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8일 (토) 촬영.
서북공심돈
평지 북성,平地 北城
평지북성은 화성을 축성하면서 네 구간으로 나눈 성벽 가운데 평지로 이루어진 북쪽 성곽이다.
북문인 장안문을 중심으로 동쪽은 북동적대부터 북수문(화홍문)까지, 서쪽은 북서적대부터 서북공심돈까지 모두 10개 시설물이 있다.
이 일대는 지역이 평탄한 편이어서 방어에 유리하도록 다른 곳보다 성벽을 높게 쌓았다.
장안문 주변은 성벽이 약간 바깥으로 나온 편이다. 이는 처음에 화성의 성벽 위치를 결정할 때 민가가 밀집해있는 지역을 피하고,
남문과 북문의 거리를 확보하라는 정조의 뜻을 반영하였기 때문이다. 북성 구간에서 눈여겨 볼 곳은 성문 양쪽에 적대를 세운 장안문,
수원천과 누각이 조화를 이룬 화홍문, 빼어난 군사 시설인 서북공심돈을 들 수 있다.
서북공심돈과 화서문의 옹성.
서북공심돈 좌측 성벽의 외부 모습입니다. 멀리 북포루(北舖樓) 건물이 보입니다.
서북공심돈 바닥에 성벽 가까이에 접근하는 적의 동향을 살피고 공격이 가능한 세로로 긴 홈을 낸 현안(懸眼)의 모습입니다.
전면에는 두 개의 현안(懸眼)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현안(懸眼)은 옹성에도 있네요.
서북공심돈,西北空心墩 / 보물, 1796년 창건
서북공심돈은 화성 서북쪽에 세운 망루로 주변을 감시하고 공격하는 시설이다
공심돈은 속이 빈 돈대라는 뜻으로, 우리나라 성곽 중 화성에서만 볼 수 있다. 보통 돈대는 성곽과 떨어진 높은 곳에 세워 적을 감시하는
시설이나, 서북공심돈은 서북쪽 성벽이 꺾이는 위치에 설치했다. 치성 위에 벽돌로 3층의 망루를 세우고 꼭대기에는 단층의 누각을 올려
군사들이 머물 수 있도록 했다. 외벽에는 화포를 쏠 수 있는 구멍을 뚫어 공격 기능까지 갖추었다. - 현지 설명문 -
서북공심돈부터 깃발은 검은색으로 변합니다. 이곳서부터는 북쪽이라는 뜻입니다.
북포루,北舖樓 / 1795년(정조 19) 창건, 1975년 누각 복원.
북포루는 북서포루(砲樓)와 서북공심돈 사이에 있는 치성 위에 군사들이 머물 수 있도록 누각을 지은 시설이다.
치성은 성벽 일부를 돌출시켜 적을 감시하고 공격할 수 있도록 만든 시설물이다. 화성에는 모두 15곳의 치성이 있는데
그중 중요한 5곳의 치성 위에 동1포루, 동2포루, 서포루, 북포루, 동북포루를 만들고 적의 동향을 감시했다.
북포루는 화성에서 가장 평탄하고 시야가 트인 곳에 있어서 주둔하는 군사의 수도 많고 규모도 크다. '군포루'라고도 불렀다. - 현지 설명문 -
이제 舖樓와 砲樓의 차이점을 아시겠죠. 砲樓는 포를 쏘는 시설이지만, 舖樓는 雉(치)에 누각을 올린 병사들의 쉼터입니다.
舖樓는 누각이므로 당연히 지상에 붙어 있지 않습니다. 舖樓에 들어가려면 계단을 이용해야 합니다.
북서포루,北西砲樓 / 1794년(정조 18) 창건, 1975년 복원
북서포루는 장안문 서쪽에 설치한 화포를 갖춘 시설이다.
화성에는 동포루, 서포루, 남포루, 북동포루, 북서포루 5곳의 포루가 있는데 주변 지형 조건에 따라 크기를 달리했다.
이 중 평탄한 곳에 지은 북서포루가 가장 높다. 포루는 벽돌로 만든 3층 구조로 아래 두 층은 화포나 총을 쏠 수 있도록 만들었고,
상층은 군사들이 적을 감시하고 공격할 수 있도록 누각을 만들었다. 북서포루와 북동포루는 안팎의 지붕 형태가 다르다.
이는 <화성성역의궤>에 수록되어 있는 각 시설물 자재 목록을 바탕으로 복원된 것이다. - 현지 설명문 -
북서포루,北西砲樓. 砲樓는 건물이 바닥에 붙어 있습니다.
북서포루를 지나면 북서적대가 나옵니다.
북서적대.
북서적대,北西敵臺 / 1796년(정조 19) 창건, 1968년 수리.
북서적대는 장안문 서쪽에서 성문에 접근하는 적을 감시하고 공격하는 방어 시설이다.
화성에는 장안문과 팔달문 좌우에 적대를 설치했는데 현재 장안문에만 남아 있다. 장안문 좌우 적대에는 현안(懸眼) 세 줄을 설치한 반면
팔달문 적대에는 두 줄을 설치했다. 현안은 성벽 가까이에 접근한 적의 동향을 살피고 동시에 공격도 가능하도록 만든 시설이다.
적대는 우리나라 성곽 중 유일하게 화성에만 있다. - 현지 설명문 -
북서적대에 있는 화포.
장안문 옹성에 세로로 길게 파인 홈을 유혈(油穴)이라고 하는데, 현안(懸眼)도 유혈과 기능은 거의 같습니다.
여장과 여장 사이, 끊어진 타구 아래쪽에는 성벽에 접근하는 적에게 기름을 부어서 공격하는 유혈(油穴)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북서적대에서 본 팔달산 정상에 있는 화성장대.
북서적대에서 본 장안문.
장안문,長安門 / 1794년(정조 18) 창건, 한국전쟁 때 문루 파괴, 1975년 문루 복원.
장안문은 수원 화성의 북문이다. 정조는 장안(長安)의 의미를 '북쪽으로 서울의 궁궐을 바라보고, 남쪽으로 현릉원(융릉)을 바라보며
만년의 편안함을 길이 알린다. 라고 풀이했다. 문밖에 항아리 모양의 옹성을 만들고 방어를 위해 좌우에 적대를 세웠다.
장안문은 남문인 팔달문과 더불어 화성에서 가장 웅장하고 높은 격식을 갖춘 건물이다.
2층의 누각은 네 모서리 추녀가 길게 경사를 이루면서 용마루와 만나는 우진각 지붕 형태다. 길고 휘어진 목재를 구하기 힘든 조선 시대에
우진각 지붕은 궁궐이나 도성의 정문과 같은 건물에만 쓰였다.
문루 처마 밑에는 다포라는 화려하고 정교하게 다듬은 받침 목재를 짜 맞췄는데,
다포식 건물은 18세기 이후 궁궐에서도 거의 백 년 동안 짓지 않았기 때문에 특별히 강원도 출신의 승려 목수인 굉흡이 와서 건설을 도왔다.
서울의 숭례문, 흥인지문과 함께 조선 시대 성문을 대표하던 장안문은 한국 전쟁 때 폭격으로 파괴되어 1975년에 다시 복원하였다.
석축에 총탄 자국이 남아 있다. - 현지 설명문 -
장안문 일대에 흐드러지게 피어난 씀바귀 꽃
수술이 까만 꽃은 씀바귀입니다.
가끔은 꽃 전체가 노란 고들빼기 꽃도 보였습니다.
안쪽에서 본 장안문.
장안문의 천장화.
옹성에서 본 장안문.
성벽에는 적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고 효과적으로 공격하도록 성벽 위에 낮은 담을 설치했는데 이를 여장(女墻, 성가퀴, 여담)이라고 합니다.
여장은 사이사이가 끊어져 있는데, 그 끊어진 부분을 타구(垜口)라고 하며, 타구로 끊어진 여장의 한 구간을 첩(堞) 또는 타(垜)라고 합니다.
타의 개수는 성벽의 길이를 가늠하는 기준이 됩니다. - 경대장님의 해설 중에서 -
북동치를 지나고 북동포루도 지나서
화홍문까지 왔습니다.
화홍문 편액의 글씨는 조선후기 영춘현감을 역임한 명필인 기원(綺園) 유한지(兪漢芝) 선생의 글씨입니다.
북수문(화홍문),北水門(華虹門).
북수문은 화성의 북쪽 성벽이 수원천과 만나는 곳에 설치한 수문이다.
일곱 칸의 홍예문 위로 돌다리를 놓고 그 위에 누각을 지었는데, '화홍문'이라는 별칭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누각은 본래 적군의 동태를 살피고 공격할 수 있도록 만든 군사 시설이지만 평소에는 주변 경치를 즐기는 정자로 쓰였다.
수문을 통해 흘러온 물이 물보라를 일으키며 장쾌하게 떨어지는 모습인 '화홍관창'은 화성에서 꼭 보아야 할 아름다운 경치로 손꼽힌다.
화홍문은 조선 헌종 14년(1848)에 수문과 누각을 다시 지으면서 형태가 약간 달라졌다. 1932년 '수원명소보전회'를 주축으로
수원 주민이 힘을 모아 10년 전 홍수로 무너진 누각을 다시 지었다. 2016년에는 <화성성역의궤>를 근거로 창문을 복원했다.
북서포루(北西砲樓)를 성 밖에서 본 모습입니다.
북수문(화홍문)과 동북각루(방화수류정)
작성자 : 칠복이
첫댓글 수원 화성
장안문등 역사적 유믈도 많고
아름다운 성벽등
정성으로 올려 주신 글과 영상들
감사히 즐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