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비바람치는 밤 불과 두서너 번밖에 만나지 않은 소녀한테 반해서 결혼 신청을 했다는 것은 시쳇말로 웃기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것은 분명히 남자 쪽의 정신 상태를 감정해 보지 않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누가 뭐라든 당사자인 변태수는 진지했다. 그는 자신의 결정에 대해 확신을 품었고, 그래서 결코 잘못된 생각이라고 여기지를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그 같은 결정이 남아다운 쾌거라고까지 생각하기에 이르렀기 때문에 무슨 수를 쓰든 기어코 성사시키고야 말겠다고 스스로 다짐할 정도였다. 아직 채 스물도 안 된 소녀를 아내로 맞이하면, 그것도 두 번째 부인으로 맞이하면 틀림없이 큰 반대에 부닥칠 것이고 센세이셔널한 반향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것을 그 자신 모를 리 없었다. 그러나 그 정도는 각오하고 있었다. 오히려 반대도 없고 화젯거리도 없다면 그거야말로 싱거운 일이라고 그는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차제에 그녀와의 결혼이 화제의 초점이 되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으면 하고 은근히 바랄 정도였다. 엉뚱한 짓을 서슴없이 저지르고 괴팍한 성격을 지닌 그인지라 만난 지 서너 번밖에 안 된 소녀와 결혼하겠다고 결심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엄밀히 말한다면 그에게 있어서 마야는 애정의 대상이라기 보다는 그의 소유욕을 충족시킬 수 있는 애완동물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 소유욕을 그는 단지 애정으로 착각하고 있을 뿐이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그는 가지고 싶은 것을 모두 소유해 왔었고, 따라서 마야라는 애완동물도 자신이 소유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유난히 작은 키에 도수 높은 안경까지 낀 그는, 소유하고 싶은 것을 모두 소유하고 그것을 세상에 과시함으로써 자신을 이 세상에서 제일 크고 멋진 사나이로 보이게 하고 싶은 콤플렉스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 자신은 자기에게 그러한 콤플렉스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마야가 그의 아파트를 방문한 다음 날 아침, 그는 드디어 별거중인 아내에게 국제 전화를 걸었다. 이번에야말로 이혼 문제를 매듭지어야 할 때라고 마음을 다져 먹고 전화를 걸었던 것이다. 마야를 맞이하려면 지금의 아내와 정식으로 이혼하는 것이 선결 과제였던 것이다. 마야는 나이가 어린 것치고는 그런 문제에 대해 분명한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자기와 결혼하고 싶으면 본부인과 정식으로 이혼하라는 것이 그것이었다. 아내와 의례적인 이야기를 끝낸 다음 그는 본론에 들어갔다. "집에 언제 오실 거예요? 아이들이 보고 싶어해요." 임순애가 그렇게 말했을 때 그는 좋은 기회다 싶어 마침내 이혼 문제를 끄집어냈다. "우리 사이의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는 서울에 가지 않을 거야. 서울에 가더라도 집에는 들어가지 않을 거야. 어차피 헤어질 거 질질 끈다고 해서 해결될 것도 아니고…… 빨리 매듭 짓는 게 서로를 위해서 좋을 거라고 생각해. 나도 더 이상 이대로 혼자 지낼 수는 없어." "좋은 아가씨가 생긴 모양이군요?" "당신이 상관할 일이 아니야!" "왜 상관할 일이 아니에요? 나는 엄연히 당신의 아내예요." "아내 좋아하네! 그런 형식적인 걸 가지고 붙들고 늘어지지 마. 구질구질한 여자 같으니!" "새파란 계집애하고 재미 보니까 나 같은 거 안중에도 없나 보군요? 정 그러면 나도 생각이 있어요." "새파란 계집애라니, 무슨 개떡 같은 소릴 하는 거야?" "흥, 여기 있다고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줄 아세요? 여기 있어도 당신이 어떻게 하고 다니는 줄 손바닥 들여다보듯 다 보고 있어요. 긴자에서 당신이 네로 황제처럼 돈을 뿌리고 다니는 거 다 알고 있단 말이에요. 당신의 별명이 네로 황제라는 것도 알고 있어요." 변태수는 속으로 깜짝 놀랐다. 이놈의 여편네가 어떻게 그런 걸 알았을까. 내 주위에 스파이를 심어 놓은 게 틀림없다고 생각한 그는 화가 치밀었다. "아주 많은 걸 알고 있군. 이젠 여기다 스파이까지 심어 놓았군. 그렇게까지 나를 감시해서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그런다고 우리 사이가 좋아지는 건 아냐. 갈수록 멀어진다는 걸 알라구!" "멀어지는 건 문제가 아니에요. 난 당신이라는 사람을 저주하고 증오할 거예요. 죽을 때까지 증오할 거예요. 이혼해 달라고요? 흥, 어림없어요! 그 이마에 피도 안 마른 마얀가 뭔가 하는 계집애한테 폭 빠져서 제정신이 아니겠지요? 제정신이 든 다음에 이야기해요. 제정신 아닌 사람하고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요!" 찰칵 하고 전화 끊어지는 소리가 들려 왔다. "이런 오라질 년!" 네로는 씩씩거리면서 수화기를 거칠게 내려놓았다. 아내가 마야와의 관계는 물론 그녀의 이름까지 알고 있다니,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마야를 알게 된 지 불과 며칠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 아내의 귀에 그 소문이 들어가 있는 건 분명히 스파이가 있어 그때그때 보고를 한 게 틀림없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와 함께 그 스파이를 잡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고 그는 생각했다. 이렇게 된 이상 물러날 수는 없다. 말이 나온 김에 끝장을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그는 서울로 다시 국제 전화를 걸었다. 한참 신호가 간 뒤 전화를 끊으려고 하는데 신호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 왔다. 아내의 냉랭한 목소리가 들려 오자 그는, "건방지게 누가 전화 끊으라고 했어!" 하고 소리쳤다. "소리지르지 말아요! 간 떨어지겠어요." "잘 들어! 넌 내 아내가 될 자격이 없는 여자야. 지금까지 아내 대접을 해준 것만도 감사하게 생각해야 해." "참, 기가 막혀서. 당신은 내 남편될 자격이 있는 남자였나요?" "얼마 필요해?" "위자료 말인가요? 그런 건 필요하지 않아요." "그럼 어쩌자는 거야? 나보고 어떻게 하라는 거야?" "나도 모르겠어요. 하여간 도장을 찍어 줄 수는 없어요. 도장을 찍을 바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죽어 버리겠어요." "뭐가 어째?" 그는 펄쩍 뛰었다. 그는 아이들을 끔찍이 귀여워했다. 아내한테는 정나미가 떨어진 지 오래였지만 아이들한테만은 갈수록 뜨거운 부정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 아이들을 데리고 함께 죽겠다니, 그것은 상상할 수 없는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협박이었다. "내 자식이니까 내가 데리고 죽겠다는데 무슨 상관이에요?" "어째서 네 자식이야, 내 자식이지!" "아이들을 낳고 키운 건 저예요. 남자들은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무책임하게 그걸 쏘아대지만 여자는 그렇지가 않아요. 여자들이 피눈물 나게 자식을 키워 놓으면 나중에 가서 뻔뻔스럽게 애비 노릇하려고 드는 게 남자들이에요. 당신은 아버지라고 할 수 없어요. 법적으로는 아버지일지 모르지만 엄밀히 따져 아버지 자격도 없는 사람이에요." "갈보 같은 것!" "갈보라고 어미될 자격이 없나요?" 말싸움에서는 결코 아내를 이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자 그는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아내가 이렇게 거세게 저항하고 나서기는 처음이었다. 그녀도 막판에 몰렸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그러니까 본색을 드러내고 달려드는 게 아닌가. "결혼하기 전에 딴 남자와 동거 생활까지 한 년이 무슨 낯짝으로 우리 집에 남겠다는 거야? 뻔뻔스런 년 같으니!" 마침내 그는 그녀의 가장 아픈 점을 건드렸다. 그러나 그녀는 물러나지 않았다. 그전 같으면 억울하다고 울면서 매달릴 텐데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당신은 당신 자신을 모르는군요. 거울을 한번 보세요. 당신이 남자처럼 생겼는지 자세히 한번 보세요. 자세히 볼 필요도 없을 거예요. 솔직히 말해 난 불행한 여자였어요. 한번도 당신한테서 성적으로 만족을 못 느꼈으니까요. 당신은 그 점에서 국민학생 수준밖에 되지 않았어요. 그런데도 지금까지 난 참아 온 거예요. 대단하다고 생각지 않으세요? 당신은 나한테 감사해야 할 거예요." 그것은 그의 자존심을 건드린 최대의 모욕적인 말이었다. 그는 바들바들 떨면서 악을 썼다. "뭐뭐, 뭐가 어째? 야! 야! 이년아, 뭐가 어쩌고 어째? 말이라고 다하는 거야? 야! 어디 가지 말고 기다리고 있어! 당장 갈 테니까 기다리고 있어! 가서 죽여 버리고 말 테니까 기다리고 있어! 기다리고 있으란 말이야!"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오세요." 아내의 당당한 말에 그는 수화기를 동댕이쳤다. 너무 울화가 치미는 바람에 가만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당장 달려가 아내를 요절내고 싶었다. 머리채를 끌고 서울 시내를 돌아다녀도 성이 풀리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당장 서울로 달려가지는 않았다. 마야와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약속이란 마야와 함께 디즈니랜드에 놀러 가기로 한 것이었다. 어제 이야기 끝에 우연히 그녀가 디즈니랜드에 한번 가보고 싶다고 말했는데, 그것을 받아 네로는 즉시 내일 디즈니랜드에 놀러 가자고 제의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내일 만날 시간과 장소를 정하지 않고 그와 헤어졌다. 이유인즉슨 내일 일이 있기 때문에 약속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일이 끝나는 대로 전화를 걸겠다고 했는데, 네로는 그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전 내내 전화를 기다렸지만 그녀로부터 전화는 걸려 오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외출하지 않고 그녀의 전화를 기다렸다. 그는 오후에도 내내 충실하게 전화통을 지켰다. 혹시 전화가 고장나지 않았나 해서 수화기를 들어 귀에다 대보기까지 했는데, 전화는 정상이었다. 저녁때가 되어도 전화는 걸려 오지 않았다. 이제 디즈니랜드에 놀러 가기는 글렀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그는 전화를 기다렸다. 저녁때가 되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바람까지 불어대고 있었다. 땅거미가 지기 시작하고 밖에는 불빛이 하나 둘씩 들어오기 시작하고 있었다. 침대에 드러누워 멀뚱히 천장만 쳐다보고 있던 그는 갑자기 일어나 세브리느에 전화를 걸었다. 마야를 찾자 대신 마마가 나왔다. "어머, 회장님, 웬일이세요?" 호들갑 떠는 그 일본 여자가 그는 싫었다. "마야 바꿔 줘요." 그는 시무룩해서 말했다. "이제 오시지도 않고 전화만 거시는 거예요?" "오늘은 일이 있어서 거기 못 가겠어." "어제도 안 오셨잖아요." "마야 좀 바꿔 줘요." "정말 너무해요. 나 같은 건 안중에도 없고 마야만 찾으시기예요? 정말 해도 너무하셔요." 앙탈 같기도 하고 괜히 한번 그래 보는 것 같기도 했다. "마야 좀 바꿔 달라니까!" 그가 역정을 내자 그녀의 목소리가 달라졌다. "마야는 오늘 나오지 못한대요." "왜?" "몸이 불편한가 봐요." "어디가 아프대?" "모르겠어요." "집이 어디야? 전화 번호 좀 가르쳐 줘." 그는 당장 꽃을 들고 문병이라도 가야겠다는 듯 말했다. "전화 번호는 몰라요." "거기 나오는 호스티스의 전화 번호를 모른다니, 그게 말이 되나?" "모르는 걸 어떡해요. 본인이 한사코 가르쳐 주지 않으면 할 수 없잖아요. 그 애는 비밀이 많은 애예요." 불성실한 대답에 욕설이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고 전화를 끊었다. 화가 나 안절부절못하면서 창문에 부딪쳐 흘러내리는 빗물을 바라보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그는 그대로 서 있었다. 여러 번 울린 뒤에야 돌아서서 수화기를 집으려는데 전화가 끊어졌다. 어디 가서 술이라도 퍼마셔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아 외출하기 위해 양말을 신고 있는데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이번에는 재빨리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여보세요." 마야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그는 너무 감격한 나머지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어떻게 된 거야? 세브리느에 전화를 걸었더니 몸이 아파서 못 나온다고 하잖아. 전화 걸기로 하고 안 걸면 어떡하는 거야? 하루 종일 전화 기다렸어." "미안해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왜 전화 안 걸었어?" "아파서 그랬어요." "어디가 아파서 그래?" "머리가 아파요. 하루 종일 누워 있었어요. 지금은 좀 괜찮아요. 보고 싶어서 전화 걸었어요." 보고 싶어서 전화 걸었다는 말에 그는 그만 간장이 녹아 드는 것 같았다. "나도 보고 싶어. 내가 그리로 갈까?" "아니에요. 드라이브하고 싶어요. 교외로 단둘이 드라이브하고 싶어요. 비 오는 날은 저는 꼭 드라이브해요." "운전할 줄 알아?" "전 서툴러요, 태워 줘요. 운전할 줄 모르세요?" "운전이라고 하면 끝내 주지. 하지만 운전사한테 맡기는 게 더 안전하고 편하지 않을까? 난 지리도 잘 모르니까." "싫어요! 운전사 없이 손수 운전하고 나오세요. 우리 두 사람 외에 다른 사람이 타고 있는 건 싫어요." "알았어. 내가 직접 운전하고 나가지." "경호원인가 뭔가 하는 사람들도 달고 나오지 마세요. 그 사람들 정말 싫어요. 그 사람들 보는 데서 어떻게 쑥스럽게……." "아, 알았어! 나 혼자 나갈 테니까 염려하지 마." "아홉 시 정각에 신주쿠 역 지하 광장에서 만나요. 거기에 오시면 오아시스라는 레스토랑이 있어요. 거기서 우리 저녁 먹고 나서 드라이브해요." "좋아, 가지." 그는 창문을 흔드는 비바람을 보면서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이미 밖은 어두워져 있었다. 이런 날씨에 드라이브한다는 것은 내키지 않는 일이다. 그러나 드라이브 자체보다도 마야를 만나야 한다는 것이 더 급했다. 그는 베이지색 바지 위에 노란 티셔츠와 녹색 점퍼를 걸치고 여덟 시 이십 분에 아파트를 나섰다. 나가면서 아무에게도 나간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가 직접 푸조 505를 몰고 나가자 아파트 경비원이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마야에게는 운전이라고 하면 끝내 준다고 했지만 사실은 운전 솜씨가 서툴렀다. 아슬아슬하게 그것도 굼벵이처럼 차를 몰고 가자 뒤에서 클랙슨 소리가 요란스러웠다. 그는 진땀을 뻘뻘 흘리면서 차를 직접 몰고 나온 것을 후회했지만 이미 늦은 일이었다. 그런 대로 사고 없이 약속 장소에 도착한 것이 아홉 시 오 분경이었다. 차를 길가에 세워 두고 허둥지둥 지하 광장으로 내려갔다. 오아시스는 금방 찾을 수 있었다. 그것은 꽤 큰 대중 음식점이었다. 고급 식당만 이용해 온 그는 그곳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야는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를 보자 그녀는 수척한 모습으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는 다른 데 가서 식사하자고 했지만 그녀가 그곳이 좋다고 고집했기 때문에 그들은 그곳에서 간단히 저녁 식사를 마쳤다. 레스토랑을 나선 것은 아홉 시 삼십 분 조금 지나서였다. 지하 광장을 벗어난 그들은 길가에 세워 둔 푸조에 올랐다. 마야는 운전석 옆 자리에 앉았다. 네로는 처음부터 진땀을 흘렸다. 그녀한테 운전을 잘 한다고 자랑했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운전대를 놓은 지 하도 오래 돼서 잘 안 되는데……." 고개를 연방 갸우뚱하면서 가까스로 차를 몰아 나가는데 얼굴에 땀이 비오듯 했다. "어머나, 무슨 땀을 그렇게 흘리세요?" 옆에 앉은 마야가 손수건을 꺼내 그의 얼굴에 흐르는 땀을 닦아 주자 그는 얼굴 가득히 웃음을 머금었다. "이쪽으로 가요. 이쪽에는 차들이 거의 다니지 않아요." 얼마쯤 가다가 그녀는 어둠침침한 좁은 길을 가리켰다. 도쿄의 환락가에만 익숙할 뿐 그 밖의 지리에 대해서는 어두운 그는 금방 방향 감각을 잃고 어디가 어딘지 모르게 되었다. 단지 마야가 가자는 대로만 조심스럽게 차를 몰아갔다. 갈수록 사람도 차도 보이지 않았다. 가로등 하나 없는 그야말로 캄캄한 거리였다. 으스스한 느낌이 들었지만 그녀 앞에서 겁을 집어먹은 모습을 보일 수가 없어 내처 차를 몰아갔다. 실내등을 모두 켜고 음악도 크게 틀어 놓았다. 시내에서 멀리 나왔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불빛에 나뭇가지가 비바람에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비로소 그는 숲속에 들어와 있는 것을 알았다. "여긴 어디지?" "공원이에요. 불을 꺼요." 그녀가 그의 팔짱을 끼면서 어깨에 머리를 기대 왔다. 머리 냄새가 향긋했다. 그 냄새에 취할 것 같았다. 그녀가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차린 그는 흥분했다. 캄캄한 숲속이라 좀 무서웠지만 카 섹스를 하기에는 안성맞춤인 장소인 것 같았다. 그는 소녀를 끌어안고 그녀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포갰다. 감미로운 느낌이 전신에 퍼져 갔다. 그녀의 몸을 어루만지면서 옷 벗을 준비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눈부신 불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헤드라이트 불빛이었다. 너무 강렬한 빛이었기 때문에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엔진소리와 함께 불빛이 가까이 다가오더니 멈춰 서는 소리가 났다. 엔진소리는 그대로 들려 왔다. 차에서 몇 사람이 내려서는 것이 보였다. 이윽고 보닛에 쿵 하는 충격이 왔다. 검정 운동모를 쓴 자가 도끼를 높이 쳐들더니 보닛을 사정없이 내리찍었다. 네로는 너무나 놀란 나머지 소리 하나 지르지 못한 채 바들바들 떨어대면서 자기 차가 비참하게 찌그러지는 것을 멀거니 쳐다보기만 했다. 얼핏 마야를 보니 그녀는 별로 놀라는 것 같지 않았다. "문을 잠궈!" 그는 헤드라이트를 켜고 급히 엔진을 걸었다. 그러자 앞창 유리로 도끼가 날아왔다. 유리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엔진을 꺼!" 고함소리에 그는 클러치에서 발을 뗐다. 다른 한 명이 그가 앉아 있는 쪽으로 와서 도끼로 창문을 깨고 문을 열어젖히더니 그의 뒷덜미를 움켜잡고 홱 잡아 끌었다. 그 바람에 그는 젖은 땅바닥에 나동그라지고 말았다. 그 다음부터는 모든 일이 재빨리 진행되었다. 먼저 그의 턱과 복부에 격심한 충격이 가해졌다. 그는 서너 번 땅바닥에 뒹군 다음 무서운 말을 들었다. "소리내지 말고 잠자코 있어.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도끼로 머리를 갈라 놓을 테다!" 입에 재갈이 물렸고, 두 손은 뒤로 꺾여 수갑이 채워졌다. 그들은 마지막으로 줄로 그의 두 발목을 묶더니 머리에서부터 자루를 뒤집어씌웠다. 조그만 몸뚱이인지라 자루 속에 통째로 들어갔다. 그들은 자루를 묶은 다음 그를 그들의 차 뒤 트렁크 속에 처박았다. 그때 여자의 자지러질 듯한 웃음소리가 주위에 울렸다. 그것은 틀림없는 마야의 웃음소리였다. 트렁크 문이 쾅 하고 닫히자 웃음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조금 후 차가 덜컹 하고 움직였다. 그는 머리를 들어 트렁크 문을 받아 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가 왜 그런 일을 당해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너무 어두웠다. 작은 빛이라도 보였으면 하고 그는 바랐다. |
첫댓글
감사 합니다
기쁜 저녁시간 되십시요…
잘읽어 보구 갑니다
즐건 하루가 되시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