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8일(토) 촬영.
오랜만에 수원 화성을 답사하며 안내판을 보았더니 수원 화성은 크게 4구간으로 나누어져 있다고 하네요.
즉 평지 남성, 평지 북성, 산상 서성, 산상 동성 구간으로, 이에 따르면
산상 동성은 동문인 창룡문을 중심으로 북쪽은 (동북노대)에서 (동북각루)까지 남쪽은 (동1포루)에서 (동남각루)까지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강웅 고 건축가의 견해는 공식적으로 설치한 안내판의 내용과 조금 다릅니다.
요약하면 화성을 4성으로 나누었다. 4성 경계도 4곳이다. 경계를 잘못 해석하면 시설물 수도 길이도 모두 틀리게 된다.
4성 체계 개념에 맞게 경계를 구분해야 한다. 화성 길이는 4천 600보다.
안내판에 4성 체계로 화성을 소개했다. 4성 각각에 어떤 시설물이 속할까? 그리고 각각의 길이는 얼마나 될까? 연구자마다. 견해가 다르다.
왜 그럴까? 4성 명칭과 4성 경계에 대한 개념과 정의 차이 때문이다. 먼저 4성의 명칭에 대해 정의를 내려보자.
화성에서 4성 체계는 '동성, 서성, 남성, 북성'이 아닌 것에 유의해야 한다. 4성 체계는 의궤 권 5 실입에 나온다.
실입이란 공사에 실제 투입된 돈, 자재, 인력, 장비를 말한다. 의궤에 나오는 명칭은 평지북성, 산상서성, 평지남성, 산상동성이다.
다음으로 4성의 경계선을 정의해 보자. 4성별 시설물 수, 길이 등을 정확히 하려면 4성 간 경계를 명확히 해야 한다.
4성은 실입에 기록돼 있다. 왜 하필 실입 편에 4성 체계를 만들었을까? 실입은 건설경영의 기초가 되는 기준 자료다.
정조는 자금 준비와 배분, 공정관리, 인력 배분, 품질 관리 등 경영의 기준 자료로 4성 체계를 만든 것이다. 이를 위해 산상과 평지라는
지형, 즉 난이도로 분류한 것이다. 동서남북처럼 단순한 방위 개념이 아니다. 난이도 분류가 더 합리적, 과학적, 경영적이라 본 것이다.
다만 장인, 인부 등 일하는 사람이 알기 쉽도록 지형 뒤에 동, 서, 남, 북의 방위를 붙인 것이다.
즉, 산상서성은 '산 위에 건설할 시설물'이라는 공사 난이도 개념을 우선하고 서쪽이라는 위치를 부차적으로 알려준다.
4성의 기본 개념은 공사 난이도이다. 즉 지형이다. 이 개념을 두고 경계선을 결정해야 한다.
예를 들어 평지북성과 산상서성의 경계선을 확정해 보자. 두 성이 만나는 부분에 대해
"서북공심돈 터에서 돌아 꺾여 남쪽으로 향해 15보 4척쯤 가면 화서문 터가 시작된다. 화서문 넓이가 14보 4척이다. 여기서부터는
평지가 끊어지고, 산을 타고 오른다"라고 기록한다. 이 중 "평지가 끊어지고, 산을 타고 오른다"가 중요한 단서이다.
평지에서 산으로 바뀌는 변곡점이다. 이 변곡점이 경계선이다. 화서문 남쪽 끝이 경계선이자. 따라서 화서문은 평지북성에 속한다.
이름에 방위명 '서'가 있어도 현혹돼서는 안된다. 현혹되면 화서문이 산상서성으로보는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산상서성과 평지남성의 경계선은 남은구 서쪽이다. 따라서 남은구는 평지남성에 속하고 남포루와 남치는 이름에 '남'이 붙어 있어도
산상서성에 속한다.
이를 기준으로 4성 각각의 길이를 계산해 봤다.
평지북성은 737보 4척,
산상서성은 1천193보4척,
평지남성은 282보
산상동성은 1천751보다. 4성 체계 의궤 기록과 일치한다. 합은 3천964보2척이다.
이 수치를 보고 왜 화성 길이 4천600보와 다르냐고 의문을 제기할 것이다. 4성 체계는 원성 길이만 기록한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곡성 길이 635보4척을 합하면 정확히 4천600보가 나온다. - 이강욱 고 건축가의 글 중에서 -
동북각루(방화수류정,訪花隨柳亭)
동북각루는 화성 동북쪽 요충지에 세운 감시용 시설이다. 용두 바위 위에 각루를 우뚝 세워 주변을 감시하고 화포를 쏠 수 있도록 했다.
군사시설이지만 아름다운 연못과 함께 있어 경치를 즐기는 정자로 많이 쓰였다. 정자의 별칭은 방화수류정이다.
정조는 이를 '현릉원이 있는 화산과 수원 읍치를 옮긴 땅 유천을 가리키는 뜻'이라고 풀이했다.
방화수류정에는 온돌방 한 칸이 있었다. 보통 군사들의 휴식을 위해 각루 1층에 온돌방을 만들었는데 방화수류정에는 임금을 위해
2층에 온돌방을 두고 창문을 설치했다. 조선 정조 21년(1797) 정월, 정조는 방화수류정에서 활쏘기를 하고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를 읊은 시를 지었다. 지금은 온돌방과 창문이 사라졌지만 원형의 건축물이 잘 남아 있다. - 현지 설명문 -
방화수류정에서 본 동북포루. 방화수류정에서부터 동쪽을 상징하는 파란색 깃발이 달렸습니다.
북암문,北暗門 / 1796년(정조 20) 창건, 1972년 수리.
북암문은 화성 북쪽에 낸 비상 출입문이다.
암문이란 깊숙하고 후미진 곳에 설치하여 적이 모르게 출입하고 군수품을 조달하던 문을 의미한다.
화성에는 5곳의 암문이 있었는데 모두 벽돌로 만들었다. 북암문은 지형에 맞춰 좌우 성벽까지 벽돌로 둥글게 만들었다.
문 위에는 몸을 숨기고 적을 감시하기 위해 여장을 세웠는데 반원형은 원여장, 장방형은 비예라고 부른다. 축성 당시의 모습이 잘 남아 있다.
수원 창성사지 진각국사탑비 / 1386년 건립, 1965년 이전. 보물
창성사지 진각국사탑비는 고려 말 승려 진각국사 천희(千熙 1307~1382)의 생애와 업적을 기록한 탑비이다.
천희는 13세에 불교계에 들어섰고, 57세라는 늦은 나이에 중국 유학을 결심하여 1364년부터 2년간 원나라에서 선종을 공부하고
돌아왔다. 그는 귀국 후 국사(國師)에 봉해져 영주 부석사를 보수하는 등 고려 말에 활약하였다.
천희가 76세가 되는 우왕 8년(1382)에 광교산 창성사에서 입적하자 고려 우왕이 진각국사라는 시호를 내려 줬다.
이색이 비석의 글을 짓고, 승려 혜잠이 글씨를 새겨 우왕 12년(1386) 창성사에 탑비를 세웠다. 탑비는 비좌, 비신, 옥개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고려 후기 비석의 소박한 형태로 글씨 또한 기교를 배제하여 투박하지만 정제된 멋을 보여 준다.
광교산 기슭의 창성사 절터에 방치되어 있던 탑비를 1965년 6월에 현재 자리로 옮기고 보호각을 지어 관리하고 있다. - 현지 설명문 -
동북포루
동북포루,각건대(角巾臺) / 1796년(정조 20) 창건, 1978년 누각 복원, 2019년 누각 복원.
동북포루는 방화수류정과 동장대 사이 치성 위에 군사들이 머물 수 있도록 지은 시설이다.
화성에는 모두 5곳의 포루가 있는데, 동북포루는 지붕의 모습이 조선 시대 선비들이 쓰던 각건이란 모자와 비슷해 보여서 '각건대'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동북포루는 다른 포루에 없는 시설을 갖췄다. 여장과 건물 사이를 벽돌로 채워서 벽등이라는 단을 만들고,
누각의 계단도 벽돌로 만들었다. 지붕 양 끝에 올린 용머리 모양의 장식 기와 역시 동북포루에서만 볼 수 있다.
동북포루의 특징을 살려 2019년에 다시 복원했다. - 현지 설명문 -
동암문,東暗門 / 1796년(정조 20) 창건, 1976년 복원
동암문은 화성 동쪽에 낸 비상 출입문이다. 암문이란 깊숙하고 후미진 곳에 설치하여 적이 모르게 출입하고 군수품을 조달하던 문을 의미한다.
화성에는 5곳의 암문이 있었는데 모두 벽돌로 만들었다. 동암문 상부에는 윗부분을 둥글게 만든 원여장을 설치했고,
좌우에는 네모난 비예를 세웠다. 비예는 암문 위에서 몸을 숨기고 적을 감시하기 위해 만든 여장이다.
성 안쪽에 도로가 생기면서 지형이 높아져 1976년 동암문 복원 시 계단을 추가했다. - 현지 설명문 -
지쳤나 봐요, 모두가 계단을 바라보기만 할 뿐 내려가 볼 생각은 없는 것 같네요.
몸을 숨겨야 할 원여장과 비예 사이로 내려다 보기만...
길이 막혔다고 해도 굳이 올라가더니,
다시 내려옵니다.
동장대,東將臺.
동장대는 장수가 군사 훈련을 지휘하던 곳으로 '연무대'라고도 불린다.
화성에는 두 곳의 장대가 있는데 동장대는 평상시 군사들이 훈련하는 장소로 쓰고, 서장대는 군사 훈련 지휘소로 썼다.
동장대는 대지 전체를 3단으로 나누고 마당 한가운데에 장수가 말을 타고 오를 수 있도록 경사로를 만들었다.
본래 전면은 개방하고 나머지 삼면은 벽이나 창문을 단 형태였으며, 가장 안쪽에 온돌방 한 칸이 있었다. 건물 뒤쪽으로는 수키와로
담장을 꾸민 영롱장이 있다. 정조는 동장대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음식을 내려주는 호궤 행사를 베풀었다.
화성 축성이 마무리되던 시기인 1796년 8월 19일, 감독관과 일꾼 등 2,700여 명이 호궤에 참여했다. - 현지 설명문 -
동장대를 나와서 동북공심돈과 동북노대
그리고 동문인 창룡문은 통과했습니다.
창룡문 앞 광장에서는 연날리기가 한창입니다.
동일포루,東一舗樓 / 1796년(영조 20) 창건, 1979년 복원
동1포루는 창룡문 남쪽에 있는 치성 위에 군사들이 머물 수 있도록 누각을 지은 시설이다.
화성에는 모두 15곳의 치성이 있는데 그중 중요한 5곳의 치성 위에 동1포루, 동2포루, 서포루, 북포루, 동북포루를 만들고
적의 동향을 감시했다. 동1포루는 지형이 평탄하고 조망이 트인 곳에 있어서 적의 움직임을 잘 살필 수 있는 구조로 만들었다.
치성을 길게 내밀었으며, 다른 포루와 달리 기둥 사이에 벽을 치지 않고 사방을 개방했다. - 현지 설명문 -
동1포루.
동일치,東一雉 / 1796년(정조 20) 창건, 1979년 복원.
동1치는 동1포루와 동포루 사이에 성벽을 돌출시켜 쌓은 치성이다.
성벽 가까이 접근하는 적을 감시하고 공격하는 역할을 했다. 치는 꿩을 말하는데, 꿩이 몸을 잘 숨기고 엿보기 잘하는 특성이 있어
이런 이름을 붙였다. 성벽에 8곳, 용도에 2곳의 치성이 설치되어 있는데 지형에 따라 형태가 조금씩 다르다.
동1치는 평탄한 지형에 위치하고 있어 주변을 조망하기 위해 규모를 크게 만들었다. - 현지 설명문 -
동1치 아래에 있는 민가에 장미꽃이 만발했는데, 그 색이 너무도 아름다워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으려고 줄을 섰습니다.
날아가던 새들도 웬일인가 싶은지 전깃줄에 앉아 구경하고 있습니다.
장미꽃이 정말 아름답죠.
동네 아주머니들은 이 모습이 더 신기한지 의자에 앉아 사람 구경을 하고 있네요. ㅋㅋㅋ
동포루,東砲樓 / 1796년(정조 20) 창건, 1979년 복원.
동포루는 동1치와 동2치 사이에 지은 화포를 갖춘 시설이다.
화성에는 동포루, 서포루, 남포루, 북동포루, 북서포루 5곳의 포루가 있는데 보통 평지에서는 규모를 키우고 경사지에서는 규모를 줄였다.
<화성성역의궤>에는 균일하게 설계되어 있지만 지형과 주변 여건에 따라 규모와 각층의 높이를 달리 만든 것이다.
동포루는 산상 동성 구간에서 비교적 평평한 곳에 있지만 주변 성벽이 높지 않아 작게 만들었다.
남포루와 마찬가지로 1층과 2층은 낮고 누각이 있는 3층은 높이 3m 이상을 확보했다. - 현지 설명문 -
동이치,東二雉 / 1796년(정조 20) 창건, 1979년 복원.
동2치는 동포루와 봉돈 사이에 성벽을 돌출시켜 쌓은 치성이다. 성벽 가까이 접근하는 적을 감시하고 공격하는 역할을 했다.
성벽에 8곳, 용도에 2곳의 치성이 설치되어 있는데 지형에 따라 형태가 조금씩 다르다. 동2치는 1979년에 화성을 복원하면서 다시 쌓았다.
본래 성돌이 붉은 색을 띤 반면 새로 쌓은 곳은 가지런히 다듬은 흰색 돌로 만들어져 있다.
치성 좌우에 있는 옛 성돌에서 돌을 뜨기 위해 정을 박은 흔적을 볼 수 있다. - 현지 설명문 -
봉돈,烽墩 / 1796년(정조 20) 창건, 1971 수리.
봉돈은 봉화 연기를 올려 신호를 보내는 시설이다. 보통 봉화대는 높고 인적이 드문 곳에 두었으나 화성에서는 시야가 트인 동쪽에 설치해
화성행궁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봉돈은 외벽과 내부, 계단에 이르기까지 전체를 벽돌로 만든 화성의 대표적인 벽돌 건축물이다.
높게 쌓은 대 위에 횃불 구멍인 화두 다섯 개가 있다.
평소에는 남쪽 끝에 있는 화두 한 곳에만 연기를 올리고, 상황에 따라 연기의 숫자를 증가시켜 전쟁 시에는 다섯 곳 모두 연기를 피웠다.
*봉수제도 - 변방에서 일어난 위급한 일을 낮에는 연기, 밤에는 횃불을 이용하여 서울로 연락하는 군사 통신제도 - 현지 설명문 -
동이포루
동이포루, 東二舗樓
동3치
동삼치,東三雉
동남각루에서 파란 깃발은 빨간 깃발로 바뀐다.
오늘의 일정을 이곳에서 마칩니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동남각루,東南角樓 / 1796년(정조 20) 창건, 1979년 복원, 2019년 해체 수리.
동남각루는 화성 남쪽 요충지에 세운 감시용 시설이다.
화성에는 모두 4곳의 각루가 있다. 동남각루는 남수문에서 동쪽으로 솟아오른 경사지에서 성벽이 휘어진 곳에 있다.
이곳은 풍수에서 안산에 해당하는데, 봉우리가 일-자 모양처럼 평평하여 일자문성(一字文星)이라고 불렀다.
서북각루와 같은 구조로 아래층 군사들이 머무는 방에는 온돌을 놓았고 위층은 마룻바닥으로 만들었다.
사면에 짐승 얼굴과 태극무늬를 그린 널빤지 문을 달고 활 쏘는 구멍을 냈다. - 현지 설명문 -
1층에 있는 아궁이
수원천 위로 남수문이 보입니다.
산상 동성, 山上 東城
산상 동성은 화성을 축성하면서 네 구간으로 나눈 성벽 중에 완만한 경사지를 낀 동쪽 성곽이다. 네 구간 중에 길이가 가장 길다.
동문인 창룡문을 중심으로 북쪽은 동북노대에서 동북각루(방화수류정)까지, 남쪽은 동1포루에서 동남각루까지 모두
16개의 시설물을 아우른다. 이곳은 지형이 완만하게 경사를 이루다가 동북공심돈에서 가장 높아지는데,
특히 창룡문에서 동남각루 사이는 일 - 자에 가까워 풍수에서 일자문성이라 불린다.
동성 구간에서 눈여겨볼 시설은 벽돌로 쌓은 원통형의 동북공심돈과 동북쪽 성 안쪽 평탄한 곳에 자리 잡은 동장대,
용두 위에 우뚝 서있는 동북각루(방화수류정)와 봉화를 피워 주변과 통신을 하던 봉돈이다. - 현지 설명문 -
작성자 : 칠복이
첫댓글 감사합니다 _()_
장미꽃이 정말 아름답고
기품이 있습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