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ID-19/채수옥
하염없이 우거지는 잠이 보입니다 깊게 뿌리내리는 짐승이라 고요 매일 다섯 통의
피를 뽑아가니 원인도 모른 채 침대는 야위어갑니다
나를 열어보세요 내용물은 보라입니다 침대 밖 국경까지는 얼마나 남았습니까 얼굴
을 뒤집어 보면 줄거리가 요약되나요 나는 아직 전염에 취약합니까
이곳에서 할 일은 단지 잠을 자고 밥을 먹고 똥을 눈 다음, 브리스톨 스툴 차트에 따른
유형을 보고하는 일 나는 아직 7번 타입입니다 완전 액체 소세지 타입으로 진입하려면
얼마의 시간이 필요한 걸까요
나의 잠은 아직 소독 중입니까
우리는 설사 같은 관계라 할 수 있을까요 상식이 액체로 흘러 바닥을 적시는 날이 오면
고글을 쓰고 우주복을 입은 자들이 인간들을 수거해 간다지요
옆구리에 바구니를 끼고 침대에서 굴러떨어진 눈알들을 주워 담습니다 아직 감겨지지
않은 눈빛들을 크고 흰 장갑으로 쓸어 내리며
밤의 부피는 점점 늘어갑니다
침대를 열어 보세요 잠들다 지친 엇박자의 날들과, 눕고 일어나 앉는 동작들이 쌓여 날
개가 됩니다, 곧 날아오르는 침대를 보게 될 거예요
잠들면 안 돼
우리는 깨어 근신하며 야생의 표정을 지켜봐야 합니다 소리 없이 밀고 올라오는 칸나의
혓바닥에 나는 아직 둘둘 감겨있습니다 항생제의 날들은 계속되고
뜨거운 이마 위로
눈이 내려 쌓입니다
블랙아이스/채수옥
들어가는 것 말고
나오는 것이 추하고 더러운 입
혓바닥 밑에 끼어 있는 지층 사이에서 말들은 얼었다
녹기를 반복하고 내리는 눈송이를 혀로 받아먹으며 우리
가 도착한 새벽은
결빙 구간
내가 말하는 게 그게 아니라는 말과 표정 위로, 브레
이크가 말을 듣지 않는 너의 혀가 달려와 부딪히고 그걸
변명이라고 하는 거냐며 우리는 대화 밖으로 미끄러지고
피가 흐르고
팔다리가 찢겨나가기까지
길 안에 갇혀
진눈깨비에 갇혀
어기적어기적 넘어지고 엉덩방아를 찧으며 그 길을 벗어나려는 사람들이 앰뷸런스를 부르고 혀들이 실려 나가고
우리는 누군가의 앞길을 막는 존재가 되고
혀를 차며 혀를 단속하고, 함부로 놀린 커다란 혀 앞
에 위험 표시판을 세우고 길을 정리하고 혀를 정리하고
우리는 여전히
얼었다 녹기를 반복하고
우리는 우리[籬]를 구성한다/채수옥
돼지우리 속 돼지들은 돼지우리를 구성하고 돼지우리 밖 돼지들은 작대기를 휘둘러
때리며 쫓아가 우리 속으로 몰아넣는다
끝없이 처먹고 싸지르기에 여념이 없는
우리 속
돼지들
우리는 우리의 면적을 넓히고 둘레를 튼튼히 엮어서 높이 쌓아, 우리를 지키는 우리[籬]
가 된다 둘레만 있는 그림자처럼 끝없이 깊고 검은 뱃가죽을 불러오기까지
우리는 우리 안에서 잠을 쪼개고 잠을 미뤄두고 잠이 없는 종족처럼 밤과 낮을 허물어
함께 반죽한 수제비처럼 일용할 양식을 위해
끓는 물속으로 서로의 살점을 뚝뚝 떼어 넣으며 우리를 지키고 우리를 보존하며 우리를
위하는 일이라고 똘똘 뭉쳐 견고한 우리가 되기 위해
흘러가는 구름을 하염없이 올려다보며 애초에 우리를 가져본 적 없는 구름 따윈 쓸모없
다고 중얼거리며 우리를 벗어나지 못한 채
우리는 우리를 둘러치고
우리 안에서
킁킁
덮어놓고 웃었다/채수옥
보도블록으로 덮인 길의 중간이 끊겼다 공사하다 남은 것들을 검은색 천막으로 덮어 놓고
통행금지 푯말을 세워 놓았다 무엇이 덮여 있는지 모른 채 덮어놓고 돌아갔다 덮어놓고 길
을 걷고 덮어놓고 밥을 먹었다 덮어놓고 오열하고 덮어놓고 섹스를 했다 너는 그것을 덮어놓
고 믿었다 물어볼 용기가 없을 때 덮기로 했다 덮어놓고 관광버스에 올라 덮인 사람들과 관
광을 떠났다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먼저 덮었다 시간은 덮어놓고 흘러가고 나는 덮어놓고 다
음 문장으로 넘어갔다 덮어놓고 저녁이 왔고 우리는 덮어놓고 이별을 했다 덮는 것이 상책이
라고 생각했을 때 덮어야 하는 것들은 더 많이 생겨났다 보도블록을 덮었던 검은 천막은 공
중에서부터 땅까지 그 너머의 것들을 덮고 있었다 검은 천막은 점점 크고 넓게 퍼져나갔다
우리는 더 멀리 돌아가야 했다 검은색 우산들로 상체를 가린 사람들이 앞장서서 걸어간다
도약/채수옥
음악 속으로 들어갔다
잘 구워진 빵처럼 고소한 냄새를 풍기며 목젖은 부풀어 오르고 반복되는 리듬의 중간을 잡
고 솔과 라를 들어 올리자 뜨거운 정오의 햇살이 튕겨 오른다
나는 항상 미에서 도약을 꿈꾼다
도망가는 토끼 귀를 잡아당겨
나의 미를 밀어 넣는다
물결처럼 솟아오르는 숲은 너에게 흘러가고
쿵, 짝!
이 맞지 않는 네 속으로 토막토막 썰린 나의 숨을 불어 넣는다 낮은음자리 곁에서 틱틱 나무
들의 나이테는 헛돌며 뚱뚱해진다
비가 내리는 숲은 금세 어두워지고
너는 쿵만을 반복한다
날아오르기 위해 맨 처음의 도를 힘껏 움켜쥐고 도움닫기를 한다
숲을 뛰어넘어 너에게
입구가 없는 공중을
높이
한 사람의 곡조가 저물고
호흡이 어긋나는 방향에서 또 한 사람이 오고 있다
진흙처럼 캄캄한 목젖을 매달고
맨발로
<<채수옥 시인 약력>>
*1965년 충남 청양 출생.
*동아대학교 대학원한국어문학과 박사과정 수료.
*2002년 《실천문학》으로 시 등단.
*시집 『비대칭의 오후』 『오렌지는 슬픔이 아니고』 『덮어놓고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