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의 교훈
강 문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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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지붕으로 불리는 히말라야는 이제 전문산악인이 아닌 사람들의 발길도 거부하지 않는다. 물론 8천 미터 고봉이 아닌 그 절반 높이인 베이스캠프 정도를 돌며 산을 조망하는 사람들을 이르는 것이다. 십여 년 전 경험했던 안나푸르나 트레킹은 이보다도 더 낮은 해발 2~3천 미터 높이를 오르내렸다. 20대 초반 대학생으로부터 80대 중반 원로까지 참가자 모두는 온몸으로 히말라야를 느낄 수 있었다. 알려진 대로 히말라야란 '눈의 거처' 또는 '눈의 나라'를 뜻하는 그쪽 나라말로서 만년설을 품고 있는 설산을 이른다. 산을 내려서기 전날 밤 캠프파이어에선 올림픽 폐회식이라도 흉내 내듯 강강술래를 돌면서 아리랑을 합창했고 현지가이드와 셰르파들도 한국어를 하나라도 더 익히고자 서투른 노래솜씨로 대열에 함께해서 여흥을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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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 어둠속을 흩뿌리던 빗줄기가 백설로 바뀌면서 잊을 수 없는 감동을 안겨주던 그날의 히말라야가 쉽게 잊히지 않는다. 이제 히말라야는 더 이상 멀리 있는 산이 아니다. 산악인 엄홍길 대장은 히말라야에 15개나 되는 학교를 지었다. 작가 박범신은 히말라야 산속에 들어가 장편 <나마스테>를 썼고 80대 어느 선배는 틈만 나면 히말라야로 달려간다. 여기서 말하는 학교는 군대 막사 크기의 건물 한 동을 세우는 것이지만 그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사진에서 보듯 헐벗고 굶주린 아이들에게 배움의 터전을 마련해준다는 것이 얼마나 뜻깊은 일인가. 길에 선 아이들은 캔디를 찾았지만 난 집에 모아두었던 볼펜과 연필을 싸가서 나눠주었다. 소설 <나마스테>는 네팔 젊은이들이 이주노동자로 한국을 찾아 환락의 도시 서울과 산업현장에서 겪는 애환과 사랑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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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좋아하는 선배는 몸이 성치 않은 부인을 돌보면서도 히말라야를 못가서 안달이다. ‘네팔병’이란 것이 있다. 히말라야를 한 번 다녀온 사람은 반드시 네팔을 다시 찾는다는 걸 그렇게 말한다. 히말라야 트레킹에 얽힌 이야기는 이 정도로 줄이면서 산에서 직접 갈무리한 몇 컷 영상을 올린다. 수행자 밀라레파와 네팔 왕궁 황태자 이야기가 있다. 안나푸르나3봉에서 내려오는 하얀 빙하가 흐름을 끊고 중턱에서 넓게 파인 흔적만을 남긴 계곡 옆으로 곰파와 밀라레파 케이브가 보인다. 12세기에 한 스님이 초근목피하며 수도하던 동굴이다. 이야기는 소년의 일곱 살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소년의 아버지는 장사를 해서 큰돈을 벌었고 무엇 하나 부러울 게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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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버지가 죽자 가족을 돌보겠다던 백부에게 오히려 전 재산을 빼앗기고 어머니와 여동생까지 함께 백부의 종살이를 하게 된다. 갑자기 변한 환경에 놓인 어린 소년은 원한만 가득할 뿐 어떻게 대처해야 할는지 갈피를 잡지 못한다. 그러한 그에게 어머니는 흑주술黑呪術을 배우게 한다. 마침내 흑주술이 완성되었고 백부의 장남 결혼식 날 백부 가족은 물론 마을 사람들까지 모두 날려버린다. 인고의 세월을 견디며 이를 갈았던 원수를 갚았을 때 밀라레파 자신은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 그것으로 만족했을까. 아니었다. 그는 불문에 들어가 오랜 수행 끝에 티베트에서 가장 존경받는 수행자가 되었다. 밀라레파는 밀라레파 케이브에서 9년간 수행하여 깨달음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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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관해서는 그의 법손法孫에 의해 쓰인 두 권의 책이 있고 그 중 한 권인 <밀라레파의 생애>는 그의 전기를 담고 있는 책이다. 복수 후 그는 큰 스승들을 찾아 헤맨 끝에 티베트의 성인 마르파의 제자가 된다. 마르파는 티베트 불교의 한 종파인 카규파의 창시자이다. 티베트 불교에서는 스승과 제자 사이의 신뢰를 강조하기 때문에 그 둘의 오랜 관계는 그의 전기에서 중요한 요소를 이룬다. 마르파에게서 6년간의 공부를 마친 밀라레파는 이 동굴에서 혹독한 명상수련에 들어간다. 그는 많은 제자들을 개종시키고 가르치면서 카규파 종파를 계승한다. 또 한 권의 책 <밀라레파의 십만송>에서 부처가 주는 가르침의 본질을 노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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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노래들은 수도자의 삶에서의 고된 노동과 한없는 기쁨을 담고 있다. 그렇다면 인간의 마음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어떤 악마의 화신이 담겨 있기에 타자에 대한 복수와 미움이 한 가족을 몰살하고 또 마을 전체를 도륙할 수 있단 말인가. 태어난 것은 죽지 않을 수 없고/ 죽을 때는 정해져 있지 않으니/ 내게는 지체할 시간이 없다네/ 누이여, 그대 또한 윤회의 굴레에서/ 세속 욕망을 모두 버리고/ 나와 함께 히말라야로 가자// 밀라레파가 왜 고생길을 자초하느냐며 출가를 만류하는 누이에게 들려준 노래이다. 누구에게나 마음속에 담아둔 그리운 공간 길이 있을 것이다. 그 길을 나서는데 주저하지 않아야 한다. 두려움은 떠나는 순간 사라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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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6월 1일 저녁, 네팔왕궁의 나라얀히티 궁전에서는 왕실가족 모임이 열리고 있었다. 왕족들은 술과 여흥을 즐기며 도란도란 얘길 나누고 있었다. 구레나룻이 돋아난 통통한 얼굴의 황태자 디펜드라도 홀짝홀짝 위스키를 마시고 있었다. 그가 빨개진 얼굴로 살그머니 자리를 빠져나가 군복으로 갈아입고 다시 파티장소에 나타난 시각은 밤 9시. 뜻밖에도 그의 손에는 M-16소총과 기관총이 들려 있었다.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은 이제 새로운 게임을 시작하는 줄로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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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다짜고짜 아버지 비렌드라 국왕을 정조준 해 소총을 쏘았고 응접실에 있던 왕족들을 향해 총을 난사했다. 살려달라는 숙모와 여자 사촌에게도 총을 쐈다. 자동소총의 총구는 제멋대로 방향을 틀며 천장과 바닥 양탄자에도 총알이 박혔다. 그가 정원으로 나가자 어머니와 남동생이 뒤따라가 말을 걸었지만 그들에게 돌아온 것도 총알뿐이었다. 그는 다시 방으로 돌아와서 총질을 한 뒤 자신의 머리를 쏴 자결했다. 총을 난사하는 15분 동안 한마디도 말을 하지 않았고 표정에도 변화가 전혀 없었다. 그는 영국 이튼 칼리지와 미국 하버드를 나온 엘리트로 개방적 사고와 언행으로 국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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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결혼을 놓고 부모와 왕세자 사이의 갈등 때문이라고 하기도 했고 또 다른 국민들은 어부지리로 왕위를 계승한 갸넨드라를 의심하기도 했다. 디펜드라 왕세자는 죽고 밀라레파는 살아남았다. 왕세자는 숨을 거두기 전 사흘간 혼수상태에서 왕위에 있었다. 그가 정상적인 상태로 계속 살았더라면 그의 삶은 어떠했을까. 티베트불교는 아무리 엉터리 같은 사람이라도 한생에 성불에 이를 수 있다는 가장 좋은 예로 밀라레파를 꼽고 있다. 그가 35명이나 죽인 살인귀였음에도 참회하고 성불을 이루었기 때문이란다. 몸 안에 가득 마귀를 채우는 마음 그 너머에는 믿기지 않겠지만 사랑의 화신인 천사가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