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인 최초 카우보이!
조선인 최초의 카우보이가 거문도에서 나왔다는 제보가 있다. 공식적으로 확인은 되지 않았지만 정황으로 봤을 때 거문도의 김윤삼씨가 그 사람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는 또한 조선의 일반인 중 처음으로 영어회화를 배운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아직까지도 그 당시 배운 영어 몇 마디를 아는데 ‘커팅 글라스 차오 차오’ 는 풀을 베어 소에게 먹이라는 소리요 ‘미식이 차오’는 밥 먹으라는 소리라고 하였다. 뭐 어원을 따져 볼길은 없다만.. 그랬다는데 어쩌겠는가? 또 그는 한 늙은 영국수병에게서 배운 소몰이 노래도 기억하고 있다. 그 수병은 하얀 개벽지 꽃이 많이 피는 들녘에 집을 짓고 살았다고 하는데, 30여 마리를 소를 아주 능숙하게 몰았다고 한다. 그는 김윤삼씨가 아들과 동갑이라고 아주 귀여워하며 이따금씩 가족사진을 꺼내놓고 향수에 젖어 눈시울을 붉혔다고 한다.
그에 말에 의하면 영국수병들은 예의가 발라서 동네의 샘에서 물을 퍼먹고는 반드시 마신 바가지 수만큼 은전을 놓고 갔다고 한다. 하;;;;;;; 쩝.
또 어느날은 통영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내일 졸라게 시끄러운게 알아들 두소’
라고 하여 첨엔 먼소린가 하였는데 영국여왕의 생일이라 하여 하례를 올린다는 것이다. -가지 가지 하는구나.;; 근데 솔직히 멋있다.- 그래서 그다음날 온 섬주민이 아침을 빨리 해먹고 영국함대가 정박해 있는 곳으로 구경을 나갔다 -왠지 귀엽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본 필자 뿐인가?;;- 김윤삼씨는 그때의 함포소리를 잊지 못하고 흥분을 하면서 설명하였다 한다.
이 소리에 온 섬의 개새끼란 개새끼가 다 놀라서 가출(家出)을 하였는데, 3~4일이 지나도 복귀하지 않는 나쁜 개새끼가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영국해군은 대민관리 차원에서 온 섬을 수색하여 개새끼들을 찾아다녔다 하니... 정말 시바 어디나라 행정부랑은 차원이 다르지 않는가?
<소몰이하는 영국군>
그건 그렇고 엘리자베스 누나는 지 생일날 2역만리 동방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으리라고 상상이라도 했겠는가? ㅋㅋ 김윤삼씨 말로는 확실히 러시아나 프랑스 수병들보다 영국수병들이 군기가 잘서있었다고 하니 역시 아무나 짱먹는 건 아닌가 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무리 외국놈들이 드나들었어도 그쉐리들한테 얼간이 짓거리는 하지 않았다. 굶었으면 굶었지..’
하여 자존심을 나타내었다. 이것이 조선이라는 국가관을 전제로 하지 않았다는 것은 또 짚고 넘어가야할 문제이다.
<초가마당에서 맨발로 절구질하는 부자의 모습. 등에 담뱃대를 꼽고있다.>
<지게진 거문도 얼짱 총각!>
<복장이나 얼굴 표정, 안경을 쓴 품위 있는 모습으로 거문도 지도자 또는 촌장일 것이다.>
<군함 HMS Daring호를 방문한 거문도 주민대표들>
<'따부'라 부르는 야산을 개간하는 농기구를 사용 중인 남자.>
<거문도에서 촬영한 유일한 여자. 맹인부부로 보인다.>
<초가집에 모여 수병들과 포즈를 취한 거문도 주민들>
<서도에 있는 대장간. 거문도에는 철광석이 없어 쇠붙이를 녹여 연장이나 생활용기를 만들었다.>
◆ 영국군의 철수. 그리고 제국 정부의 실망스런 대응.
1885년 영국군이 거문도에 주둔한지 2년 뒤, 영국군은 전면적으로 거문도에서 철수를 시작한다. 정부는 영국군이 2년 만에 철수한다고 하니 뛸 듯이 기뻐했고, 경략사 이원회를 거문도로 파견하여 철퇴 여부를 조사케 했다. 이원회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모둔 영국군이 철수한 후였고 거문도는 쓸쓸하기 한량없었다.
주민들은 전날의 풍요로움을 아쉬워했다. 이제 그들에게 남은 것은 부역뿐이니 치밀어오르는 짜증은 남달랐을 것이다. 이런 판에 경략사 이원회는 눈치 없이
‘그동안 여러분은 영국 해적에게 손해를 많이 입었소. 이것은 우리나라가 아직도 대외적으로 약한 까닭에 생겨난 사건이오.’
-이 사람은 본 필자가 봤을 때 완전히 막힌 사람은 아닌듯하다 피지배층에게 지배층의 약점을 밝히는 것은 쉽지 않으니 말이다.-
섬사람들은 서로 돌아보며 수군거렸다.
‘우리가 무슨 손해를 입어? 도리어 득을 보았는데, 경략사가 우릴 부역시키려는 수작이야!’
‘이제부터 우리들이 이 작은 섬을 지켜야 하오. 여러분들은 이 나라를 지키고 발전을 생각하고 적을 방비하기 위해 이 섬에 진지를 만들어야 하오.’
이때 한 대표자가 나서며 말했다.
‘사또, 사실 우리는 고생하지 않았소. 잘 지냈소이다. 우리들은 너무 힘든 일은 하고 싶지 않소. 전에 서양 사람들은 우리들에게 노임과 먹을 것을 주고 일을 시켰소. 아무리 나랏일이라지만 거저는 이하지 않겠소.’ -매우 중요한 발언이다. 이들은 교육과 新 정보들을 받아들이기 힘든 외딴 섬의 주민들이다. 이런 그들이 자체적으로 뭐가 뭔지를 인지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미 이들은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에 얽매일 수 없는 그 무엇인가를 깨달았다. 그리고 이것은 동시대 아니 그 이전부터 조선팔도의 모든 백성들이 깨달아 가고 있었던 것이다.
‘조선의 나라님! 그가 우리보다 높은 사람이지만 우리 위에 있는 것은 아니다!’
거문도는 영국 해군과의 조우로 그 개념이 좀 더 구체화 됐을 뿐이다. 혹자들은 일본의 강점기가 없었다면 조선의 민주주의는 매우 늦어졌을 거라 말하지만... 그에 대한 답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조까라 그래라’-
그러면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서...
모두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떠들어대니 이원회도 어쩔 수 없었다. 이원회가 서울로 돌아와 국왕께 백성들의 원성을 그대로 주상했다.
‘그럼 그섬을 오래도록 점령하라고 할 것을 그랬지. -시바- 하지만 국가의 체면상 안될 말씀이외다. 그럼 어디 다른 나라에 주었으면 좋겠는데, - 음..그렇지 잘들논다.- 듣자니 미국이 우리나라와 친하겠다고 한다는데 그들에게 세주는 것이 어떨지요?’
여기서 우리의 못난 왕은 역시나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그래?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라’
‘그래?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라’
‘그래?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라’
‘그래?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라’
‘그래?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라’
그래?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라’
<니네땅이라고 옆집 땅아니란게??;>
지엄하신 어명이다! 지엄하다 못해 온몸에 소름이 돋는 어명이지.
....................하... 이랬다. 조선말 19c의 우리나라가 이랬단 말이다. 처음 이 자료를 접하고 피어오르던 분노.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아무리 그대로 지 땅이다. 지기 백성이다. 아무리 나라가 힘없고 개판 되가는 상황이라지만 최소한 정말 최소한의 대안이라도 강구해보는 ‘노력’이라도 비춰야 되지 않는가?
왕을 떠나서 남자라면 꼬라지라도 있어야 되지 않는가 말이다!! 헌데 그는 오히려 영국군이 알아서 철수해주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기뻐하였다.
‘영국정부가 신의를 잃지 않았다는 사실을 세상에 보여 주었다. 영국과의 우의는 더욱 두투워졌다....’
조선정부는 오히려 영국정부에게 이렇게 감사의 메시지를 보내었다. 또한 국왕은...
‘영국군이 철퇴...(어찌고...저찌고) 영국의 거문도점령 문제를 둘러싸고 어지럽게 일어났던 논의는 그치게 되었다. 어찌 나혼자만의 행복이리오.’
생각해보자. 지금 독도를 일본이 2년간 강제 점령하다가 이용목적이 사라져 돌아가는 판에 한국정부가 거기다 데고 이런 식으로 발언했다 생각해보라. 아무리 그 당시 힘없는 나라사정을 감안하고 돌아가는 국제정세에 불필요한 적을 만들지 않기 위한 약소국의 서러움이라지만...
최소한의 자존심이라는 게 있지 않은가? 그조차 팽개쳐가며 -아니 솔직히 애초에 지배층이라는 작자들에게 그런 게 존재했는지도 의문이다.- 기고 들어가는 것은 오히려 ‘병신’으로 보이기 십상이다. 반만년 유구한 역사의 한민족이... 그 수많은 침략의 역사들로 점철된 반만년 동안 밟아도 밟아도 다시 올곧게 피어오르던 그! 민족이, 그 말 많았던 임진왜란, 기타 전란도 어찌되었던 깡으로 악으로 정말 막판 개꼬라지로 물리쳐내었던 민족이 한민족이었다. 그런 민족정신과 민족성이 있었건만...
‘이때에는 아~~무 것도 없다. 그 어떤 자존심도, 역사관도, 국가관도, 하다못해 남아로써의 긍지와 배알도 없다. 그냥 밟으면 밟혔고, 때리면 맞았으며,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격분해라. 격분해야 한다. 한국인이면 한민족의 피가 흐른다면 응당 격분할 사건이다. 자국의 영토가 아무리 러시아의 남하를 견제하기 위한 수단이라 해도 타국에 불법적으로 무력점령 당했는데 그것이 어떻게 정당화 될 수 있단 말인가? 또한 사후처리 과정에서도 정작 피해자인 우리의 목소리는 그 누구도 신경써주지 않았다. 이건 서러운 거다. 무기력한 거다.
자국의 영토가 강제점령당하다가 그 점령군이 물러나는 상황에 거기다데고 한 나라의 국왕이 감사의 표시를 해야 했던 민족의 설움이다. 역사의 비극이기도 하다. 이를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기회가 됐으면 한다.
◆ 마치며...
짧지만은 않은 장문 읽어주느라 독자들 모두 고생했다. 필자는 독자들이 이 글속에서 무언가 얻어 가는 것이 있었으면 한다. 필자의 글체가 좀 장난스럽고 진지하지 못하다. 그것은 장문의 글을 인터넷에 기재했을 때 많은 수의 독자들이 그 분량을 읽기에는 부담이 될뿐더러 실증을 내버린다. 아무리 좋은 글이라 해도 사람들이 흥미를 가지고 읽어주지 않으면 아무런 쓸데가 없는 것이다. 때문에 나름 재주를 살려 지루하지 않게끔 글을 쓰고 있다.
그렇다고 그 내용마저 가볍고 장난스럽다 생각하지는 않는다. 지금까지 몇 안 되는 글들이었지만 모두 쓸 만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자부한다. 이번편인 ‘거문도 사건’ 에 대해 다루어 볼 생각을 한 것은 학교 도서관을 배회하던 중 ‘박영숙 편저의 서양인이 본 꼬레아’ 라는 책을 발견하면서 부터인데, 흥미를 가지고 읽던 중 거문도 사건이 눈에 들어왔다.
이것이 처음에는 그저 그러려니 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쓴웃음과 허탈함이 몰려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이 참담했던 현실을 보다 많은 이에게 좀 더 쉽게 알려주고 싶었다. 왜냐?!!
과거를 알아야 미래가 있다. 무슨 반만년 역사의 긍지고 대륙을 말달리던 기상이고 뭐건 간에 불과 한 세기 전에는 이랬단 말이다. 다시 그렇지 말라는 법이 있는가?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허물어져가는 어언 5백년 역사의 한 왕국을, 그 무너진 국가의 백성들의 삶을. 그리고 그 백성들이 바로 우리의 조상이란 것을 말이다.
아무리 우리가 국가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역시 한국이지, 그래봤자 한국이지, 우리나라가 하는 게 다 그렇지 뭐... 하면서 갖은 비난을 다 해 데도! 결국 그 못난 국가가 없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다. 정말 길바닥의 한 줌 먼지 같은 취급을 받을 뿐이다.
굳건한 국가가 없으면 우리에겐 그 어떤 자부심도 긍지도 없다. 그리고 그 굳건한 국가의 기반은 바로 우리다! 여기서 그냥 쉽게 ‘그러니 더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여 강국을 만드는 역군이 되자!’ 해버리면 나야 좋다. 허나, 그런 식의 전근대적인 결말은 싫다.
생각을 해라! 뭐 같은 국가지만 어쨌든 나의 조국(祖國)이다. 반만년이 넘는 세월 우리조상의 숨결이 깃들어진 곳이다. 이글을 여러분이 어떻게 읽고 어떻게 판단할지 필자는 모른다. 하지만, 필자가 느꼈던 그 감정을 여러 독자도 느끼길 바라면서 결말은 독자들 스스로가 내보길 바란다.
필자를 잘아는 몇몇 훼원은 ‘그래... 니가 여까지 쓰느라 귀찮았구나~’ 하겠지만, 그리고 일부분 인정한다마는 스스로 한번 무엇이 국가관이고 자긍심인지 정립해보았으면 한다. 그럼 여기까지 읽어주어서 정말 감사하다^^
<그가 저토록 당당히 바라보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가? 바로 그의 모든 것을 바쳐 지켜낸 조국이다!!>
<조선말의 한 노인이 광개토대왕비 옆에 서있는 장면이다. 쓰러져가는 유약한 국가의 한 백성으로써 그중에서도 저곳으로 밀려온 저 노인은. 대륙에 아련히 드리운 제국의 그림자를 간직한 광개토대왕비 옆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기억해둬라. 우리 민족역사의 한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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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한 4~5일 한거 같네요^,^ 개인시간 쪼개 쓰다보니까 의외로 길어졌습니다^^ (결국은 AGS때문이건만;;) 어쨋든.. 하 후련합니다. 올리고 나니 ㅋㅋ 그럼 또 다음 게시물에서 만나요^^ ㅎㅎ
사진 및 인용자료 출처 : 네이버 자료
서양인이 본 꼬레아, 박영숙 편저, 삼성언론재단
첫댓글 서양인이 본 꼬레아 그 책 저차는 영국수병과 조선처녀의 혼혈아를 주제로 소설을 쓸려고 한다던데 관심없어서 어떻게 됬는가 모르겟네요-_-;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조선의 멸망에 부정에 찌들어 없는 개념까지 없어져 버린 지배층의 뻘짓이 한 몫 당당히 했었네요;;
좋은 글이긴 한데.. 열등감이 다른 방향으로 표출된거 같기도 하다는.
소개된 내용으로만 봐서는 열등감인것 같기도 하고 오히려 살짝 애국심으로 포장하고 서양세력의 침략을 정당화 시켜주는 그런 책 같네요. '일본의 조선 점령은 조선의 문물을 발전시켰다' 마치 이런 논리 같게 느껴집니다.
흠. 그런 식의 논지는 없습니다. 단지 거문도 주민들의 생활이 조선정부의 치하때보다 윤택해졌다? 정도구요 그건 엄연한 사실이었죠. 그리고 이를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는 조선정부에 대한 그리고 우리 역사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는 책입니다^^
당시 영국의 대부분의 식민지는 영국이 필요한 원자재를 생산 하도록 강요 받았고 식민지 대부분의 부는 영국으로 이동되어졌다는 사실과 군사기지확보 이후 예상되어지는 조선 식민지화에서 조선인 대다수가 거문도민처럼 영국 군인들이 제공하는 캔 음식과 의료혜택을 받지 못했을거라 생각 되네요. 영국군이 철수한 후 거문도는 쓸쓸해졌다라..어이가 없군요.
논지를 잘못이해하신듯 한데. 영국군에 의한 조선식민지화? 이런게 아닙니다. 강제점령기간동안 예상박으로 영국군과 거문도 주민이 상호협조하며 잘살았다는 것이고 영국군이 철수한후 거문도 주민들 사이에서 조선정부보다 영국군이 낳다는 소리가 나온것역시 사실이며 미국에 넘겨달라는 말한것도 역시 사실입니다. 조선정부는 이 사건 초기부터 시작하여 끝날때까지 제대로된 대응도 하지 못합니다. 책은 그런 역사적 비극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왜 그런문제가 일어났는지 알려주는 논지를 취하고 있습니다. 타국의 침략을 정당화 한다거나 뭐 그런거는 전혀;;
열등감이라는 뉘앙스는 느끼지 못했고 무능한 조선정부에 대한 실망만 느꼈었는데 말입니다. 흠
영국군이 거문도에서 신사적으로 행동한 것은 사실입니다-_-;
아놔~ 닭햏!! 내가 글 쓰려고 모아 놓은 짤방을 다 써버리면!!! 아놔~~
ㅋㅋ 아무래도 겹칠거 같아 다 퍼부어 버렷오 이번 작에다가 ㅋㅋㅋㅋ;; 미안하오 그래도 많이 남았잖소? ㅋ
두두님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시는건 아닌지.... 잘 읽었습니다
제가 보기엔 단위부대에서 이루어진 성공적인 대민활동을 결과를 일반화시켜 지나치게 영국에게 우호적인 내용으로 쓴것 같아보이는데요. 좋은 부대였었고 조선말 정부의 무능함이 겹쳐서 더 돋보였다 할지라도 거문도를 점령한 영국군과 아편전쟁을 일으킨 영국군이 전 그다지 다르지 않다고 생각되어지네요.
전 그렇게 다르다고 생각됨. 거문도 점령해서 윗글대로 아무런 약탈없이 도민들에게 우호적으로 대해준 것만 해도 칭찬받아야하는데여... 미개한 동양인들이라고 무시하고 깔보고 그 사회의 암묵적인 룰도 안따르고 하는 것보단 당연히 칭찬받을수있다고 봄. 평화시의 군대와 전쟁시의 군대를 같게 생각하지 마세염. 그러면 지금 중동에서 평화유지하면서 재건활동하는 한국군하고 베트남에서 전투를 치뤘던 한국군하고 같나요. 이 글로 거문도 영국군을 칭찬하는 기색이 있지만 그게 어딜봐서 서양세력의 조선 식민지화의 정당화가 되는지 참 궁금하네여.
영국군은 실제로 거문도에서는 신사적인 행동만 했나요? (음... 뭐... 강간, 약탈, 등의 행동은 일절 없었구요?)
거문도 주민스스로가 없다고 인정했죠.
쏘울님은 거문도를 점령한 영국군을 중동에서 평화유지 활동을 하고 있는 한국군에 비유하신 듯 한데요. 두부대 성격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영국군은 다른나라 영토를 무단 점령한 침략군이닌까요. 본문의 가장 단점이 영국군을 침략군이 아닌 다른 성격의 부대로 인식하게 한다는 점입니다. 여러 사실을 나열했지만 오히려 사실을 왜곡한다고 할까요?
악마군을 천사군으로 호도한다는 말씀 같으신데... 사람 살다보면 저럴때도 있습니다. (지휘관 재량, 행동수칙, 정책 등에 따라 다릅니다) 그래서 전 성무선악설을 믿습니다 (응?)
무단으로 점령해서 침략을 하긴 했지만, 그 침략이 오히려 피지배계층한테서의 지지를 받는다면 별로 태클 받아 마땅할 부분은 없어보입니다. 물론 중동에 간 한국군하고 무단점령한 거문도의 영국군하고는 성격이 전혀 똑같지는 않습니다만 베트남과 중동에 파병된 한국군의 예로 두두님이 언급하신 아편전쟁의 영국군과 거문도의 영국군. 즉 지금 사건이 서로 비슷하게 대조될 수 있다는 걸 말씀드린겁니다.
흠. 왜곡된 사실은 없습니다. 두두님께서 본문을 어떻게 읽고 느끼신지는 모르겠으나. 왜곡된 사실은 전혀 없구요. 거문도에서 있었던 사실 그대로를 적었습니다. 현재 거문도에 거주하시는 90세이상 노인분들도 영국군에 대한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군요. 침략군이었다는 것은 변함이 없으나 정작 중요한 거문도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안했다는 거죠;; 저는 침략군인 영국군보다 무능한 조선조정에 더 화가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