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너는 나처럼 살아버리지 마라!” 2023 1228
크리슈나무르티 : 꺼지지 않는 불꽃, ‘자기로부터의 혁명’을 위하여
-- “미륵”의 시대를 살면서, “내가 바뀌지 않으면 세상은 변하지 않습니다.”
Thought can never change man because thought in itself is a fragment. Thought in itself has created a fragmentary way of living, saying one thing and doing another. The contradiction that exists in man is the product of thought because thought itself is limited. Thought cannot see the whole but thinks that it can.
생각으로는 절대로 인간이 바뀔 수가 없습니다. 왜냐면 생각이라는 것 자체가 분열적이기 때문이지요. 생각으로 해서 분열적인 삶을 조장하게 된 거라서, 말은 이렇게 하고 행동은 저렇게 하는 것이고요.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모순은 생각이 만들어내는 것인데 생각 자체가 제한적이기 때문입니다. 생각으로는 전체를 볼 수가 없어요, 비록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할 수는 있지만요.
J. Krishnamurti, Public Talk 3 in Ojai, California, 10 April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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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28] ‘바뀐다’는 것..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인생이 바뀐다.” 그런 비슷한 말들 엄청 많이 하지요? 그런데 전혀 그게 아니라는 말씀 아닙니까?
지구 위 모든 사람들이 다들 꼭 저렇게 말한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 같은데, 글쎄, 그게 아니라니요? 그러니 우리는 여기서 ‘바뀐다’는 의미를 다시 생각해봐야겠습니다.
예를 들어, ‘우동’을 좋아하다가 ‘짜장면’을 좋아하게 되었다는 걸, ‘바뀐다’ ‘변한다’고 하지요? 거기서 ‘바뀐다’는 걸 물리적 뉘앙스고, ‘변한다’는 걸 화학적 뉘앙스라고 해도, 여기서는 그런 수준의 얘기가 아닌 거겠습니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인생을 고해”로 살다가 딱, 그 “고해”에서 벗어나는 차원, 그런 수준에서 하시는 말씀이라고 봐야 되지 않겠습니까? ‘생각’으로만 살아서 “인생이 고해”니까, 이제 ‘생각’ 아닌 그 무엇이 있어야만 하겠습니다. 그런데 과연 그런 게 있기는 있을까요?
예, 바로 그게 “지성”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 “지성”이 ‘생각’이 필요할 때는, 그걸 써먹을 수도 있다고 하셨지요. 그러나 열이면 열, 백이면 백, 전부 다 그저 “인생은 고해다” 하면서 살다 죽는 거라서.. 저런 말씀들이 너무도 생소하게 들리는 것입니다. 다들 심지어 평생에 단 한 번, 이런 “사실”에 대한 '지적의 말씀'도 못 들어보고 죽어가는 겁니다.
그러니 “삶”에는 그러한 영역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아마도 다른 사람들과는 전혀 다르게 살 수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쯤 돼야 비로소 “변한다, 바뀐다” 할 수 있는 거지요. 아니, 그런 게 바로 “진짜배기 삶”이라는 말씀이시니까요. 항상 하는 말이지만요, 왜 인간이라고 꼭 “인생은 고해다” 하고 살기 위해서 태어난단 말입니까? 더구나 서구 인간들은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낸 적도 없다는 거 아닙니까! 그러니 여전히 한갓 “인종주의”에 머물러 있는 거겠지요.
지구상 모든 생명체 치고, 그 “삶”을 “고해”로 살자고 태어나는 생명체는 없습니다. 그런데 왜 유독 인간만이 “고해”로 살자고 태어난단 말입니까? “인생은 고해다.” 말짱 거짓말 아닙니까? 헌데도 한 평생, 그 거짓에 휩싸인 채로 죽어가야 한단 말이지요? 그래서 ‘유일신’이 다 해먹는 ‘문화’라는 건지, 그런 “문화” 같지도 않은 ‘문화’를 만들어놓고 사는 건지..
여기라고 저기 못 따라가서 안달인 주제에.. 여튼, 내가 저리 못 살았으니, “아들아, 너는 나처럼 살아버리지 마라.” 그런 말 한마디라도 해줘야 할 거 아니겠습니까? 비록, 그렇게 말 해주는 아버지나 선생님이 엄청 귀하다 해도 말씀이지요.
“인간”이란 바뀌지 않으면 안 되는 존재입니다. 사회는 항상 고여서 썩어가는 게 그 속성이라고 하니까요. 모름지기 스스로를 구원해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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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28] 한평생 흥건히 고여서 잘..
설마, 저 때 저 애비가 흙수저였다는 말은 아니었겠지요? 저게 아들더러 오로지 ‘자수성가’하라는 말이겠습니까? 왜, 꼭, 콩나물, 금젓가락으로 집어야만 하는 걸까요?
본문 말씀은 “전체적인 인간”을 말씀하시는 건데, 그래야 “지성”이라는 말씀일 텐데, 거기서 금수저, 흙수저, 은수저, 나무수저로 또 갈가리 찢어발길 필요가 어디 있겠습니까. 크리슈나무르티 자신에게는 ‘생필품’만 있으면 된다고도 하셨지요. 그리고 그건 모든 인간에게 공통이겠고요.
그야말로 “생필품”만 있으면, 충분히, 느끈하게 “고해”를 벗어날 수 있겠지요? “고해” 벗어나자는 데, 무슨 금수저 은수저 타령이겠습니까. 그딴 금수저타령이나 흥얼거리고 있는 한, 자손대대로 “고해” 아니겠습니까? 일단은 “몸이 답이다!” 그런 말도 있으니, 그거부터 해결해야겠습니다만.
천하를 얻는다 해도, 몸 망가지면 무슨 소용입니까? 기대수명보다는 건강수명이지요? 병들어 쓰라린 가슴을 부여안고, 두평생 세평생 침대에 누워 있으면, 그게 어찌 좋겠습니까. 이래저래 타고난 거 못 쓰게나 말아야지요. 친구들도 그렇고, 이미 많이 망가졌습니다. 일찌감치 저승 간 애들은 아예 빼고요.
문득, “깊이 병든 사회에 잘 적응한 몸이, 과연 얼마나 건강하겠냐?” 그 말씀이 생각나는군요. ‘사고’로 죽는 거 아니면, ‘더 많이’ 썩어서 빨리 가는 걸까요? 애꿎게. 병든다는 걸, 썩는 거라고 볼 수 있을 테니까.. 그다지 나무라지는 않으실 거지요?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던데요. ‘쓰잘데기없이, 뭘 그리 냅다 끄적거리냐?’ 하는 사람도 있지만, 저 건강 때문에라도, 하다못해 ‘치매예방’을 위해서라도 ‘이 머가리, 요 버르장머리 좀 굴려가며 살아야겠습니다.’ 그런 쪽으로나마 굴려야지요.
오늘날, 대한민국 정치 꼬라지에, 점점 더 드리우는 “3차대전” 전운에, 하루하루 다가오는 “6차대멸종”에 별로 도움이 안 된다 한들, 어쩌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