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이야 전 국민 소득이 높아서
모두가 잘사는 나라가 되었노라
해외 나가서도 약간의 폼도 내보지만
1960년 3월15일 아아 꼭 이맘때이군요
자유당 3.15 부정선거를 하던 바로 그날이여서
그날!
그러니까 벌써 47년이란 세월이
참으로 눈 한번 감은것 같은데 반백년이 코앞에 와있네요
말수없고 우직하고 앞만 바라보고
내게는 언제나 국산품 애용을 계몽하고
이나라가 잘 살려면 농촌이 부흥되어야 한다고
애국 애족을 이마에 써 붙이고
가난과의 싸움에서 농민의 잘살기를 외치던 청년
쌔까만 재건복을 입은 청년 그는
내 손을 꼭 잡고는 시골길을 걸었습니다
그의 농고 동창이며 농촌 운동을 한다고
열성적으로 4-H 친구인 광주군 도척면 상림리를 가고 있었습니다
버쓰도 없던 그시절 3월인데도 무척이나 추웠던 그날
비 포장 흙먼지 일어나는 길을 걸으면서
그는 네게 또 이상 농촌 건설의 설교를 했습니다
영!
양지 바른 산밑에 개량 주택 짓고
푸른 커텐 드리우고
뒷산에 과실수 심어 과수원 만들고
앞뜰엔 양계장 지어 레구혼 닭들을 키우고
집 울타리에는 장미꽃 넝쿨 올려 장미꽃 울타리 만들고
뜰악 옆에는 탁구대 놓고 아이들과 탁구도 치면서
엄마 이겨라 아빠 이겨라 응원도 하고
냇가에 그물 던져 고기도 잡고
이나라 농촌 모두가 이런 이상촌이 되도록
나는 이 젊음을 바칠 것이요
양옆에는 벌꿀도 놓아 벌나비도 함께
아아 ~~
도시형인 내게
이런 유토피아는 가슴뛰는 장래 꿈 같은 결혼 생활의 설계였죠
가슴 뜨겁던 철없는 소녀인 네게 그는 우상되었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로
친구와 함께 오른 상림리 큰산 !
살을 에이는 봄추위는 그때도 무지 추었었는데
손만 닿아도 달달 떨림이 오던 그시절
갑작이 멀리 널직한 바위를 단상으로 올라가
웅변을 토 하기 시작을 ...
소나무여 들으라
바위들이여 대답하라
오늘날 우리 나라가 잘 살려며는
국민의 70%이상이(1960년시절)
농민인 우리 농촌이 잘 살아야 한다
위정자여 들으라
가난에서 벗어 나려면 농어촌을 잘 살려야 한다
멀리 메아리가 우우우
그의 삼촌이 군청에 계셔서 소위 말하는
공무원의 가족 투표는 아예 부정 투표로
3월 15일 부정 선거는 잊을수가 없었습니다
첫 투표를 박탈 당하고
울분을 상림리 산에서 영변을 토하던 그가
내게는 말못하는 감동의 물결이 물밀듯이
아아 그가 삽을 들면 나는 호미들고
그와 함께 상록수 되어서 이나라 부흥에 밀알이 되겠노라
언제나 그날의 청년!
우직하고 촌스럽고 세련과는 거리가 먼 농촌 청년
그모습 그데로인 그가
아아 벌써 칠순의 고희를 맞는다니
정말 실감이 나지를 않습니다
농촌 운동을 하던 가난의 흙백세월에
온 세상이 떠들석 하던 연애로 결혼을 했는데
거의 반 백년의 세월을 살다 보니
이제서야 그의 실체가 보입니다
농촌 운동
재건 국민 운동
지금은 무슨 언어의 골등품같은
그시절은 퇴색해 버리고
농민의 권익을 위한 정책을 외치는
나의 결혼 생활은 그가 첫 정치 외도를
30대 초반부터
거의 4년에 한번씩 선거를 치루고
한번 참으면 8년에 한번
무려 5번의 청치외도에 나의 청춘은 다 흘러 간것 같네요
늘 낙선의 미안함과 경제적인 부담
부유하지도 못했던 집안의 가산을
정치라는 초지일관의 꿈으로 고남의 길을
동행하기에 이제는 지쳐있었는데
사랑의 눈길보다
원망과 미움의 눈길을
그의 뒷자락에 무수히 보냈었는데
그런 그가 칠순이 되었다네요
어찌 보면 내게는 세월의 흐름이 남의 이야기 같은데
그날 칠순을 맞이한 모든 님들이
같은 공감대에서 한시대를 같이한
갑돌이와 갑순이 들이였음이 감회가 깊습니다
이제는 옹 고집 스런 목소리가 높아지면 미워서 죽겠고
목소리가 낮아지고 어깨가 쳐지면
불상해서 가슴이 아파오니
이런것이 묵어서 묵어서 숙성된 쾌쾌한 청국장처럼
노부부의 모습으로 변해 버렸습니다
아직도 내게는 젊은날의 우상이였던 그 모습으로
이 시간 까지 함께 할수가 있는것 그 자체도 행복이라니
이별의 아픔을 갖은 외 기러기 님들도 계실터인데
하여간 칠순을 치루신
아직고 정년 같고 새 색씨 같은
호랑이님들 그날의 감동을 잊을수가 없어서
몇줄 올리고 싶었는데 횡설 수설 길어 졌습니다
이밤도 좋은 꿈 꾸시기를
3월 9일 38년 범띠 칠순을 마치며
신라의 달밤과 동행하는 꽃반지 올림 !
첫댓글 저는 한편의 영화를 보고 있읍니다.신라의 달밤과 동행하시는 꽃반지님은 축복받은 삶,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아~ 한편의 드라마를 본듯한 기분이네요 때묻지않은 소녀가 어느새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지난날을 돌아보며 쓴 감동의 글이 그시절을 함께한 우리에겐 공감을 불러 일어킵니다 한평생 그래도 잘 사셨습니다 남은여생도 서로에게 따뜻한 손길이되어 쓰다듬으며 오손도손 정겹게 사시구려
지난 3월 9일 38년범띠님들 칠순 잔치가 있었습니다 그날따라 호랑이들의 패기는 여전한데 칠순이라는 인생이 노을이 고운 저녁을 본것같아서 감회가 깊었습니다 ㅋㅋㅋ 벌써 인생 칠십이라 !!!!! 잘살아 왔지요 아웅 다웅 하면서요 ....
아~꽃반지님의 남편분이 신라의 달밤 이시군요. 부부가 같이 카페 활동도 하시고 천생 연분을 만나셨습니다. 젊은 시절 로맨스만 회상하시면 모든 시름 다 잊으시겠네요.멋있는두분 앞으로도 다복하게 백년 해로하시기를 빕니다
꽃반지님의 영택(?)씨 칠순을 축하! 축하! 드립니다. ㅎㅎㅎ 영택(신라의 달밤)씨가 칠순잔치를 치루셨군요. 꽃반지님. 옛일을 돌이켜 보시고 감개무량하셨겟습니다. 두 분 건강하시고 백년해로 하세요......
젊은 시절 우리 농촌에 대한 사랑이 마치... 상록수 소설과 같은 이야기입니다. 다만 발길을 다른길로 바꾸시어 애를 좀 태우셨겠지만, 어디 평탄하고 순한 삶만 있습니까. 우리네 인생은 고달플 때가 더 많았지요, 5~60년대에요, 지금은 다행이도 좋은 세상에 살고 있으니 두분 오래 오래 행복하게 사시면 되겠습니다.
젊은날의 상록수 꿈은 우리들의 희망 이였지요 순박하고 고운 마음씨에 그청년에게 마음 감은 당연 지사지요 그분 정치에 그아내 고통은 말안해도 뻔 함이 보입니다 꽃반지 마음 예뻐서 버텼지요 그 마음땜에 노후에 앵무새같이 시골 전원생활 행복해 보이고 부러움도 있지요 님의 한평생은 본받을 삶으로 보입니다 글도 재미있게 줄줄 이아침 님을 보는것같아 더욱 깊은 정이 솟읍니다
그시절 상록수의 꿈 우리세대의 대단한 꿈이였지요 한번쯤은 그렇게 꿈을 키워본 세대가 바로 우리들 아니였나요 꽃반지님의 삶은 우리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의미를 많이도 담아놓으셨네요 한편의 드라마같은 보는 순간에 빠져들다 갑니다 모쪼록 영택씨와 남은 여생 행복 하소서
지난 시절 꿈은 오늘의 우리 사회가 반영해 줍니다. 앞서 간 님들의 애국정신이 없었다면 오늘이 있었겠는지요... 신라의 달밤님과의 히스토리가 주옥같이 엮어지는 꽃반지님의 글 솜씨도 만만찮네요. 수필 방에 올리시지요. 두분의 남은 인생에 찬란한 햇빛같은 날만 비추시길 바랍니다 행복하소서.
닉네임이 '신라의 달밤'이라 행여 동향 인이 아니신가 하고 몇 번이나 회원정보를 보았었는데, 꽃반지님의 남편 분이셨군요. 우리 세대의 사람들 모두가 공감이 가는 글이라 여겨집니다. 왜 그때엔 많은 사람들이 그와 같은 전원생활을 그렇게도 그리워했었던지, 소설과도 같은 두 분의 살아오신 삶이, 그렇게 하지 못한 저로서는 무척 부럽기도 합니다. 두 분 오래 오래 건강하십시오.
신라의 달밤님의 고희를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꽃반지님의 少女時節 아름다운추억을 상상해봅니다 젊은때는 누구나무지개같은 푸른꿈이있지요 특히 정치 지망생들은 포기가 불가능한 그누구도 못말리는 이번에는 틀림없다........ 가까운분땜에 저도 여러번 겪어봤으니 님의심정 십분이해합니다 남부럽지않는 전원생활에 두분내내행복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