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14일 오늘의 역사
2023년 윤석열 대통령 6박8일 간의 UAE(아랍에미리트)와 스위스 다보스포럼 순방
2022년 북한 열차에서 단거리 미사일 2발 발사
2022년 미국LA에서 화물열차 약탈사건 발생
2015년 ‘국제시장’(감독 윤제균) 한국영화사상 11번째로 1,000만 관객 돌파
2011년 튀니지 대통령, 민주화시위 피해 사우디로 도피
튀니지의 벤 알리(Zine El Abidine Ben Ali) 대통령 일가가 전국적인 민주화 요구 시위를 피해 사우디아라비아로 피신했다. 23년 독재가 청산된 이 사건을 두고 튀니지 국화인 재스민 꽃의 이름을 따서 재스민 혁명(Jasmine Revolution)이라고 부른다.
튀니지 시민혁명은 2010년 12월 17일 남동부 지방도시 시디 부지드시(市)에서 20대 과일노범상이 경찰의 물품압수에 항의하며 분신자살을 시도가 원인이었다. 이 청년의 사연이 실업난과 빈부격차에 불만을 품고 있던 청년층의 분노를 촉발시켰고, 이 무렵 폭로 사이트인 '위키리크스'에서 공개한 튀니지 대통령 인척들의 '도둑정치(kleptocracy)' 내용이 확산되며 시위대의 분노가 전국으로 퍼졌다. 이 때문에 튀니지 시민혁명을 '위키리크스 혁명', '트위터 혁명'으로 부르기도 한다.
제인 벤 알리 대통령은 총리로 재직 중이던 1987년 11월 7일 쿠데타로 집권하여 20년간 연평균 경제성장률 5%를 유지하는 등 튀니지를 북아프라키 내 잘사는 국가로 만들었으나, 부정부패 및 언론통제에 대해 비판을 받아왔다. 민주화 시위의 확산으로 벤 알리 대통령은 차기 대선 불출마 선언·조기총선 실시 약속 등 사태수습에 나섰으나, 시위대의 하야 요구가 수그러들지 않자 결국 가족과 국외로 도피했다.
2008년 삼성 특검:특검 수사팀은 서울 이태원동에 위치한 이건희 회장의 개인 집무실 승지원을 전격 압수수색했다
2005년 하위헌스 탐사선이 토성의 위성 티탄에 착륙함.
2002년 신승남 검찰총장 사퇴
신승남 검찰총장이 2002년 1월 14일 `이용호 게이트`와 관련 동생 신승환씨가 구속됨에 따라 이에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이로써 2001년 5월 26일 출범했던 `신승남 총장 체제`는 7개월여 만에 막을 내렸다.
신 총장은 야당의 탄핵공세에 시달리는 등 바람 잘 날 없는 7개월을 보냈다. 2년 임기를 채운 박순용 전 검찰총장에 이어 검찰총장에 내정됐지만, 연이어 터진 안동수 전 장관의 `충성서약` 파문과 사퇴로 뒤숭숭한 상태에서 총장에 취임했다. 당시 그는 "일선 검사들이 양심에 따라 수사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임 일성과 함께 의욕적으로 업무를 시작했으나, 오래가지 못했다.
2001년 7월부터 두달간 진행된 언론사 세무조사 사건 수사는 `정치 수사`라는 비판을 면치 못했고, 9월 이용호씨 사건이 정·관계 로비의혹 사건으로 비화되고, 친동생인 승환씨의 연루사실이 드러났다. 또 각종 게이트 등에 연루돼 임휘윤 전 부산고검장 등 간부들이 줄줄이 옷을 벗기도 했다. 결국 2001년 12월 6일 야당인 한나라당의 주도로 탄핵소추안이 발의돼 표결까지 갔으나 당시 여야 모두의 속사정으로 검표가 이뤄지지 않아 위기를 가까스로 넘기는 듯했으나 한달여 만에 특검 수사로 동생 승환씨가 구속되자 이날 사퇴했다.
2000년 첫 영장류 복제 원숭이 ‘테트라(Tetra)’ 탄생, 과학전문지 사이언스에 발표
미국 오리건 영장류연구센터와 오리건 건강과학대학 공동연구팀은 2000년 1월 14일 과학전문지 사이언스에 배아 분리 기술을 이용한 ‘테트라(Tetra)’라는 이름의 암컷 원숭이를 복제하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이들 연구팀이 이용한 배아 분리 기술은 1996년 영국 로슬린 연구소가 탄생시킨 복제양 돌리의 체세포 복제와는 다른 기술이었다. 제럴드 새튼 교수팀은 암-수 원숭이의 난자와 정자를 이용, 인공수정란을 만든 뒤 배아가 8개의 세포로 분열됐을 때 이를 4개로 쪼개 각각의 배아로 만들었다. 일란성쌍둥이가 만들어지는 것과 비슷한 원리로, 테트라는 수정란을 넷으로 쪼갠 뒤 각각 다른 네 마리의 암컷 원숭이에게 착상시켜 길러낸 것 중 유일하게 성공한 원숭이이다.
테트라의 탄생은 인간과 가까운 영장류에 대한 복제 시도라는 점에서 윤리적 논란을 일으켰다. 돌리 양을 복제한 로슬린 연구소의 이언 윌머트 박사가 인간 배아 복제 실험에 착수하겠다고 밝히는 등 세계 곳곳에서 인간 복제 실험에 대한 논란이 확대돼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2000년 재일동포작가 현월(玄月), 일본 아쿠타가와상(芥川賞) 수상자로 선정
재일 한국인 2세인 현월(玄月·34)씨가 일본의 권위있는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芥川賞)의 2000년 수상자로 결정됐다. 제122회 아쿠타가와상 심사위원회는 2000년 1월 14일 현월(본명 현봉호)씨의 `그늘의 소굴`과 후지노 지야씨의 `여름의 약속`를 수상작으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현씨는 재일 한국계로서는 이회성, 이양지, 유미리씨에 이어 4번째로 아쿠타가와상 수상작가가 됐다. 수상작 `그늘의 소굴`은 재일한국인들이 살고 있는 오사카의 집단 취락지를 무대로 한 노인의 일상생활을 그린 작품이다. 등단 6년째인 그는 태어나서 성장한 곳 자체가 소설의 무대였다. 재일한국인 거리인 오사카 이쿠노구에서 태어나 지금껏 그곳에서 살고 있다. 이쿠노는 일제시대와 해방직후 일본에 건너온 `재일` 1세들이 몰려들어 자리를 잡은 대표적인 한국인 집락촌이다.
오사카 시립 미나미고를 졸업한 뒤 그는 부친이 경영하는 영세 신발공장에서 일을 돕다가 29세 되던 해 작가의 길을 걷기로 뒤늦게 결심했다. 이후 문학학교에 등록, 공장에서 일하면서 작가 수련을 받는 생활을 계속해왔다. 수상작 `그늘의 소굴` 역시 신발공장에 나가 부친의 일을 도우면서 틈틈이 써낸 작품이다. 이번 수상 이전에도 `무대 배우의 고독`이 1998년 문학계동인지 최우수작품과 제8회 고타니 쓰요시(소곡강) 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되는 등 일찌감치 주목받는 신인으로 꼽혀왔다. 전해에도 일본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아쿠타가와상 후보로 올랐으나 탈락한 바 있다.
1999년 미국 상원 클린턴에 대한 탄핵재판 개시
1997년 대만, 미국에서 도입한 패트리어트 미사일 실전배치
1997년 1월 14일 대만은 중국의 미사일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미국으로부터 구입한 2백기의 패트리어트 미사일 중 대만이 처음으로 인수한 미사일을 대만 북부지역에 위치한 군기지에 배치했다. 패트리어트 미사일은 미국에서 개발한 지대공 미사일로 `미사일 잡는 미사일`로 불린다.
고성능으로 복수의 적기 및 공대지 미사일의 중-고공 요격기용으로 설계되어 있으며 다단열 레이더는 강력한 ECCM (전자전대방해대책) 능력을 갖고 있다. 걸프전에서 이라크의 스커드 미사일을 효과적으로 요격함으로써 유명해졌다. 그러나 패트리어트는 걸프전 당시 명중률에서 중대한 의문이 제기되었고 북한, 중국 등에서 사정거리가 신장된 새 미사일이 개발됨에 따라 미국은 1994년 4월 패트리어트를 최신형 에린트(사정확대 요격) 미사일로 교체하기로 확정했다.
1996년 방송통신위성 `무궁화2호`, 미국 케이프커내버럴 공군기지에서 발사
방송-통신위성 `무궁화2호`가 1996년 1월 14일 미국 케이프커내버럴 공군기지에서 발사됐다. 무궁화2호는 크기와 성능면에서 1호위성과 똑같지만 1호위성이 발사실패로 수명이 4년6개월 밖에 되지 않는 반면 2호위성은 10년 이상 사용할 수 있게 제작됐다.
무게 약 6백12Kg으로 12개의 통신용 중계기와 3개의 방송용 중계기가 실렸다. 방송용 중계기는 각각 4채널을 확보할 수 있어 2호위성으로만 12개의 디지털 위성방송이 가능하게 됐다. 2호위성의 위치도 적도위 동경 1백16도 보르네오 상공 3만6천Km지점으로 1호위성의 바로옆이었다. 1호위성과 거리는 35-50Km를 유지했다.
1996년 삼파이오, 포르투갈 대통령에 당선
1992년 엘살바도르 정부와 좌익반군 분도마르티 해방전선(FMLN) 75,000명의 희생자 낸 12년간의 내전 종식 위한 평화협정 서명
1991년 팔레스타인해방기구 제2인자와 보안책임자 튀니지에서 경호원에게 암살
1988년 문교부 새 맞춤법 표준어 확정 발표
1987년 서울대생 박종철군 고문사
서울대생 박종철군이 치안본부 남영동 분실에서 수사요원 조한경 경위와 강진규 경사의 물고문을 받다 1987년 1월 14일 사망했다.
박종철군은 서울대 ‘민주화추진위원회’ 사건 관련 주요 수배자인 박종운의 소재파악을 위해 참고인 자격으로 영장없이 불법 연행돼 치안본부에서 조사를 받던 중이었다.
15일자 석간신문에 “책상을 ‘탁’ 치자 ‘억’하고 쓰러졌다”는 경찰발표에 의해 단순 쇼크사로 보도됐으나 16일자 신문에 오른쪽 폐에 탁구공 크기만한 출혈이 있었다는 부검입회 가족의 증언이 실리고 17일 사체를 첫 검안한 의사 오씨의 “조사실 바닥에 물이 흥건했다”는 등 고문 시사 증언이 신문이 보도되면서 사건의 실체가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결국 치안본부 특수대는 17일 수사에 착수 19일 고문사를 공식인정하면서 조한경 강진규 2인을 고문 치사 혐의로 구속했다.
그러나 5월 18일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성명발표를 계기로 이 사건이 축소조작 되었으며 고문가담 경관이모두 5명이었다는 사실이 새롭게 밝혀짐으로써 정권에 대한 국민의 분노와 민주화열기가 다시 폭발했다.
국민의 반독재 민주화운동은 격렬하게 전개되어 곧바로 6월항쟁으로 이어짐으로써 이 사건은 5공 몰락의 기폭제가 됐다.
이후 박군의 유족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내, 2억4000여만원의 배상금을 지급받게 됐다.
그러자 국가는 다시 고문사건에 연루됐던 일선 고문경관들을 상대로 구상금 청구소송을 냈다.
대법원은 지난 2000년 12월 26일 “배상액의 70%를 일선 고문 경관들이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그리고 2001년 3월 14년 만에 ‘박종철’군은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최종 확정돼 명예회복됐다.
1984년 부산 대아관광호텔 화재(38명 사망, 23명 중경상)
1984년 1월 14일 부산 부산진구 부전동 서면로터리에 위치한 대아관광호텔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헬스클럽 종업원이 난로에 석유를 넣는 과정에서 부주의로 기름이 난로에 뿌려진 것이다.
오전 7시50분 4층 헬스클럽에서 발생한 불은 8시께 호텔 내 다른 층으로 번져 외부에까지 연기가 퍼져나갔다.
뒤늦게 119에 화재신고가 접수되고 소방대가 현장에 도착해 진화작업을 시작한 것은 8시17분께였다. 화재 발생으로부터 거의 30분이 지나서였다.
불이 나자 일부 투숙객은 재빨리 옥상으로 대피해 무사히 구조됐다.
공군 헬리콥터를 비롯해 7대의 헬기와 특수구조대의 활약으로 50여명이 극적으로 목숨을 건졌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헬기에서 내려준 구조용 로프를 비행도중 놓치는 바람에 사망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오전 9시께 초기진화가 완료되고 발화 2시간 후인 10시께 불씨가 완전히 제거됐다. 유독가스가 제거된 뒤 실내 수색작업 결과 투숙객 38명이 사망하고 76명이 부상했다. 사망자는 대부분 유독가스에 질식해 숨진 것으로 확인됐다.
사망자가 많은 것은 전날 호텔에서 인기 연예인의 공연이 있어 젊은 투숙객이 많은데다 과음 과로로 화재발생 경보음을 듣지 못해 제때 대피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추정됐다.
2200여 평에 달하는 호텔 건물 전체 중 460여평을 태워 3억 원의 재산피해도 났다. 당시 대아관광호텔은 부산에서 제일 큰 국제호텔이었다.
1983년 한국, 비행정보구역 일본-중공기 통과 허용. 일본, 미국에 군사기술 제공 결정
1981년 단국대, 강원도 영월에서 고구려 왕검성 발견
1980년 유엔특별총회, 아프간주둔 소련군 철수결의안 가결
1978년 수학자 쿠르트 괴델 사망
수학자이며 논리학자인 쿠르트 괴델이 1978년 1월 14일 미국에서 사망했다. 체코슬로바키아에서 태어나 오스트리아에서 활동했으나 1938년 나치의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이주, 그곳에서 프린스턴 대학의 고등학술연구소에서 연구했다.
`수학의 마왕` `수학의 신`으로 불리운 괴델은 24세 때인 1930년에 `불완전성 정리`를 발표, 수학 뿐 만아니라 사상계 전반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즉 "증명도 반증도 할 수 없는 수학적 명제가 존재한다"는 제1 불완전성 정리와 "수학은 그 내부에 모순을 포함하지 않는다"는 제2 불안정성 정리를 엄밀한 수학적 접근으로 증명한 것이다. 수학자들의 주요 관심사가 수학의 무모순성을 증명하려했던 20세기 초에 괴델이 학계에 던진 충격은 실로 막대했다. 이를 두고 `괴델 붕괴`라고 할 정도였다.
`수학은 완전하다-모든 수학적 정리는 체계 내에서 증명 가능하다`는 믿음이 20세기 초 수학계를 지배했기 때문에 충격은 더 컸다.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는 인간 지식의 한계를 입증한 대표적 이론으로 꼽혔다. 괴델은 또 `논리적으로 올바른 명제는 모두 논리적 체계 내에서 증명할 수 있다`는 완전성 정리를 증명하는 대단한 업적을 남겼다.
1978년 영화배우 최은희 홍콩서 북한에 납치
합작영화 ‘양귀비’의 출연교섭을 위해 1978년 1월 11일 홍콩에 갔던 여배우 최은희가 1978년 1월 14일 현지서 납치돼 북한으로 보내졌다.
홍콩과 국내 수사기관은 북한지령을 받은 홍콩 거주 이상희 여인과 이 여인의 사주를 받은 교포 김규화 및 중국인 왕진일 등의 음모에 의한 납치로 추정, 김규화를 반공법과 여권법 위반혐의로 구속하고 실형을 선고했다.
최은희의 납북사실은 후에 알려졌는데 그는 화물선을 타고 북한에 보내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도착한 남포항에는 김정일이 직접 마중나온 것으로 알려져 그에 대한 김정일의 관심을 엿볼 수 있었다. 남편 신상옥씨도 같은해 7월 19일 홍콩에서 납북됐다. 영화광으로 알려진 김정일은 두 사람에게 낙후된 북한 영화를 활성화 해줄것을 요구했으며, 두 사람은 ‘탈출기’, ‘소금’ 등 7편의 영화를 제작하며 왕성한 활동을 펼쳤고, 최은희는 1985년 모스크바 영화제에서 ‘소금’으로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공산권의 각종 영화제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자 김정일은 두 사람에게 특별히 동구권 여행을 허락했고, 두 사람은 납북 8년 2개월 만인 1986년 3월 13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극적으로 서방세계로 탈출했다.
1977년 포항제철 단일규모로 세계최대 분괴공장 착공
1975년 정부, 석가탄신일-어린이날을 공휴일로 제정
1974년 긴급조치 3호 선포(12월 27일 해제)
1972년 덴마크의 왕 프레데리크 9세 사망
1967년 해군함정과 여객선 한일호 충돌
1967년 1월 14일 밤 경남 창원군 천가면 가덕도 서남쪽 2km해상에서 해군후위구축함 충남호와 여수-부산간 정기여객선 한일호가 충돌, 승객111명이 사망하고 34명이 실종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이날 참사해역엔 폭풍주의보가 내려 초속10m의 북서풍이 불고, 2m내지 3m의 파도가 일고 있었다. 충남호는 동해안에서 18일동안의 해상경비 임무를 마치고 약 20노트의 속도로 기지인 진해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한일호에는 사고당시 1백8명의 승객과 13명의 선원 등 1백21명이 타고 있었다. 그밖에 표를 사지 않은 잡상인과 어린이 등 10여명이 타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돼 피해자가 속출했다. 이날 사고는 충남호가 가덕도를 우회하는 순간 부산으로 가던 한일호가 나타나 단성 5발을 울렸는데도 충남호 선수좌현을 들이받아 10여분 만에 침몰했다.
1966년 베트남 쿠데타(6차) 실패로 웬찬띠 장군 해외도주
1963년 드골 프랑스 대통령, NATO협정 불참가 및 영국의 EEC 가맹거부를 표명.
1962년 알제리의 OAS(비밀군조직) 조직적 테러 개시
1960년 흐루시초프, 소련 최고회의서 병력 1/3 삭감 제의
1960년 농림부, 농촌고리채정리요강 작성
1959년 북한 노농적위대 창설
1957년 영화배우 험프리 보가트 사망
`아프리카의 여왕`(1951년작)으로 아카데미 주연상을 수상한 미국 영화배우 험프리 보가트가 식도암으로 1957년 1월 14일 사망했다. 향년57세였다. 보가트는 1940~50년대 영화에서 거친 남성의 이미지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사망 3일 후 비버리 힐즈 교회에서 거행된 장례식에서는 `아프리카의 여왕`을 연출한 존 휴스톤 감독이 간결하고 감동적인 조사를 읽어 사람들의 눈물을 자아내게 했다. 영화 `탈출`에서 공연한 로렌 파콜과 4번 째 결혼했지만 `처 다음으로 좋아하는 것은 요트`라는 그의 뜻을 기려 관에 그가 가장 좋아하는 요트 `산타나호`의 모형을 함께 넣어 묻었다
1956년 서울시 주최 제1회 연날리기 대회
1954년 마릴린 먼로, 야구선수 조 디마지오와 결혼
미국 최고의 인기를 자랑하는 야구선수 조 디마지오와 섹스 심벌 마릴린 먼로가 1954년 1월 14일 샌프란시스코 시청에서 결혼했다. 매스컴은 이들의 결혼을 ‘세기의 결혼’이라고 대서특필했다.
디마지오가 12살 연상이었으며 두 사람 모두 두 번째 결혼이었다. 디마지오는 56경기 연속안타, 통산타율 0.325, 홈런 361개를 남긴 미국 프로야구의 전설적인 존재였다.
두사람은 물과 기름이었다. 결혼식에서부터 성격차가 드러났다. 결혼식을 조용하게 치르려는 디마지오와 달리 먼로는 화려한 결혼식을 원했다. 먼로는 디마지오와 상의도 없이 각 매스컴에 연락, 기자들과 500여명의 하객들을 모이게 한 후 성대한 결혼식을 치렀다. 먼로는 결혼증명서에 ‘노마 진 모튼슨 보거티’라는 본명을 서명했으나 나이는 실제나이보다 세 살 아래인 스물 다섯으로 기록했다.
허니문 기간동안 먼로는 디마지오의 사전 스케줄에 맞춰 일본행에 동행했다. 일본에서의 열렬한 환영에 먼로는 고무됐고, 그곳에서 즉흥적으로 주한 미군을 위문하기 위한 한국행을 결정했다. 디마지오는 그녀의 한국행에 동참하지 않았다. 막 전쟁이 끝난 폐허에서 그녀를 맞은 주한 미군 병사들은 열광했다. 대구 동촌비행장에는 연극배우 백성희와 최은희를 포함, 수많은 인파가 몰려 북새통을 이뤘다.
두 사람은 9개월만에 파경을 맞았는데, 먼로의 애정편력과 디마지오의 잦은 구타가 원인이었다.
1953년 티토. 유고 초대 대통령에 선출
1948년 유고가 코민포름으로부터 추방된 후 국내에서는 자주관리형 사회주의 노선을, 대외적으로는 비동맹중립외교를 추진해 온 유고슬라비아 수상 티토가 1953년 1월 14일 개정헌법에 의해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개표 후 티토는 우뢰와 같은 박수를 받으며 회의장에 모습을 드러내 “‘인민 모두에게 권력을’ 이라는 슬로건이 달성된 지금 국가에 의한 강제관리는 이미 필요없다” 고 연설했다. 회의장에 있던 선거인은 ‘우리들의 티토’ 라며 환호를 보냈고 밖에는 수만명의 군중이 몰려들었다.
노동자 출신인 티토는 2차 대전때 독일에 대항하는 빨치산으로 활약하다 유고가 독립하자 정권을 장악했다. 이때부터 유고는 티토의 화합적 리더십과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안정된 국가를 유지했다. 티토는 스탈린주의와 거리를 두는 독자적인 사회주의 노선을 펼치며 냉전시대 양극대결에 휘말리지 않는 지혜를 보였다.
1950년 호치민 베트남공화국 독립선언
1949년 항공사관학교 창설
1949년 1월 14일 국방경비대 산하 항공사령부의 장교육성을 위해 경기도 김포에 설립한 군사교육기관이며 1949년 10월 1일 공군이 육군에서 분리되며 공군사관학교로 개칭되었다
1944년 소련군 레닌그라드에서 독일군에게 반격 개시
1943년 2차대전 중 연합국 수뇌들 카사블랑카에서 회합, 독일에 무조건 항복 요구 성명
1938년 일본의 정치가 호소카와 모리히로 출생
1935년 자르지방, 인민투표로 독일복귀 결정
1934년 진강에서 재중국독립단체대표회의
1920년 스페인의 소설가 페레스 갈도스 사망
1914년 호남선 철도 개통
1912년 프랑스, 포앙카레내각 성립
1908년 소설가 이무영 출생
1904년 영국의 사진가 세실 비턴 출생
1900년 오페라 `토스카` 로마에서 초연
1896년 미국 작가 도스패소스 출생
1875년 알베르트 슈바이처 출생
1874년 독일의 물리학자 조한 필립 라이스 사망
1850년 프랑스의 소설가 피에르 로티 출생
1818년 핀란드 역사 소설의 아버지 토펠리우스 출생
1753년 영국의 철학자 조지 버클리 사망
1742년 영국의 천문학자 핼리 사망
1739년 중국 영하 지방에 지진 사망 5만여 명
1701년 일본의 봉건영주 도쿠가와 미쓰쿠니 사망
1627(조선 인조 5) 정묘호란 일어남
926년 발해, 거란의 침입을 받고 멸망
877년 고려 태조 왕건 출생