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30대의 아이 하나 낳고 나름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주부입니다.
가슴이 답답한게 어떻게든 풀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아 글을 씁니다.
너무나 길어서 읽기 귀찮으실 지도 모릅니다.
전 다만 제 마음에 담겨져 있는 이야기를 누군가가 들어줬으면 좋겠습니다.
긴 대답이나 장문의 위로까지도 바라지 않아요.
그냥 "넌 열심히 살았어."라는 이야기가 듣고 싶어요.
제가 하고싶은 이야기는 제 친정 이야기입니다.
전 어릴 적 기억이 나름 또렷하게 남아 있는 편입니다. 유치원 다니기 직전의 기억까지도 나니까요.
그런 기억이라고 해도 자전거 타던 기억이나 햇살 아래에서 모래놀이하던 잠깐의 기억 정도입니다.
그 중 정말 강렬하게 남아 있는 기억이 있습니다.
때는 초등학교 1학년 초여름이라고 기억합니다.
설겆이하시는 어머니 옆에 서서 씽크대에 기대어 대화하는 모습이 그 기억의 처음입니다.
당시 아버지 친구분의 집에 기르던 개가 있었는데 며칠 전 방문하였을 때 강아지를 낳았었나 봅니다.
제가 엄마에게 "엄마, **아저씨 집에 있던 개 말이야. 그 개 새끼들은 누가..."
여기까지 말하는 순간 퍽하는 충격과 함께 전 뒤에 있던 냉장고에 머리를 부딪히며 나동그라 졌었습니다.
너무 아파 울면서 올려다보니 아버지더군요.
"이 **. 어디서 아빠 친구를 개**라고 불러? 이게 미**!!!"
전 울면서 아니라고 아니라고 내가 아저씨를 왜 그렇게 부르냐고 울면서 어머니를 찾았습니다.
그때 당시에 어릴 적의 제가 갑자기 강아지라는 단어가 기억이 나지 않았었나봅니다.
그게 잘못이라면 잘못이었을까요.
어머니 또한 아니라고 그렇게 말한 거 아니라고 말렸지만
아버지께서 "입닥쳐! 주** 나불대지 마라!!"라며 절 방으로 끌고가 주먹으로 머리를 내리치셨습니다.
교묘하게도 머리카락이 있는 부분만 말이지요. 멍들어도 표시나지 않게끔....
한참을 때리다가 제가 너무 심하게 울자 열려있던 창문이란 창문을 모두 닫더군요.
제 울음 소리가 새어나가는게 동네 창피하고 부끄럽다고요.
저때문에 집안 망신이란 소리를 욕을 섞어 가며 하시더군요.
어머니는 그 상황이 충격적인지 제대로 말리지도 못하셨습니다.
문 밖에서 조용히 기다리기만 하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여튼 그렇게 맞은 후 아무도 저를 감싸주지 않더군요. 같이 살던 할머니 할아버지 고모들도요.
누구하나 절 위로해 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다음날 머리를 감다보니 머리카락이 한주먹씩 빠지더군요.
아프고 서러워서 울었더니 아버지께서 욕실문을 발로 차 여시고는 "닥쳐!"...라고 하셨습니다.
물론 7살의 기억이 얼마나 제대로겠습니까. 어느 정도 왜곡되거나 변질은 되었겠지요.
그날은 충격적이기는 해도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서 그런지 또 어떻게 살아지더군요.
너무 어릴 적이라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질문도 스스로에게 못했던 것일 수도 있지요.
아무렇지않게 아버지에게 딸로서 애교도 부리고 주말에 놀러가서는 아버지 손도 잡고 다니고....
아버지도 그때 일이 마음에 남으셨는지 몇일은 정말 잘해주셨습니다.
하지만, 한번 그렇게 선을 넘고나니 그게 쉬웠나봅니다.
그 후 자주 맞았습니다.
하나 있는 남동생은 벌을 줄 때 회초리로 때리시거나 손을 들게 하셨지만, 전 반성하는 눈빛이 보이지 않는다.
잘못을 깨닫지 못한다, 울음을 안 그쳐서 시끄럽다는 이유로 저에게는 손을 대셨습니다.
여차하면 발로 차셨지요.
밥먹다가 아버지 발 등에 숟가락을 떨어뜨렸다고 상을 엎고 젓가락을 제 얼굴을 향해 던지기까지 하셨습니다.
기가막힌 것은 집 안에서 저에게만요. 딸인 저에게만요.
어머니까지 때리지 않으신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걸까요.
이제와서 생각해보니 전 그저 아버지에게 스트레스 풀이용 샌드백이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술을 많이 하시느냐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소주 반병도 제대로 못 드십니다.
술도 안드신 상태에서 저런 말과 폭력을 저에게 행하셨습니다.
그렇게 고등학교 입학 쯤....
무슨 일이었는지 또 아버지께서 절 내리치셨습니다.
물론 제가 뭔가를 잘못했겠지요.
눈빛이 반항적이었다던가 샤워할 때 물을 많이 썼다던가, 제 숨소리가 듣기 싫었다던가.....
그때엔 남동생이 제법 덩치도 커진 상태라 학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제가 맞는 소리를 듣고는
신발을 채 벗지도않고 아버지에게 달려들어 막아주더군요.
처음으로 누군가가 위험한 순간 나를 보호해주었다는 안도감을 느껴보았습니다.
동생은 아버지 두 손목을 움켜쥐고는 그만하시라고 누나한테 왜 그러냐고 말로 하면 안되는거냐고 소리쳐 주었습니다.
제가 아버지에게 맞을 때마다 하던 말이었지만 아버지는 제 말은 듣지 않으시고 남동생의 말은 고이 들어주시더군요.
그 후에 전 동생이 없을 때 주로 맞았습니다.
동생이 학원에 가는 시간이나 주말에 없는 시간에만요.
이유도 한결 같았습니다. 하는 짓이 마음에 안 든다고요.
제가 뭘하든 저보고는 '문디 가시나.'라고 불렀습니다. 저에게 이름은 사치였지요.
'니가 그렇지. 니가.쯧쯧.'라는 말로 제 마음에 상처를 주셨습니다.
어머니는 여전히 적극적으로 절 막아주지 못하셨습니다.
무서웠겠지요. 저도 맞으니 아프던걸요.
어머니도 이렇게 맞기는 싫으셨겠지요. 어머니이기 이전에 인간이니까 고통이 두려웠겠지요.
아버지는 그렇게 하시면서도 동네에서는 "법없이도 살 사람."이라는 칭찬을 들으시며 사시던 분이셨습니다.
전 그 가식이 싫었어요. 너무나도요. 사춘기에 들어서면서 더더욱 싫었습니다.
일기장에는 정말 말도 못할 이야기들만 가득 적어 놓았습니다.
그때에도 전 미련 곰탱이 같아서 흔히 겪는 사춘기 증상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렇게 일기장에 저주를 퍼붓고 나서는 '그래도 아버지인데...죄송스럽다.' 라는 생각으로 지냈습니다.
얼굴 마주보고 차마 애교떨고 웃지는 못했지만요.
고2때 초 쯤...
마음이 답답한 그 시절 제 나름의 돌파구를 만들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만화를 저 혼자 끄적대며 답답함의 해방구를 찾았습니다.
나름 열심히 그려 만화 잡지에 보내어 당선된 적도 몇 번있습니다.
그걸 보신 미술 선생님이 미술 쪽에 소질이 있다고 추천을 해주시더군요.
저도 관심이 있어 그쪽을 공부해보고 싶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아버지께서 말씀하시더군요.
"네가 미술에 소질있으면 대한민국 국민 절반이 화가다."라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절 무시하는 발언이었지만 그때에는 '아.. 그렇구나. 내가 무슨 미술에 소질이야.'라고 지나갔습니다.
어릴적부터 저의 자존심을 밟는 말을 습관적으로 하셨기에
그 말에 상처를 받으면서도 내가 상처를 받고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확실히 하기 위해서인지 제 방에 있는 만화 관련 물건들을 죄다 버리기까지 하시더군요.
많이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를 한없이 미워했고요.
어머니께서는 "이 때까지 평생을 제 고집 앞세워 사신 분인데 네가 참아라. 이제와서 변하시겠니?"라는 말로 절 다독이셨습니다.
그런데 대학 입시 시즌에는 저보고 디자인학과에 진학하라고 하시더군요.
.... 저 이과생이었습니다.
더군다나 실기 연습 하나도 안되어 있었고요.
몇달 자작으로 만화 끄적여 본 것이 다였습니다.
무리하게 준비하다가는 이도저도 아닌 상황이었습니다. 설명을 드렸습니다. 입시 상황에 대해서요.
그런데 아버지 말 무시한다고 화를 내시더군요.
그러면서 그러시더군요. "교대도 못 가는 주제에 꼴깞떤다."라고요.
아버지는 공무원, 교사 아니면 여자는 제 값 못 한다고 말씀하셨던 분이셨습니다.
하지만 전 수학과 물리에 자신있었기에 이과를 선택하였고요.
이과 선택한 것부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저에게 화풀이를 하시더군요.
어찌 우여곡절 끝에 공대쪽 학과에 입학을 하였습니다.
헌데.. 제가 입학한 학교가 사립대인 것이 또 마음에 들지 않으셨나봅니다.
저만보면 '할 줄 아는 것도 없는 게'라는 말을 달고 사셨습니다.
어떤 날은 제가 또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했는지 "숨 쉬는 것 빼고 잘하는 게 뭔데?"라고 말씀하시며 때리셨습니다.
이렇게는 안되겠다 싶었습니다.
동생의 등록금과 제 등록금을 한꺼번에 내게되는 시기가 되면 저에 대한 질타가 더 심해 질까 두려웠습니다.
학교 다니면서 교내 사무직 아르바이트를 하고 밤에는 제과점에서 일하며 학자금을 보태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또 보기 싫으셨나봅니다.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쓸데없는 거나 하고 쳐 자빠졌다.'라고 등록금 고지서를 보시면서 말씀하시더군요.
비교되었겠지요...
제 남동생은 국립대 진학. 거기다가 올 장학금....
뭘 하든 전 안되는 인간인 것 같았습니다. 정말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그래도 일어서야 했기에 제과점 아르바이트비 중 일부 저축 한 것으로 새벽 6시에 일본어 학원을 수강하였습니다.
마음 속 한 구석에서는 제 학과가 일본으로 진출하기 편한 학과이기도 했고 아버지에게서 멀리 떠나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새벽에 학원, 학교에서는 사무 아르바이트, 저녁에 제과점 아르바이트....
나름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학업에 열중하지 않은 것도 아닙니다.
교수님이 저보고 방학 동안 랩실에서 들어와 교수님 논문 자료도 좀 찾아주고 공부를 하라고 하실 정도였으니까요.
전체 성적은 장학금 받기 애매한 정도였으나 교수님 전공 과목은 언제나 A+,
과제나 리포트 모두 교수님이 후배들에게 참고 자료로 보여 주실 정도로 우수했었습니다.
제가 어디선가 인정받았다는 기쁨에 아버지에게 이 말을 전하니 하시는 말씀이
"교수가 니 등꼴 꽁으로 빨아 먹으려고 별 짓 다한다. 넌 돈이나 벌어라."였습니다.
그렇게 새볔에 학원에 가던 도중. 인도로 달려오던 신문배달 오토바이에 부딪히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그래도 기댈대는 가족 뿐인지라 경찰서보다는 집 전화를 먼저 누르게 되더군요.
아버지와 어머니가 차를 몰고 달려오셨습니다.
화를 내고 때릴 때는 밉지만 그래도 평소 때의 아버지를 보니 아픔과 서러움에 눈물이 나더군요.
일단 제가 병원에 가야되니 아버지 봉고차에 사고 오토바이 운전자(고2 미셩년자라 어머님을 불렀습니다.) 운전자 어머니.
그리고 저와 제 부모님. 이렇게 타고 병원으로 가는 데 운전을 하시던 아버지가 대뜸 가해자 어머니에게 그러시더군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별로 안 다쳤어요. 잘만 걷더만요.
원체 조심성 없고 앞도 안 보고 다니는 녀석이라 언젠가는 이런 사고 당할 줄 알았습니다.
허허헛.별일 아니니 걱정마세요. 병원에서도 엄살이라고 할 겁니다. 피도 안나는 데요."
......
이게 아버지가 할 말인가요.
심한 배신감에 온 몸이 떨리더군요. 아버지의 웃음소리의 톤까지 정확하게 기억이 납니다.
심한 배신감. 치욕, 그리고 내 부모도 믿지 못하겠다는 생각에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지만
아버지는 그런 것에 상관없이 비슷한 말을 계속하며 오히려 가해자쪽을 옹호해 주더군요.
어머니는 이 말을 듣고도 가만히 계셨습니다. 아버지를 말리거나 절 편들어 주지 않으시고 그저 가만히요.
병원에서는 골반이 비틀어지고 발목 인대도 늘어나고.... 이런저런 병명을 말해주었지만 기억도 나지 않네요.
다만 한달 동안 시커먼 멍이 제 왼쪽 다리 허벅지부터 발목까지 덮고 있었다는 것만 기억납니다.
아버지는 입원해 있는 병원에 오지도 않으시더군요.
오히려 새볔부터 부모 도와 신문배달하는 가해 학생이 불쌍하다며 입원비며 병원비도 안 받겠다고 했습니다.
정말... 법 없이도 사실 분이시더라고요. 딸 폭행하는 것만 빼면요.
이 사건으로 아버지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세상에 부모도 못 믿겠더군요.
졸업 후 취직을 하고 결심을 했었지요. 일년만 돈을 모아 그 돈으로 일본이든 어디든 집을 떠나겠다고요.
아버지가 여자는 집을 떠나면 안된다는 보수적인 분이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무조건 떠나겠다는 결심으로 돈을 모았습니다.
헌데....
제가 직장 생활하는 것도 마음에 안 드셨나봅니다.
회식을 하고 왔더니 여자가 회식 자리에서 술마시는 건 상사 술시중 들고 오는 거라며 때리더군요.
그래요.... 상사에게 술 따라드리는 것도 술 시중이라면 시중이니 맞았습니다.
죄송하다고 술마시고 늦어서 죄송하다고 빌고 빌었습니다.
회사 다니면서 친구들과의 술 약속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회사 회식 자리 가는 것만으로 아버지 부아를 치밀게 만드는 것이니까요.
사회가 험하니 늦게 다니는 딸 걱정하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절 때리는 이유가 제 걱정이 아니더군요.
'너 때문에 잠을 못 잔다. 내가 잠 못 자는 걸 네가 어떻게 책임 질거냐. 내일 잠 못자서 출근하다가 교통 사고라도 나면 니가 무슨 책임을 질래?'
라며 말도 안되는 억지를 부리며 욕설과 함께 절 때리시더군요.
제가 다닌 곳이 IT벤처 기업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동네 구멍 PC방 다니는 주제에 회식 자주한다. 내가 쪽팔려서 니가 어디 취직했는지 얘길 못하고 다닌다.
구멍가게 다니는 주제에 회식이 뭐냐!! 이런 말로 절 상처주셨습니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이때 아버지께서 불면증이 있으셨다고 합니다.
새로 시작하는 가게때문에 스트레스로요.
어머니께서 그 말씀을 해주시면서 "그러니까 니가 이해해라. 니가 참아야 집이 평화로워 지는 거다. 아버지가 변하겠니.
이제까지 이렇게 살아오신 분인데."라는 말을 여전히 반복하시더군요.
그러니까 전 취업을 해도 초등학교 때 그때와 똑같이 아버지에게 스트레스 해소용 샌드백일 뿐이었습니다.
회식 때마다 거의 샌드백이 되길 반복... 그러던 중 그날은 무지 짜증 지수가 높으셨나봅니다.
회식하고 돌아오니 눈에서 살의가 번뜩이고 있더군요.
맞았습니다.
평소보다도 더 심하게요.
얼굴을 주먹으로 맞아 눈 안에 있던 렌즈가 찢어져 버렸고 핏줄이 터졌습니다.
머리카락은 한 뭉텅이 잡혀서 뜯겼습니다.
가슴 명치는 니킥으로 얻어 맞아 멍이 들고 팔뚝에도 시퍼렇게 멍이 들었더군요.
그날로 짐을 정리해서 도망쳐 나와 서울에 있는 사촌집에 갔습니다. 그 후 몇년간은 부모님 뵙지도 않았고요.
그러다 여차저차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부모님이라 결혼 이야기가 오가면서 다시 왕래를 하게 되더군요.
그래도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가시질 않아 신부 입장 시 친정아버지 손을 잡고 들어가는 것을 제가 빼겠다고 하였습니다.
신랑이랑 둘이 함께 동시 입장하겠다고요.
제가 한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아신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친척 어른들 누구도 아무 얘기 안하시더군요.
제 나름의 복수라면 복수였습니다.
그러다가 복덩이 우리 아가를 낳고나니 부모님에 대한 미움과 원망이 사그라 드는 듯 했습니다.
아니, 그렇다고 생각했습니다.
신혼집 주변에 친인척이 살지 않느지라 육아에 지쳐 친정에 2주간 휴식을 취하러 내려갔습니다.
두 분다 외손주를 엄청나게 이뻐해주시는 모습을 보며 어릴 적 저의 상처를 치유받고 있다는 생각을 했었지요.
헌데....
주말에 모두 함께 나들이를 가기로 했습니다.
어머니께서 모자를 쓰셨는데 그게 또 기분을 거슬리게 했나봅니다.
모자를 벗으라고 소리를 지르시더군요. 결혼 후 제 앞에서 소리지르는 것은 처음 보았습니다.
오랜만에 보는 모습이라 갑자기 심장이 쿵...하고 떨어지는 기분이더군요.
어머니께서 '다들 쓰고 다니는 건데요.'라고 말하자 마자 "안 벗나!! 이게 확!!!"하고 손을 드시더군요.
전 너무 놀라 아버지를 쳐다보았습니다.
그러자 아버지께서 "뭘 쳐다보냐? 눈 안 까나? 확!!" 저에게 소리치시더군요.
악마같은 얼굴로 변하셔서요.
그런데 아버지 무릎에는 제 아가가 앉아 있었습니다.
큰 소리에 놀라 울먹이자 바로 아버지는
"우웅~ 그래. 아무것도 아니다. 아니야. 울지마라~ 아이구 이쁜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
저는 그 가식이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것도 내 사랑하는 자식 앞에서 행하는 저 위선에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미움과 원망이 사그라 들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헌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잠시 얇은 천으로 살짝 덮어 놓고서는 저 스스로 모른 척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걸 깨닫고 나니 너무나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바로 짐을 챙겨 아이를 데리고 KTX를 타고 도망쳐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도망치는 도중에도 아이를 보내지 않으려고 아이 팔을 붙잡으며 아버지는 저에게
"놔라!!! 내 손주다!!! 니가 애미인게 무슨 상관인데!! 내 손주 안 보낼거다!!"라며 악을 쓰셨습니다.
제가 경찰 부르면 엄마인 내가 아이 보호 자격있다고 화를 내자
"갈 때까지 해보자. 법정 갈래? 법으로 하자고!!"라고 소리를 치셨습니다.
....아버지는 딸인 저도 존중하지 않으셨고 외손주를 낳은 엄마로써의 저도 인정하지 않으셨습니다.
정말 못 볼 꼴 많이 보였습니다.
아버지는 제 아가 빼앗아서 차를 운전을 하며, 무릎에 아가를 앉힌 채로 저에게서 도망갔습니다.
겨우 차를 멈춰 세워서 아이를 데리고 왔습니다.
아버지랑 있는 곳이 지옥이라고, 다른 곳이 지옥이 아니라 가장 행복해야 할 집이 난 지옥이었다... 라고 미친 듯이 소리쳤었습니다.
저는요....
누군가가 저에 대해서 칭찬을 하면 그걸 못 견딥니다.
"왜 날 칭찬하지? 뭐가 괜찮다는 거지? 왜??"
누가 날 좋아한다고 고백하면 속으로 생각합니다.
"내가 뭐가 좋은거지? 내가 뭐가 잘났다고? 이렇게 평범한데? 내가 왜 특별하다는 거지? 이 사람 이상해."
라고 생각하며 고백한 사람에게서 도망가기 일쑤였습니다.
그때에는 내가 사랑을 많이 해보지 않아 그렇다고 생각했지만 아이를 키우며 육아서를 보고 있자니...
저... 자존감이 바닥이었습니다.
우울증 지수고 높았고요.
정말 미련하게도 누구나 다 이렇게 살고 세상 모든 부모들이 다 이렇다...라고 착각하고 살았었습니다.
그렇게 큰일이 있은 후...
며칠 후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오더군요.
전... 절 위로하고 제 마음을 보듬어 줄 거라고 믿었습니다.
어머니니까요. 나도 아이를 키워보니 어머니라는 위치는 아이를 품어 안아 줄 수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이번에도 역시...
"60평생 이렇게 살아온 사람이다. 니가 맞추는 게 편하다. 니가 이해하고 넘어가자. 잘 해 왔잖니."
....
.......
또요? 이번에는 살면서 처음으로 어머니에게 화를 내었습니다.
펑펑 울면서 미친 듯이 소리쳤어요.
뭐가 달라지냐고. 이제껏 내가 받은 상처는 누가 약 발라주냐고.
어머니도 마찬가지라고.
나는 당연히 맞아도 싼 인간이라 생각하니까 아버지에게 그렇게 후두려 맞아도 말리지 않는 거라고.
나는 인간 취급 못 당해도 내 자식 앞에서 그런 취급 받는 것은 이제는 못 참는다.
이제 딸은 없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귀하게 여기는 아들만 보고 살으시라고 ... 그렇게 말했습니다.
네....
이렇게 말하고 연락을 끊은지 몇 달됩니다.
연락만 끊으면 시원해 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헌데... 이게요.. 가슴이 너무 답답하네요.
어느 순간 갑자기 옛 기억이 작은 거품 터지듯 떠오르면 연달아 큰 거품들이 마구 잡이로 터집니다.
얇은 천으로 살짝 덮어놨었던 기억들이 다시 덮으려고 해도 덮이질 않아요.
누군가는 저보다도 더 크고 무서운 일을 당하셨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분에 비하면 전 평범한 축에 속할 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너무 아프네요. 답답하고요.
남편에게도 제 사정 얘기했습니다. 이제 이렇게 되었으니 명절에 친정가기 어렵겠다고요.
남편은 옛 기억이니 잊어버리도록 해라. 널 완전히 이해는 못해도 옆에서 힘내도록 도와주겠다. 라고 말합니다.
네... 복이죠. 아버지같은 남편 안 만난 것은 참 복이지요.
폭언도 폭력도 없고 제가 하는 일들 다 칭찬해 주고, 주부지만 제 커리어 쌓으라고 자격증 공부도 적극적으로 밀어주고.....
그리고 세상에서 제가 제일 예쁘다고 말해주고 사랑한다고 수시로 말해주는 복입니다.
근데요... 남편의 사랑과 아이의 웃음만으로도 제 어릴 적의 기억과 상처는 치유가 안되네요.
잊어버리고 사는 것 같다가도 어느 순간 밀려와 사람 가슴을 후벼팝니다.
그냥 많이 아픕니다. 마음도 아프고 어릴 적 자그마한 기억 속의 제가 너무 아프네요.
특히나 오늘 같은 밤에는요.
눈물이 그냥 저녁 차리다가 왈칵 쏟아져서 양파 때문이라고 변명을 해대었내요.
강하고 포용력있는 엄마가 되고 싶은데 최근 친정 집에서의 사건 이후 눈물 많고 무기력한 엄마 모습을 많이 보여줘서 아가에게 너무 미안해요.
강해지려고 마음 먹다가도 그냥 아무렇지 않게 유모차 끌고 길을 걷다가 눈물이 터지고....
너무나 긴 글이라 여기까지 읽으신 분이 별로 없으시겠지요.
처음에는 "열심히 살았다."는 작은 위로를 받고자 했는데 여기까지 읽어주시는 것만으로도 고마워요.
그냥...
+ 베플
첫댓글 ....................................아 화가나
아... 뭐라고 해야될지 모르겠다.
너무화가난다
아..화나고 답답하다;;
아니.. 뭐 이런...... 허...
화가 나네....
아.....화나
화난다 ㅈ진짜 개싸이코네
아 화난다..
이건 진짜..... 아버지란 사람보다 엄마가 더 무섭다;;; 어떻게 니가 맞춰줘라 이런 말을 할수가 있지...자식한테...
저게 사람인가
씨발 와 나같으면 내가 선방날린다 진짜 엄마고 아버지고 인간이 아니다 진짜 아오
친정아버지란 인간이 제정신이 아니네... 아....
존나 빡친네시발 저게 인간이냐 아오
세상에 미친인간이 많아 저분 그래도 이제 벗어나서 행복하게 사셨으면 좋겠다ㅠㅠ
아버지라는사람은 진짜 쓰레기지만 엄마라는사람이더무섭다진짜 어떻게견뎠지ㅠㅠ
나같은면 확 엎어버리고 인연끊었다 저게 무슨 부모야ㅡㅡ 또라이네 아 화나ㅠㅠㅠㅠ
헐
하.......
쓰레기
아......
내같으면 진작에 삐뚤어지고 집나왓다 와 내가다 열받네
친부모가아니지않을까생각이드네....어떻게저럴수있지......
힘내세요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