윗 산장 침대에서 자기로 했다.
나는 겨우 겨우 윗 산장(Gunting Lagadan Hut)으로 가서 짐을 대충 정리하고 발코니에 나와 석양을 뒤로 하여 사진 찍는 광경을 찍어 주며, 나도 찍고. 시간을 보내다 들어와서 자려는데, 이게 웬일이니! 쥐새끼(표현이 거칠죠?)한 마리가 쪼르르 우리 방으로 들어왔다가 우리가 놀라니까 지도 놀랬는지 나가버린다. 어쩌나 오늘 밤 잠 자다가 쥐에게 물리지 않을까 우리가 없었을 때 이부자리 위로, 속으로 헤 짚고 다녔을 것 같아 찜찜하고, 걱정이다. 이렇게 높은 곳에 사람이 있고 먹을 것이 있으니 얘들도 오나 보다. 그리고 공기가 너무 차다. 실내가 눅눅하고 너무 열악하다. 좁디 좁은 방에 양쪽으로 2층 침대가 있고 이부자리도 담요 한 장! 그래서 옷을 껴입고 자려는 데도 이빨이 떨리고 발이 시려 잠을 잘 수가 없다. 게다가 겨울용 바지를 꺼내 바지 가랑이에 발을 집어넣어 입고, 겨울 티셔츠를 껴입었는데도 잘 수가 없다. 엎칠락 뒤칠락 보내다 새벽 2시가 되어 모두들 일어나 산행 채비를 한다. 나는 고소증이 오는지 머리도 너무 아프고 수면부족으로 몸이 쳐져 일어나기가 힘이 들어서 등산을 하지 않겠다고 하니, 장원장이 내 침대에 걸터 앉아 가야 된다며 계속 채근을 한다. 그리고 비장의 안압조절용 약을 준다. 할 수 없이 일어나 채비하여 따라 나서는데, 가파르게 오르는 초입이 힘이 들었다. 대열을 지은 헤드랜턴 불빛이 장관이었다
Gunting Lagadan Hut(3323.5m). 우리가 묵었던 산장 : 수용인원 60명
3`40분의 급경사를 오른 후, 적당한 경사의 길을 1시간 정도 걷노라니 Sayat Sayat Hut이 나타났다. 이런 시각에 사람들이 앉아 명패를 확인하고 문을 통과시킨다.
그 이후의 등산길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널따란 바위 길이었다.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바위길이 장관이고, 힘은 들지 않았지만 졸음이 몰려 와 걷기가 힘이 들었다. 춥지 않다면 바위에서 잠 자고 싶었는데, 추위와 장원장의 끊임없는 격려사와 갑자기 등장한 쥐 때문에 (3900m 이상 되는 이곳에 쥐라니! 놀랍다.)무서워서 잠이 와도 그냥 걷기로 했다. 나는 쥐와 고양이를 무서워하고 싫어한다. 이 놈에 쥐는 따뜻한 곳에서 살지 않고, 조건이 나쁜 이런 환경에서 왜 사냐? 펼쳐진 암반 위로 길게 로프가 드리워져 있는데 바람에 삭아 너덜너덜한 모양새를 보니 비바람이 심할 때에는 이 로프를 잡고 다녀야 미끄러지지 않고 안전하게 다닐 수가 있을 것 같다.
친절하게도 등산로에는 0.5km간격으로 Timpohon Gate부터의 거리와 루트가 표시된 표지판이 설치되어있다. 사진의 표지판은 총 8.5km의 여정중 8.0km를 알리고 있다. 뒤로 보이는 것은 키나발루남봉(Kinabalu South Peak;3932m).
힘이 들지 않는 산행이라 총명하게 생긴 가이드(영어로 된 이름을 잊었다)가 옆에서 저 봉우리는 세인트 뭐 이고, 저 봉우리는 사우스 덩키이며 하는 설명과 하늘의 달을 보고 한국말로 달이라고 하며 ‘달 달 무슨 달’의 노래 한 소절을 부른다. 한국인들이 많이 다녀갔고, 새벽에 만 등산을 하니 하늘의 달을 보며 질문하고 배웠나 보다. 스타를 한국말로 뭐라고 하느냐는 질문에도 답하고, 자신은 미션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가이드 생활을 하고 있다며 나이는 30살이고 기독교인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나는 어줍잖게 “내 생각에는 네가 영리해 보여 도시에 나가 신 기술을 배웠으면 좋겠다”라고 했더니 이 직업도 괜찮다고 한다. 김사장 부인은 기독교인이라는 말에 감동받아 너무너무 유연한 영어로 대화를 나눈다. 4,090m 언덕 위에서는 해돋이를 맞이하려고 인산인해이다. 그런데 나는 90m를 남겨두고 올라가지 않기로 했다. 해마다 년 초에 이글거리며 떠 오르는 해맞이를 해 왔기 때문에 그 감동이라는 게 별로 없다.(2005년의 거센 바람에도 굴하지 않고 맞이한 보석보다 더 영롱하고 이글거리는 대관령에서의 해맞이는 장관이었지만) 이대홍(나의 남편님)씨와 박국장님 내외는 나를 기다리다 기다리다 내려왔다고 한다. 미리 먹은 약 덕분에 고소증은 나타나지 않았다. 작년 북알프스에서 두통과 식사도 못하고 얼굴이 붓는 증상이 없어 힘은 들지 않은 산행이었다. 동이 튼 후에야 몸 상태가 회복이 된다.
이젠 하염없이 내려가기만 하면 된다. sayat에서 명패에 등정 확인 도장을 받아 내려 오는데 웬 생수통이 그렇게 많이 버려져 있는지…… 손이 닿는 곳의 생수통을 줏어 들고 온다. 산장에 들어오니 사람들로 꽉 차있다. 줄을 서서 토스트와 계란후라이, 커피, 우유를 먹고 우리 일행이 남긴 토스트를 싸서 배낭에 넣으려니 남편님이 유난히 화를 낸다. ‘주접을 떨지 말라’는 내용이다. 남기면 쓰레기가 될 터이니 내려가다가 먹으면 어때 하고 우격다짐으로 배낭에 챙겨 나온다. 내려오는 길의 절반은 화창한 날씨여서 꽤 덥다. 이번 산행에서도 날씨의 축복을 받았는지 올라오는 날에도 잠깐 부슬비 정도 만 뿌려 어려움이 없었는데, 하산 길에도 거의 비를 맞지 않았다..
키나발루정상. 악천후를 대비해서 정상까지는 저렇게 흰 로프가 설치되어있으며 로프가 없는 곳에는 흰 페인트로 루트가 표시되어 있다. 정상을 불과 5분여 앞둔 곳부터는 급경사의 암반 오르막이다.
키나발루정상. 악천후를 대비해서 정상까지는 흰 로프가 설치되어있으며 로프가 없는 곳에는 흰 페인트로 루트가 표시되어있다. 정상을 불과 5분여 앞둔 곳부터는 급경사의 암반 오르막이다.
하산 길에 포천산악회 일행을 만났다. 포천 김사장의 소속 회원들인데(김사장이 이곳에 간다니까 자기들도 함께 간다며 신청했다가 여행사의 사정으로 이산 가족이 되어버린 처지)멋있는 김사장과 함께 하지 못하였으나, 머나먼 이국 땅에서 만났으니 얼마나 반가웠을까. 이성을 잃은 듯 반가워 한다. 잠시 이야기를 나눈 후 내려오는데, 하염없이 내려가는 길이 나에게 고통이다. 우 측면으로 걷다가 좌 측면으로 걷는 둥 내내 게걸음을 걷듯이 걷는 고역이란! 그러니 시간이 많이 걸리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던 포터가 짐이 무거워 무릎에 손상을 주고 있다며 자기가 덜어 주겠다고 한다. “나는 늘 등산할 때 이런 정도의 짐을 지고 등산한다며, 원래 무릎이 아프다”고 하며 거절을 했다. 그 포터는 무료로 하겠다는 취지 같았지만 그 뜻이 부담스러워 거절했는데 결국은 한참을 가다가 인천에 있는 ‘두산인프라코어’산악회의 한 아저씨는 내가 안쓰러운지 자기 배낭은 포터에게 맡겼다며, 내 배낭을 자신이 져 주겠다고 하여 몇 번의 사양 끝에 건네 준 후 좀 더 편안히 내려오는데, 김사장 부인(이 양반은 아무 문제없이 너무 씩씩하게 잘 걷는다)과 나를 기다리던 김사장과 장원장은 쉼터에서 두산 산악회 사람과 두산의 임원으로 있는 장원장 친구이야기며, 김사장의 예전 직장(대우중공업)동료의 근황 등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내 배낭을 다시 넘겨 받아 고마움으로 포터 삯을 대신 주겠다고 하니 펄쩍 뛰며 거절을 한다. 정말 고마웠다. 우리 남편은 나를 내 버리고 혼자 가 버렸는데, 이 분은 자기 부인과 함께 걸으면서 ‘연약한 아녀자’를 도와 주기까지 하니 ‘진정한 신사’임에 틀림없다. 막바지에 내려오던 중 배낭의 토스트를 꺼내어 ‘총명한 포터’에게 주니 매우 좋아한다. 남편님에게 싫은 소리 들으며 가져오길 잘 했다. 얼마 남지 않은 길인데 왜 그렇게 발이 무겁고, 무릎이 아픈지. 14:30분 쯤에 내려오니 일행 중 12시 경에 내려온 사람들은 먼저 ‘로즈캐빈’으로 가고, 다음에 내려온 팀이 우릴 기다리고 있어 나 때문에 여러 사람들이 기다리게 되어 정말 미안했다. “미안합니다.”를 연발 하며 셔틀버스 오기를 잠시 기다리다 버스를 타고 로즈캐빈에 도착했다. 오늘 새벽 2시부터 산을 올라 08:30분 쯤 산장에 내려 와 아침을 먹고, 09시 경부터 하산을 했으니 거의 12시간 산행을 한 셈이다. 고된 일정이 끝난 상태에서 식사를 하는 게 ‘희열감’이랄까? 밥맛이 좋았다. 포천산악회 회원들이 준 김치하며 입맛에 맞는 반찬으로, 한 잔의 술로, 배를 가득 채우고 버스에 올라 다음 장소로 이동을 한다. 산길을 가며, 시내도로를 달리는 중에 여러 번의 소나기가 내린다. 이런 날씨가 다반사라고 한다. 이러니 식물들이 울창하게 잘 자라겠거니…… 2시간 여를 달려 키나발루 시내로 들어 와 두 곳의 호텔로 분산하여 방을 배정한다. 우리는 베버리호텔인데, 가이드는 다른 숙소로 간 사람들과 숙소 수준이 차이가 있다며 지난 밤 숙소 배정에 따른 보상처럼 말한다. 그러나 내년 1월에 가는 팀의 숙소가 이 호텔임을 나는 알고 있다. 저녁은 샤워하고 짐 정리 후 한정식 집으로 가기로 했으나, 우리 일행은 장원장 집사람과 친정식구들이 묵고 있는 탄중아루리조트엘 택시를 타고 갔다. 친정 식구들과 인사를 한 후 뷔페식당에서 식사를 하며 시간을 보낸 후 리조트 해변가를 산책한다. 한 무리의 이름 모를 난 종류와 야외 수영장 등 꽤 넓은, 조망도 좋은 곳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는 극동의 반도국가, 분단국으로 대륙과도 연결이 되지 않아 폐쇄적인 감이 있다., 동남아국가들은 대체로 외국인들이 눈에 많이 띈다. 따라서 관광산업도 활발 할 것이리라 짐작된다. 택시로 호텔에 왔는데 너무 일찍 왔다며 다시 호텔매니저를 불러 호텔의 승합차를 타고 pup 술집을 안내 받아 갔으나 영~ 아니었다. 우왕좌왕하다가 한국수퍼가 보여 들어가니 현지 종업원이었고, 주인을 소개받아 친절하게도 자신의 차로 값도 싸고 좋은, 해변가의 半 노천 라이브 술집으로 안내해 주었다. 하나의 남녀 혼성팀이 계속 노래를 한다. 그곳은 싸고 괜찮은 곳임이 알려져 있었는지 우리와 같이 간 인천 팀이 먼저 와 있었다. 낭만고양이(?) 장원장은 집사람이 그리운지 전화로 이 곳으로 오라고 한다. 여행사 사장이 미안하다며 야자대추(?) 한 봉지를 주고 간다. 생맥주 마시고 음악 신청하다가 내가 노래 잘 부르는 김사장을 위해 직접 부를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하자고 제안을 하니 그 부인은 잘 하는 영어로 사정을 설명하고 신청하니, 거절했고, 장원장이 팁을 주며 다시 신청하니 받아들인다. 김사장의 18번 곡 ‘Bridge over troubled the water’와 My way를 평소와 달리 좀 떨리는 목소리로 불렀으나 우리를 즐겁게 하고, 추억을 만들어 주었다. 호텔로 돌아 와 각자 방으로 갔는데 다음날 식당에서 아침식사를 하며 들은 이야기는 인천에서 같이 온 젊은 남자 한 사람이 장원장과 같은 방에 배정되어 여러 사람들과 술을 마시다 산에서 늦게 내려 온 것에 대한 사과가 없었다며(나는 사과를 했는데……) 시비를 걸어 기분이 나빴다고 한다. 이 양반은 첨 버스 안에서부터 좀 별나게 굴더니 기어이 사고를 쳤다. 산을 사랑하는 사람은 낙오자에게 아량을 베풀 줄 알아야 하는데…… 내가 첨 등산을 하면서 낙오되었을 때 장원장을 비롯한 여러 일행들이 격려 박수를 쳐 주는 것에 고무되어 열심히 하게 된 과거를 생각하면서, 좀 더 친절한 마음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호텔 식당은 사람으로 가득 한 편이었고 양식 위주의 뷔페로 조식치고 꽤 많이 먹었다.
남봉(좌측)과 St.John's Peak(4090.7m). 흔히들 키나발루를 알리는 여행책자나 안내서에 나온 사진을 보면 꼭 남봉이 키나발루의 정상인 것마냥 나오는데 사실은 정상일대의 여러 봉우리중 하나일 뿐이다.
짐을 모두 꾸려 버스에 넣고, 사피섬으로 가기 위해 배 터로 갔다. 모터보트 두 대에 나누어 타고 20여 분을 달렸더니 지붕과 바닥이 나무로 꾸며진 예쁘장한 선착장에 도착, 선착장과 바로 연결된 모래사장, 작고 아담한 해변이었다. 모래사장 중앙에 커다란 고무나무가 두어 그루 있어 그늘 막으로는 안성맞춤이었고 군데군데 탁자와 의자가 있어 뷔페 式 식사를 할 수 있고, 바닷물에 들어가지 않는 사람들은 앉아서 휴식을 할 수 있다. 우리 큰아이 말에 의한 서양사람들의 휴가 형태 -뜨거운 태양 아래에, 커다란 나무에 걸쳐진 hammock에 누워 책 읽다가 자고, 자다가 책 읽는, 빈둥거리며 보내는-가 이 공간에서 안성맞춤일 성 싶다. 물안경과 숨대롱(snorkel)을 착용하고 맑은 바다 속 산호를 볼 수도 있다. 인천 만수동에서 온 아줌마는 옷을 갈아입을 때나 등 보호용 비치가운이 되는 고무줄이 낀 타올을 가져와서 우리 일행 여자에게 좋은 물품으로 소개가 되었는데, 이 아줌마는 살림 잘하는 아줌마로 등극시킬 정도로 반찬도 깔끔하게 준비를 해 왔는데 다, 성품도 좋은 아줌마로 인정하면서, 장원장 방위시절 선임병이 ‘심씨’성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며 혹시 고향이 삼척 근덕 아니냐고 물었더니 놀랍게도 딱 맞추어 버렸다. 그 선임병의 이름을 대니까 먼 친척이라고 하여, 장원장은 얼굴 골격 등이 많이 닮아 그런 추측이 가능했다고 한다. 선희씨와 근덕 심씨 아줌마는 물 만난 제비처럼 물 속에 들락거리고, 남자들은 수상행글라이더를 하고 나서 재미있다며 여자들도 하라고 권하였지만 나는 무서워서 하지 않았다. 사피섬에서 나온 후 버스를 타고 라텍스 매장에 가서 25% 할인 해 달라는 흥정을 하다가 거절 당하여 포기하고, 선택에 따라 민속박물관 관람과 그에 딸린 민속품 판매장 구경과 쇼핑을 하고 시내에 들어와, 우리나라 동대문시장의 점포 같이 생긴 민속공예품을 파는 필리핀마켓(좀도둑이 많다고 주의를 줌)을 구경하고, 우리 교포(교민들 사이에서 궂은 일을 도맡아 한다는 맘씨 좋은 통장님이라나) 가게를 적극 홍보한 결과, 우리 남편님도 박국장님도 장원장님도 선물용으로 그림(한국에 와서 액자에 넣으니 꽤 훌륭한 작품이 되었다), 공예품, 정력에 좋다는 꿀(이건 정말 엉터리) 등을 왕창 샀다. 그리고 해가 저물어 대형 가든 식당으로 안내되어 갔다. 연못(?)을 중심으로 무대가 있고 둘레에 식당이 setting되어 음식을 먹으면서 민속춤 공연(서빙하는 종업원이 춤 추는 一人多役)을 보면서 그칠 줄 모르고 나오는 맛있는 중국음식에 취하여 힘이 들었다. 배를 잔뜩 불린 후 어디로 어디로 버스가 가더니 허허벌판에 매장건물 하나 만 있는 곳에 풀어놓고 쇼핑을 하란다. 그리고 물건을 살 때 가이드가 주는 표를 주라고 한다. 자기들의 증표인가 부지. 나는 매장 안을 구경하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버스에 올랐는데 물건을 산 사람들이 제법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한국 여행객들로 가득한 정말로 가득한 공항으로 가서 짐 싣고 대기하느라 지친 상태에서 비행기를 타고 인천공항에 도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