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1일 [연중 제34주간 금요일]
루카 21,29-33
하느님 나라가 찾아오는 공식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세상이 멸망하게 될 무서운 징조들을 다 말씀하신 다음 이렇게 마무리하십니다.
“무화과나무와 다른 모든 나무를 보아라. 잎이 돋자마자, 너희는 그것을 보고 여름이 이미
가까이 온 줄을 저절로 알게 된다.”
이는 자연에서 계절이 변화되는 법칙이 있는 것처럼 마지막 때도 마치 수학 공식처럼 그대로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뒤이어 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 알아라.”
하느님의 나라는 반드시 공식처럼 내 주위에 믿고 희망할 것이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을 때 비로소 찾아온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나라는 우리 각자에게도 오시기 때문에 이렇게 마무리하십니다.
“이 세대가 지나기 전에 모든 일이 일어날 것이다.”
하느님 나라는 하느님이 왕으로 지배하시는 나라입니다. 그리고 행복의 나라입니다.
이 나라는 우리가 하느님께 온전히 의탁하고 그분께 완전히 순종할 때만 이뤄집니다.
하지만 이 세상엔 우리가 기대할 것이 너무도 많습니다.
그런 것을 통해 자기 힘으로 행복을 추구합니다. 이런 것들이 모조리 사라져 내 힘으로는 단 1%도
행복을 증진시킬 수 없는 처지가 되었을 때, 그리고 나의 믿음과 희망이 오로지 하느님의 자비에만 의존하게 될 때 하느님 나라가 임하십니다.
저도 신학교 입학했을 때 행복할 줄 알았지만, 행복함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단식하며 저를 극한으로 몰아붙였습니다. 배고프니까 비로소 내가 아무것도 아님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내 힘이 아니라 주님의 힘으로 나를 행복하게 해 달라는 뜻이기도 했습니다. 이때 성체에서 “그래, 너 나에게 많이 주었니? 난 네게 다 주었다!”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 행복으로 지금까지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로는 아직 그분을 그때처럼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를 저는 압니다.
저 자신과 세상을 더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 온전히 의탁하지 못하고 내가 믿는 행복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저 자신을 그만큼 완전히 죽일 자신이 없어서 나를 종말로 몰아붙이지 못하기에 하늘 나라를 맛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늘 나라는 나의 완전한 종말 뒤에 옵니다. 이것은 누구에게나 해당하는 공식입니다.
작년 『역행자』란 책을 쓴 ‘자청’이란 청년이 있습니다.
이미 130명의 직원을 두고 한 달에 몇억씩 벌며
작년 책 판매 수입을 전액 기부하였습니다.
아마 50억 가까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는 어렸을 때부터 못생겼고, 공부도 못했고, 돈도 없었습니다.
이러한 환경은 그에게 자신은 한 달에 150만 원도 벌지 못하며 결혼도 못하고 죽을 것이라는 믿음을 심어주었습니다.
여자는 쫓아다니면 도망쳤고 돈을 벌기 위해 영화관에서 일하기도 하였지만, 실수 연발이었습니다.
자살하지 않는 게 신기할 정도였습니다.
그에겐 그래도 희망이 있었습니다.
영화관에서 함께 일하던 어떤 누나가 그를 불쌍히 여겨 책을 좀 읽어보라고 권했던 것입니다.
책을 읽어본 적이 없고 게임에만 빠져있던 그였지만, 인간관계를 위해 대화법에 관한 책을 읽었습니다.
그 내용은 단순했습니다.
말하기보단 들어주고 상대의 말에 관심을 두라는 것입니다.
그 책대로 했더니 서서히 한 명씩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때 그는 깨닫습니다.
‘아, 모든 것에는 공식이 있구나!’
그래서 학교도 집어치우고 도서관에서 책만 읽습니다.
거기서 얻은 지식으로 무일푼으로 사업도 시작하고 지금의 자청이 된 것입니다. 그는 말합니다.
“저는 저 자신을 절대 믿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이 말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믿는 사람에겐 하느님 나라가 임할 수 없습니다.
이미 자신이 왕이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우리는 공식처럼 우리 자신을 종말로
밀어붙여야 합니다.
그래야 참 자유와 행복을 찾을 수 있습니다.
김희아 씨도 마찬가지입니다.
절망의 시간에 주님을 만났습니다.
절망의 나락에 있었지만, 하느님께 대한 희망은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이때 자신보다 그녀의 얼굴을 보시며 더 슬퍼하시는 그분을 만나고는 다시는 얼굴에 점이 사라지게 해 달라고 청하지 않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그 나라에는 ‘감사’만 있습니다.
내 힘으로 얻는 게 하나도 없음을 알 만큼 겸손해진 사람만이 누리는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왜 우리 스스로라도 우리 자신을 종말로 밀어붙여야 하는 이유입니다.
하늘 나라는 항상 희망을 품고 종말로 자신을 몰아붙이는 만큼 옵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12월1일 [연중 제34주간 금요일]
루카 21,29-33
우리 모두는 주님 정원 속 한 그루 푸르른 올리브 나무입니다!
수녀원에 도착했을 무렵, 무성했던 단풍잎이, 우수수 떨어져 바닥에 쌓이고, 나무들은 그야말로
나목(裸木)으로 변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나목, 다시 말해서 잎이 다 떨어져서 가지만 앙상하게 남아 있는 나무를 바라보며 서글퍼하거나 우울해합니다.
아, 이렇게 또 다시 계절이 가는구나. 이렇게 내 인생도 저물어가고 소멸되어 가는구나.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결코 그런 마음을 먹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주님 정원 안에 머무는 한, 나는 영원한 청춘이라는 진리, 주님께서 내 안에 굳건히 자리하시는 한, 나는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시들지 않는 한 그루 푸르른 올리브 나무 같음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예수님 가르침의 특징은 다른 스승들과는 차별화가 되었는데, 다른 무엇에 앞서 쉬웠습니다.
다양한 비유나 예화를 들어 말씀하셨는가 하면, 백성들이 살아가는 환경이나 그들이 매일 목격하는 자연 현상들을 자주 활용하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무화과나무는 포도나무와 더불어 근동 지방의 주요 나무 중에 하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무화과나무 잎이 돋고 지는 것을 통해 종말, 주님의 날을 잘 준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저 역시 시골에 살면서 주변 자연 현상들을 유심히 바라보고 실생활에 적극 활용하는 편입니다.
개구리가 합창하면 곧 비가 오겠구나, 하며 이런저런 대비를 합니다.
아침 해무가 자욱하면 날이 낮에는 햇빛이 창창하고 덥겠구나, 생각합니다.
바람이 거세게 부는 날은 물고기들도 불안해져 입질을 제대로 하지 않으니, 애써 출조를 하지 않습니다.
폭우가 내려 흙탕물이 바다로 유입되면 아무리 물때가 좋더라도 돌게나 골뱅이들이 모래 깊이깊이 숨어버리니 나갈 필요가 없습니다.
이렇게 자연의 징조에 대해서는 정확하고 치밀하게 관찰하고 대비하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주님의 날에 대한 준비는 소홀한 저를 향한 예수님 말씀이 날카롭습니다.
“무화과나무와 다른 모든 나무를 보아라. 잎이 돋자마자, 너희는 그것을 보고 여름이 이미 가까이 온 줄을저절로 알게 된다.
이와 같이 너희도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 알아라.”(루카 복음 21장 29~31절)
그날이 가까이 다가오는 표징들을 확인할 때마다 우리 삶을 다시 한번 정리정돈해야 하겠습니다.
결코 원치 않았던 고통이나 시련이 다가올 때, 병고나 사건 앞에, 왜 이런 일이 내게 다가오는가?
하느님이 어떻게 내게 이러실 수 있나, 따지고 원망할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내게 보내시는 또 다른 하나의 부르심이라 여기고, 너그럽고 관대한 마음으로
내게 호의적이지 않은 현실을 바라봐야겠습니다.
주님의 날을 보다 잘 준비하라는 신호로 여겨야겠습니다.
지상의 일만 생각하지 말고, 천상의 일도 생각해야겠습니다.
세속적인 것은 조금씩 줄이고, 천상의 것들, 정신적인 것들, 영적인 것들을 늘려가야겠습니다.
하느님 나라에 합당한 새로운 삶의 방식과 생활양식을 갖추도록 준비해야겠습니다.
우리 인간이 행하는 모든 것은 유한하고 제한적인 것이지만, 주님과 주님의 말씀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영원히 지속될 것임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연중 제34주간 금요일 강론>
(2023. 12. 1. 금)(루카 21,29-33)
<무화과나무의 교훈>
“무화과나무와 다른 모든 나무를 보아라. 잎이 돋자마자, 너희는 그것을 보고 여름이 이미 가까이 온 줄을 저절로 알게 된다.
이와 같이 너희도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 알아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가 지나기 전에 모든 일이 일어날 것이다.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루카 21,29ㄴ-33).”
당시 그 지역에서는 ‘여름’이 추수철이었습니다.
성경에서 ‘추수’는 ‘심판’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여름이 이미 가까이 온 줄을 저절로 알게 된다.” 라는 말씀은, 종말과 심판의 날이 되면 누구든지 그날이 되었음을 저절로 알게 된다는 뜻입니다.
‘저절로’ 라는 말은 누가 따로 가르쳐 주지 않아도 모든 사람들이 알게 될 정도로 명확하고 생생하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여기서 ‘이러한 일들’은 좁은 뜻으로는, 이 말씀 앞에 있는 ‘우주적인 표징들’과 ‘예수님의 재림’을(루카 21,25-27) 가리키고, 넓은 뜻으로는 ‘종말 전의 재난들’을(루카 21,8-24) 가리킵니다.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라는 말은, “종말의 날이 시작되었다.” 라는 뜻입니다.
<가까이 왔다는 말은 이미 시작되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표징들, 또는 재난들을 ‘언제’ 보게 될까?
그런 일은 ‘언제’ 일어날까? 이미 일어났고, 이미 보았습니다.
지난 이천 년 동안 인류는 수없이 많은 재난들을 겪었고, 오늘날에도 겪고 있습니다.
표징들도 마찬가지인데, ‘회개하라는 경고’로 해석할 수 있는 표징들을 수없이 많이 보았고, 지금도 보고 있습니다.
‘여름’은, 즉 ‘종말의 날’은 이미 시작되었고, 지금 우리는 ‘종말이 완성되는 날’을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따라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 알아라.” 라는 말씀은, 종말이 이미 시작되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고, 늦기 전에 당장 회개하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이 바로 그때다.” 라는 것을
자주 강조하셨습니다.
“진실한 예배자들이 영과 진리 안에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온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 사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예배를 드리는 이들을 찾으신다(요한 4,23).”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죽은 이들이 하느님 아들의 목소리를 듣고 또 그렇게 들은 이들이 살아날 때가 온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요한 5,25).”
사도 요한도 “자녀 여러분, 지금이 마지막 때입니다.” 라고 말합니다(1요한 2,18).
‘종말이 완성되는 날’은 언제인지 모르는 먼 훗날이 아니고, ‘이제 곧 닥칠 날’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뒤로 이천 년이나 지났다는 이유로, 종말이나 재림에 관한 말씀을 아무 긴박감 없이, 그저 늘 듣는 의례적이고 상투적인 말씀으로만 생각하기가 쉬운데, 지나간 날들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남아 있는 날들이 짧다는 뜻이 된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주님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습니다.” 라고 말합니다(2베드 3,8).
이 말은 시편 90편 4절을 인용해서 한 말인데,
시편 90편은 ‘종말과 심판’을 묵상하는 데에
큰 도움을 주는 시편입니다.
“당신께서는 인간을 먼지로 돌아가게 하시며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아, 돌아가라.’ 정녕 천 년도 당신 눈에는
지나간 어제 같고, 야경의 한때와도 같습니다.
당신께서 그들을 쓸어 내시면, 그들은 아침잠과도 같고, 사라져 가는 풀과도 같습니다(시편 90,3-5).”
이 찬미가는, 시간의 주인은 하느님이시라는 것과
하느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인간은 허무하게 사라지는 먼지일 뿐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천 년, 이천 년은 정말로 아무것도 아닌 시간입니다.>
여기서 ‘먼지, 아침잠, 풀’이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이유에 연결됩니다.
예수님은 인간들이 먼지나 아침잠이나 풀처럼 허무하게 사라지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즉 인간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려고 오신 분입니다.
복음서에 있는 ‘종말과 심판’에 관한 예수님 말씀들은, “먼지처럼 허무하게 사라지지 말고 영원한 생명을 얻어라.” 라고 호소하시는 ‘사랑의 말씀들’입니다.
<그 생명을 얻는 방법은 ‘믿음’과 ‘회개’입니다.>
“이 세대가 지나기 전에 모든 일이 일어날 것이다.” 라는 말씀에서 ‘이 세대’는 그 당시의 세대가 아니라 지금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사람들, 즉 우리를 가리킵니다.
‘모든 일’은 종말과 심판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종말과 심판의 날이 곧 닥친다는 뜻입니다.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라는 말씀은, 종말과 심판에 관한 말씀을 포함해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들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강조하신 말씀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여러분은 썩어 없어지는 씨앗이 아니라 썩어 없어지지 않는 씨앗, 곧 살아 계시며 영원히 머물러 계시는 하느님의 말씀을 통하여 새로 태어났습니다.
‘모든 인간은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꽃과 같다.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지만, 주님의 말씀은 영원히 머물러 계신다.’ 바로 이 말씀이 여러분에게 전해진 복음입니다(1베드 1,23-25).”
믿기를 거부하는 자들과 회개하기를 거부하는 자들은 종말과 심판의 날에 먼지처럼 허무하게 사라지겠지만, 믿고 회개한 사람들은 그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참된 신앙인은 종말, 재림, 심판이 하루라도 빨리 이루어지기를 기다립니다.
(전주교구 송영진 모세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